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부에게, 가즈에에게 배신당한 일은 이제 아무려나, 상관없었다. 게이코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그따위 인간들 이외에는 불러 모으지 못한다는 사실, 자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여기게 만든 사실이 가장 잔인했다. (p.84)  

 

 

 

 

 

 

   



 

 

2009년에 읽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스나크 사냥』의 이 구절이 생각난 건 내가 며칠전 받은 악성댓글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악성댓글을 받았다. 7월 30일 토요일 저녁 여덟시 무렵에 비로그인으로 '방문객'이란 닉네임으로 남겨진 댓글이었다. 장문의 댓글이었고, 그 장문은 모두 내게 수치심을 일으키는 말들로 가득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놀라고 분하고 화가났다. 어떤 댓글을 달까 싶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러나 악성댓글이 주는 문제는 단순히 불쾌함이나 분노가 전부가 아니었다. 다른 문제를 가져왔다. 그 댓글을 수차례 읽어보고 나니 어느새 그 댓글의 최면에 걸려 들어버렸달까. 나는 어느틈에 내가 이사람 말대로 추하게 늙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이 사람 말대로 나는 주제파악을 하고 살아야 하는걸지도 모르겠다고. 이 사람 말대로 모든 글을 비공개로 돌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이 생각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왔고, 함께 있던 친구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정신 차리라고 했다. 아, 이 댓글때문에 나는 또 내 자신을 학대 하려고 했구나. 이게 잘못된거야. 그러면 안돼.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돼. 

 

나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인지라, 그 흔적을 지우고 싶어할 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 댓글을 이 사람이 다시 나타나 지울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아, 내가 너무 심했구나, 하는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댓글의 위력을 그(녀)는 어느만큼이라 생각했을까? 자신의 댓글에 자신이 갇힐수도 있는 문제였다. 댓글 중에는 자살충동 이라는 단어도 있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말대로 서재활동을 관둔다거나, 그 댓글로 인해 하지 말아야 할 결심을 한다거나 했다면, 그 뒤에 느꼈을 죄책감을 그(녀)는 어떻게 견뎌내려고 한걸까? 그걸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건 나보다 자신에게 더 치명적인 일이 되었을텐데? 그러나 그 댓글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사이버 테러 대응센터에 신고했다. 내 블로그의 글을 링크하고, 내가 느낀 기분을 적고, 처벌을 바란다고 적었다. 그런데 오늘, 그 댓글이 지워졌다. 지우는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짐작할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부끄러움을 느낀건지, 아니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두려웠던건지, 아니면 그 둘다인지. 내 신고는 접수되었고, 방금전에 수서경찰서의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통화했다. 이미 댓글은 사라진 뒤였고, 수사를 하려면 캡쳐해둔 자료와(캡쳐해 두었다), 알라딘쪽에 의뢰하여 비로그인한 사람의 로직이 남아있는지의 여부를 알고 다시 수사를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수사관과 조금 더 통화했고,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 일은 더이상 수사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공식적으로 그 사람을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어느정도는 벌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은 글을 지우기까지의 며칠간은 자신이 남긴 글에 대해 생각했을 거다. 부끄러움도 느꼈을까? 어쩌면 그랬겠지. 그러나 그 사람이 느꼈을 감정은 그것 외에도 좀 더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누군인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들킬까 두려운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인정받는 사람에게 들킬까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그런 사람임이 드러난다는 것이. 지금쯤이면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내가 이런일에 상처받아 구석에 숨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나보다는 그(녀)가 더 감사해야 할 일이다. 결국에는.

