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5월31일에 가까스로 읽기를 마쳤다.

이 책을 다 읽기 위해 나는 노트북과 책을 싸들과 집 근처 카페로 왔다. 지난주에도 이 카페에 왔는데, 우리 동네에 그러니까, 테라로사가 있다. 이 집으로 이사오고나서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생각만큼 잘 가게 되지 않았었는데, 싱가폴에 가기 전에 한 번 그리고 싱가폴에 머물면서 잠깐 한국에 들렀을 때에도 들렀던 것 같다. 지난주에는 리뷰도 쓸겸 오랜만에 찾았는데, 와 너무 좋다! 4인 좌석과 테이블이 있지만 내가 앉은 곳은 아주 큰 테이블이고 그래서 자리를 아주 넓게 쓸 수 있다. 물론 아주 큰 데이블에 의자도 당연히 여러개이고, 그 자리마다 사람이 다 앉았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엄청 넓어! 찻값이 비싸지만 감수하게 된다. 와, 집에도 이런 책상 놓고 싶지만, 그러면 집이 커야겠지. 샤라라랑~





(지난주에 마셨던 캐모마일 티는 주전자에 줘서 양이 많아 좋았지만, 맛이 없었.....)



(오늘 주문한 레몬티는 맛은 좋았지만 양이 적었.... 그렇지만 이렇게 큰 테이블을 쓰게 해주심에 받아들입니다.. 하아-)



영어책 읽기를 할 때면 언제나 '이번 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쓰게 되는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가벼운 로맨스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진짜 영어 단어 무슨일이냐... 나중엔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글자만 봤다. 번역본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채경이에게 해석 시키느라 시간이 더 걸렸겠지. 하여간 번역본을 들어가며 이 책의 글자들을 훑으며 겨우겨우 다 읽었다. 힘겨운 읽기였다.


사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책 속 주인공들이 가진 유리한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계급사회가 나쁘다고 하지만, 그 말인즉, 계급사회가 존재한다는 뜻 아닌가. 이 계급사회에서 주인공 알렉스와 헨리는 최상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알렉스의 엄마는 알렉스가 양성애자이고 그의 애인이 영국 왕자라는 걸 알았을 때, 영국 왕자가 아니라 차라리 다른 평범한 남자를 만나는게 좋았을 거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만약 알렉스가 그리고 헨리가 사귄 동성의 애인이 다른 평범한 계층의 사랑이었다면, 그 때도 이 사랑이 인정받을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그들은 서로의 계급에서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찾아 선택한게 아닌가. 그도그럴것이, 이런 최상계급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과 아예 마주칠 일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영국 왕자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대통령 아들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거든. 부자들이 부자랑 결혼하는건, 그들이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부자가 훨씬 많기 때문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과 연인이 되는건, 만나는게 비슷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는 공간, 내가 가는 장소,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이라야 뭐 나랑 비슷한 사람이지.. 나는 한 번도 재벌을 만난 적이 없다니까? 재벌과 나의 접점은 무엇?? 뭐 딱히 재벌을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그래서 아마도 신분이 다른 사람들의 로맨스가 드라마나 영화로 인기를 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알렉스와 헨리는 사랑을 했고, 헨리는 특히나 영국의 왕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했으며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더랬다. 영국의 여왕이 그리고 영국의 국민들이 그를 곱게 볼 리 없으니까. 헨리는 자신의 행복을 기대하지도 않았던 거다. 그러나 알렉스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자신을 속이고 싶지도 않고 남들에게도 역시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아, 그들은 서로의 관계에 대해 언젠가는 알리고자 생각을 했더랬다. 지금은 말고, 그런데 조금 이따가. 왜냐하면 지금은 알렉스의 엄마가 재선을 노리는 선거기간이었고, 그러니 엄마가 재선되고 나면 그 때.. 로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공교롭게 그들은 아웃팅을 당한다. 



