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심규선 콘서트에 다녀왔다. 가기전부터 <아라리>들으면 아마 난 울어버리겠지, 싶었는데, <아라리>에서 손수건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은 것도 모자라, <Be Mine>에서도 손수건 꺼내 눈물 닦았고, 그 외에도 다른 몇 곡들에 눈물이 핑핑 거렸다. 아아, 어쩔... 영혼의 쌍둥이여... (라지만 심규선은 나를 모름)







노래는 세시간이나 이어졌는데, 와, 세시간씩 노래해도 여전히 잘하다니, 대단하다.


일전에 심규선의 콘서트에 갔을 때도 그 자리에 심규선의 아버지가 와있다는 얘기를 심규선이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버지가 콘서트 자리에 와있는 것 같더라. 공연장은 빈틈 없이 꽉 차있었고, 노래가 끝나면 사람들은 심규선에게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를 보냈고, 어떤 이들은 훌쩍이기도 했다. 심규선의 아버지는 이걸 다 보고 있겠구나 싶으니, 아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와준다는 것, 응원해준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큰 자랑스러움일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나 싶다. 모두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랑스러워 하는 것,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것. 이게 세상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 아닌가 싶은 거다. 그래서 그런 장면을 보게 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심규선을 향한 환호가 이어질 때 심규선의 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버지가 그 자리에 와있다는 건 심규선이 언급해서 알았지만, 아버지 말고도 다른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와있었다면 분명 심규선을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다.


일전에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도 그런 걸 느꼈었다. 아담 리바인이 노래 부르는데 자신의 아내가 거기 모델로 섰을 때, 그들은 서로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을까. 자신의 일에서 인정을 받고 환호를 받는 걸 보여줄 수 있다니, 그걸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너무 좋을 것 같은 거다. 감추고 싶은 게 아니라 드러내고 싶은 사람.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며칠전에 남자1이 내게 물었다. 혼자 지내는 거 좋지만, 혹시라도 외로울 때가 있진 않냐고. 나는 당연히 외로울 때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게 언제냐고 물었고, 나는 '자랑할 수 없을 때' 라고 말했다. 내게 좋은 일이 생기거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한껏 자랑하고 칭찬 듣고 싶은데, 그걸 할 수 없다는 걸 알면 참 외롭다고. 그러자 그도 동의했다. 애인에게 칭찬 받는 건 정말 큰 기쁨이라고. 물론 각자 연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속상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외로울 것이고, 어떤 이들은 좋은 영화가 나왔는데 같이 보러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 외로울 것이다. 사실 이 모두가 다 복합적으로 조금씩 외로움에 관여하지만, 그중 어떤 게 가장 비중이 큰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속상할 때, 맛있는 거 먹을 때, 좋은 거 볼 때, 좋은 음악 들을 때, 자랑할 일 있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심규선의 콘서트를 보며, 자랑스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콘서트를 보기 전에는 친구와 레스토랑에 갔다.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에 그냥 들어갔는데 세상 맛없는 스테이크를 먹었고, 그렇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주 좋았다. 나는 최근에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를 읽었다고 말했는데, 친구는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오!! 이승우 책을 읽은 친구라니, 우리는 이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친구는 이승우의 소설이 처음이라 했는데 아주 잘 읽혀서 좋았다고 했다. 하나의 감정 혹은 관계에 대해 이렇게 잘 쓸 수 있다니 감탄했다고. 나 역시 마찬가지. 우리는 책 속에 나오는 커플에 대해 얘기하고 깔깔 웃다가, 이내 질투와 열등감에 대해 얘기를 했다. 친구에게 나는, 이승우가 질투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열등감에서 비롯된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때 내 안에 열등감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닌 게 아니었다, 라는 얘길 하면서 아팠던 거다.























책에서는 세 명의 관계에서 질투와 열등감이 비롯된다. 그리고 그 세명의 관계를 얘기하기 전에 너무도 유명한 오셀로와 이아고 얘기를 먼저 꺼낸다.



그의 진술 속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는다. 그는 자기가 검은 피부의 이방인이며 한량들과는 달리 사교술이 없고 또 나이가 많다고 고백한다. 그의 질투망상 속에서 라이벌로 등장한 카시오와 비교할 때 그의 검은 피부와 비사교성과 상대적 늙음은 결정적인 약점이 된다. 그는 못생겼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 줄 모르고 거기다가 나이까지 많다. 카시오는 잘생겼고 사교적이며 거기다가 젊다. 의심을 부추기는 이아고의 술책에 쉽게 넘어가게 된 이유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셀로의 이런 약점이다. 약점에 대한 오셀로의 자의식이다. 그는 용맹한 전쟁 영웅이지만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사랑만이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인데, 이제 그 믿음이 허물어지자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그리하여 그는 좌절한다.

이성에게 어필할 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언제든 질투에 빠질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다. 나이, 용모, 경제력, 건강, 사회적 위치와 평판 같은 조건들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이런 사람을 질투 속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목마를 사람에게 물을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는 사실을 '오셀로'는 알려준다. 이아고가 아무 수고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오셀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원인 아내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것만으로 그의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었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p.227-228)




나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으면서 그는 왜 이아고에게 속절없이 당하는가, 왜 그의 말을 믿는가, 하며 답답해했었는데, 이렇게 듣고나니 모든 것들이 설명되는 것 같다. '약점의 크기'가 질투의 크기라니, 그럴 리 없다고 맹렬하게 고개를 젓고 싶지만 나도 모르게 끄덕이고 있다. 아, 나는 내 약점을 들여다보고 이내 절망한다. 아픈 순간이었다.



