지뢰진 1 - 소장본
다카하시 츠토무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안타깝고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19권의 3/4쯤 읽었을 때, 몇 페이지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이이다가 입을 열고 말해주기를 미치도록 기대했지만,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피와 섹스와 죽음과 온갖 범죄들이 난무하지만 일상화된 일본 만화의 시각적 폭력 앞에 길들여져서인지 거기에 눈이 쏠리지는 않는다. 유머도 과장도 교훈도 아무 것도 없다. 참을 수 없으리만큼 건조하고 그 비정함과 어둠의 무게만이 읽는 이를 짖누르게 한다.

그리고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친절한' 만화들에 길들여진 독자들은 으레 전지전능한 작가가 무언가 말해주길 기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뢰진]에 그런 것들은 없다. 묻혀지고 잊혀지고 해결되지만 해결되지 않고... 현실은 이런 거다, 어디까지나.

또한 일상적인 '만화의 법칙'을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되지만 역시 그런 법칙도 깨진다. 파트너 여형사는 그저 파트너 여형사이다. 주위의 인물들이 죽지만 쿄야는 죄책감도 눈물도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 쿄야를 좋아하는 여자가 등장하지만 그 여자가 총에 맞아 죽어도, 그 장기를 기증한 여자가 또 등장해 쿄야에 의해 두근거림을 느껴도, 쿄야는 여느 때와 같이 냉담하기만 하다.

19권에서 사실은 나 역시 기대했다. 조금이라도 아츠코를 생각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이이다 쿄야란 자식에 대해서 작가가 무엇인가 말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없었다. [빅 오]의 로저 스미스처럼. 그에게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범죄자들을 죽이거나 체포하는 것만이 전부인 현재 말이다. 그것도 형사로서의 윤리나 아이덴티티가 없는 그저 '죽이거나 체포하는 것'만이 전부다. 그에게 있어 형사라는 직업은 단지 '호흡'이며 언젠가 호흡은 멈춘다. That's it.

물론 단점이 없는 작품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그 단점들을 지적하기 싫다. 한 가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일종의 영웅 심리에 이끌린 것은 아니다.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작가로부터 느낀 커다란 공허감에 난 끌려버렸고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2002. 9.19 by f.y. very much m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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