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고 싶다면, 포틀랜드 - 풍요로운 자연과 세련된 도시의 삶이 공존하는 곳 포틀랜드 라이프 스토리
이영래 지음 / 모요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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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는 어쩐지 글 타입이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 사진만 후루룩 넘겨봐야지 싶었는데, 읽다보니 점점 빠져들게 됐다. 빠져들었다기 보다는 사실 흥분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데, 와, 읽기 시작하면서 내내 얼마나 포틀랜드에 가보고 싶어졌는지, 수시로 비행기표를 검색해봤다. 같이 가고 싶다는 친구는 결혼준비 때문에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혼자 가자' 생각하게 되었는데, 비행기야 그렇다쳐도, 호텔비를 어떻게 감당하나, 생각하니 지금 머리가 아프다... (집에 가면서 로또를 사볼까...)


이게 단순히 포틀랜드 여행기였으면 나에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책 제목에서처럼 포틀랜드에서 '살고' 있다. 포틀랜드가 고향인 남자와 함께. 여자는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었고 호주로 유학갈 준비중이었다가 한국에 와있던 미국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하면서 포틀랜드로 건너가게 된 것. 저자는 시종일관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라서 포틀랜드의 삶에도 잘 적응하는데, 그걸 보는게 대단하고 또 감히 내가 대견하게 느꼈다. 컴플레인을 잘 거는 성격답게 아닌 건 아니라고 그자리에서 말하면서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가져가는 건, 파머스 마켓에서 베리를 팔 때 최정점을 찍었는데, 읽으면서 몇 번이나, 내가 이 저자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이 사람만큼 할 수 없을거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녀는 남편과 사랑하며 잘 지내는것처럼 시댁 식구들과도 즐거이 잘 지내고 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잘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게 책장을 넘길수록 더 신났다. 게다가 남편이 맛집 찾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리스트 만들고 아내를 데려가는 거 너무 좋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틀랜드에 살게 되면서 포틀랜드에 익숙해지고, 또 가끔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포틀랜드를 보려는 저자는 삶에 있어서 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사람 사귀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도 진짜 대단하고...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사람인 것 같아서, 이런 저자라면 어디에 데려다놔도 잘 지내지 않을까. 포틀랜드에서 사람들과 까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숙박시설등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일상을 그려내길래, 아아, 그야말로 라이프 스토리구나 싶었는데, 끝에 가서는 숙박시설과 레스토랑등의 목록표도 만들어 두었으니, 오호라, 여행갈 때 들고가도 좋을 책이 되었다. 덕분에 큰 도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자꾸만 아, 가고싶다, 가고싶다, 하면서 가슴이 뛰었다. 무엇보다 서울의 절반정도 되는 크기에 인구는 서울의 15프로라고 하니, 아아, 뭔가 아침에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거리기 딱 좋은 곳일 것 같아. 이곳 특유의 슬로라이프를 내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또 여행할 때 특유의 조증이 발생하니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은 도시를 구석구석 누비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결혼하고 포틀랜드로 넘어가 남편이 데려갔다던 버거빌 이라는 버거집에 가서 버거도 먹고싶고... (  ")




저자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데 남편은 맥주를 아주아주아주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남편을 아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아,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은 장면이었다. 내 눈앞에서도 그 장면이 그려지는 듯해서.



그가 유일하게 애지중지하는 맥주들을 꺼내 들고 나오는 시간이 있었다. 오후 5~6시. 그의 아버지가 농장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뒷마당의 포치에 앉아 저 멀리 들리는 기차 소리와 새소리만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순간을 담배 한 모금으로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존은 언제나 맥주 한 병과 글라스 두 개를 들고 나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함께 그 순간을 맞았다. 