내가 동성애자인 것이 쪽팔리지 않다고 해도, 그리고 언젠가 밝힐 것이라 생각했다해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아웃팅을 당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내가 내 식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 대신 말하여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충격이고 상처인가! 나는 이런 식으로 밝히고싶지 않았어! 그래서 이렇게 밝혀진 데에 알렉스는 화가나고 분노하지만, 무엇보다 헨리 걱정이 크다. 헨리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헨리랑 연락해야 해! 간신히 며칠 뒤에 연락이 닿았을 때, 그 때 헨리와 알렉스는 서로를 걱정한다. 너 괜찮아? 그러니까 나도 힘들지만, 내가 힘든 만큼 상대가 힘들 것을 알기에, 그래서 상대를 걱정하는 거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된거, 우리 그냥 밝히자, 라고 결심하게 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또 코끝이 찡해졌다. 서로가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그 지점에서. 상대가 얼마나 힘들지 짐작하는 그 과정에서. 어휴, 얘들아, 사랑이 힘들지?



여기에는 엄마의 상대 경쟁 후보자가 있었고, 그가 알렉스의 아웃팅을 결정했다. 그는 알렉스에게 사람을 붙여 그의 이메일을 해킹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 촬영한다. 그래서 터뜨려버린다. 이거봐라, 지금 대통령의 아들이 게이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고 이 일은 여성 대통령의 연임에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군중들이 모여든다. 그들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둬라!! 그들의 사적인 이메일이 천하에 공개되지만, 그 메일들 중의 일부 문구는 시위 문구로도 쓰이기도 한다.



HISTORY, HUH? -p.360



그리고 이 일이 상대 후보 리차드의 일이었다는 것을, 알렉스 가족의 오랜 친구가 밝혀준다. 오랜 친구 라파엘은 어린 시절 리차드 로부터 성착취를 당한 일이 있고, 가족도 연줄도 없었던 그는 그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리차드가 청소년 대상 지원센터를 만든다니 위험하게 느껴졋고, 리차드가 대통령이 되어 더 큰 권력을 가진다면 피해자가 더 많아질 것 같아, 그가 벌인 일을 밝히게 되는거다. 



그러니까 권력형 성범죄와 그것에 대한 폭로까지 이 책에 있는거다. 작가 케이시 맥퀴스턴은 이 책에 하고 싶은 말을 많이 넣어두었는데, 그 과정에서 일이 해결되어가는 모습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지 않나 싶기도 한거다. 결국 재선에서 승리했을 때 어쩐 일인지 또 눈물이 울컥하긴 했지만, 흠흠, 내 엄마도 아닌데 왜... 하여간, 그러니까 이 책이 의미가 없는건 아닌데, 그런데 자꾸만 좀.. 너무 '다른'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헨리도 그리고 헨리의 누나 베아도,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자선 재단을 만들 때, 베아는 중독자들을 위한 모임을 만들고 헨리는 LGBTQ 를 위한 모임을 만들 때, 야, 누가 저런걸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겠나 싶은거다. 물론, 그 자리에 있어도 그런건 신경 안쓰고 주가를 조작한다던가 내란을 일으키는 것보다야 훨씬 생산적이고 바른 일이지만, 그런데 내가 만약 남성폭력에 피해자인 여성들을 돕고 싶다고 하면, 나는 그저 후원하거나 기부하는게 전부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지금 그걸 하고 있는거고. 나도 돈이 있고 힘이 있다면 그 여성들을 위한 재단을 만들어서 모두 다 끌어안고 싶단 말이지. 게다가 헨리의 이 성소수자 후원 모임은 그의 나라 영국에만 만드는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만든다는 거다. 그래서 미국 브루클린에도 만든대! 알렉스는 씐이나요 씐이나, 우리 자주 볼 수 있겠네? 로스쿨에 진학하려던 알렉스는 뉴욕대에 로스쿨 있으니까 거기로 진학하면 되겠다 생각한다. 뉴욕대 학비 개비싼데, 우리의 알렉스에겐 그 따위 걱정없지! 그러니까 좋은 일 하면서 앞으로 헨리와 알렉스는 자주 만나게 될텐데, 안이 세상에, 헨리는.... 브루클린에 집도 샀다는거에요. 눈물이 났죠.



"I bought a brwonstone. In Brooklyn." -p.414

"저택을 한 채 샀어. 브루클린에." -전자책 중에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야 이 쌍놈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십년 이상 일해도 집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놈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물론 네가 영국 왕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고.. 너는 네가 할 일을 하는 것이고 너는 네가 가진 것을 누리는 것뿐이지만...하여간 좀 재수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돈 있고 힘 있었으면, 그러면 칠봉이랑 헤어지지 않고 그 당시에 칠봉이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텐데.



