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부에게, 가즈에에게 배신당한 일은 이제 아무려나, 상관없었다. 게이코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그따위 인간들 이외에는 불러 모으지 못한다는 사실, 자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여기게 만든 사실이 가장 잔인했다. (p.84)
2009년에 읽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스나크 사냥』의 이 구절이 생각난 건 내가 며칠전 받은 악성댓글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악성댓글을 받았다. 7월 30일 토요일 저녁 여덟시 무렵에 비로그인으로 '방문객'이란 닉네임으로 남겨진 댓글이었다. 장문의 댓글이었고, 그 장문은 모두 내게 수치심을 일으키는 말들로 가득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놀라고 분하고 화가났다. 어떤 댓글을 달까 싶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러나 악성댓글이 주는 문제는 단순히 불쾌함이나 분노가 전부가 아니었다. 다른 문제를 가져왔다. 그 댓글을 수차례 읽어보고 나니 어느새 그 댓글의 최면에 걸려 들어버렸달까. 나는 어느틈에 내가 이사람 말대로 추하게 늙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이 사람 말대로 나는 주제파악을 하고 살아야 하는걸지도 모르겠다고. 이 사람 말대로 모든 글을 비공개로 돌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이 생각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왔고, 함께 있던 친구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정신 차리라고 했다. 아, 이 댓글때문에 나는 또 내 자신을 학대 하려고 했구나. 이게 잘못된거야. 그러면 안돼.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돼.
나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인지라, 그 흔적을 지우고 싶어할 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 댓글을 이 사람이 다시 나타나 지울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아, 내가 너무 심했구나, 하는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댓글의 위력을 그(녀)는 어느만큼이라 생각했을까? 자신의 댓글에 자신이 갇힐수도 있는 문제였다. 댓글 중에는 자살충동 이라는 단어도 있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말대로 서재활동을 관둔다거나, 그 댓글로 인해 하지 말아야 할 결심을 한다거나 했다면, 그 뒤에 느꼈을 죄책감을 그(녀)는 어떻게 견뎌내려고 한걸까? 그걸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건 나보다 자신에게 더 치명적인 일이 되었을텐데? 그러나 그 댓글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사이버 테러 대응센터에 신고했다. 내 블로그의 글을 링크하고, 내가 느낀 기분을 적고, 처벌을 바란다고 적었다. 그런데 오늘, 그 댓글이 지워졌다. 지우는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짐작할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부끄러움을 느낀건지, 아니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두려웠던건지, 아니면 그 둘다인지. 내 신고는 접수되었고, 방금전에 수서경찰서의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통화했다. 이미 댓글은 사라진 뒤였고, 수사를 하려면 캡쳐해둔 자료와(캡쳐해 두었다), 알라딘쪽에 의뢰하여 비로그인한 사람의 로직이 남아있는지의 여부를 알고 다시 수사를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수사관과 조금 더 통화했고,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 일은 더이상 수사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공식적으로 그 사람을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어느정도는 벌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은 글을 지우기까지의 며칠간은 자신이 남긴 글에 대해 생각했을 거다. 부끄러움도 느꼈을까? 어쩌면 그랬겠지. 그러나 그 사람이 느꼈을 감정은 그것 외에도 좀 더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누군인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들킬까 두려운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인정받는 사람에게 들킬까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그런 사람임이 드러난다는 것이. 지금쯤이면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내가 이런일에 상처받아 구석에 숨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나보다는 그(녀)가 더 감사해야 할 일이다. 결국에는.
그건그렇고,
2011년 8월1일자 [한겨레21]을 뒤적여 보다가 86페이지에서 나는 어느 영화의 포스터를 보게됐다. 제목은 『심장이 뛰네』
아아, 이 포스터 좀 봐. 뭐지? 뭐지? 아 궁금해. 처음에는 얼핏 포스터만 보고서는 외국 영화인줄 알았다. 꺅 거리고 보고 싶게 생겼다고 혼자 흥분했는데, 기사를 읽어보니 이 영화는 '허은희' 감독의 한국영화다. 아우. 보고싶어.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얼른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기록해 두었다. 잊지 말고 봐야지. 개봉은 7월 28일이란다. 알라딘에서 검색한 이 영화의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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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와 야동 보기'가 건조하고 비루한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단 하나의 통로였던 30대 중반의 영문학 교수 주리가 어느 날 기이한 야동을 접하게 된 후, 잃어버린 심장과 설렘을 찾기 위해 몸소 야동에 출연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엽기적이며 파격적인 여정을 담고 있다. 웃기고 에로틱하지만 결말은 쌉쌀한,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다소 서글프게 느껴지는 우리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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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쪽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그러나 '쌉쌀한 결말'과 '포르노와 야동보기를 통로로 삶은 영문학 교수'라니....그 교수의 삶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보니 이 영화를 내가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시간대가 다 왜 이모양이야..평일 상영이 미로스페이스에서 17:50이라니. 하아- 내게 2011년은 아주 많이 짓궂다.
휴가가 끝났다. 휴가가 오기를 그렇게 바랐건만 이렇게 끝나버리다니.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