(중략)

'저렇게 맥주 한 잔, 초콜릿 하나를 아버지와 나눠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삶을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 내 남편,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되지도 않는 노력을 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놈의 술을 끊게 해야지!라는 상상 같은 건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 역시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일부러 그의 취미를 포기하거나 포기하는 척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년 가까이 그의 맥주 사랑과 홈브루잉 취미생활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취미를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p.205-206)




아아, 하루 일과가 끝나고 포치에서의 다정한 술 한 잔은 나의 오랜 로망이 아니던가. 여기엔 내가 바라는 모든게 다 있다. 다정한 사람과 이야기, 여유로운 분위기, 술.

술...

술.....

내가 진짜 포치에서 술 마시고 싶다고 글을 몇 번이나 썼는지!!!!



그리고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아, 저 남자 좋다...라고 생각하는 여자라니..........실로 애정이 뿜뿜하는 장면이 아닌가!




포틀랜드의 파머스 마켓에서 잼도 사보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빵도 사서 여유롭게 빵에다 잼을 슥슥 발라 먹고 싶다. 느즈막히 책 한 권 들고 나가 맛있다는 커피집에도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도 보고. 그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이곳저곳 걸으면, 아아, 얼마나 좋을까. 읽는 내내 정말이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어.... 베트남 국수여행 책 다음으로 나를 흥분시키고 말았다. 너무 좋아서, 막, 뭐할까, 이러면서 메모하면서 읽었다. 가게 되면 여기가서 이것도 먹어보고 이것도 마셔봐야지! 동네는 어디가 좋을까? 막 혼자 걷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러다보니, 포스트잇을 여러군데 붙였다. 포틀랜드를 꼭 가보고 싶다던 친구가 있어서, 나중에 그 친구랑 함께 가자고 약속해 두었는데, 그 전에 나는 좀 미리 다녀와야겠다. 게다가 나의 다정한 오빠가 내가 포틀랜드에 오면 스테이크를 사주겠다고 했어.... 


내 영혼은 이미 거기에 가있다.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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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5-2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이 없어지려고 하네요, 영혼이. ㅜㅜ
포틀랜드 예전에 다녀왔었는데... 정감가는 곳이었어요. Saturday market도 좋았고. 아. 다시 가고 싶어욧!

다락방 2017-05-23 17:19   좋아요 1 | URL
비연님은 다녀오셨군요! 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아무데나 막 돌아다니고 싶어요. 아아, 그렇지만 비용을 생각하니 잠깐 주춤하게 됩니다. 그래도 가고 싶으면 가야겠죠? 하하하하하

비연 2017-05-23 18:37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럼요~ 가고 싶으면 가는 걸로. 비용은.... 어디선가 언제인가 메꿔지리라 믿으며 ㅡ.ㅡ;;

다락방 2017-05-24 08:09   좋아요 0 | URL
좀 저렴한 호텔을 알아보고 아무래도 떠나야겠어요...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계속 생각났거든요. 불끈!

transient-guest 2017-05-24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레건 주가 전체적으로 아름답죠. 저도 아주 어릴 때 가봤는데, 포틀랜드도 그렇고 유진도 그렇고 아주 예쁘다고 해요.ㅎㅎ 가서 멋진 농장주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눌러앉으실지도..ㅎㅎㅎ 포치에서 맥주와...등등...

다락방 2017-05-24 08:00   좋아요 1 | URL
아..... 멋진 농장주의 아들.....아아....포치에서 맥주.....멋진 농장주의 아들을 돈도 많고 볕에 그을려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겠죠....농장에서 일하니 근육질의 단단한 몸.............일것이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았으니 마음도 여유로울 것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환상속의 남자네요. 네, 제가 포틀랜드로 가겠습니다. 멋진 농장주와 사랑에 빠져 포틀랜드에 눌러 살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너무 멋져서 인생이 황홀해질 것 같아요..
>.<

웽스북스 2017-05-2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킨포크 스타일의 원조가 포틀랜드라고 들었는데, 역시 킨포크를 좋아하시던 다락방님은 이 책도 좋아하시는군요! ^^

다락방 2017-05-24 10:0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웽님. 여기에서 킨포크 본사 찾아가서 직원들 만나고 인터뷰 하는 것도 나와요. 이 저자도 킨포크를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후훗.
 