 

그건그렇고, 

 

2011년 8월1일자 [한겨레21]을 뒤적여 보다가 86페이지에서 나는 어느 영화의 포스터를 보게됐다. 제목은 『심장이 뛰네』 

 

 

 

 

 

 

 

아아, 이 포스터 좀 봐. 뭐지? 뭐지? 아 궁금해. 처음에는 얼핏 포스터만 보고서는 외국 영화인줄 알았다. 꺅 거리고 보고 싶게 생겼다고 혼자 흥분했는데, 기사를 읽어보니 이 영화는 '허은희' 감독의 한국영화다. 아우. 보고싶어.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얼른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기록해 두었다. 잊지 말고 봐야지. 개봉은 7월 28일이란다. 알라딘에서 검색한 이 영화의 시놉시스. 

   
  ‘포르노와 야동 보기'가 건조하고 비루한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단 하나의 통로였던 30대 중반의 영문학 교수 주리가 어느 날 기이한 야동을 접하게 된 후, 잃어버린 심장과 설렘을 찾기 위해 몸소 야동에 출연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엽기적이며 파격적인 여정을 담고 있다. 웃기고 에로틱하지만 결말은 쌉쌀한,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다소 서글프게 느껴지는 우리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우리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쪽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그러나 '쌉쌀한 결말'과 '포르노와 야동보기를 통로로 삶은 영문학 교수'라니....그 교수의 삶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보니 이 영화를 내가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시간대가 다 왜 이모양이야..평일 상영이 미로스페이스에서 17:50이라니. 하아- 내게 2011년은 아주 많이 짓궂다.

   


 

휴가가 끝났다. 휴가가 오기를 그렇게 바랐건만 이렇게 끝나버리다니.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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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8-08 08:45   좋아요 0 | URL
네, 물론 괜찮습니다!!!!

하하 나의 사랑 너의 사랑 ㅋㅋㅋㅋㅋ 좋네요, 핑키님.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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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버아트] 34_키스 1000조각 직소퍼즐
국내
평점 :
절판


이건 왜 괜히 사가지고 온 식구들이 이거 언제 맞추냐며 다들 스트레스 받는다고 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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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7-2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산건 저 그림은 아닌데..

무스탕 2011-07-27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 더위에 조각 찾으려면 스트레스 받기도 할거에요. 하여간 이쁘게 맞추세요 ^^

다락방 2011-07-27 15:14   좋아요 0 | URL
이거 산지 꽤 오래됐는데 식구들이 서로 니가 맞춰라 니가 맞춰라 하고 미루고 화내고 그러고 있어요. 모든 화살은 결국 저에게로..니가 샀으니까 니가 맞춰! 이렇게...orz
저는 그저 엄마 심심할때 하시라고 사뒀을 뿐인데, 엄마는 이게 거실 한구석에 있는게 엄청나게 스트레스라고 ㅎㅎ

pjy 2011-07-2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나마 엄마가 마무리 해줬습니다ㅋㅋ; 흐르는 강물처럼의 포스터랑 경주불국사그림...그뒤론 못 사오게 합니다!

다락방 2011-07-27 15:39   좋아요 0 | URL
전 두개 사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하나만 샀는데 하나만 사길 참말로 잘했습니다. 두개 샀다가는 집에서 쫓겨날뻔 했어요. ㅠㅠ

버벌 2011-07-3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흰 엄마가 하고 계세요. 지금은 허리때문에 잠시 중단했지만 치매 예방으로다가 열심히 하시고 계심 ㅋㅋ

다락방 2011-08-02 19:13   좋아요 0 | URL
저도 엄마 하시라고(치매예방) 산거였는데,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난리세요. 하핫. 제 순수한 의도가 식구들을 화나게 했어요. 흑. ㅜㅡ

2011-08-01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3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애플 아이폰-아이팟 전용 AC 어댑터 충전기
Moryart
평점 :
절판


이젠 아이팟을 충전하기 위해 반드시 컴퓨터를 켤 필요가 없다. 어휴 속이 다 시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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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7-27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첨단을 가장한 기계나부랭이에 좌지우지되는 노예시군요^^

다락방 2011-07-27 15:34   좋아요 0 | URL
저는 끝까지 저항하고 싶은 1人 이에요. 흑흑.

