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기에 없었다
조너선 에임즈 지음, 고유경 옮김 / 프시케의숲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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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이제부터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독특한 소설.
그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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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1883년 '우생학'(eugenics)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우생학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골턴은 다윈과 맬서스의 사상을 결합하여 인종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해 '선택적 육종'을 하자고 주장했다. '적자'는 더 많이 낳아야 하고 '부적자'는 덜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합과 부적합은 영국 중산층의 가치기준으로 판정되었다. 골턴의 관심은 사람들의 유전적 자질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사회연구에서 통계를 장려했으며 유전적 자질을 측정하는 등급체계도 도입했다. 우생학에 통계적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이론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수학적 과정과 통계야말로 과학적 객관성의 증거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골턴은 흑인들에게 지적인 면에서 백인들보다 두 단계 낮은 등급을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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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자들의 목표는 사람들의 인종적 자질을 일람표로 만들어서 우수한 인종의 번식을 늘리고 열등한 인종의 번식은 줄이자는 것이었다. (p.309-310)



우생학, 그러니까 우수한 인종의 번식을 선택해서 늘리자라는 주장에 대한 글을 읽노라니, 오래전에 본 영화 《스피시즈》가 바로 떠올랐다.















지금 이렇게 링크 올리려고 보니 2,3편도 있네?

내 기억을 확실히 하고 쓰기 위해 1편을 다시 보려고 했더니 넷플릭스에도 없고 네이버에도 다운로드가 안된다. 하는수없이 오래전 기억에 의지해서 쓰자면,


그러니까 여기에는 외계종이 나온다. 처음에 어떻게 외계종이 이 지구의 연구실에 들어와있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아니, 실험으로 만들어진건가, 어쨌든 소녀였다가 금세 자라서 성인여성이 된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성인여성이 된 외계종은 번식을 해야 하는거다. 연구실을 탈출해 번식하기 위한 짝을 찾는데, 워낙에 출중한 얼굴과 몸매라서 남자들이 들러붙고, 그녀도 번식을 원하니 성관계를 가지려고 하지만, 가까이에서 성인인간남자를 마주한 순간 외 외계생명체는 그와 관계를 갖지 않고 죽여버린다. 아, 모르겠다. 검색해서 줄거리 가져오자.





그러니까 '씰'이 그 외계 생명체 주인공이구나. 가져온 줄거리에는 '맘에 안드는 남자'를 살해하는 걸로 나오지만, 씰은 섹스를 하려고 생각한 상대 남자가 어떤 열등한 점을 가지고 있는지 바로 파악이 가능했다. 병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면 그 남자와 섹스하기를 거부하는거다. 우수한 종을 찾아 섹스를 하려고 하는 것. (아, 다시 보고싶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다. 이걸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내가 섹스를 하려고 한 이 남자가 치명적인 병(영화에서는 성병이었던 것 같다)을 가지고 있는건 아닌지, 폭력성을 가진건 아닌지, 그러니까 일종의 '열등한' 면에 대해 내가 섹스 전에 파악이 가능하다면 좋겠다, 했던것. 순전히 나 하나만 놓고 봤을 때 나는 그게 미리 파악이 가능한 씰이 부러웠던 거다. 그거 어떻게 알지, 뭐 보고 알지? 나도 알고 싶은데?



흑인들의 등급이 백인보다 낮다, 백인이 우수하니 백인을 더 태어나게 하고 열등한 인종을 덜 태어나게 하자,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 실천에 옮기려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니 확실히 '와 이런 놈들을 봐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하면서, 스피시즈를 보고 씰을 부러워했던 내가 떠오른거다. 내가 원한 것도 그러나 결국은 우생학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았던 게 아닌가? 내가 바란 것도 그거 아니었어?

결국 우생학 연구소도 생기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나같은 사람들이 존재했으며 다수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1880년에 태어났다면, 그 때를 살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나저나 스피시즈 다시 한번 보고싶은데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네..


스피시즈 생각이 났다고 하지만, 이 책은 읽는 내내 국내 예능 프로그램인 [정글의 법칙]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


여튼, 464페이지까지 읽었다.





과학자들은 스스로에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어쩐 존재에게도 해서는 안된다. - P120

새로운 과학은 우리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우리가 육체를 가졌음을, 우리가 어머니 대지에 의존하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여성에게서 태어났고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 P121

우리의 감각은 지식의 원천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모든 인간행복의 원천이다. - P121

현대인들-현대 남성들-을 위한 제 3의 공간은 여성, 엄밀히 말해서 여성의 육체이다. 여성의 육체는 대다수 남성의 욕망이 투사되는 스크린이다. - P240

오늘날 폭력과 욕망, 동경과 환상 간의 관련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포르노그래피이다. 포느로그래피는 남성들에게 여성의 육체에 대한 이미지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각조각 나뉜 육체의 선택된 일부를 보여준다. 그들의 욕망은 현실의 살아 있는 여성은 물론 아니고 한 사람의 여성 전부도 아닌 이 조각들에 집중되어 있다. 동시에 이들 이미지는 이 육체와 남성의 관계를 특징짓는 폭력을 반영한다. 폭력과 욕망을 들이미는 이러한 포르노그래피적인 시선이 수많은 상업광고, 쏟아지는 잡지와 비디오와 텔레비전, 영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경제성장은 포르노그래피적 시선에 기댄 이러한 종류의 광고에 점점 더 의존하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동경과 마찬가지로 해체되고 벌거벗은 여성의 육체에 대한 이 열망 역시 전적으로 소비주의적인 것이다. - P242

유럽과 일본, 미국 남성들이 매춘관광에 끌리는 이유는 대체로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남녀 간의 주종관계와 권력 때문인 듯하다. 심리학자 버티 라차(Betti Latza)는 태국에서 섹스관광을 즐기는 독일남성을 연구했다. 그녀는 남성들이 태국 ‘연인‘에게 자신의 숙소를 청소하게 하고 하루종일 밥을 차리게 하며 노예처럼 봉사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섹스는 둘째 문제이고 남성들이 진짜 즐기는 것은 이들 여성에 대한 절대권력이다. - P243