책 속에서 형배는 선희를 불러낸다. 2년10개월전에 선희가 형배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형배는 그때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선희를 거절한 적이 있다. 그런데 2년 10개월 후에 우연히 다시 보게된 선희에게 반하고 만다. 그는 그녀를 불러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선희는 이미 마음이 식어있고, 영석이라는 애인이 있다. 그러니 형배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을 뿐더러, 이놈이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야말로 형배에게 '아무 마음이 없다'. 선희가 형배를 만나고 있는 이 순간에 영석은 선희에게 전화한다. 부재중전화 12번이 뜰때까지 선희는 전화가 온 줄을 몰랐고, 그의 계속되는 질문에 '친구와 호프집에 있다'고 말한다. 그가 계속 의심하고 불안해하자 결국 '형배와 호프집에 있다'고 말하고 그의 의심과 불안을 풀어내기 위해 그에게 여기 오라고 말한다. 와서 자신과 그를 보면, 그리고 자기를 부를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의 불안함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영석의 불같은 질투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의 사랑이 아니라 그의 열등감이다. 그는 오셀로가 그런것처럼 자기가 이성에게 어필할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잘생기지 않았고 사교적이지 않으며 나이도 많은 편이다. 오셀로가 가진 모든 약점을 그도 가지고 있다. 오셀로와 마찬가지로 의심과 질투를 부추기는 이아고의 계략에 쉽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랑의 열정이나 그녀의 품성에 대한 믿음은 여기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의심의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피할 능력이 그에게는 없다. 그가 가진 유일한 자원이 선희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p.229)




영석은 자신의 애인인 선희와 형배의 만남의 자리에 가게 된다. 그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모든 말은 오히려 그의 의심을 부추긴다. 왜 '우리'라고 말하지? 왜 '이사람'이라고 말하지? 호칭조차 죄다 거슬린다. 게다가 영석은, 과거에 선희가 형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은 의심과 불안의 원천이 된다. 그는 폭발할 듯 질투한다.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모든 말들은 오히려 그 불을 크게 키운다. 선희가 다르게 말했다면, 형배가 다르게 말했다면, 그랬다면 영석의 기분이 나아졌을까? 뭐라고 어떻게 말했든 그것은 그 질투의 불길 속으로 들어가 더 큰 불을 만들었을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실은 다른 것,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지나치게 배율이 높은 자기 내부의 현미경을 통해 영석이 본 것은 선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석은 자기가 보고 있는 사람이 선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하는 대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허상이기 때문에 꿈쩍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존재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허상은 견고하다. 그는 불안이 현실화된 것에 좌절하고, 어쩔 줄 몰라서 소리 지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운다. (p.232)




아아, 나는 이승우의 이 질투에 대한 글이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이 책이 너무 힘들었다. 전체적으로 그동안의 이승우 책에 비하면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이렇게 곳곳에서 사랑에 대해 그리고 질투에 대해 얘기해주면서 아주 큰 칼로 내 배를 훅훅 찌르는 것만 같다. 너무 아파서 나는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다. 피가 철철 나는 것 같다.


이 책을 이미 읽은 친구에게, 내가 몰랐던 들여다보지 않았던 열등감에 대해 얘기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까, 내가 이 부분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질투 속으로 타들어갔던 것 같아, 라고.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친구가 말해주었다. 글쎄, 그 부분에 대한 열등감이 너에게 조금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보다는 이것과 이것이 네 큰 열등감이 되었을 것 같아, 라고. 그때, 친구가 '어쩌면 너의 열등감은 이것이었을 것 같아' 라고 해주었을 때, 와- 진짜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다. 내가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늘 내가 괜찮다고 했던 것, 아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아니야, 라고 했던 부분에서 나는 언제나 내 약점을 모른척하고 있었던 거다. 그것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인데, 나는 그것을 마치 약점이 아닌것마냥 행동했고, 다른 사람에겐 약점일 수 있겠지만 아니라고, 나에게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건데, 아니, 그것은 내 약점이었던 거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약점을, 내가 꼭꼭 숨겨두었던 약점을, 내가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약점을, 아무도 모르게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 약점을, 친구가 이미 들여다보고 있었던 거다. 아..쓰는데 눈물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이제 인정한다. 그것이 내 약점이었음을. 그리고 그 약점이 내게 극복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게됐다. 내가 그것을 약점이라고 인정해버린 이상, 나는 이제 돌이킬 수가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그 큰 약점을 가지고 잘도 사랑하고 살았구나..... 하아-





질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외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줄 때 발동된다. 자기에게(만) 속해 있다고 간주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보일 때 그는 연인을 완벽하게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을 느낀다. 마음속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쟁자, 즉 연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경쟁자는 사랑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경쟁자가 존재하는 한 그의 소유는 완전하지 않고 그의 사랑은 안정적일 수 없다. 그러니까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은 그 또는 그녀를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질투하는 자가 떠올릴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것이다. 이런 강박증은 강력한 에너지가 되어 그를 태운다. 연인을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의 마음이다. (p.235)





그렇지만 나는 안다.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나의 약점으로 시작된 일이라면, 내가 제거해야 할 것은 나의 약점이지 경쟁자가 아니다. 경쟁자를 제거한다 한들 내 약점이 강해지는 게 아니니까. 내 약점은 온전히 그자리에 남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킬 테니까. 경쟁자를 제거해도 경쟁자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계속 들어올 수 있다. 그때마다 어떻게 경쟁자를 제거하며 산단 말인가. 그런 식으로 늙어갈 순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왜, 그 유명한 '야광토끼'도 자신의 노래 <can't stop thinkink about you>에서 말하지 않는가.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누구 때문에' 가 아니라, '나 때문'이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이런 약점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아아 이 혹독한 아픔... 고통의 절정........





여러분, 책이 이렇게나 좋다. 아니, 소설이 이렇게나 좋다. 이승우가 쓴 '소설' 한 권으로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질투에 대해 생각하며, 이 모든 감정을 갖고 있던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사랑을 공부하고 싶었고 그렇게 인문학 책도 사뒀는데, 잘 쓰여진 소설은 그 어떤 자기계발서나 인문학 혹은 심리학 책보다 더 내게 큰 위로와 생각거리를 준다. 소설이 이렇게나 위대하다. 소설이 이렇게나 좋아. 소설을 그저 지어낸 이야기라고 폄하하는 사람에게 나는 똑같이 돌려주고 싶다. 그건 당신이 '그렇게밖에' 읽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소설은 그 한 권에 담아낸 이야기와 인물 만으로 아주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알려주고 느끼게 해주고 생각하게 해준다. 나는 소설만 읽어도 진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진짜 울트라캡숑 짱이다!!



게다가 그 소설을 함께 읽은 친구라니, 와, 진짜 어메이징한 축복 아닌가. 같은 책을 읽은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이렇게나 의미 있다. 내가 내 약점은 a 인가봐, 그래서 그런가봐, 라고 했을 때, 아니, 너의 약점은 b 도 작용했을 거고, 무엇보다 c 였을 것 같아, 라고 말해주다니. 여러분, 이런 친구 있는가... 진짜 짱이지 않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소설 한 권 때문에 그리고 그 소설을 읽은 친구 때문에 나는 나의 약점을 마주하게 되었다.



건배!

(이게 아닌가?)