"저택을 한 채 샀어. 호주에."


뭐, 그래봤자 헤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집을 사볼까?이러고 집을 살 수 있는 거 넘나 좋은 형편인 거 아닌가. 물론, 원하는대로 살(live) 수 없음에 답답하고 또 자기만의 고민이 있다는 거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러나 답답하고 자기만의 고민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누나 가슴속에 삼첨원쯤은 있는 거잖아요.....


아무튼 힘겨운 읽기를 가까스로 마쳣다. 뒤에 얼마 안남기고 얼마나 다른 책을 읽고싶었는지모른다. 만세!



(위는 크리스피크림의 피넛버터 도넛인데 존맛탱....)



이만 총총.

아, 페이퍼 하나 더 쓸거다,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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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5-31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달한 도넛이 급땡기네요😻 집에 없으니 일단 초콜릿 까먹어야지ㅋㅋㅋㅋ
뉴욕에 저택을 턱턱 살 수 있는 삶인데 이런 고민 따위 알빠임? 하는 마음으로 저는 이 책을 읽었어요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5-31 21:27   좋아요 0 | URL
브루클린에 저택이라뇨. 하.. 너무나 부러운 것입니다!!

단발머리 2026-05-3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재선에서 승리했을 때 어쩐 일인지 또 눈물이 울컥하긴 했지만, 흠흠, 내 엄마도 아닌데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부분 읽을 때 혼자 크게 웃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이 책이 무척 어려웠는데 단어도 어려웠고, 정치 이야기들이 좀 더 어렵게 느껴지더라구요. 또 한 가지, 솔직한 이유는...
최근에 계속 킨들로 읽다가 이 책을 읽으려니 글씨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거예요. 집중해도 잘 안 읽히고 그러더라구요. 프리다 맥파든이 상대적으로 쉬워서 그런면도 있었겠지만... 안 읽히니 더 미루게 되고.... (느닷없이 고백)

저도 저번주에 크리스피 피넛버터 먹었어요. 사진을 여기에 못 올려 속상할 지경입니다.
단 거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여하튼 완전 제 취향인 것입니다.

다락방 2026-06-02 18:27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 너무 어려워서 번역본 아니었으면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아 영화를 봤으니 절반은 이해했을지도.. 작가가 자기가 바라는 걸 다 넣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진보하는 사회에 대한 것까지 말이지요. 이 책이 아마도 그래서 빵터졌는가 봅니다. 미국에서 엄청 빵터진 책이래요. ㅎㅎ

크리스피 피넛버터 맛있죠? ㅋㅋ 아 너무 맛있어요! 저 또 먹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피랑 먹으면 진짜 꿀맛입니다!1
>.<

독서괭 2026-06-01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말이 그말입니다. 누가 사랑을 이루고 싶다고 바로 비행기 타고 쓩 날아가서 만나나, 뉴욕에 집을 사나, 삶의 목표가 바뀌었다고 갑자기 로스쿨 준비해서 들어가나, 세계 각지에 쉼터를 만드냐고요? 진짜 이런 일이 생기면 세상 퀴어들에게 복된 일이겠지만.. 너무 꿈같은 일이라 ㅎㅎ 그래 늬들 예쁜 사랑하렴.. 그냥 그러게 되네요 ㅎㅎ 심지어 가족들도 너무 잘 받아들이고 영국왕실 설득도 생각보다 넘 쉬웠음요..
그래두 나름 재밌었어요.. ㅎㅎ fuck이라는 말 되게 많이 쓰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ㅋ

다락방 2026-06-02 18:28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말입니다. 방도 좋고 청소해주는 사람도 따로 있고... 그들도 물론 그들 나름대로 고민이 있을테지만, 아니, 가사노동 없이 사랑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단 말입니까. 게다가 집을 사고 싶다고 브르쿨린에 저택 샀어, 라고 하다니. 아하하하하.
우리 원서 읽기 하면서 로맨스 하나 또 읽어봅시다. 이번엔 이성애 로맨스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Red, White & Royal Blue (Paperback) - 아마존 프라임 영화 <빨강, 파랑, 어쨌든 찬란> 원작
Casey Mcquiston / Griffin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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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 유색인종 이민자의 자녀, 양성애자인 아들과 그의 공식적 애인인 동성애자 영국 왕자. 이것은 케이시 맥퀴스턴이 그려낸 율도국 이야기. 의미가 없진 않지만, 아직은 이상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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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31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단발머리 2026-05-31 22:05   좋아요 0 | URL
완독! 완전 진짜 엄청나게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6-06-01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완독 축하드려요!!👏👏👏
 














