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소설 팬으로서 휙휙 재미있게 읽었다. 웹소설 작가가 되려는 건 절대 아니지만, Y 모 편집자 덕분에 시리즈 전질을 훑어볼 기회가 있었다. 재미있는 시리즈다. 문고본이 팔리지 않는 한국 시장에서는 더더욱. 옛날옛날 ‘책세상문고’에서도 SF 같은 주제는 사서 읽어봤는데, 그때와 비슷한 독서 경험이었다. 즉, 활자화된 레퍼런스로서의 의미가 컸다.
사실 호러 소설 가이드(?) 하면 이미 북스피어에서도 문고본으로 [공포 문학의 매혹]을 낸 적이 있다. 나야 러브크래프트의 광팬이니까 나오자마자 읽어봤고, 읽는 내내 거의 매 페이지마다 밑줄을 그어야 했다. 아니 이런 작품이? 아니 이런 작가가? 막 이러면서 읽을 목록에 추가할 책이 계속 길어졌으니까. 번역되지 않은 작가와 작품도 많아서, 뭔가 가슴이 뛰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각종 전자책이나 인디 출판 형태로 고전 고딕소설이나 공포 소설이 국내에도 간간이 소개된 적이 있다. 이 분야는 아직도 번역할(될) 고전이, 낼(나올) 고전이 이렇게나 많다. 고전(일단은 시대적인 기준이다)만 봐도 이 정도인데, 토머스 리고티, 조지프 풀버, 클라인 등 동시대로 오면 더 많다. 내 아마존 위시리스트는 HPL의 영향(가령 상중하)에 따라 세분화된 호러 소설들로 가득하다.
이 책으로 돌아오면,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라는 시리즈를 달고 있는 만큼 위에서 언급한 문고본들과는 차별점이 있다. 말하자면 최신 트렌드가 담겨 있다. 즉, 레퍼런스의 범위가 책으로 한정되지 않고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SF, 신화 등으로 확장된다. 영상 매체에 익숙한 젊은 독자(작가)들에게는 이러한 접근이 온전히 효과적일 것이다. 여기에 요즘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는 PC 통신(!) 사례도 등장한다는 점은 재미있지만, 한편 비디오게임의 예시는 없다는 점(최근의 서바이벌 호러 붐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된다!)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굳이 나눈다면, 여전히 ‘구세대’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 같고, 이 시리즈가 오늘날의 하위 장르를 다루는 게 목적이라면 이는 분명히 아쉬운 한계다.
또 한 가지 응당 언급되어야 할 텐데 빠져 있는 건 프렌치 익스트림 계열의 몇몇(정확히는 4편 정도) 영화다. 여기서 나아가면 고어(스플래터) 영화와 고문 포르노 쪽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데, 이쪽 계열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너무 마니아스러운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고어는 현대 호러의 한 축을 차지하며(했으며) 작가라면 이에 대한 고민도 피할 수 없다. 공저자인 김종일의 글에서 얄팍함이 느껴지는 것은 특히 그런 이유에서다.
적어도 나름 성실한 호러광인 나는 언급하는 대부분의 작품을 최소한 들어보기라도 해서 아주 흥미롭게 술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오늘날 하위 장르 문화에서 러브크래프트나 크툴루 신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다소 과소평가된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대신 독일 표현주의 영화(37쪽)라든가 [스카이 하이](55쪽), 특히 [어느 날 갑자기](63쪽) 같은,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를 만한 작품들이 언급되는 곳에서는 거의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 역시 옛날(...) 사람으로서 PC 통신 시절부터 ‘어느 날 갑자기’의 팬이었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는 전질을 사서 모아놓기도 했다. 물론 레퍼런스로서의 가치는 내가 모르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많이 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고, 그런 면에서도 약간의 소득은 있었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레퍼런스가 아니라 가이드를 지향하고, 따라서 한국 문단의 상황이나 작품 성향, 그리고 한국 작가의 글이 함께 붙어 있다. 나는 물론 문화 소비자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지만, 솔직히 이 책이 작가 지망생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쪼끔 의문이다. 그럼에도 다른 하위 장르에 비해 특히 척박한 국내 호러 환경을 고려할 때, 이러한 책을 세상에 냈다는 데 박수를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