이렇게나 오래, 이렇게나 계속해서, 이렇게나 지속적으로 나를 들여다보는데도 아직 내가 보지 못한 나의 많은 면들이 있다. 이제와 알아가는 나의 어떤 면들이 새롭고 좋기도 하지만, 이런식으로 약점을 마주할 때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어진다. 요즘에는 여러가지로 겸손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못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사랑은 계속된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8살 조카와 통화하는데 영상 속의 조카가 내게 익숙한 티셔츠를 입고 있다.



- 어? 타미야, 너 지금 이모가 미국에서 사다준 티셔츠 입고 있는거야?

- 응!

- 아 이모 기분이 너무 좋아. 타미가 그거 입고 있는 거 보니까 이모 행복해.

- 나 이거 매일입는데, 이모?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축복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제 전화끊고나서 나는 엄마와 남동생에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타미가 진짜 제일 좋아. 나는 얘 진짜 너무 사랑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뭔가 울고 싶을 정도로 사랑이 폭발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기 직전까지 가슴속에 사랑이 너무 넘쳐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혹여 앞으로 네가 나를 미워한다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그래도 끝까지 너를 어마어마하게 사랑할거야, 내 사랑은 계속될거야, 생각했다. 아주 오랜만에, 진짜 오랜만에, 가슴속에 사랑이 가득찬 채로 잠들었다. 아주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너무 좋아서, 아, 자기 전에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하고 대화하는 게 최고야!! 이백번 생각했다.



가슴 속에 사랑이 가득한 채 잠들 수 있다니!!!



감정의 변덕스러움 말고 그에 못지않게 치명적인 것이 또 있다.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맺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관게를 보장해주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일부만, 예컨대 마음에 드는 부분만 사랑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정말 참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버릴 것인가. 가슴은 취하고 다리는 버릴 것인가. 그럴 수 있는가. 가령 잠들기 전의 달콤한 키스는 취하고 그 사람이 코 고는 것을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과의 키스를 즐기려면 그 사람의 코골이도 용납해야 한다. 키스의 달콤함을 제공한 사람과 코를 심하게 골아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감정과 감각에만 의존할 때 사람은 키스의 달콤함만을 기대하고 바라게 된다. (p.106-107)

감정이나 감각이 아니라 그보다 강제적인 어떤 것, 이를테면 의지에 기반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의지에 입각하지 않는 사랑은 일관성 유지가 힘들다. 결혼 제도는 장치로서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키스의 달콤함을 제공하는 사람이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고, 곁에서 코를 골아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고 제외시켜버릴 수 있는 인간의 비겁하고 나약한 본성 때문에 사랑은 외부에서 강제된 결혼이라는 의지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 (p.107)

스스로 설 힘이 없어서 굳건히 서 있는 큰 나무를 의지하고 자라나야 했던 넝쿨식물이 어느 순간 나무를 꼼짝 못 하게 붙들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는 기이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넝쿨식물의 손이 나무의 몸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무가 넝쿨손에 붙들려서 옴짝달싹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넝쿨식물의 넝쿨이 나무를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약함을 앞세워 강한 나무를 꼼짝 못 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끌어안는 것이 장악의 방법이었다. 사랑이 지배의 수단이었다. (p.158)

그는 모르고 있었다. 자기 안에만 있던 말들을 그녀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을. 잠깐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 일어난 후 다른 세상을 겪고 있다는 것을. 그는 또 그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목소리를 캡슐에 싸인 것처럼 듣고 있다는 것을.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p.189)

잘 보이기 위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는 점에서 우정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을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이상적인 관계이다. 보르헤스는, 사랑과는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정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말속에는 증명해야 할 불편한 의무(우정에는 없는)가 사랑에는 주어져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사랑을 증명할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의무를 당연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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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 2017-06-19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의생애 재밌게 감명깊게 보셨네요 저도 그랬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질투‘라는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습니다. 그 질투가 자기약점의 크기에 비례한다니.. ㅎㅎ

다락방 2017-06-20 08:25   좋아요 3 | URL
제가 이승우의 소설을 참 좋아하고, 국내 작가중에서 이승우를 제일 좋아하는데 말이죠, 이번 소설은 유독 저를 많이 건드리네요. 아주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자강님.
질투가 자기 약점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말이 정말 아팠어요.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요..
 
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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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는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데 정말 뛰어난데, 이번 책에서는 사랑에 대해 위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아, 질투에 대한 부분에서 나는 너무 아파지고 말았다. 너무 아파서 리뷰를 쓸 수가 없을 것 같다.

아파 엉엉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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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1211 2017-06-16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아픔 한번 느껴보고 싶네요....

다락방 2017-06-19 11:36   좋아요 1 | URL
꼭 한 번 이승우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유부만두 2017-06-16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승우 소설 안읽어봤어요..... 미지의 세계. 그래서 궁금하지만 두렵기도해요

다락방 2017-06-19 11:36   좋아요 1 | URL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승우는 정말 사람의 내면을 잘 그려내요. 만나보세요!

책한엄마 2017-06-17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에 넣어 둡니다.

다락방 2017-06-19 11:37   좋아요 2 | URL
꿀꿀이님께도 좋은 책이 되어야 할텐데요. 훗.

유부만두 2017-06-2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을까했는데 이ㄷ진이 하도 지잘난 분석을 다다다 붙여놔서 읽기도 전에 정내미가 떨어졌어요;;;;

다락방 2017-06-23 10:02   좋아요 1 | URL
유부만두님, 제가 얼마나 똑똑하냐면요, 얼마나 현명하냐면,

이동진 책을 읽지 않으며 팟캐스트도 듣지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7-06-2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어야해요! 난 멍충이야! 잉

다락방 2017-06-23 10:10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 좋았어요, 유부만두님.
그래서 이동진으로 먼저 만나신 게 안타까워요 ㅠㅠ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저에 대해 엄청 돌아보게 됐고요.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책 ㅠㅠ


저 마티네의 끝에서 페이퍼 쓰고 있어요.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어제 남동생과 술을 마시는데 남동생이 새로운 책을 추천해달라 했다. 녀석은 추리, 미스테리 물만 읽어서 내가 이 놈 때문에 책 살 때 이쪽으로 한 두권씩 꼭 껴넣게 되는데, 며칠전에 추천한 책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그거 읽기 싫다고 다른 거 달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응 아직 나는 안읽었는데 미야베 미유키 책 줄게. 그림자 밟기라고. 에도시대 얘기래.' 라고 했더니, '안읽어도 다 읽은 것 같다, 다 알겠어' 하는 거다. 뭘 다 알어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뭔데? 했더니 '에도시대라며, 가문에 대한 얘기 나오겠지' 이러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아직 안읽어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어딘가에서 리뷰 읽었는데 잼나겠더라고. 하는 대화를 술 마시다 하고, 다 마시고 나서 내가 자려고 내 방에 누웠더니 노크하고 들어와서는, 책 준다며, 하는 거다. 나는 응, 맞다, 불 켜봐, 하고는 책장 앞으로 갔는데, 어? 그 책이 안보이는 거다.