(왼쪽이 개정판이고 나는 오른쪽의 구판으로 읽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고 그래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리뷰 쓰기를 포기했는데, 그러자니 또 그냥 넘어가기가 아쉬운거다. 


일단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살'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살에 대해 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철학적인가! 하고 깨달았다.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존재는, 체험의 부재는 이해할 수 있지만 부재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그건 존재하는 것이니까. 건강한 상태에서의 내 견해는 죽음 저편에는 영광이 있을 수도 평화가 있을 수도 공포가 있을 수도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으며 그것을 알기 전에는 모험을 걸지 말고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단은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실제로 20세기 중반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탐구에 생을 바쳤으며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과거에는 종교가 충분한 대답을 제공했던 질문들에 매달렸다. -p.364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얼마나 간단하며 명백한 진리란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살에 대한 부분만큼은 꼭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살에 대한 부분에서는 당연하게도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 생각이 났다. 사지마비가 되고나서 자신의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윌'과 그런 그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루이자'가 나온다. 자살은 단순히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그 혼자만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자살은 복잡해진다. 내가 내 죽음을 결정하는건 당연한거 아니야, 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주변사람들에게 이제 그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극한 슬픔이다. 그렇다면, 내가 슬프기 때문에 너는 죽지마, 라고 말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것은 죽기를 결심한 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슬픈 주변사람을 위한 것인가. 


앤드류 솔로몬은 이런 자살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은 충부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단순하게 죽음이 이 세상에서 내 존재를 없애는 것, 혹은 나약하기에 내리는 결정이라고 하기에, 자살이 담고 있는 것은 더 크고 깊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 고통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 없어, 자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앤드류 솔로몬이 우울증에 대한 이 책에서 '가난'에 대해 짚어준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어제 쓴 최미래 소설집의 리뷰에서 빈곤에 대해 언급했는데, 앤드류 솔로몬의 우울증에 관련된 책에서도 빈곤에 대해 얘기하게 될것이다. 그것은 빈곤이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며 또 우리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나라는 인간이 '빈곤' 과 '노동'에 대해 특히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우울증은 계층을 초월하지만 우울증 치료는 그렇지 못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대부분의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p.493



나는 어제 주식거래를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만의 축제'가 될 수 있다고 썼다. 빈곤한 자들은 주식 투자에 끼어들만한 여윳돈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누군가는 억을 벌고 또 누군가는 몇십만원을 벌며 아쉽다고 할 때, 빈곤한 자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서 더 벌어지게 될 그들의 경제적 격차, 그 빈부의 격차에 절망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질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병에 걸리는 건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치료하는 건 계급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은 돈이 있어 완치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치료받을 돈이 없어 그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것은 우울증에 있어서도 그렇다. 앤드류 솔로몬이 쓴것처럼,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저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는 것으로 이 현상은 끝인가. 아니, 그것은 그들의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우울증도 질병도 중독도, 가난한 자들이 그것을 치료하지 못하고 가져가는 이상,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가족, 특히나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정신 질환자)중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도 많지만 물질 남용이나 자기 파괴적 행위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폭력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정신 지체나 정서 장애를 유발한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인 어머니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면 그 자녀들은 복지시설이나 교도소 신세를 지기 쉬우며,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을 안고 사는 어머니의 아들들은 다른 소년들에 비해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어머니의 딸들은 다른 소녀들에 비 해 일찍 사춘기를 겪으며 거의 대부분 난잡한 성생활, 임신, 정서 불안의 문제를갖게 된다. 따라서 빈곤층의 우울증 치료에 드는 비용은 우울증을 방치한 결과에 따른 비용에 비교하면 그리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P496




나는 '레이첼 모랜'을 생각했다.