에디 2011-07-2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동안 이게 없으셨단 말입니까?

다락방 2011-07-27 15:48   좋아요 0 | URL
네. 엄청 불편했어요. ㅎㅎ
스맛폰은 안드로이드인데 최근에 아이팟을 다시 좀 가지고 다니기로 하면서 구매했습니다. 하핫. 전 이런거 존재하는지도 몰랐다가 친구가 같이 놀러갔는데 이걸 쓰길래 오, 이런게 있구나...했다는.....하하

하루 2011-07-27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없으셨다니, 힘드셨겠어요

다락방 2011-07-28 08:47   좋아요 0 | URL
아이팟을 최근엔 사용하지 않아서 힘들것 까지는 없었는데 은근히 스트레스더라구요. 아 짜증나..뭐 이정도의 기분? 신경 쓰였던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이게 있어서 이제는 좋아요. 히히히

버벌 2011-07-3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팟은... 컴퓨터를 켜야만 해요. ... 저도 살까요? ㅠㅠ

다락방 2011-08-02 19:13   좋아요 0 | URL
이게 있으면 편해요, 버벌님!! ㅎㅎ
 
10월의 아이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베송씨의 글은 여전히 좋았지만, 실화이기 때문에 나는 뭔가 내내, 자꾸만 불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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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1-07-2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송씨' 라는 글만 읽고는 왜 뤽 베송을 떠올렸을까요? -ㅁ-a

다락방 2011-07-27 15:13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그것은 무스탕님은 아직 필립 베송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이 책, 무서워요 무스탕님. 휴..
 

모든게 지겨워지고 신경질이 나서 이놈의 직장, 확 때려치겠다고 생각했다. 뭐, 그러지도 못할거지만. 책상위에 잔뜩 널브러진 서류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고, 자리에 앉아 이것들을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또 한숨이 나왔다. 여러가지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나는 지금 당장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나는 나의 그 지저분한 책상 곳곳에 꽂혀있고 혹은 쌓여있는 책들을 보았다. 늘 꽂아두고 꺼내어보는 책들이 있었고 이미 다 읽었지만 집으로 가져가지 않은 책들이 있었고 아직 읽지 못한채로 쌓여있는 책들도 있었다. 오래전부터 거기 있거나 혹은 얼마전부터 거기 있거나 했던 책들. 그 책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이 책들을 읽으면서 살고 싶다, 고. 그렇게 살면 안되는걸까? 그럼 밥 먹을 돈은? 책 살 돈은? 그게 다 일하니까 나오는거잖아. 역시 결론은 이를 악물고 회사에 늘 그랬듯이 꼬박꼬박 출근하는 것 뿐인가. 

회사 구석구석에 책이 쌓여있는데 나는 정리할 생각도 못하고 있다. 내 책상은 물론 캐비넷에도 그리고 빈자리의 다른 책상에도 심지어 타부서의 캐비넷에도 내 책들은 들어있다. 나는 이제 어떤 책들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채로 우연히 그 책들을 발견하면 깜짝깜짝 놀란다. 어므낫. 내가 이책을 가지고 있네. 젠장.  

어제는 출근길에 마을버스를 놓쳤다. 다시 몇분후에 오는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12분후에 온단다. 12분은 출근시간에 꽤 긴 시간이다. 그냥 기다리지 뭐,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나는 그래서 잠실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덕분에 아침에 한강을 보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지친 하루였고 우울한 하루였고 나는 온 몸에 기운이 빠졌지만 저녁에는 한강을 보자고 생각했다. 퇴근할때만큼은 버스를 타는 노선을 택하지 않는데, 어제는 달랐다. 나는 강변역으로 갔고 마을버스를 탔다. 한강을 지났고, 그제서야 가지고 나온 책을 꺼내 들었다.  