올해 더이상 책을 사지 않아도 앞으로 십년간 읽을 책이 준비되어 있는 것 같으므로,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고 새로 사자는 취지아래, 가지고 있으나 읽지 않은 책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사실 예전부터 이거 해야지, 해야지 했었는데...리스트 만들기 어쩐지 무서웠어... ㅠㅠ


그리고 읽으면 리스트에서 빼버리겠다. 그 수를 줄여나가겠어!! 불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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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
토머스 H. 쿡 지음, 김시현 옮김 / 시작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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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 기업의 자선 활동에 담긴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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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5-2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천천히 추가해야지.....힘들어서 못하겠다........................Orz

비연 2017-05-23 15:12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이런 리스트 만들어봐야겠어..............요.................ㅜ

다락방 2017-05-23 15:51   좋아요 0 | URL
하다가 짜증나서 못하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7-05-23 16:4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와 2017-05-24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한다!! ㅎㅎㅎㅎ

근데 저기 ‘낮술.. 아일랜드....?!‘ 뭐야. 저 책은?!!! 제목부터 벌써 심쿵쿵하는데!!!!! >_<

다락방 2017-05-24 14:12   좋아요 0 | URL
아직 안읽어서 저것이 심쿵일 책일지는 내가 아직 잘 모르겠다. 포틀랜드 잠재우기 위해서 아일랜드... 펼쳐 읽어볼까 어쩔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이 리스트에 채워야 될 책이 겁나 많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르긴몰라도 한 300권은 더 추가해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지겨워서 추가를 못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영어 선생님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며 이 영화의 줄거리를 수업시간에 얘기해 주었었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비디오로 나왔을 때 친구들이랑 봤는데, 오, 재미 없었어... 이게 엄청 흥행을 했던 영화였고, 데미 무어의 인기도 엄청 올라갔었는데, 그런데 재미가 없네? 하고는 친구들하고 실망하며, 친구의 사촌언니가 추천한 영화 《더티 댄싱》을 그 다음에 함께 봤었다. 오오, 더티 댄싱은 재미있다, 너무 재미잇어 나는 완전 정신줄 놓고 몇 번이나 반복해봤으며, ost 를 달달 외우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사랑과 영혼》을 몇 해 전에(아마도 2-3년전쯤) 텔레비젼을 통해 다시 보게 됐는데, 그 때는 너무 재미있는 거다. 아, 이 영화를 내가 너무 어릴 때 봐서 재미가 없었던건가, 이거 왜이렇게 재미있지? 하고 엉엉 울면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지난 주말,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늦은 밤, 채널을 돌리다가 이 영화를 또 보게 됐다. 내 옆에는 남동생이 앉아 있었고, 우리는 뭐랄까, 홀린 듯이 보면서 이 영화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중간 지점부터 봤는데, 오다메(우피 골드버그)가 칼(토니 골드윈)이 부정한 방법으로 갖게 된 돈을 빼돌리는 부분 부터였다. 칼은 돈세탁 하는 걸 자신의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샘(패트릭 스웨이지)에게 들켜 샘을 죽이게 되는데, 이에 억울한 영혼인 샘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자신의 애인인 몰리(데미 무어) 곁을 맴돌며 그녀를 그리워하고 또 지키고자 한다. 결국 복수에도 성공하고 그녀를 지키는데도 성공한 그의 앞에 하늘에서 한줄기 빛을 쏴준다. 그가 이제 하늘에 올라갈 시간이 된 것이다. 마지막 장면.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영혼인 샘은 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아, 그 장면 보는데 너무 애틋한 거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거 알면서 작별인사 하는거,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발걸음이 안떨어질까.... 한껏 감상에 젖어서 나도 모르게 입밖에 내어 말했다. 