레이첼 모랜은 열다섯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었다. 레이첼 모랜의 어머니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두 성인 어른이 만나 사랑이란 걸 하고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는데, 그 병은 치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약물에 중독된 부모들이라 레이첼 모랜을 비롯한 자녀들은 가난과 폭력의 상황에 놓인다.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학용품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대신 늘 입었던 지저분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한다. 다른 아이들은 지저분한 아이들이라며 이 아이들을 무시한다. 게다가 이 어린 형제들은 언제나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다른 형제가 아닌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이 가정에서 버틸 수 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나름 영악해져야 하고 수시로 모든 것들이 내 탓이라는 필요없는 죄책감까지도 아이들의 몫이다. (소설이지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려낸 '루시'도 떠오른다. 루시는 그 가난한 집에서 가장 잘된 케이스였다.)


그런 가정에서 열네살이 되자 레이첼은 엄마로부터 내쫓긴다. 이제 다 컸으니 쉼터에 가서 네 살길을 모색하라는 거였다. 쉼터에 간다고 뚜렷한 대안도 없어 열넷에 레이첼은 노숙자 신세가 되고, 열다섯에 스물한살의 남자 애인을 만나 남자 애인으로부터 성매매를 권유받는다. 그렇다. 레이첼 스스로가 성매매가 답이라고 생각해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애인이 제안했고, 그러자 그것은 안될것도 없는 답이 되어 그녀 앞에 놓여진다.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성매매로 유입시켰다. 성매매로 그녀가 돈을 벌게 된 데에는 제일 먼저, 가난한 집안 환경이 있었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만약 부모가 건강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가난하지 않아서 부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면, 레이첼 모랜의 삶은 어릴 때에도, 그리고 당연히 어른이 되어서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앤드류 솔로몬이 우울증에 대해 폭넓게 다루면서 당연한듯 가난을 얘기해주어 고마웠다. 이것이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말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빈곤은 질병에도 사랑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빈곤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의 마지막 희망 부분은 특히 더 좋은데, 그가 우울증 삽화를 몇차례 겪었고 또 앞으로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한다. 


우울증을 겪는 동안 꼭 명심해야 할 점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생이 끝난 시점에서 불행했던 세월만큼을 더 살 수는 없다. 우울증이 삼켜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이 우울증을 겪으며 보내는 순간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겨우 숨만 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참을성 있게 견뎌 내면서 그 견딤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조언이다. 시간을 꽉 붙들어라.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당신의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p.632




이 조언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것이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지 않아도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유용하다 하겠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고, 그리고 이 책을 읽은 것이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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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2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우울해요? 한 번에 두 끼 먹어~🤣
ㅋㅋㅋㅋ 이 책 갑자기 읽은 까닭은?

저는 개정판 갖고 있는데 조만간 읽아야지!

다락방 2026-05-26 15:48   좋아요 0 | URL
요즘 좀 쭈굴쭈굴하긴 하지만, 우울하진 않습니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읽으려고 갖고있던 책인데, 이번에 친구랑 같이 읽자고 해서 읽게 되었어요. 좋았습니다!!

blanca 2026-05-26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명작이라고 생각했어요. 울컥하더라고요. 인용해 주신 부분은 또 울컥하네요. 같은 저자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도 정말 좋았어요. 요즘은 그만한 후속작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워요.

다락방 2026-05-26 15:47   좋아요 0 | URL
특히 마지막 희망 부분이 참 좋더라고요. [부모와 다른 아이들]도 예전부터 찜해둔 책인데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26-05-26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었는데 아직도 그 충격이 남아있어요.

다락방 2026-05-27 17:4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써준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완전히 모르고 살았다면 오해하기도 했을테니까요. 읽기를 잘했습니다.

단발머리 2026-05-2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면서 특히 인상깊었던 게.... 아파서 고생하는 이 책의 저자가.... 친구들 집을 전전하는 거요.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돌봐주잖아요. 우리는 아픈 사람 있으면 거의 부모, 형제, 자매, 가정의 책임인데요. 그게 우리와는 좀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울에 대한 부분은 저도 관심이 있어서요. 제가 찾아보니 이 책 읽고 글은 많이 썼는데 완독은 못 했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 오른쪽이 구판이네요. 그럼 제가 읽은 건 개정판. 근데, 대체 언제 사 두신 거예요? 미리미리 준비해둔 다락방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5-28 07:5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는 그래서 친구들도 대단하구나 싶었어요. 저라면.. 저는 확답할 수 없습니다. 하.. 저는 진짜 이기적인것 같아요 ㅠㅠ

저 이 책을 제가 산 건 아니고요, 예전에 알라디너 분이 나눔하신 적이 있어요. 그 때 받아둔 겁니다. 그걸 고이 모셔뒀다가 이번에 읽었습니다. 만세!! 저도 밑줄 많이 그었어요.
단발머리 님, 완독 가시죠!!
 