 

 

 

 

 

 

 

 

 

 

 

 

 

버스안에서는 책을 잘 읽지 못하는데 어제는 정말 잘 읽혔다. 책을 읽는데 마음이 아주 안정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마을버스 안에서 바보처럼 혼자 책 사진을 찍으며 아, 이렇게 살고 싶다, 고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책을 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 이런 순간, 격하게 기쁘지도 않고 격하게 슬프지도 않은 이런 순간들을 좀 더 자주 느끼면서 살고 싶다고. 다른것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은채로 그냥 내가 만족하는 아주 작은 일들에만 시간을 들이면서 그렇게. 게다가 글쎄, 어제 내가 버스안에서 읽었던 이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오는게 아닌가!! 

"내 아내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리지요‥‥‥삼십 년 차이랍니다‥‥‥자기보다 훨씬 젊은 여자와는 절대로 결혼하면 안 됩니다‥‥‥절대로."
그는 한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전연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요‥‥‥성공한 예란 하나도 없으니까요‥‥‥이것은 똑똑히 알아두시라구요‥‥‥."
(p.69) 

아, 이 책은 전혀 웃긴 책이 아닌데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 좋아. 예상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이런 대사가 나오다니. 파트릭 모디아노, 사랑합니다. 그리고 미안해요. 이 책에서 이런 부분을 발췌하다니요. 이렇게 아름다운 책에서. 그렇지만 어제 퇴근길 마을버스 안에서, 정말 좋았는걸요. 늙은 나를 위로해줘서 고마워요. 

이 책은 선물받은지 1년이 지난 책이다. 무려 1년이나! 책장에 꽂아 두고 읽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어떤 책을 읽을까, 읽고 싶은 책을 쌓아두고 고민하다가, 순전히 이 책을 선물해준 사람이 보고싶다는 이유로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는데, 아, 이 책은 정말 아름다운 책이었다. 이런 책을 선물받다니. 이런 책을 선물해주는 사람을 내가 알다니. 스스로 너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 자신과 연관된 것 같은 사물을 대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만났던 사람을, 자신이 했던 일을 더듬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은 절정에서조차 격하지 않다. 가만가만 조용히, 그를 따라가기만 하면, 기 롤랑, 그의 잊어버린 그 과거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 일을 '나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p.13)이라고 말한다. 『도라 브루더』의 파트릭 모디아노는 내게 좀 지루한듯한 인상이었는데,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파트릭 모디아노는 조금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의 글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건조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녹여버린 듯한 그 문장들을.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언 매큐언보다는 부드럽고 코맥 매카시 보다는 건조하다. 그리고 필립 베송보다는 조금 더 진중한 듯 느껴진다. 아, 어떻게 해야 딱 맞는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장을 쓴단 말이다. 

   
 

내가 게이 오를로프의 이름을 말하면 그는 뭐라고 할까? 그 이름은 지금 그가 계속하여 자기의 곡을 치고 있는 동안의 저 무관심으로부터 그를 깜짝 놀라 깨어나게 할 것인가? 혹은 저 떠들썩한 말소리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피아노의 곡조처럼 그 이름도 그에게는 아무런 연상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말것인가? (p.57)  

 
   

누군가의 이름이 또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를, 그 이름을 내뱉기 전에 고민하는 그는, 실망하는 문장조차 내 마음에 쏙 들게 쓴다.  

   
  매번 나는 같은 희망을 품고 매번 실망한다. (p.87)   
   

누군들 이런 기분을 느껴보지 않았을까. 가끔 내가 미치는 그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간단하게 표현해준다. 기억에 관한 것. 

   
  왜 어떤 종류의 과거들은 사진처럼 정확하게 불쑥 솟아나는 것일까? (p.169)   
   

게다가 나는 이런 문장 앞에서는 그저 무릎을 꿇는다. 

   
  그 여자는 나를 기다리고, 내가 이 도시에서 실종될 것을 걱정하는 유일한 여자다. (p.177)   
   

내가 이 도시에서 실종될 것을 걱정하는 유일한 여자, 라는 것을 상대가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잠깐 들었다. 아니, 다시 고개를 젓는다. 충분하지 않다. 알아주는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부질없다. 소용없다.  