마침 데미 무어는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샘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디토'라고 말하며 이별을 하고 있었다. 아 애절해 ㅠㅠ



다락방: 야, 사랑하는 사람 두고 얼마나 발걸음이 안떨어질까. 올라가긴 가야되는데 얼마나 가기 힘들까..아 너무 애틋하네.

남동생: 저 여자는 저렇게 남자 보내고 또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다락방: 어.

남동생: 백프로지!

다락방: 당연하지. 또하지.

남동생: 그럴 거야.

다락방: 근데, 수시로 샘 생각은 나겠지. 

남동생: 그렇겠지? 싸워서 헤어진 것도 아니고 저렇게 헤어졌으니.

다락방: 응. 다른 사랑은 할 수 있겠지만, 저런 남자를 어떻게 잊어...



그렇게 우리의 밤은 깊어갔던 것이었다.........



아, 대화를 나누면서 뭔가 함께 본다는 거 너무 좋으네.. 뉴스를 함께 보는 것만큼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좋구나. 토요일에 사주 보러 다녀왔는데, 내가 이번 해에 결혼하고 싶어한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결혼하고 싶은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인생....-0-




토요일에는 친구랑 사주를 보러 다녀왔다. 친구의 사주를 보면서 선생님은 친구에게 여행이 얼마나 좋은지를 얘기하셨다. 친구에게 여행은 정말 좋은 거라고, 나에게 여행이 좋은 것보다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거였다. 오! 친구와 나는 함께 여행을 다니는 여행친구인데, 우리 둘이 여행가는 게 다른 누구와 가는 것보다 제일 좋아서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친구는 젖은 흙이고 나는 마른 흙이라 서로를 귀찮게 하지도 않고 좋을거라고, 게다가 친구에게는 혼자 하는 여행보다 동행이 함께하는 여행이 필요한데, 내가 아주 좋은 파트너가 된다는 거였다. 후훗. 우리가 늘상 같이 다니는 이유가 있었군. 나로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이 친구랑 가는 게 좋을거라고. 괜히 내가 이 친구랑 다니는 게 아니었구만. 그러면서 선생님은 여행지도 각자에게 맞는 곳이 따로 있는데, 친구에게는 캐나다가 제일 좋고 그 다음이 유럽이라고 하셨다. 캐나다랑 유럽이 좋다, 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나는 어떨까 싶어 '저는 어디가 좋아요?' 물으니, 선생님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락방 씨는 어디든 다 좋고 다 잘맞아요.



이러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딜 가도 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 넘나 짱인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그렇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그러니까 나 스스로도 되게 그렇게 느꼈던 게, 지난번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넘나 추워 볼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아 근데 내가 여기 안왔으면 이런 날씨 어떻게 알것이며, 저 얼음 바다를 어떻게 봤겠어?' 라면서 막 신났던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이 조증의 연속인가 싶을 정도로 신났는데, 지난 호치민 여행에서는 중간에 더위를 먹어서 점심을 한 숟가락 먹고 더이상 먹지 못해 호텔에 들어가 혼자 쉬었던 시간이 있었다. 이 때에도 나는 '아 동남아 더워서 이제 못오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스스로 나도 모르게, '아, 이렇게 더운 나라에 오면 씐나서 돌아다니기 보다는, 중간에 자꾸 찬 거 마시고 찬바람 쐬고 하면서 쉬는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그렇게 해야한다는 걸 또 하나 배우네' 라고 했던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반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어쩜 이렇게 생각하지? 동행은 호치민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동남아랑 안맞는 것 같아' 라고 했는데, 나는 '중간에 쉬어주기만 하면 더 좋은 여행이 되겠네' 이랬던 것. 그러니까 어디다 데려다 놔도 적응을 하고 뭐랄까, 나름의 장점을 찾아내어 막 씐나하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사주에도 어딜 가도 좋다고 나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멋져! ♡.♡ (내가 나한테 반함)