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울증을 앓는 원인을 딱 하나로 꼬집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 책에는 우울증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 자살에 대한 부분은 과연 철학적이고, 무엇보다 빈곤에 대한 부분은 반드시 말해져야 할 것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희망‘ 부분에서는 우울증 환자였던 그가 건네는 아름다운 조언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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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6-05-25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두꺼운 책을 읽으셨네요!

다락방 2026-05-26 07:44   좋아요 1 | URL
네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읽었습니다. 만세!

잠자냥 2026-05-2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두꺼운 걸!!!👏👏나도 읽을 것이다! 😤😤😤

다락방 2026-05-26 07:43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은 이것보다 더 두꺼운 책도 읽으셨잖아요!

단발머리 2026-05-2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두꺼운 책을 ㅋㅋㅋㅋㅋㅋ 저는 예전 표지로 읽었습니다. 으쓱으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5-26 07:43   좋아요 1 | URL
저는 지금 백자평 쓴 이 표지로 읽었는데, 이것도 구판이더라고요. 아무튼 좋았습니다! 정희진 쌤이 이 책 엄청 칭찬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뭔가 더 뿌듯합니다!
 


우울증 환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믿어야 한다. 우울증이 앗아간 추억들을 찾아내어 미래에 투영해야 한다. 용감해지고, 강해지고, 착실히 약을 먹어야 한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더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 음식 냄새도 맡기 싫다고 해도 먹어야 한다. 이성을 잃었다면 자신을 설득해야한다. 이런 권고들은 중국 음식점에서 주는 행운의 과자에 들어 있는 점괘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우울증을 싫어하고 우울증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엄습하는 끔찍한 생각들을 차단해야 한다. - P46

나는 이 시대를 사랑한다. 물론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성경 속의 이집트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영국, 전성기의 잉카 왕국을 여행할 수 있다면, 시바 여왕이 살았다는 그레이트 짐바브웨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 보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어떤 모습으로 생활했는지 볼 수 있다면 그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시대에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현대의 안락함이 좋다. 우리의 복잡한 철학이 좋다. 이 새 천년에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대대적인 변화의 느낌, 바야흐로 인류가 과거에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찰나인 듯한 느낌이 좋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지역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관용이 좋다. 자유로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것이 좋다. 과거보다 사람들이 더 오래 사는것이 좋고 시간이 천년 전보다 조금은 더 우리 편인 것이 좋다. - P47

심리치료는 정신분석에서 나왔고 정신분석은 교회의 고해성사에서 처음 형식을 갖춘, 위험한 생각들을 털어놓는 의식에서 나왔다. 정신분석은 특수한 기술들을 이용하여 신경증을 유발한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을 밝혀내는 치료법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시간을 요하며(보통 일주일에 네다섯 시간) 무의식의 내용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
프로이트와 그에게서 나온 정신역동적 이론들을 비판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지만, 사실 프로이트의 모델은 결점은 있지만) 훌륭하다.
루어만의 표현을 빌자면, 거기엔 "인간의 복잡성과 깊이에 대한 인식, 자신의 거부들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 인생의 힘겨움에 대한 존중"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이룬 업적의 세부 사항들에 대해 옥신각신하고 당대의 편견들에 대해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느라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동기들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포로라는 그의 글의 기본 진실을, 그의 숭고한 겸손을 간과한다. - P154

정신분석은 문제를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문제의 해결에는 효과적인 방법이 못 된다. 환자의 목표가 전반적인 기분을 즉시 바꾸는 것이라면 정신분석의 막강한 힘은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울증 완화를 위해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모래톱에 서서 밀려드는 파도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사람이 연상된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나온 정신역동적 치료법들은 중요한 역할을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면밀한 성찰이 없이는 삶을 바로잡기가 힘들며 그런 성찰은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나게 한다. - P154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노먼 로전설의 말을 들어 보자.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삶과 수면, 식사, 운동을 조절하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우울증 상태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우울증은 선택이 아니라 질병이며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 심리치료사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약은 우울증을 치료하고 나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지요." - P157