지중해의 해변을 찾는 유럽인 관광객들은 해변을 파괴한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언덕과 전원으로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바로 이런 풍경을 파괴하고 있으며, 그들이 오염 되지 않은 자연을 보기를 원했던 숲은 자동차 배기가스로 파괴된다. 태국에 섹스관광을 간 남자들은 그곳 여성들을 파괴하며 그들을 매춘부(prostitutes)로 만들고 AIDS에 감염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동경 이전에 파괴가 있었고, 낭만화 이전에 폭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 P257

부족민 살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보들리에 으하면 1971년 수많은 독일인을 포함한 백인정착민들이 구아야키(Guayaki)전리품으로 집을 장식하려고 수많은 구아야키 인디언을 죽였다고 한다. 브라질과 꼴럼비아에서도 목축농장을 만들려는 백인들이 그 지대에 살던 원주민을 총과 독약, 다이너마이트를 동원하여 몰살했다고 전해진다.
대개의 경우 이 살인자들은 누구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했습니다"라고 한 살인자는 말한다. "정부에서 처벌하거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에 인디언들을 죽였어요." - P263

우리가 자연에게 저지른 일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저지른 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있고, 이 경험에도 불구하고 생존지식을 지니고 있기에,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이 점을 덜 잊어버린다. 그리고 바로 여성-그리고 몇몇 남성-들이 생존기반의 파괴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ㅐ롭고 현실적이며 대안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 P281

재생산기술은 여성들이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자본과 과학이 그들의 성장과 진보의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개발된 것이다. - P299

반다나: 삶에서 지키고 싶은 가장 중요한 세가지를 꼽으라면 무엇을 들겠습니까?

차문데이: 우리의 자유와 숲과 식량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린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난뱅이죠. 우리가 먹을 식량을 스스로 생산한다면 우리는 부자입니다. 우리는 사업가나 정부가 주는 일자리 필요없어요. 스스로 먹고살 수 있습니다.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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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6-2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64!

다락방 2020-06-22 11:41   좋아요 0 | URL
점심시간에 끝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비연님! 후훗

비연 2020-06-22 11:42   좋아요 0 | URL
😱

바람돌이 2020-06-22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북플에 이 책에 대한 리뷰 등등이 많이 올라오네요. 이러면 또 살코기 ㅂㅁㅂ보관함에 일단 넣어둡니다. ^^
그리고 우수한 종인지 미리 아는거 저는 싫어요. 마음과 조건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씸 많으므로요. ㅎㅎ

다락방 2020-06-22 14:03   좋아요 0 | URL
아, [에코페미니즘]은 알라딘 내에서 몇몇 분들과 함께하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6월 해당도서입니다. 이거 읽으면서 글 쓰는게 함께 읽는 사람들의 미션이라서요, 6월 한달동안 그 멤버들의 글이 자주 올라올겁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후훗.
 
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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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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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예욬ㅋㅌㅌㅌㅌㅌㅌㅌㅌㅋㅋㅋ

다락방 2020-06-19 14:03   좋아요 0 | URL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잠자냥 2020-06-1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 씨에게 낚이셨군요. 저런.....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19 14:13   좋아요 0 | URL
저는 몹시 까다로운 독자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6-1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이 이거 사신다고 하셨을 때 아차 했어요. 말릴까 했음... 락방 님은 재미없을 텐데.... 하고 말이지요. 그것은 전형적인 용두사미 남성액션판타지 ㅋㅋㅋㅋ

다락방 2020-06-19 14:18   좋아요 0 | URL
제가 빛의 속도로 구매해버렸습니다...누구도 날 막을 순 없어!! 의 마인드로다가 ...... 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20-06-19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9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0-06-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팩트 최고입니다
느낌표 백만개 드립니다.하하

다락방 2020-06-22 07:54   좋아요 0 | URL
아주 얇은 책인데 어찌나 지루하던지요 ㅠㅠ

비연 2020-06-20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관함 넣었었는데 바로 뺍니다...

다락방 2020-06-22 07:54   좋아요 0 | URL
비연님 다른분들 평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재미있다고 해서 저도 산거라... 전 너무 재미 없어서 ㅋㅋㅋㅋㅋ
 


















마침 무료로 떴길래 벼르던 《월드워 z》를 보았다. 책으로는 추천받은만큼 좋지 않았는데 영화는 책보다 나았다. 언젠가부터 좀비 영화 다 보고 싶어져서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넷플릭스에서 보게된 《좀비랜드》는 차마 끝까지 볼 수가 없더라. 그건 보다 말았고 더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월드워z 는 집중해서 끝까지 보았는데, 어쩌면 좀비가 그렇게 자세히 클로즈업 되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제리'(브래드 피트)는 UN소속 조사관인데, 전세계에 나타나는 감염증상 때문에 원인을 밝히기 위해 평택(그렇다, 한국이다) 미군기지에 파견된다. 그러나 거기서도 뚜렷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이스라엘로 가게 되고, 처음 제리가 살던 미국에 좀비가 나타났던 때부터 평택과 이스라엘로 옮기는 그 모든 과정에서 그가 날카롭게 관찰한 결과, 건강하지 못한 인간은 물지 않는다는 걸 파악하고 일단 해결책을 찾게 된다는게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제리에게는 아내가 있고 또 아이들이 있었다. 그가 UN소속 조사관인만큼 그의 신분은 어디에서나 보장이 되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그에게 헬기를 보내 그의 가족들을 구해준다. 물론 정부는 '너희 가족을 구해줬으니 가서 원인 파악해서와' 하고 그를 부려먹지만. 그런 제리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우선, 내 아빠 혹은 내 남편(애인)이 능력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울 수 있지만, 너무 잘났기 때문에 이런 위기 상황에 가족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과연 자랑스럽기만 한일일까. 차라리 존재가 희미한 사람이었다면 우리끼리 더 붙어있을 수 있었을텐데. 아내는 남편이 건네준 휴대전화를 늘 들고 다니면서 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린다. 남편이 잘 도착했는지, 무사한지 내내 걱정이 된다. 너무 잘난 남자랑 함께 사는건 그 나름대로의 피곤한 점이 있겠구나 싶으면서 역시 잘나지 않은게 정답인가..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거다. 그게 남편이든 아빠든... 사실 흔치 않은 아빠기는 하지.