이 책의 첫문장은 이렇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p.9) 

 
   

나도 아무것도 아니다. 늘 그랬다. 

 

이 책의 헌사에는 이렇게 써있다. 

 

루디를 위하여
아버지를 위하여
 

 

이 책을 다 읽고 본 작가 연보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다. 

1957년  남동생 루디가 혈액 관련 병으로 세상을 떠남. 루디를 무척 아꼈던 그는 1967년에서 1982년 사이에 발표한 초기 작품들을 루디에게 헌정한다. 동생의 죽음은 그의 어린 시절의 종말을 의미했으며 그는 이 시절에 대하여 간절한 향수를 지니게 된다. (작가연보中)

 

 

 

 

 

 

  

 

좀전에 이곳은 천둥번개가 쳤다. 새 신발을 신고 왔는데 하필이면 비가 올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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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2011-07-26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그래도 퇴근하면서 소나기는 피했나봐요. 그러고보니 어쩌면 다락방님 페이퍼에 첫번째(!)로 댓글을 남기는건 처음인 것 같아요. 다락방님이 걸어주신 링크를 보고, 잠시 망설였는데 이 글을 보고 결정을 내렸어요.

제가 몇번 서재에 뜸했을때 (뜸했다 라는 표현 정도로 넘어가게 해주세요!) 저를 염려해주신것 처럼 저도 다락방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저도 걱정할꺼에요. 그럼 아무것도 아닌건 아니지요?

가끔 비가 밤부터 너무 많이 와서 다음날 출근이 걱정되는날, 너무 마음을 강하게 먹은건지 의외로 견딜만하게 출근이 되는날 있잖아요 과장님? 내일이 그런날이길 바랄께요.

다락방 2011-07-27 09:18   좋아요 0 | URL
하아- 에디님. 오늘 아침 강남역의 상황에 대해서 사진을 보거나 뉴스를 들으셨나요? 차들이 잠겨서 꼼짝도 안해요. 저는 가까스로 출근을 해서 자리에 앉았지만 옷도 머리도 다 흠뻑 젖어서 만신창이가 됐죠. 강남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오는 길에는 천둥이 무섭개 쳐서 꺅 하고 소리지를 뻔 했어요. 물론 참았지만요. 의외려 견딜만하게 출근이 되는 날이 결코 되지 못했어요. 무슨 비가 이렇게 무섭게 오나요...어휴...

저는 제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해서 늘 속상하고 화가 나지만, 에디님께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 그런 사람이라면 흐음, 좀 좋네요. 히히
:)

에디 2011-07-27 15:42   좋아요 0 | URL
저는 1시쯤되어 병원 때문에 밖을 나섰는데 다행히 가로수길 쪽은 비교적 안전했어요. (그리고 집은 아주 고지대라...)

그러게, 제가 쓴 글이 무슨 저주라도 된 것처럼 오늘은 누구에게도 '의외로 견딜만한' 날이 되긴 힘든 날이군요. 역사적인 폭우가.... 퇴근 잘 하세요 : )

다락방 2011-07-27 15:49   좋아요 0 | URL
강남역도 선릉역도 다 침수라 집에서 부모님은 저더러 들어오지 말라고 하셔서요..전 아무래도..강남에 모텔 하나 잡아서 잘까봐요.orz

비로그인 2011-07-27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와! 이제야 다락방님보다 제가 먼저 읽은 책이 등장하는군요. 에휴...ㅋㅋ

다락방 2011-07-27 09:19   좋아요 0 | URL
후와님은 제가 안읽은 많은 책들을 읽으셨잖아요!!!!!
후와님은 이 책이 어떠셨어요? 방금전 포기의 순간에 대한 후와님의 생각을 읽으니 이 책에 대해서도 저랑 전혀 다른 느낌을 받으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이 책이 참 좋았거든요.