"나는 스스로를 증오하기 때문에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 고통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 자신을 사랑했기에 죽고싶었다. 나는 날마다 딸아이의 욕실 문에 기대어 서서 그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딸아이는 그때 열한 살이었는데 샤워할 때면 늘 노래를 불렀다. 딸아이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하루 더 자살을 미룰 수 있었다. 문득 내가 자살한다면 그 아이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게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죽음은 딸아이를 침묵하게 할 것이다.
바로 그날 ECT를 신청했다. 그건 나를 쓰러뜨린 상대에게 마침내 항복을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 P183

"어떤 병에 대한 처방이 여러 가지라면 그 병은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말이다. - P203

우리는 날마다 운동을 해서 건강을 가꾸듯 우울증 삽화들 사이의 기간에 저항력을 길러서 우울증 삽화가 다시 찾아와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P216

내게 은두프 의식은 현재 미국해서 행해지는 많은 집단 치료들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은두프는 우울증의 원인이 자신과 분리된 외부적인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전기 없는 ECT라고도 할 수 있을만큼 온몸에 충격을 주어 뇌의 화학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또 공동체 의식을 깊이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신체적 접촉을 하게 한다. 뿐만아니라 죽음을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자신이 살아서 고동 치고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해 준다. 또 환자가 몸을 많이 움직이도록 만든다.
반복되는 절차를 따르는 편안함도 가르쳐 준다. 또 환자가 저절로 힘이 솟을 정도로 역동적이다. 한마디로 동작과 소리의 걸작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의식이며 어떤 의식이든(숫양과 수평아리의 피를 온몸에 바르는 것이든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일을 전문가에게 말하는 것이든) 그 효과는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비와 전문성의 결합은 언제나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다. - P255

우울증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까 모든 우울증이 유일하다. 마치 눈송이처럼, 본질적인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각자 복제 불가능한 복잡한 형태를 뽐낸다. - P259

화학 작용과 외부 조건에 의한 여러 이유들 때문에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우울증에 걸린다. 이런 차이는 어릴 때는 나타나지 않고 사춘기가 되면서 시작된다. 여성은 남성이 겪는 모든 우울증들에 덧붙여 산후우울증, 월경전증후군, 폐경기우울증과 같은 그들만의 우울증까지 겪는다. - P259

여성이 우울증에 많이 걸리는 것은 생물학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생물학적인 차이뿐 아니라 사회적인 차이도 있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우울증이 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기 때문이다. - P261

나는 동성애자로서의 자긍심("gay pride")이라는 말이 강조되는 것이 사실은 많은 동성애자들이 그 반대의 것을 체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드먼과 다우니는 이렇게 썼다. "동성애자인 것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이 자기혐오와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 자기혐오는 부분적으로는 공격자와 자신을 방어적으로 동일시한 결과다." 처음 성적 자각이 일어날 때 동성애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한동안 성전환에 대한 환상에 젖는다. 동성애자임을 수치스러워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동성애자 자긍심 운동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만일 당신이 동성애자임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자긍심을 외치는 이들의 조롱을 살 것이며 같은 동성애자들에게조차 배척을 당한다면 진짜로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을 내면화한다. 우리는 처음 겪은 타인으로부터의 동성애 공포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 - P305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존재는, 체험의 부재는 이해할 수 있지만 부재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그건 존재하는 것이니까. 건강한 상태에서의 내 견해는 죽음 저편에는 영광이 있을 수도 평화가 있을 수도 공포가 있을 수도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으며 그것을 알기 전에는 모험을 걸지 말고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단은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실제로 20세기 중반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탐구에 생을 바쳤으며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과거에는 종교가 충분한 대답을 제공했던 질문들에 매달렸다. - P364

총과 바르비투르산염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자살률이 뚜렷이 떨어지며 이것은 자살률이 외부 요인들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는 증거다. 현대적 기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자살을 쉽고 덜 고통스럽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극히 위험한 현상이다. - P378

