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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보에티우스 지음, 정의채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서기 480년 경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보에티우스는 명망 있는 학자였으나 동로마와 서로마의 분열 속에서 정쟁에 연루되어 반역 혐의로 감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는 몸이 된다. [철학의 위안]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보에티우스의 마지막 저서이자 고전 중의 고전이다. 교과서적인 소개.
판본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필로소픽 판은 전공자가 라틴어 원전을 충실히 번역했고, 가장 오래된 건 성바오로출판사(바오로딸) 판본이며(1964년 초판), 박병덕이 중역한 육문사 양장본도 있다(1990년 초판). 성바오로출판사 판본도 정의채 신부가 라틴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했다고 한다. 육문사 판에 비해 각주 수가 적고 각 절 서두에 직접 쓴 짧은 해제도 붙어 있지만 내용 이해에 크게 도움은 되지 않는다(특히 시 번역에 달린 각주). 2판은 1991년, 3판은 (아마도) 2007년에 나왔다.
육문사 판은 영어 중역임에도(혹은 중역이라서) 번역이 매끄럽게 읽히는 편이다. 전공자를 배려한 듯 영어 및 한자 병기를 수시로 사용해 철학 용어의 풀이에도 공을 들였다. 또한 각주를 통해 용어는 물론,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비롯해 거의 모든 고유명사에 관해 해설을 제공한다. 단, 원어 병기와 각주가 너무 길어 독서의 흐름과 가독성이 저해되는 문제점이 있다.
솔직히 나는 성바오로출판사의 올드한 판형과 문장이 왠지 마음에 든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바오로딸 출판사에서 직접 산 3판 2쇄다. 서른 살 때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접어가며 읽었다. 마음이 동해서라기보다는, 논지를 따라가기 위해서였지만. 보에티우스는 책 초반에는 철학의 여신의 입을 빌어 자신의 억울함과 고통의 의미를 자문하고 문답이나 운문의 형태를 통해 좌절, 행복, 인생의 의미에 관해 성찰한다. 딱딱하거나 현학적이지 않으며, 여러 시에서는 문학적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다(각주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런데 3권부터는 이런 ‘위안’을 주는 이야기가 끝나고 논증이 두드러진다. 만만하게 읽을 수가 없다. 가령 당시 3권(특히 83~128쪽) 논리 전개를 적어놓은 게 있는데 이런 식이다(정확하다는 보장은 없다).
A 완전한 선 = 참된 행복
B 불완전한 행복이 존재한다
C 완전한 행복이 존재한다 by B
D 신 = 최고의 선
E 참된 행복 = 신 by A & D
F 합일 = 선
G 만물은 합일 상태를 추구한다
H 만물은 선을 추구한다 by F & G
I 신은 만물을 다스린다
J 신은 선에 의해 만물을 다스린다 by D
K 만물은 신에게 복종한다 by H & J
이 논증과 관련해서 교과서적인 얘기를 다시 하자면, 이 저서의 근간에는 보에티우스의 종교철학, 즉 유일신 철학이 흐르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아우구스티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라는 역사적 가치를 띠는 동시에, 스콜라철학을 비롯해 중세철학의 뿌리가 된다는 평가도 있다(주지하다시피 중세철학은 곧 기독교 교리를 가다듬는 과정이었다).
적어둔 것 중에는 단테가 모방했다는 “모든 역경에 있어서 불행 중 가장 불행인 것은 자기가 과거에는 행복했었다는 바로 그 점이기 때문입니다.”(54쪽) 같은 명문도 있다. 사실 이건 육문사 판이 문장이 더 좋다. “운명이 가져다주는 모든 불행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것은 예전에는 행복했었다는 것입니다.”(육문사, 초판, 61쪽) 그냥 책의 역사적 의의나 철학이니 신이니 다 접어두고 이 한 문장만 떼어놓고 봐도 너무나 그럴싸한 말이 아닌가.
보르헤스를 사랑하는 나는 5권에 나오는 무한과 영원의 구분이 왠지 낯이 익었다. 보르헤스의 작품 어딘가에서 이러한 구분을 분명히 본 적이 있다(정확히 어떤 작품이었는지 기억나지가 않아 괴롭다). 각주를 보면 원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계론De Caelo]에 나오는 얘기라고 한다(De Coelo로 오기, 206쪽).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은 듯.
시대를 떠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 너무나 많다. 한 권 한 권 제대로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더욱 막막하다. 행간의 의미를 다 이해하는 건 무리고, 이렇게 고전 속에서도 뭔가 이상하게 나와 맞는 코드를 골라 읽기라도 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사실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은 결코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OUP에서 나온 루크레티우스의 [On the Nature of the Universe]는 아무 망설임 없이 원서를 구매했다. 단순히 표지가 예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