산지 얼마 안되어서 책장에 꽂히진 않을 것 같고, 대충 놓여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디지....안보여...어딨을까.... 이러고 찾고 있노라니, 남동생은 '뭐냐' 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어? 회사로 시켜서 회사에 있나? 집으로 배달시키지 않았나? 하고는 마침 인증사진 찍었던 게 기억나서 스맛폰을 열어봤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거다. 그런데 배경이 내 방인거다. 어? 이거 내 방인데? 내 방에 있어야 되는데? 그런데 보니, 그날 샀다고 인증한 책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거다. 응? 이거 한뭉탱이가 다 어디간거지? 나는 비좁은 내 방에서 책무더기를 찾지 못하고 뭐지뭐지 어이없어 하다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퇴근 후에 내가 벗어 던지 원피스가 불룩 튀어나와 있는 걸 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앗, 하고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원피스를 들어올렸더니, 거기에 책뭉탱이가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며칠전에 책 사진 찍고 그냥 그자리에 그대로 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위에 옷을 던져서 안보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동생 완전 어이없다고 빵터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고 절망하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동생에게 책을 건네고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시 자리에 누우면서, 주말에 방 좀 치우고 책도 정리좀 하고 그래야지, 생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책을 왜 사는걸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그 인증사진 보면서, 어? 이런 책을 샀어? 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아침에는 집에서 밥 먹기가 싫어서, 아침은 뭘 먹을까 고민했다. 양재역에서 모닝 우동을 할까, 스벅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실까,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을까, 하다가, 양재역에 가까워지자 세번째! 로 결정했는데, 컵라면은 불닭볶음면으로 하자! 결정하게 되었고, 편의점에 들러 불닭볶음면과 삼각김밥 두 개를 골라 계산했다. 아, 삼각김밥 세상 맛있고, 불닭볶음면 또 예술로 맛있어...그렇게 흡입을 했더니, 아아, 아침에 양 너무 많았나, 배가 터질것처럼 부른 거다. 그러자 하아, 이렇게, 이런 상황에서도, 왈칵, 그리움이 몰려왔다. 그러니까 운동맨이었던 내 과거의 연인 칠봉이 생각이 너무 난거다. 연애 당시 항상 나에게 '아침 뭐 먹었어?', '점심 뭐 먹었어?' 하고는 늘 뭐 먹었는지 묻곤 했는데, 그때 대답하면서 양이 너무 많거나 고칼로리 이거나 하면 나는 내심 '오늘은 뭐 먹었냐고 묻지마...'라는 마음이 되었던 거다. 그래서 오늘 불닭볶음면과 삼각김밥 두 개를 한꺼번에 먹고 배를 두드리면서, 아아, 칠봉이가 물었다면 나는 대답했을 거고, 무슨 아침부터 그렇게 거하게 먹었냐고 나는 또 잔소리를 들었겠지....하는 생각에, 그렇다면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고 회피했어야 했을거야...라는 생각을 한거다. 



"아침 뭐 먹었어?"

"대답하고 싶지 않아."



이런 거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거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답하고 싶지 않아, 우리... 다른 얘기할까? 급 화제전환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이래저래 딥빡 개빡의 날이었다. 그래서 남동생과 술을 마셨는데, 맛있는 술과 안주를 두고도 내 기분은 딱히 나아지질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좋아서, 문장에, 내 마음이 조금 풀어지더라. 


















나의 국내 페이버릿 이승우 작가의 책인데, 전작들에 비해 내용이 다소 가벼운 느낌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문장만큼은 여전했는데, 내가 오늘 지하철안에서 읽고 마음이 진정된 건 이런 부분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겨냥한다. 더욱 겨냥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을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사람이지만 하는 사람은 하면서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있지만 하는 사람, 하면서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질문해 보자, 단지 그 말을 했기 때문일까. 말의 힘, 즉 주술일 뿐일까. 그것뿐일까. 주술사는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해 주술을 건다. 주술에 힘이 있다는 것은, 주술사가 겨냥한 그 누구, 혹은 무엇에 주술사가 의도한 어떤 현상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주술사가 건 주술이 누구이거나 무엇이 아니라 주술사 자신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경우에는, 이 주술이 말하는 사람의 외부, 그러니까 누구이거나 무엇을 향하지 않고 자기를 향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것이 주술의 내용이다. 자기 자신에게 주술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말하는 나와 듣는 너가 동일인이므로 이 말을 할 대 그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는 사람이다. 주술이 이 사람을 피할 리 없다. (p.131-132)




사랑한다고 입밖으로 꺼내놓고 더 그 사랑의 감정이 진해져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내게도 있다. 일단 입밖으로 나온 감정은, 그 감정에 무게가 더해진다고 해야하나. 사랑이 '더한' 사랑이 되어버리는 거다. 오늘 가만히, 이승우의 문장이 출근길의 나를 위로해서 나 많이 먹게 만들었다. (응?)




강요당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니까 모든 사랑의 고백은 강요된 것이지만, 거꾸로 사랑한다는 고백에 의해 사랑이 이끌려 나오는 일도 일어난다. 없는 사랑이 갑자기 생겨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흔하지는 않다.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내진다. 수면 아래 깊이 잠겨 있거나 뒷방 구석의 어둠에 단단히 숨어 있던 것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을 어떤 소설가는 자기 소설집 작가의 말에 쓴 적이 있다. 그런 뜻이다. 그 작가가 그 짧은 글에서 염두에 둔 대상은 독자였지만, 이것이 작가와 독자 사이에만 적용되는 원리일 리 없다. 기본적으로 이 문장은 말의 주술에 대한 것으로 읽힌다. 말이 가진 힘에 대한 말. (p.129-130)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편지형식의 리뷰를 쓰고 싶다, 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말 내가 쓰게될지는 아직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어쩌다보니 전작해버린 시인 박연준의 새 시집이 나왔다. 그래서일지 내게는 좀 특별한 시인이란 느낌이 있다. 박준의 산문집도 새로 나왔다는데, 이 두권을 조용히 사는 순간, 마음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읽지도 못하고 잘 이해도 못하면서, 그런데도 왜, 이 시집을 읽으면 나 좀 괜찮아질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건지 통 모르겠다. 