그런 한편, 그가 어느 나라에가서 누구를 만나려고 하든 그가 UN 소속 조사관이라는 것은 그의 신분을 보장해준다. 넌 누구냐, 왜왔냐, 란 물음에 미정부 사람 바꿔주며 내가 누군지 말해줘~ 하면 어느 나라든 그에게 도움을 주는 것. UN소속 조사관이라는 신분은 정말 좋구나, 싶으면서, 또 그게 되게 뿌듯한거다. 내가 아닌데 왜 내가 뿌듯하죠... 그러면서 나는 내 안에 권력에 대한 흠모를 본다. 나는 권력을 좋아해.. 어디서나 통하는 신분이라니, 너무 좋잖아.....



이들 부부는 처음 좀비들을 맞닥뜨렸을 때 한 아파트의 가정집으로 피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그들을 받아주었던 가족들 중에 아들인 '토니'(이름이 토니가 맞는지 기억이 안난다. 찾아봐도 이 아이 이름은 안나오네.)와 함께 도망치게 되는데, 이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염려됐다. 제리부부의 아이들이야 무사히 부모가 살아남으면 부모랑 이 일들을 극복하며 살아가면 되지만, 토니의 경우는 지금 부모를 다 잃었고 제리네가족과 함께 다니고 있는데, 만약 세상이 안정되면 그 후에는? 이라는 걱정이 생기는거다. 아직 아이인데, 혼자서는 도무지 살 수 없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가족을 잃은 피난민 단체나 이런 곳에 보내지게 되는걸까. 제리 부부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내심 이 상황이 끝나면 제리 부부가 토니도 함께 살게 해주고 함께 돌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가 그 입장이 아닌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생각일 뿐이지, '내 일'이 된다면 기꺼이 내가 토니를 맡을 수 있을까? 나는 자꾸만 상황이 안정된 뒤의 이 아이가 걱정되는거다. 이 아이는 어쩌나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아이의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좀비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나 빨리 감염(?)되어 좀비로 변해가는데, 그 안에서 나는 모든 책이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끝까지 맞서 싸우고 도망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월드워Z에서도 이스라엘이 좀비의 공격을 받지 않는건 높은 벽을 세워서인데, 결국 좀비들은 그 벽을 타고 넘어와 순식간에 나라 전체에 좀비가 들끓는거다. 제리를 비롯해 모두가 도망치는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떤 마음이 드냐면, 여기저기서 좀비가 튀어나오고 쫓아오는게 너무 두려워서 차라리 걍 좀비가 되자, 라는 마음이 생겨버릴 것 같은거다. 그런 마음으로부터 나는 달아날 수 있을까? 뒤에서 옆에서 쫓아오고 문을 닫으면 문을 부수려고 하는 그 존재들 앞에서 내가 끝까지 살아남자, 도망치자, 물리치자,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물려버리는 게 속편하겠어,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도망이나 숨는게 계속되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지난 주말에는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미용실에 갈 계획이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식구들과 밥을 먹자고 얘기해 두었었다. 그런데 트윗을 통해서 이번 주말과 다음 주말은 제발 외출을 좀 자제해달라는 어느 의사의 협조 요청을 보게됐다. 그래, 나가지말자, 나가지말고 제발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나부터 지키자, 하고는 토요일에 잠깐 마트를 다녀오고는 외출을 전혀 하지 않았고, 일요일엔 집 밖으로 한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나부터 조심하고 외출을 자제해야지,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월요일에 출근했고 퇴근을 하는데, 퇴근길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은거다. 아마도 월요일 퇴근길이라 더했겠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안에서 갑자기 무력해졌다. 내가 아무리 주말에 외출을 안하면 뭐하나, 밥벌이를 위해 출퇴근을 하는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뒤섞이게 되는데. 그러면서 너무 무력하고 기운 빠지는거다. 내가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으려고 해도, 외출을 부러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위험은 내게 찾아올 수 있을 터였다. 이 모든게 다 무슨 소용이람. 피하고, 숨고, 도망치고, 조심하고... 이런 모든 것들이 정말 지치는거다. 언제까지라는 기간이 정해지기라도 했으면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니 오늘 또 하루가 지났구나 이제 며칠 남았다, 하면서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기분이라도 느낄텐데, 이건 아무것도 약속할 수도 내다볼 수도 없으니 자꾸 지치는거였다. 언제까지 조심해야할까. 언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하고, 언제까지 멀리 사는 친구와 만남을 미루고, 언제까지 외출을 자제해야 하나. 사람 많은 곳을 피해야 하는건 언제까지 해야할까. 마음속에서 순간순간 '차라리 걸려버리는게 속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차라리 그러면, 그렇다면 더이상 조심하고 피하고 자제하는 것들을 그만해도 되지 않나. 걸리지 않으려고 하니까 이렇게 하루하루 지쳐가는 거잖아, 하게된거다. 자꾸 그렇게 힘이 빠지고 기운이 빠지는거다.



그런참에 본 월드워Z 에서 제리는 끝까지 싸운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면서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도망치고 싸운다. 도대체 그런 에너지가 어떻게 나올까. 그는 자신의 가족과 세상의 안위를 걱정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걸까. 그런 것들이 그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누구보다 더 많이 좀비를 맞닥뜨렸으면서도, 좀비의 눈앞까지 갔으면서도 '아, 차라리 물려버리는게 속편하겠다, 더이상 도망치지 않게' 라는 생각을 어떻게 머릿속에서 몰아냈을까. 자꾸만 지치고 약해지는 나를, 나는 어떻게 달래야할까. 나만 그런건 아닐텐데,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만 닥친 건 아니니 모두가 지치고 약해질텐데, 다들 좀비들에게 쫓기면서 차라리 물리는게 낫겠다, 하는 수시로 찾아드는 마음을 다들 어떻게 달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쳐야 해 그냥 물려버리자, 언제까지 숨어야 해 그냥 물려버리자, 하는 마음... 더이상 도망치기도 숨기도 싫어, 하는 마음..다들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걸까. 정신줄 꽉 잡고 약해지는 마음 다잡다보면 결국 제리가 그랬듯이 감염되지 않는 약도 찾아내고, 혼돈에 차있는 세상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그 순간에 함께할 수도 있겠지. 어떻게 정신줄을 꽉 잡나, 어떻게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나. 휴.