자살자의 3분의 1 정도와 자살 기도자의 4분의 1 정도가 알코올 중독자다. 술이나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의 자살 기도는 맑은 정신인 경우에서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의 15퍼센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칼 메닝거는 알코올 중독을 "더 심각한 자기 파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기 파괴의 한 형태"라고 했다. 그러나 일부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자기 파괴를 가능하게 만드는 자기 파괴이다. - P379

러시의 환자들 중에는 망상형 우울증이 많았다. 예를 들어 선장이었던 한 환자는 자신의 뱃속에 늑대가 들어 있다고 확신했다. 또 다른 환자는 자신이 식물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식물이라고 믿는 환자는 자신에게 물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장난기 많은 친구 하나가 그의 머리에 소변을 보았고 화가 난 그 환자는 병이 나았다고 한다. - P471

우울증 환자의 정신은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느끼고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하기 때문에 우울증은 광기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것이며 자살로 마감하기도 쉽다."
" - P475

우울증은 계층을 초월하지만 우울증 치료는 그렇지 못하다. 무슨뜻인가 하면, 대부분의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우울증과 가난은 오래 방치될수록 그만큼 더 심각해진다. 가난은 우울증을 악화시키고 우울증은 장애와 고립으로 가난을 심화시킨다. 가난은 사람을 운명에 수동적이게 만든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극히 무력한 존재로 인식하여 도움을 청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된다. 그들은 가장 인간적인 자질인 자유 의지를 상실한다. - P493

그들(정신 질환자)중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도 많지만 물질 남용이나 자기 파괴적 행위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폭력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정신 지체나 정서 장애를 유발한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인 어머니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면 그 자녀들은 복지시설이나 교도소 신세를 지기 쉬우며,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을 안고 사는 어머니의 아들들은 다른 소년들에 비해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어머니의 딸들은 다른 소녀들에 비 해 일찍 사춘기를 겪으며 거의 대부분 난잡한 성생활, 임신, 정서 불안의 문제를갖게 된다. 따라서 빈곤층의 우울증 치료에 드는 비용은 우울증을 방치한 결과에 따른 비용에 비교하면 그리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P496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본인이 도움을 원하지 않더라도 치료를 받게 하는 적극적인 프로그램들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도움을 거부하는 것도 병의 한 증세이며 일단 치료를 받고 나서는 대부분 치료를 받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 P497

그(러셀 가드너)는 인간의 경우 성공이 남을 누르는 것보다는 스스로 이루는 것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다고 경쟁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사회 조직에서의 경쟁은 대부분 파괴적인 요소보다는 건설적인 요소가 강하다. 동물 사회에서의 성공은 곧 "나는 너보다 강하다."이지만 인간 사회에서의 성공은 "나는 뛰어나다." 이다. - P597

우울증을 겪는 동안 꼭 명심해야 할 점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생이 끝난 시점에서 불행했던 세월만큼을 더 살 수는 없다. 우울증이 삼켜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이 우울증을 겪으며 보내는 순간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겨우 숨만 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참을성 있게 견뎌 내면서 그 견딤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조언이다. 시간을 꽉 붙들어라.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당신의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 P632

"자연은 어떤 방법으로도 개선될 수 없으며그런 방법 또한 자연이 만든 것이지요.
그대가 자연에 덧붙이는 것이라고 말한 그 기술도자연이 만든 기술이지요.
보시오, 사랑스러운 아가씨…………
그것은 자연을 고치는, 아니 변화시키는 기술이지만
그 기술 자체도 자연이지요."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 재인용) - P633

사실 실존주의는 우울처럼 진실하다. 인생은 헛되다. 우리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육체적인 개체성으로 인한 고립은 피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이루든 우리는 결국 죽게 된다. 이런 현실들에 굴하지 않고 인생의 다른 면들을 보면서 계속 추구하고 모색하고 꿋꿋이 견디는 것이 진화에서의 선택적인 이점이다. 나는 르완다에서 학살당하는 투치 족과 방글라데시의 굶주린 무리들을 본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잃었고 돈도, 먹을 것도 없으며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개선의 가망이라곤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내가 보지 못하는 미래상 때문일 수도 있고 존재를 위한 싸움을 지속하게 만드는 맹목적인 생명력 때문일 수도 있다. - P638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갈망할 수는 없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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