내일 아침부터는 거하게 먹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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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6-16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책무더기 말이예요.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포함하고 있던 그 책무더기를, 벗어던진 원피스가 끌어안고 있었다니.. 이거이거 아침부터 넘 섹시한 거 아닙니까.
책무더기와 벗어던진 원피스라니....
넘 자극적이예요.
상상하게 되고... 몰라 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06-16 11:55   좋아요 1 | URL
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자극적이 될 수도 있는거군요?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님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제가 말하는 순간, 저는 그 사랑에 더욱 빠지게 됩니다....

단발머리 2017-06-16 12:01   좋아요 0 | URL
너무나 섹시한 다락방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지요.
자꾸 자꾸 상상하는 내가 다락방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우리 사랑 forever! 💜

다락방 2017-06-16 12:08   좋아요 0 | URL
우리 사랑 forever! 💜

아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을 일 없는 요즘에 웃게 해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역시 단발머리님을 사랑하길 잘했어요.

럽-
럽-

북깨비 2017-06-1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ㅎㅎㅎ 너무 재미나게 읽었어요. 본 적도 없는 다락방님 방 풍경이 눈앞에 쫘악 그려지면서. 저도 집안에서 책 꾸러미를 찾아 헤맨 적 있거든요. 애꿎은 남편한테 엇다 뒀냐 승질내고. ㅋㅋㅋㅋ 다락방님 덕분에 엔돌핀 상승하고 덤으로 이승우님의 사랑의 생애까지 챙겨갑니다. 뭔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으면서 막 읽고 싶은 충동이 들어요.

다락방 2017-06-16 15:25   좋아요 0 | URL
히히히히히 저만 그러는 게 아니군요. 다른 분들도 책 꾸러미 어디다 뒀나 헤매이고 그러는군요.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ㅎㅎㅎ
나른한 오후인데 엔돌핀 상승한다니 참 좋구요, 이승우 님의 책까지 챙겨가신다니 아주 좋습니다. 우리 서로 돕고 삽시다. 책 꾸러미 찾을 수 없을 때마다 서로의 존재를 기억합시다. 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이런 끼어들기 너무 환영합니다!!)

비연 2017-06-1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 폐부를 찌르는 말이네요. ‘사랑‘을 잊고 살았더니.. 뭔뭔 얘기인가 싶고. 이승우님 책 읽어봐야겠어욧!

다락방 2017-06-16 15:50   좋아요 0 | URL
제가 기대한 내용보다는 가볍지만, 사랑이 가볍다는 것 자체도 저의 편견 혹은 착각일 것 같아요.
즐거이 읽고 있습니다. 이승우 책은 정말이지 문장을 곱씹어가며 읽는 재미가 있어요.
추천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 제가 붙들고 살아요.
 
남자란 무엇인가
안경환 지음 / 홍익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 그대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리고 다 읽고 책장을 덮은 후에도, '도대체 이 책을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내가 읽기에도 아무것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가 읽는다고 해서 뭔가 위로를 받는다거나 재미있다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안경환은 누구보다 현실 혹은 현상 파악에 능하다. 과거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의 남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알고 있고 또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과정에는 페미니스트들과 페미니즘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고. 페미니즘을 지양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라는 인정도 하고 있다. 만약 그 인정을 좀 더 설득조로 썼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없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현상 파악을 잘 하고 있으면서도 단지 현상 파악만을 책에 기술했기 때문에 이 책은 문제가 된다. 게다가 처음부터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아니, 주장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현상을 기술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나는 그 기술, 단순한 기록에 있다고 생각한다. 숱한 명사의 숱한 책 혹은 말에서 가져와 이 책을 구성하는 거다. 남자와 여자의 뇌과 다른데, 이렇게 달라,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인용문 가져오고, 그래서 남자가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행동하는데, 하면서도 여기저기서 인용문을 들입다 갖다 박는다. 위에 언급한대로, 그것은 '문제적'이고 지독한 차별에서 지금처럼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활동가들의 운동 덕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그냥 다 출처를 밝힌 인용문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세대의 남자들은 기존의 남자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는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시선을 가진듯 보이고, 이 역시도 강하게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현상을 나열하는데 그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분노하는 문장들을 비롯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는 문장들까지도, 대체적으로 인용문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읽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없는' , '삶 혹은 일상에 영향을 1도 안미치는', 그야말로 '읽으나마나 한' 책이었을 거다. 정말 이 책을 왜 쓴걸까?



이 책은 지금 화제가 되었든 안되었든 내가 읽고싶어할 만한 책은 아닌데, 여당 의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발췌'하여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하고 또한 '맥락을 읽지 못하고 발췌만 가지고 판단한다'고 하길래, 정말 그런가 싶어 읽게 되었다. 어디, 맥락을 파악하면 그 모든 발췌문들이 다르게 느껴질까? 해서 시작한 거다. 그리고 다 읽으니 발췌독만 읽었을 때보다는 '덜'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맥락이 '분노하지 않을만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남자들이 가진 문제와 지금의 남자들이 가진 문제, 이 사이에 페미니스트들의 역할까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언급했듯이,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고 심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남자들의 문제'를 '남자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지금 욕먹을 만큼 '차별주의자'는 아닌 것 같은데(오히려 문제 파악을 잘하고 있다), 왜이렇게 읽는 내내 찜찜할까를 고민했는데, 그가 적어낸 문장에서 나는 그 답을 찾았다.




여군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데는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의 비중이 커지는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 파견국 주민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여성 군인이 장점이 많다. 최소한 성매매나 성폭력과 같은 전형적인 남자문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자책 p.237)



남자의 문제를 조목조목 다 짚어내면서, 그것을 '문화'로 보고 있는 거다. 성매매나 성폭력은 '범죄'다. 그것을 범죄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전형적인 남자문화'라고 받아들이다보니 현상 파악을 잘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문제시 될 수밖에 없다. 저런것을 남자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여자의 '아니오'가 아니오라는 것을 말하면서도, 아내와의 섹스는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면서도,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된다고 얘기하면서도, 우울증은 정신적 질환이므로 병원에서 치료 받아야 하지 숨길 게 아니라고 말을 하면서도, 거기에 별로 설득력이 실리질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이걸 왜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겐 어차피 남자들의 생래적 본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걸 인정하고 가기 때문에,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힘이 실리질 않는다. 쉽게 말하면 '남자의 성욕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다'를 인정해버리고 있는 거다. 애초에 본인이 멀리 떨어진 제삼자의 입장에서 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본인의 주장은 거의 '없고' 인용문으로 현상만 나열한 글이 된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저자는 실생활에서 다른 남자들보다는 차별하지 않는 삶, 평등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남자의 성적 본능'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은 어느 한 쪽에 가까운 책이 되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그저 인용문 나열에 그친다. 