기운냅시다. 좀비로부터 끝까지 도망치자. 빠샤.





그나저나 브래드 피트 디게 멋지더라. 예전에 쥴리아 로버츠랑 나온 영화의 포스터에서(그 영화는 안봄) 브래드 피트가 면티셔츠 입고 있는 거 보고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머리는 ... 그러니까 헤어 스타일은.... 그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인데... 너무 멋진것. 참 멋지구나, 브래드 피트는, 저 머리 누가 소화하냐 싶었던 거다. 내가 아는 남자한테 다 대입해봐도 노노... 브래드 피트니까 가능하다. 저런 단발 대체 누가 할 수 있는가.... 내가 좀 더 길러볼까, 브래드 피트 단발하게... 나도 좀 더 길면 단발 될 수 있어!




어제 페이퍼 쓴 《스펙타큘라 나우》의 주연들이 모두 다 본 사람들이라서, 아 근데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지, 계속 생각해야 했다.





남주인 '마일즈 텔러' .. 분명 주연으로 본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본걸까... 해서 검색했더니, 맙소사,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 영화 《위플래쉬》그 남자였어. 아. 그래서 내가 본거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주인 '쉐일린 우들리'가 너무 매력폭발하는데, 분명 이 여자도 어디서 봤는데, 주요하게 봤는데, 하고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거다. 그래서 필모를 봤더니, 오호라, 내가 페이퍼 쓴 적도 있던 《어드리프트》의 주연이었다. 꺅 >.<

그리고 조연인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도 계속 어디서 봤지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버즈 오브 프레이》의 석궁 킬러였어! 으하하하. '브리 라슨'이 고등학생으로 나오길래 대체 이게 언젯적 영화냐 봤더니 2013년 영화였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다들 어릴 때였군요. 2013년... 꼬꼬마 시절에 다들 함께 모여 이 영화 찍었네요? 저는 2013년에 세기의 명저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를 냈지요....... 우걀걀걀걀


















좋은 시절이었다.....




책을 또! 샀다. 오늘 친구에게 '나 이거 병인걸까?' 묻기도 했다. 책이 또 왔다.




나는 여름이 좋은데 여름은 나를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아서 슬픈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여름에게는, 여름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좋아할 권리가 있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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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6-1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는 것이 병인양 하여라... 알라딘에 이런 병 걸린 사람들 많은... including me.. ㅠ
월드워Z는 저도 예전에 심지어 극장에서 보았는데, 브래드 피트가 잘 생겼다 와 좀비 무서워.. 라는 감상만 남은.
저도 오늘.. 책 삽니다... (휘릭)

다락방 2020-06-18 11:30   좋아요 0 | URL
비연님, 책 사는거 화이팅이요! ㅎㅎㅎㅎㅎ

좀비가 들끓는 세상에서 생을 포기하게 될것 같아요, 저는 ㅠㅠ 그러지 말아야지 ㅠㅠ
브래드 피트 멋있어서 브래드 피트 나오는 영화 좀 더 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0-06-1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샀어요!!! 우하하하 이젠 모르겠어요. 책에 파묻혀 살다가 죽죠 뭐 멋진 죽음일 것 같아요 ㅎㅎㅎ

인간의 생존본능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그렇다고 인간성을 버리면서까지 살아남으려는 사람은 또 안 좋아하죠.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어떤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튼 좀비는 무섭고, 브래드 피트는 좋아요!!

다락방 2020-06-19 08:25   좋아요 0 | URL
저 방금 또 샀어요. 오늘 내일 계속 책 박스가 도착합니다. 저는 미친것 같아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본능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칠것 같긴 하지만, 어느 순간 지쳐서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비 영화 볼 때마다 해요. 어떻게 주인공들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이 세상이 좀비 영화의 축소판이라면 저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되진 못할 것 같아요. 아, 이런 비극적인 생각 하지말고 기운내야지.. 휴..

저도 좀비 영화 너무 무서운데, 좀비 영화에는 무서운 것 말고 뭔가 더 있는것 같아요. 무서워서 그동안 보지 않고 부러 피하고 다녔는데 요즘엔 계속 보네요. 하하하핫.
브래드 피트 너무 멋있어서 어제 줄리아 로버츠랑 함께 나왔던 영화 <멕시칸> 봤어요. 둘이 연인인데 겁나 싸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0-06-18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내셨죠? 앗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나실려나? ㅎㅎ
저는 브래드피트 얼굴에 무조건 몰표입니다. ^^

다락방 2020-06-19 08: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오랜만입니다. 아니, 왜 기억이 안나겠습니까! 후훗. 우리 오래된 사이잖아요.
오랜만에 오신만큼 앞으로 자주 오실건가요?
브래드 피트 멋져요 우후후훗. 면티셔츠 입었을 때 제일 멋진 것 같아요. 으흐흐흐

blanca 2020-06-18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젠 지쳐요. 마스크 쓰는 것도 힘들고요. 그런데 더 힘든 사람들 생각하면 더 우울해져요. 평범하게 생각했던 일상이 이젠 꿈처럼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책을 끄응 더 많이 사고 있어요. ㅋㅋㅋ 2013년 다락방님 명저 나온 해 헉 저도 좋은 시절이었어요. 다락방님. 흑 우리 나이 올해 진짜 너무 힘들지 않나요?--;; 좋은 시절 또 한번 오겠죠?

다락방 2020-06-19 08:4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말씀처럼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는데,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언제까지 이래야하나 싶고 그래요.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서 새로운 일상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일상이 한순간에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이렇게 깨닫네요.