비로그인 2011-07-27 20:44   좋아요 0 | URL
<포기의 순간>은...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
이 소설은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렇게 기억합니다. 좀 오래됐거든요ㅎㅎ 다락방님의 리뷰를 읽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어쩐지 여름날 어스름이 내리는 골목을 연상시키는 소설이었달까요^^

다락방 2011-07-28 19:08   좋아요 0 | URL
하하. 물의를 빚다뇨. 왜 그런 말씀을 하셔요.

저는 이 소설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거든요. 물론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느라 안타깝지만 말이죠. 읽는 동안이 참 행복했어요. 그래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또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후와님은 이미 오래전에 읽으신 소설을 저는 이제서야 읽었군요!!!!!

레와 2011-07-2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한다고 정말 고생했어요. 락방. (톡톡톡톡톡톡)

다락방 2011-07-27 10:05   좋아요 0 | URL
난 내가 왜 이러면서까지 출근하는지를 모르겠어요. ㅎㅎ
암튼 나 정말 장하다니깐요. 훗

blanca 2011-07-2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트릭 모디아노의 저 책은 읽어볼까 했었는데 난해하다는 댓글 하나 읽고 포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저 구절들을 읽으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저 책 사진에서 다락방님의 핑크 네일이 이쁘다,고 생각했어요^^ 아, 동생과 그런 추억이 있었군요. 다시 한번 헌사에 뭉클해지네요. 루디에게. 퇴근은 무사히 하셨어요?

다락방 2011-07-28 19:03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음, 저 소설은 제게 그다지 난해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요. 블랑카님이라면 오히려 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아마 블랑카님만의 아름다운 리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핑크 네일을 알아봐주시다니, 고맙습니다, 블랑카님. 역시 센스가 대박이셔요. 헷 :)

출근도 퇴근도 무사히 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서 왔다갔다 했어요. 슬리퍼 신고 출퇴근 했답니다. 걷는동안 내려치는 천둥번개는 또 어찌나 무섭던지요. 소리지를 뻔 했지 뭐에요. ㅠㅠ

hnine 2011-07-28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게 지겨워지고 신경질이 나서 이놈의 직장, 확 때려치겠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날중 어느 날, 저는 정말로 그렇게 했답니다 ^^

자기가 정말로 원할 땐, 이제까지 성공한 예가 한번도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가 바로 성공한 첫번째 예가 될 것 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이 말리는 길로 발걸음을 딛게 되나봅니다 ㅠ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때로 마음을 편하게 해줘요. 그래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락방 2011-07-28 19:05   좋아요 0 | URL
hnine님. 저는 가끔 어떤 특정한 것 혹은 특정한 사람에 대해 욕심이 치밀어 올라서 스스로 무섭게 느껴질때가 있어요. 이를 어쩌지 싶어서요. 이 욕심을 어떻게 자제하나 하고 말이지요. 내가 이토록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아주 새삼스러워져요. 말씀하신것처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려고 그때마다 노력한답니다. 욕심이 있어서 괴롭다면 욕심을 없애자, 하고 말이지요. 김경미 시인의 시, 혹시 읽어 보셨나요? 옮겨올게요.

나는야 세컨드 1


김경미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번재,
첫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 이 아니라 늘 다음, 인
언제나 나중, 인 홍길동 같은 서자, 인 변방, 인
부적합, 인 그러니까 결국 꼴지,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고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버벌 2011-07-31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 책을 읽어보겠다고 댓글 달러 온건데... (??)

다락방 2011-08-02 23:12   좋아요 0 | URL
그러다가 댓글 테러에 놀랐군요, 버벌님!
:)

네꼬 2011-08-0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뒤늦게 추천하는 이 마음.

다락방 2011-08-02 23:12   좋아요 0 | URL
밤 열한시가 넘었네요, 네꼬님.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