이 책에 인용된 책은 장르도 다양한데, 이렇게 책도 많이 읽고 평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남자조차도, '남성의 성욕 본능' 같은 거, '젊은 여자를 간절히 원하는 본능' 에 대해서 '남자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걸 인정해버리고 시작하다니, 이것은 그저 남자들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의 제목을 '중년 남자의 한계' 혹은 '한국 남자의 한계' 같은 걸로 쓰고 싶었는데, 자극적인 걸 지양하자는 나만의 신념에 따라 자제하도록 한다. 




이 책은 왜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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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6-1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한계인가 싶어요. 다른 부분에서는 진보(?)라고 여겨지는 남자(!)들이 유독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계를 보이네요.
사실 좀 실망이긴 합니다. 맥락을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죠.

다락방 2017-06-15 16:00   좋아요 0 | URL
저는 책을 읽고나니 이분이 여성을 바라보는 인식이 잘못됐다기 보다는, 어쩌면 본인도 남성이기 때문인지 남성에게 굉장히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안타까운 시선으로 남자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저랑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와 2017-06-1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를 못 하는걸까, 안 하는 걸까?

다락방 2017-06-15 16:00   좋아요 0 | URL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걸까... 이렇든 저렇든 안읽어도 되는 책임.

블랙겟타 2017-06-15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핫(?)한 책을 얼른 읽어보셨군요 다락방님,
나름 안 내정자는 보통의 남성들 중에선 진보적인 관점을 많이 가졌을꺼라 봐요.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이 책이 접근하는 방식부터가 에러네요. ˝ㅎㅎ 우리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잖아. 어쩌겠니?˝ 라는 투의 관점으로 대부분의 문제들을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채 생물학적인 본성으로 접근해버리면 남성들의 본능이나 인식을 스스로 바뀔때까지 여성들은 기다려야만 하나요? 이런식의 접근이 아무리 현실의 한계를 고려해서 썼을지라도 얼마든지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수 있을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잘못된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다락방 2017-06-15 16:03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블랙겟타님. 진보적인 관점을 갖고 있고 페미니즘에 대한 것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이 사회를 이만큼까지 끌어올린게 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이라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더라고요. 지금의 젊은 남성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역시 가지고 있는데, 글 자체가 뭐랄까, 뭘 어쩌라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남자는 왜 젊은 여자를 안고 싶은 것도 본능이고 여자끼고 술마시는 것도 다 본능인걸까요... 본능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블랙겟타 2017-06-16 14: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언론사에서도 서평을 썼더라구요 ㅎㅎ
‘프레시안‘의 서평인데요 시간되시면 읽어보셔요 ㅎㅎ
https://goo.gl/X1Si3j

다락방 2017-06-16 14:15   좋아요 1 | URL
잘 읽었어요. 은하선에 대한 평가부분은 저도 ‘이게 왜 자기가 평가할 일인가‘ 하고 리뷰에 언급할까 하다 말았는데(밑줄 그어놨어요), 프레시안 서평에서도 언급하네요. 올려주신 리뷰의 뉘앙스는 제가 쓴 리뷰랑 같네요. 그렇지만 뭐랄까, 저보다 훨씬 잘썼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질투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블랙겟타님.
잘 읽었어요.
블랙겟타님, 제가 응원합니다. (뭘?)
아무쪼록 열심히 읽고 써주세요. 그리고 여기에도 자주 오셔야해요!!

안전가옥 2017-06-15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발췌한 글에서 나름 좋게 봐서 주문할라고 왔는데.... 리뷰보고 어떤책인지 딱 각이 나오네요... 제목의 선입견을 뛰어넘지 못했군요. 어쩐지 제목부터가 좀 껄쩍지근한 느낌이 있어서 들고 다니거나 책장에 꽂아두기 좀 그렇겠다 걱정했는데..
리뷰 잘 봤습니다.

다락방 2017-06-15 16:05   좋아요 0 | URL
분명히 남성의 성적인 본능만 가지고 책 전체를 채우지는 않아요. 리뷰에 쓴것처럼 오히려 세상을 보는 눈은 다른 남자들보다 더 낫다고 보여집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문제‘를 ‘문화‘로 이해해버리면, 발췌독 가지고 사람들이 분노하는 데에 대해서 딱히 변명할 순 없다고 보여져요.
이런 책은 왜 쓴건지..모르겠어요.

2017-06-15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6-15 16:06   좋아요 0 | URL
어휴, 정말 지치네요.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서는 착하게 살아서는 안되는가 봅니다.
착하다는 건 뭔지...

비공개 2017-06-1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자책으로 사서 읽다가 재미가 너무 없어서 때려치웠는데, 다락방님은 다 읽으셨군요. 남성들이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해온 범죄행위들이 어쩔수 없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해는 해주자 라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남성분. 아.. 답이 없네요. 핵심을 짚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7-06-16 08:39   좋아요 0 | URL
저도 전자책으로 사서 읽었어요.
이 책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더라고요. 다른 책들 짜집기한 책을 읽는 기분이랄까요.
누구를 위한 책인지, 왜 쓰게 된 책인지 모르겠어요. ㅠㅠ

자강 2017-06-1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제목과 내용이 매치가 안되는 책이었습니다

다락방 2017-06-16 08:39   좋아요 0 | URL
자강님도 읽어보셨군요.
맞아요. 그러고보니 남자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은 그냥...본능적으로 성욕을 갖고 태어난 동물이다..밖에 안되는거네요. -_-

2017-06-15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7-06-1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찌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남성‘의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 쓴 게 아닐까요. 방향도 의미도 사람까지 다 빻았는데 저자와 출판사만 모르고 있었던 어떤 그러한 것

다락방 2017-06-16 11:15   좋아요 1 | URL
뭐 딱히 또 토로?한 것 같진 않고요. 뭔가 이 책은 그냥 이도저도아닌 책인 것 같아요. 단순한 짜집기의 나열... 뭐라 설명할 순 없고, 아치 말대로, ‘어떤 그러한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요.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그러한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맞다. 아치, 나 그 책 샀어요. 부엌 에세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rch 2017-06-16 22:00   좋아요 0 | URL
어떤 그러한 것. 진짜 다락방은 이런거 잘 찾아내

샀을 것 같았어요. 맘에 들길. ^^

책한엄마 2017-06-1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하네요.이 책 사고 말아서-ㅠㅠ사지 말걸..