블랑카님, 저도 이번 해 너무 힘들어요. 안그래도 어제 친구에게 ‘올해 뭐가 이렇게 힘들어 ㅠㅠ‘ 이러면서 징징 거렸어요. 언제 좋아질까요, 우리는? 친구는 그런 제게 이제 나이들수록 고독과 힘든 것을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하는걸까요? ㅜㅜ

바람돌이 2020-06-1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간 너무 바쁘고 마음에 여유도 없으니 팩도 딱히 안끌리더라구요. ㅎㅎ 올들어서는 마음이든 시간이든 왠지 좀 제 몸에 쌓여있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요. ㅎㅎ 거기다가 각잡고 컴퓨터 켜기는 귀찮은데 북플은 딱이네요. 앞으로 자주 오도록할게요. ㅎㅎ

다락방 2020-06-19 13:55   좋아요 0 | URL
네네네네 저는 책 읽는 게 아직까지도 제일 재미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중간중간 읽기 싫어서 안읽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책이 제일 좋아요. 히히히히히
 



spectacular 를 네이버 사전에 검색해보면 '장관을 이루는', '극적인' 이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이 영화 《spectacular now》는 '장관을 이루는 지금' , '극적인 지금' 정도의 뜻이 될텐데, 주인공 '셔터'(마일즈 텔러)가 언제나 현재를 즐기려고 하기 때문에 붙은 제목인 것 같다.


셔터는 고등학생이고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주변에서는 셔터가 똑똑하다고 하는데 기하학 선생님이 하는 말이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 학문을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는 술취해 쓰러졌다 깨어난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학교의 모범생 '에이미'(쉐일린 우들리)에게 자기의 공부를 도와달라고 한다. 공부도 잘하고 이미 대학에 합격도 해놓았고 미래에 나사에서 근무하겠다는 꿈까지 가진 에이미는 그간 셔터가 만나온 여자들과는 달랐다. 셔터는 늘 현재가 제일 중요했고 미래가 없다는 듯 살았다. 그러니 매일 파티에 파티에 파티 연속이었고, 그 파티의 주인공이었다. 어느 파티에서나 셔터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캐시디'(브리 라슨)과 화려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즐기는거다.


마침 캐시디랑 헤어지기도 했던 터라 그렇다면 에이미랑 파티에도 같이가자고 셔터는 생각한다. 그간 셔터를 보아왔던 친구는 왜 너랑 어울리지 않는 아이랑 사귀냐, 너가 그동안 만나왔던 아이랑 다르지않냐, 고 묻는데 이에 셔터는 여태 한 번 남자친구를 사귀어보지 않은 에미이를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쇼를 한다 진짜... 남자 없는 여자를 내가 도와주겠어..같은 그런 마인드는 상대에게도 못할 짓이지만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마음은 사실 에이미에게 끌리면서 폼 잡으려고 그렇게 말한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개멍청이.. 아, 그런데 내가 이래서 셔터를 비난하려는 건 아니고, 남자들의 후까시야 뭐 두말하면 입아프니까.


매력은 개인적인 것이다. 매력을 가진 내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매력이 내게 다가서는 순간, 상대로부터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 개인적이란 거다. 극중 '셔터'는 정말 내가 안좋아하는 타입이다. 미래가 없다는듯 파티를 즐기는 것도 그렇지만, 가장 싫은건 그가 허구한날 술을 마신다는 거였다. 그는 일자리에도 술을 가져가서 홀짝홀짝 마시고 운전을 할 때도 술을 마신다. 술을 마셔본 적 없던 에이미에게도 술통(뭔쥬 알죠, 그거 이름이 따로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을 선물하고 에이미도 홀짝홀짝 아무때나 술을 마신다. 저렇게 운전하기 전에 술마시는 거 진짜 너무 싫다, 생각하는데 결국 술도 마시고 감정도 격해져있던 어느 날에는 사고도 낸다. 사실 사고도 한두번도 아니지..


그런데 셔터는 나름 인기남인거다. 게다가 학교 내에서도 유명하고. 그래서 공부를 너무나 잘하고 똑똑하지만 스스로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남자친구도 한 번 사귀어본 적 없던 에이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가 나같은 여자를 정말 좋아서 만날 리가 없다는 생각을 수시로 한다. 키스를 한 뒤로는 연락도 없어서 좌불안석(아아, 나 그거 알아. 나도 키스한 다음날 연락 오기전까지 이불킥을 수천번 했던 그 여름이 있다). 오늘은 공부를 하겠다는건지 어쩐건지도 연락도 없고... 어쩌면 졸업파티에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술김에 한 말일지도 몰라, 진심은 아니겠구나, 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거다. 나로서는 도대체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가 여기 사는 이 나이의 나이기 때문이고, 저 나이또래의 학생들에게 학교의 인기남은 너무 핫한 동경의 대상이겠지. 어쨌든 그렇게 좀 위축되어 있는 거다. 나사에 들어갈 희망을 가진 여학생이 인기남이 자신과의 약속을 잊을까봐 기죽다니..



이게 남일이 아닌게, 나에게도 저런 일이 있었다. 오래전의 일인데, 나는 와 이렇게 멋진(?) 남자가 어떻게 나를 알게 되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를 알고 지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위축되어 있었다. 나는 상대와 나를 비교했고 나에 비해서 상대가 훨씬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다 부끄러운 과거 몇 개쯤은 있는 거잖아요...


어느날 그와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다가오는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금요일이 될때까지 그로부터 별 말이 없길래, 장소도 정할겸 어디로 할래, 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로부터는 '음, 혹시 우리가 오늘 만나기로 했어?' 라는 답이 왔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그때 내맘 뭔쥬 알죠... 나는 그 날을 기다렸는데, 그 약속 조차 잊고 있었다니... 그때의 실망과 절망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체념했다. '그럼 그렇지, 이 남자가 나를 만날 리가 없지' 라고. 나는 그에게 그렇다고 하자 그는 미안하다며, 자기가 그때 무슨 일이 있어 정신이 없던 까닭에 오늘 만나기로 했다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었다는 거다. 자신도 당황스럽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이미 처음에 말한 사람과 약속이 되어있다고 해서 오케이, 하고는 그 날 그를 만나는 것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기했다. 그의 말이 거짓일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내가 그에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잖아. 그런 오전을 보내고 매우 서운하던 차에, 하아, 평소에 만나자고 했던 다른 남자1에게 갑자기 연락을 했다. '혹시 오늘 보는 거 가능해?' 라고. 그러자 그는 콜! 하고는 선물까지 사들고 나를 만나러 왔다. 그렇게 남자1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웃고 떠들면서도 '이게 이게 아닌데..'하는 씁쓸한 마음을 도무지 다스릴 수가 없었고, 앞에 앉은 남자에게 집중도 되지 않았고, 술을 다 마시고 집에 바래다 준다는 남자에게 한사코 거절을 했다. 술자리에서 그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다이어리에 그 때의 감정을 시로 쓰기도 했는데(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졸라 문학여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문학적이다. 슬픔을 시로 승화시킨다. 예술인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나에게도 저런 찌질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에이미가 혹시나 하고 쪼그라들어 있는걸 보는데 '알아, 알아, 내가 그 마음 안다' 이렇게 되어버려.... 하아-