다락방 2017-06-17 10:45   좋아요 1 | URL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안타깝네요 ㅠㅠㅠㅠㅠ
 
페미니스트 모먼트
권김현영 외 지음 / 그린비 / 201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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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이 '무뇌아적 페미니미스트'에 대한 언급을 할때만 해도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내 자신을 정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서 페미니즘은 내 관심밖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습게도 단 한순간에, 뭔가 잘못됐다, 라는 걸 인식하자마자, '페미니즘을 공부하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잘못됐다는 인식은, 내 주변의 어떤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책 속 등장인물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남성들 때문이었는데, 왜 이렇게 여자들이 불공평한 삶을 살아냈지, 이거 왜이러는거지, 이거 너무 화나는데, 혹시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되면, 그러면 이 답답함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게 될까? 했던 거다. 그리고 그 책은, 몇 번 언급했지만, '최명희'의 《혼불》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김태훈의 칼럼 때문에 또 누군가는 장동민의 발언 때문에 분노했을텐데, 나는 혼불 속의 강모 때문에 이미 딥빡침이 왔던 거다. 아아, 독서는 이렇게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 모른다. 최명희는 그 글을 쓴 의도가 어찌했든간에, 나를 페미니즘으로 이끌어버린 것이여. 어쩌면 그것은 최명희가 의도한 바로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주말에는 한 남자사람이 내게 페미니즘에 대해 내 생각을 물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 남자사람이었고, 혼자 책을 읽다가 머릿속에 고민이 쌓이고, 그러다보니 내게 말을 걸게 된 것이었는데,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있고, 또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고 정리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 내게 의견을 묻는다는 것은 조금 긴장되고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명징한 답을 주기보다는, 그 답을 알았다기 보다는,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점 더 답에 근접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어떤 방향을 잡게 된다고 할까. 페미니즘에 대해 물을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고, 내가 그것을 잘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조심스러웠는데, 페미니스트가 어떤 정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에게도 계속 얘기해야 겠다고, 그 대화 후에 생각했다. 확정된 답,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그 방향을 계속 보면서 그러나 수시로 '잘 가고 있나', '맞게 가고 있나'를 확인해야 겠다고 생각한 거다. 



여섯명의 공저자가 쓴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읽으면서, 이 사람들, 이렇게나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말하고 쓰고 있구나 싶어서 고마워졌다. 그리고 나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진짜 내가 그런거 싫어하지만, 또 잠깐동안, 대학교를 다시 들어가거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여성학을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안돼... 나 학교 다니고 숙제 하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야..... 괜히 등록금 날리지마. 이십년전에 대학 다닐 때 등록금 날린 거로 이미 내 생애 등록금은 다 날린 거야... 지금처럼만 해, 지금처럼만... 욕심내지 마....



지금처럼만 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발전이 없는 것 같아서 초조하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어떠한 물음에도 답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고, 더 넓은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고, 더 확장된 사고를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지는 거다.


아니야, 학교갈 생각하지마. 방통대 자퇴한 거 떠올려봐...




'되돌아갈 길은 없다'는 책의 표지에 적힌 문구는,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내게도 역시 그러하다. 나는 되돌아갈 길은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페미니즘의 세계로 들어와버린 이상, 나는 다시 예전의 내가 될 수가 없어. 그렇지만 멈춰 있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내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고 있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지금처럼 하는 공부지만, 본격적인 공부랄 수도 없지만, 멈추지 말아야지,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 여섯명의 공저자가, 이미 페미니스트로 책을 쓸 수도 있는 이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내가 페미니스트인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고 고민하는 게 너무 좋았다. 페미니스트는 고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과거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 알았다고 반성하고 후회하며,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어떤 것일까를 또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도 내 자리에서 계속 나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거운 다리를 들어올려야겠다. 그리고 그 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라면 친구들이, 연인이라면 연인이, 페미니즘을 향해 걷고 있는 길에 함께였으면 좋겠다.



2015년, '코르셋'을 벗어 던진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만연한 여성혐오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과거에 그랬듯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들이 딴지 거는 방식이 과격하다고 진단 내리는 중이고 이들이 말하는 핵심(몰래카메라 근절, 성차별 금지, 성폭력 근절 등)을 버릇처럼 외면한다. 어떤 이들은 메갈리아를 '여자일베'라고 부르는 일('여자'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일)을 서슴지 않으면서 성에 따른 차별이 난무한 사회구조를 뭉개고 '상호혐오'로 퉁쳤다. 언론은 메갈리아를 남성혐오 집단으로 몰아가는 일에 톡톡히 기여 중이다. 이런 걸 보면 지금의 한국사회는 분노를 기각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나의 스무 살때보다 더 세련됐고 더 고약해졌다. '그 정도로 화가 나 있었구나. 그동안 여성혐오를 이렇게까지 방치했다니. 이제부터라도 같이 바꿔 보자'라는 정도의 공감과 이런 수준의 연대를 기대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메갈리안이 한국사회에 왜 등장했는지에 대해서 질문해 보고, 단 몇 분만이라도 이분법적 젠더 위계로 구획된 세계에 대해 숙고해 볼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는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람들은 여성들의 분노를 기각하고 '여성이 (감히)분노했다'는 것에 더 격하게 분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성들의 분노에 대한 1997년의 응답이 '어리둥절'이었다면, 2016년 한국사회는 분노한 여성에 대한 '응징'으로 답한다. 누가 너희에게 분노해도 된다고 허락했느냐며 버럭 하는 모양새다.

2015년 5월 메르스 갤러리의 문이 열린 후 여기저기 페미니즘에 눈뜬 이들이 메갈리아로 몰려들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성차별적 사회를 알아 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메갈리아로 채 몰려들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메갈리아를 부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 메갈리아를 비난하지 못해 안달난 이들이 즐비했다. '메갈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혐오에서 시작해서 혐오로 망할 것'이라는 진단 속에서, 사람들은 '분노해도 될지 말지'를 생각하고, 설사 분노하기로 결정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메갈리아로 몰려들지 말지를 두고 머뭇거렸다. 메갈리아가 일평생 미러링(만)을 할 건지, 성-비하(만)를 쏟아 내다 망할 건지, 어떻게든 결국 망할 건지, 아니면 움직이는 시도들 속에서 분화하고 논쟁하고 숙고하고 변화할 것인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메갈리아에 대한 사망선고는 생후 3개월을 넘기지 않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었던 건지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모든 것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하고 이동하는 것일 텐데 사람들은 왜 메갈리아의 필멸(必滅)을 탄생 한 달 후부터 줄기차게 예측하고 있었던 걸까. 마치 메갈리아의 죽음을 선언하기 위해 처음부터 죽이기로 결정한 것처럼, 그렇게 세상은 작정한 듯 한통속으로 메갈리아를 궁지로 몰아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예측한 대로, 혹은 목표한 바대로 '메갈리아'는 그 이름을 잃어 가는 중이다. 우르르 몰려들어 함께 분노하고, 그 분노를 어떻게 조직화하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그 공간은 오명에, 오명에, 오명을 뒤집어썼다. 성폭력 생존자들의 네트워크이자, 언어를 갖지 못해 입 없이 살던 이들이 언어를 찾은 공간이고, 지지받지 못해 온 이들이 힘 받는 공간이면서, 먼저 코르셋 벗은 이들이 알려 주는 소소한 노하우로 키득거리던 공간은 이쯤에서 변태를 꿈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홍미리, p.155-158)