누구나 그렇지만 셔터는 셔터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어떤 사건이 그에게 벌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는 오래전에 부모가 이혼하고 아빠를 그리워했던 것. 엄마는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고 했지만 그건 엄마 말이고, 셔터는 아빠의 말도 들어보고자 오만년간 연락없던 아빠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만나러 간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셔터에게 아빠에게 연락해보라고 말해준 것도 그의 여자친구 에이미였고, 그런 아빠를 만나러 먼 길을 갈 때 동행해준 것도 에이미였다. 가서는 돈도 없고 여자에게 껄떡대기만 하고 한시간 뒤에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깜빡하는 아빠를 보고 엄마의 말이 맞았다는 걸 깨달으며 좌절할 때 옆에 있어준 것도 에이미였다. 에이미는 그의 애인이면서 동시에 그를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해보지 못한 것을 시도해보게 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모든걸 다 알고 모든걸 함께 하는 사람. 셔터는 자신이 아빠와 똑같은 것 같아서 두렵고 에이미의 미래를 위해서는 에이미를 놓아주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혼술을 할때면 텔레비젼을 보려고 채널을 돌리게 되는데, 평소에 텔레비젼을 보지 않았던 터라 무슨 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모른다. 지금 이때는 어떤게 방송하고 있나, 하고 편성표를 눌러보다 보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게 1도 없어서, 결국 유튜브의 운동뚱... 을 찾아보게 되는데.... 편성표에서 최근에 자주 봤던 제목이 <저녁 같이 드실래요> 였다. 편성표에서는 제목만 볼 수 있어서 제목만 보고 나는 <한 끼 줍쇼>같은 먹는 방송 예능일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엊그제 월요일, 갈비찜과 김치찜에 소맥을 말아 먹으면서(네?) 채널을 하나하나 돌리다가, <저녁 같이 드실래요>란 제목이 떠있는데 송승헌과 서지혜의 투샷을 보고, 오오, 이거 드라마야? 하게된 것. 그러다보니 얼마전에 송승헌이 제주도에 내려가 <나 혼자 산다>방송을 찍으면서 드마라 촬영차 왔다고 햇었는데, 이것이 그것?


송승헌은... 참.... 너무 잘생겼지만 매력없는 대표적인 인물인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매력이라는 것은 느끼는 사람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에게 잘생긴 것은, 잘생겼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매력이기도 할테니까. 그러나 나에게 다가서는 매력은 그것이 아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결코 잘생김과는 거리가 먼..........(그만 두자, 보고 있으면 어떡해.)


아무튼 그래서 소맥을 홀짝이면서 이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내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파악한 바로는 김해경(송승헌)과 우도희(서지혜)는 자기들이 정한 '디너 메이트' 였다. 서로의 직장도 본명도 모른 채로 가끔 저녁을 함께 먹는 사이인 것. 그 전 회차들을 보지 않아서 도대체 어떻게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남자와 디너 메이트 같은 걸 할 수 있나, 나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다 싶었지만, 서로의 요구가 맞아떨어진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다. 그러니까 각자 그 당시 어떤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이러저러한 다른 관계 필요없고 가끔 밥이나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나도 그런데 너도 그래? 이러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별로 그럴 생각은 없다. 이름도 소속도 모르는 남자와 디너 메이트? 흐음.


아무튼 그런데 우도희 에게는 우도희에게 집착하는 전남친이 있다. 오 신이시여, 대체 왜 전남친들은 그렇게나 찌질한 집착남에 머저리들인가요? 왜 하나같이 그렇게 되는건가요? 왜죠? 아무튼 이 전남친은 자신과 우도희가 헤어질 수 없다고, 우도희도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집착하는데(개새끼), 그 날도 우도희의 집앞에서 우도희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그를 거절하는 우도희의 손을 잡고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는거다. 우도희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불쑥 집앞에 오는 것도, 팔을 잡는 것도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라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다시 우도희의 팔을 잡고, 아아, 우리의 백마탄 기사님인 송승헌 님께서 '그 손 놓으시지' 이러면서 등장하시는 겁니다.... 어이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이러면 안되는거야' 까지는 말할 수 있지만, 어쨌든 이 남자로부터 나를 구해주는 다른 남자..... 라니요. 그러다가 좀 씁쓸해졌다. 그럴 때 이 남자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거, 나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게 주춤하게 만드는 게 다른 남자여야만 가능하다니. 만약 혼자였다면 나는 그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까. 너무 좆같은 상황 아닌가. 약속도 없이 찾아오는 거, 싫다는데 붙드는 거, 모두 구질구질한 전남친의 잘못인데, 그런데 그 상황에서 피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안된다는 거, 너무 엿같잖아. 결국 다른 남자가 등장해야만 쪼그라들어서 사라지다니...



아무튼 이 전남친과 전여친은... 참... 뭐랄까... 그러니까 김해경에게도 전여친이 있다. 오래 사귀어온 전여친인데, 이 전여친 역시 자신이 허락하면 김해경이 자신과 다시 잘 될거라고 생각해. 어제 본 방송에서 다시 잘해보고자 하는 전여친에게 김해경은 '나는 너에게 화가 남아 있지도 않고 미련이 남아 있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와, 그 말에 진짜 공허해지는 거다.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아무것도.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한 반성모드로 들어갔다. 나도 결국은 그런 전여친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상대는 내게 화도, 미련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데, 나 혼자 뭔가 잔뜩 남아서 터뜨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거다. 김해경의 전여친에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정리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가 이걸 지금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주제인가 싶었던 것. 가슴이 시리네요...



우도희는 알고자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김해경의 이름과 직업을 알게 되고, 그가 이름과 직업을 가짐과 동시에 그와의 관계가 그려진다. 그러니까 그는, 우도희가 함께 일하는 사람의 전남친이고, 그여자는 전남친에게 죽고 못살고...그렇다면 이 관계는 더 진행하지 않는게 맞고..해서 김해경을 불러내 이제 밥먹는 사이 그만두자고 말한다. 우도희에게도 그리고 김해경에게도 상대에 대한 마음이 생겨나고 있는 터에 이런 결정이라니, 우도희도 마음이 아프고 영문을 모르는 김해경도 마음이 시리다.


내가 어제 본방을 보기로 결정했던 건, 그 후에 김해경의 태도 때문이었다. 김해경은 이대로 디너메이트를 끝내고 싶지 않다. 그녀에게 마음이 생긴 까닭이고 자꾸 생각나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도희를 찾아가 자신의 명함을 건넨다. 이 이름이, 이 번호가 나다, 이 사람과 다시 연락하고 싶다면 이 명함을 보고 연락하면 된다, 고.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은거다.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고 숨기는 걸 싫어한다. 내가 누군가를 숨기는 것도 싫고,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숨기는 것도 지독하게 끔찍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는 그 일에 대해 세상 당당하고 싶고, 상대 역시 그러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숨겨야 할일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살다보면 그러나 그런 일이 있게 마련이고, 나 역시 숨겨야 하는 몇몇 관계들이 있었다. 그런 관계들 틈에 놓여있을 때는 만족과 행복을 크게 가져갈 수가 없다. 만족과 동시에 한 편에 우울함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환한 대낮에 만날 수 있는 사람, 누군가가 물었을 때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지우고 꾸며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는 좋다.


김해경이 환한 대낮에 우도희를 찾아와 명함을 건네는 것은 이 모든것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나는 여기에 속해있어, 이런 일을 해, 이런 이름을 가졌어, 이것이 내 번호야, 앞으로 니가 나를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나를 표현하면 돼, 라는 모든 것들의 상징. 나는 명함을 건네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다. 업무적으로 만난 것도 아니고 그간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던 사이에서 건네는 명함은, 내게 예의바름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 좋았고, 그 장면이 마지막이어서 그 뒤가 궁금해지는 거다. 정장을 입고 찾아와 명함을 건넬 때의 김해경은 무척 매력있는 남자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예의바른 사람을 좋아했다. 깍듯한 사람, 숨길 것도 없이 정중한 사람. 그러나 나는 숨겨야 했던 사람도... 그만두자, 이런 얘기는.




















수이와의 연애는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수이는 애인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게 숨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이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이일 것이었다. 그 가정은 모순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 <그 여름>, 최은영,  p.253




최은영의 <그 여름>에서 위의 구절은 정말 핵심적인 구절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애인, 나의 연인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사람, 모든 얘기를 나눌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가 애인과 헤어졌다는 얘기, 이렇게나 좋은 친구와 헤어졌다는 얘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도 이 사람인데, 그런데 그 사람과 헤어진거라 더이상 말할 수 없는 상황.

연인과 가장 친한 친구가 한 사람인 것은 그렇다면 축복인가, 아닌가.



















작아. 귀여워. 엉덩이가 예뻐. 진짜 반투족이야. 슈그는 나한테 모든 걸 다 말하는 데 버릇이 들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갈수록 더 들뜨고 사랑에 빠진 사람 같아 보였어. 그녀가 그의 앙증맞고 작은 발이 춤을 출 때에 대해 이야기를 마친 뒤 다시 금갈색 곱슬머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기분은 진창에 처박혔지.
그만해, 슈그. 나 죽을 것 같아. 내가 말했어.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어. 슈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얼굴이 일그러졌지. 아, 셀리. 슈그가 말했어. 미안해. 그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나는 늘 너한테 이야기하니까.
말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면, 나는 이미 앰뷸런스를 탔을 거야. 내가 말했어. -《컬러 퍼플》, 앨리스 워커, P321




셀리는 슈그를 사랑했고 슈그도 셀리를 사랑했다. 이들은 오래 사랑했고 앞으로도 오래 사랑할거라 생각했는데, 슈그에게는 '새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새로 사랑하게 된 귀여운 사람에 대해 슈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셀리에게 조잘조잘 수다를 늘어놓는다. 슈그와 셀리는 서로의 마음속 얘기까지 다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장 좋은 대화상대, 그리고 연인. 연인이면서 가장 좋은 대화상대였고, 늘 모든 걸 이야기 나누던 사람이라서, 슈그는 했던대로, 습관처럼, 새로운 사랑에 대해 셀리에게 수다를 떠는거다. 그러나 여전히 슈그를 사랑하는 셀리는 어떤 기분이 되어야 했을까. 늘 나에게 수다 떠니까 이 모든 걸 다 열심히 들어주는 대화상대가 되어야지, 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슈그를 사랑하는데, 슈그가 새로운 사랑에 빠진 얘기를 대체 어떻게 대화상대로서만 들어줄 수 있단 말인가. 셀리는 너무 아프다. 너무 아프고 괴롭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고 슈그의 사랑에 대한 말들이 자신을 죽이는 것만 같다. 죽을 것만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가장 친한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축복인가 아닌가.




셀리는 슈그를 사랑한다. 슈그가 사랑하는 사람, 가장 마음을 열었던 사람, 모든 대화를 나눴던 사람.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슈그의 친구로서 슈그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는가. 그러나 다른 사랑에 빠졌다는 그 말은 이토록이나 고통스러운데!