'메갈리안이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라는 질문은 참 의미 없지만, 굳이 물어 오고 또 굳이 답해야 한다면, 그렇게 묻는 이의 의도에 맞추어 '물론 그러하다'라고 답해야겠다. 메갈리안은 특정되지 않는다. (메갈리안은 누구이고, 페미니스트는 누구란 말인가?) 메갈리아를 방문하거나 메갈리아에 관심 있는 모두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자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반대로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도 아니다. 때문에 그 질문은 메갈리안과 페미니스트 둘 다를 물화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할 뿐 아니라 그 둘의 분할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더욱이 페미니스트는 인증을 통해 확인받는 자격증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젠더로 구획된 세상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고, 질문하기를 시작한 이상 삶의 장소로서 세상이 나를 향해 던져 오는 질문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는 '나는 페미니스트 맞나?'라는 질문 속에서 산다. 질문을 시작한 이상 누군가가 나를 페미니스트로 부르든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정하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페미니스트 '이다/아니다'라는 타인의 진단이 나를 규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김홍미리, p.164-165)

여성심리학자의 창시자인 카렌 호나이(1885-1952)는 성차별적 환경의 영향으로 남자들은 업적을 통해 성취를 이루려고 하는 반면, 여자들은 사랑을 통해 성취를 이루려 한다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대문에 여자들이 자신의 재능과 꿈을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주변의 평가에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같은 시기 영미문학에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던 헨리 제임스는 조르주 상드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상드의 재능이 천재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여성에게 천재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의심스러운 것은 상드가 정말 여자인가 하는 사실이다."
당시 상드의 친한 친구였던 그는 자신이 상드에게 최고의 찬사를 바쳤다고 생각했지만 이 말은 여성의 천재성을 전혀 인정할 수 없어 하는 대표적인 문장으로 두고두고 비아냥거리가 되었다. 조지 엘리엇은 "나는 확실히 여자들이 어리석다는 걸 안다. 신이 여자를 (어리석은)남자에게 어울리게 만들었으니 당연하다" 라며, 여자들이 어리석은 존재라면 남자 또한 반드시 그러할 것이라며 여자를 폄하하는 남성비평가들을 비웃었다. (권김현영, p.23-24)

인도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의 표현대로 무지는 그 자체로 ‘특권‘이다. 누가 이 상황을 참아 내고 있는지 모를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서 있는 위치를 바꾸어 보기면 하면 얼마든지 다른 질문이 만들어지고, 다른 질문은 다른 지식으로 우리를 안내하 간다. 때로는 질문이 문제가 아니라 대답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 여성철학자는 없지?‘라는 질문에 천재성은 남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헨리 제임스가 있었는가 하면, 미국의 급진주의 여성미술 단체 게릴라걸스와 여성철학자들은 이 질문을 추적하던 중 기존 미술사에서 대가로 칭송받은 남성 예술가들이 자신의 딸과 애인의 작품을 가로챘다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권김현영, p.39)

이 글의 모든 참고문헌은 여자들의 말과 글로 이루어졌다. 분리주의나 자매애 때문이 아니다. 내게 필요했던 대부분의 지식은 여자들이 만들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다. (권김현영, p.44)

여하튼, 덕분에 여성학과에 진학하고 언니네트워크 활동을 병행했던 약 5년여 동안 아버지와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인생에 남자가 주요 인물로 전혀 등장하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성들만으로도 충분했고, 완전했다. (전희경, p.201)

(대담중에서)
권김: 그러면 덧붙여서 잠깐, 미디어 비평을 하시기도 하니까, 김태훈 같은 칼럼니스트가 ‘무뇌아적 페미니즘‘에 관해 쓴 칼럼에 대한 코멘트를 들어보고 싶기도 한데요. (웃음) (p.238)

손: 사실 그 칼럼의 의미는 2015년까지의 한국의 페미니즘 지형이랄까, 아니면 문화적 지형이랄까, 여혐 지형도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징후적 칼럼이었다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페미니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은 사회. 그게 한국사회이자, 한국 사회의 페미니스트 혐오였던 거고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들이 중첩되면서 염증을 느끼고 있던 여성들이 드디어 ‘악!‘하고 소리를 지르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아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글을 써도 남자들은 부끄럼 없이 지면을 쓰는구나. 그러니까 우리도 부끄러워하지 말자‘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우리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글은 안쓰잖아요. (웃음) 그리고 그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지면은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아서 누그든지 내가 동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식으로 활개를 치게 놔두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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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2017-06-1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만 알려드리면 여성의 의무군복무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면 됩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 분 가운데 여성의 군복무, 최소한 공익근무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분은 한 분도 없는게 페미니즘 발전의 가장 큰 장벽이예요.

다락방 2017-06-15 10:17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을 1도 모르는 댓글이네요.
공부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최소한 제가 페미니즘 관련 책 리뷰 쓴 것만 읽었어도 이렇게 댓글 쓰진 못할텐데요.
실망입니다.

제이슨 2017-06-15 17:5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 페미니스트들이 거의 같은 반응을 하는것 같아요
컨텐츠에 대해서는 함구...

다락방 2017-06-15 18:19   좋아요 1 | URL
여성들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헌법소원 제기한 게 여성이라는 사실은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페미니스트들을 다 만나보셨어요?
페미니즘 책 조금만 읽어도 군대에 대해 얘기하는 페미니스트들 좌르륵 나오거든요?
그리고 어디 페미니스트한테 페미니즘 인정받는 방법 얘기를 해요... 지금 뭘 잘못한건지 감이 전혀 안잡히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맨스플레인 하고 계십니다 지금.

2017-06-15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