그러나 셀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폭력적인 전남친과 다르다. 그러나 셀리는 집착적인 전남친과 다르다. 셀리는 사랑에 대해 성숙한 태도를 지닌다. 그녀는 슈그가 다른 사랑에 빠진 것이 몹시도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권리가 슈그에게 있음을 '안다'. 슈그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자신이 정해줄 수 없다는 것도 역시 '안다'.


나도 슈그하고 같이 다니고 싶기도 하지만 슈그라도 그럴 수 있는 게 다행이야. 때로는 슈그에게 화가 나기도 해. 슈그의 머리카락을 홀랑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러고나서 생각하지. 슈그는 자기 인생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이야. 내가 슈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런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지.-《컬러 퍼플》, 앨리스 워커, P346



너무 좋은 친구였던 터라, 다른 사랑에 빠져 다른 사랑과 함께 있는 슈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우정이 그립다. 셀리와 슈그는 가장 좋은 친구였으니까. 셀리는 슈그가 돌아오길 바란다. 그 우정이 너무나 그립다.



유일하게 괴로운 건 슈그가 돌아온다는 말을 안 한다는 거야. 나는 슈그가 보고 싶어. 슈그와의 우정이 어찌나 그리운지 슈그가 저메인을 데리고 오겠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를 환영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려고 애쓰다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뭐라고 슈그에게 누구를 사랑하라 마라 할 수 있겠어? 내가 할일은 그저 스스로 진실되게 그녀를 사랑하는 것뿐이야.-《컬러 퍼플》, 앨리스 워커, P346



아아, 나의 연인이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축복인가 아닌가.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그런 행운은 좀처럼 찾아올 수 없으니까.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가장 궁극적인 관계가 아닌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게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마땅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게 어려워도 실은 그래야 하는거잖아? 그러나 이건 위험이 너무 크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가장 좋은 친구 역시 동시에 사라져버려. 리스크가 너무 크다. 고위험.. 최은영이 단편에서 말했듯이, 연인과 헤어지고난 후의 슬픔이나 고민을 가장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친구 관계인 것을 유지하면, 셀리처럼 내 사랑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얘기를 듣고 고통에 몸부림 쳐야해. 아아, 어쩌란 말인가.

나는 연인과 친구를 분리해둔 채로 살았었고 그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연인과 가장 좋은 친구가 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건 그 당시에 극도의 행복과 안정감을 주지만, 헤어지고 난뒤에 멘탈 찢기는게 장난이 아녀.. 최은영의 소설처럼, 내 모든 슬픔과 아픔을 다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그와 헤어지기까지 내가 겪었던 고민들과 그와 헤어지고 나서 아팠던 일들, 그를 기다리는 마음, 새로운 사람을 만났던 시간들, 새로운 남자를 만났는데 섹스가 즐겁지 않았던 것들까지, 이 모든 얘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이 그였는데 그 사람과 헤어져버려서 리스크가 너무 커... 나는 아직까지도 내 생각과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 없다. 동성의 친구들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사람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 없다. 연인과 가장 친한 친구가 동시에 사라져버리는 건 인생에서 너무 치명적이야.. 그래서 친구만 가져올까, 생각해보지만, 그랬다가 셀리처럼 그의 말들로 나를 죽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아니야, 이제 좀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그런 것들을 다스릴 수 있다, 고 생각해보지만 그렇다면, 친구는 과연 나 혼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연인이든 친구든 나 하나의 의지로는 되지 않는다. 내가 내민 손을 상대가 잡아야 가능한 것인데, 나는 과연 무엇을 잃은 것인가...



그러니 연인과 가장 좋은 친구가 따로 있다는 것은 또 그런대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에서 우도희는 전남친의 집착이 짜증나고 새로운 남자에 대한 호감이 자라는 시점에 항상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친한 친구가 있다. 혼자 침대에서 뒤척이기도 하고 혼자 중얼대기도 하지만 그래도 연락해주는 친구가 있다. 썸남때문에 고민이라고 하면 '저질러버렷!'하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 다쳤다고 하면 죽을 싸들고 오는 친구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좀 더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연인과 가장 좋은 친구를 분리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 모르겠다.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가 아닌건, 사실 연인으로도 별로라는 거 아녀? 그냥 다들 알아서 잘 살자. 마음대로 살아요..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든 아니든, 건강한 관계 여러개 만들어놓고 한 사람에게만 몰빵하진 말자. 그것은 하이 리스크에 다름 아니여... 우리는 살아가야 할터이니...



제이슨 므라즈는 <Lucky>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연인이 되다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노래하지만, 오오, 제이슨 므라즈여, 그것은 하이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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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6-17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시간 축복이라 생각했지만, 축복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 페이퍼를 읽고 나서 하게 됐어요. 한 사람이 나의 모든 면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생각하구요. 오후에 읽은 <빌레뜨>에도 셀리 같은 마음이 그려져서 전 무척 괴로웠다죠.
락방님 페이퍼 전체적인 내용은 좀 슬픈데 그런데도 전 몇번이나 웃었답니다. 남자들의 후까시야~ 뭐 이런 명문장 덕분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17 16:31   좋아요 0 | URL
연인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과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게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연인이 되겠어요? 그런데 그걸 한사람이 다해주면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전 어떡해요? 오 마이 갓 영혼이 박살나는거죠. 제가 제 삶을 잘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서 단단한 관계를 여러개 만들어두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단단한 관계는 그러나 원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죠. 제가 상대에게 다정하고 마음을 열어야 상대 역시 저한테 그럴테니까요. 저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좋아요.. 우리 다정한 똑똑이들....

페이퍼가 슬픈데 웃음이 나는건 우리 삶이 그렇기 때문일겁니다. 살다보면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뭐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삶을 녹여낸 뛰어난 페이퍼다, 뭐 그런 말이 되는겁니다. 엣헴.

단발머리 2020-06-1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제가 땡투했어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9월 도서에요. 부자되세요! 😤

다락방 2020-06-17 16:28   좋아요 0 | URL
네? 벌써 9월 도서를 사셨다고요? 8월 도서도 이미 준비된걸로 아는데, 아니, 비연님에 이어 단발머리님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 진심인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땡투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부자가 되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시네요. 복받으세요, 단발머리님. 샤라라랑~~

2020-06-18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8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8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8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