토요일에 친구랑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안산 여동생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책을 좀 읽다가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고, 잠깐 멍때리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청년이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여기 가려면 중앙역에서 내려야 해요 안산 역에서 내려야 해요?' 묻는다. 그가 보여준 카톡 창에는 도로명 주소 하나가 찍혀 있었다. 주소에 '고잔동'이 되어 있길래, '고잔동 이니까 고잔역 아닐까요?' 라고 묻고는, 어떤 역인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다가, 아 네이버 길찾기! 하고는 도착지에 그 주소를 그대로 넣었다. 그리고 수단으로는 '대중교통'을 선택하고. 그랬더니 샤라라랑~ '중앙역' 이라고 나온다. 내가 찾는 과정을 다 보고 있던 청년에게 그 결과를 내어보이며, 중앙역에서 내리면 되겠네요, 했더니,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뭔가 나의 똑똑함에 내가 반해서, 아아, 나는 진짜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구나, 하고는 또 너무 씐났는데, 잠시 후 그 청년은 다시 "고맙습니다"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네, 그러고 같이 고개를 숙였더랬다. 아, 나는 너무 똑똑해, 나는 너무 현명해, 문제 해결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 지혜로워~ 하면서 스스로에게 또 반해가지고 있는데, 어느틈에 지하철은 중앙역에 닿았다. 내 옆자리 청년은 내리려고 일어서서는 출입문 앞에 가 섰는데, 그러면서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또 고개를 숙여 '고맙습니다' 인사하는 게 아닌가! 너무 좋고 웃겨가지고 나 역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순간 나는, '이것은 그린라이트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뭘 저렇게 자꾸 고마워해, 나한테 뻑갔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뻘건 립스틱 바른 여자가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걸 보고 '어떻게 저런 멋진 여자가 다있지' 세상 놀랐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명함을 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생각하다가, 아아, 그렇지만 저 청년과 나 사이에는 한 이십년 정도의 나이차이가 있을 것 같아서...관뒀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꼬꼬마 청년아, 살면서 나같은 여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렴, 이런 여자 흔치 않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살 나의 조카는 태권도 학원을 다니는데, 그 태권도 학원과 같은 빌딩에 조카가 다니는 미술학원도 있다고 한다. 조카가 미술 학원을 갔다가 중간에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는데, 태권도 사범님을 똭- 만났단다. 조카는 반갑게 사범님~ 하고 인사를 했는데, 사범님은 조카에게 어딜 가냐 물었고, 조카는 화장실가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카가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나와보니 사범님이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조카의 손을 잡고 다시 미술학원까지 데려다 줬다는 거다. 아아, 너무 멋져... 너무 자상하다. 이 얘기를 씐나서 조카가 했다는데, 여동생은 다음날 사범님에게, 선생님은 나이도 어린데 어쩌면 그렇게 어린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냐 물었다는데, 이 사범님은 말그대로 굉장히 젊고, 이번 해에 처음으로 태권도 선생님을 하는 것이며, 나의 조카가 자신의 첫 제자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각별히 생각한다는데, 아아, 그렇게 젊고 다정한 선생님이라니 너무 멋져, 게다가 나도 지난번에 조카 만나러 갔다가 사범님 봤는데 진짜 완전 잘생겨서(송승헌을 닮았다) 기억하고 있었던 바, 여동생으로부터 이 에피소드를 듣고는 말했다.


"사범님한테 안정적 직업을 갖고 있는 열네살 연상의 여자는 어떤지 물어봐봐."


여동생은 빵터졌고, 엄마는 내게 '너는 니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냐?' 물으셨다 ㅋㅋㅋㅋㅋㅋ어, 안정적이잖아? 했더니 엄마는 '너 그만둔다고 맨날 그러는데 그게 뭐가 안정적이냐' 이러고 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커플이 나의 소개로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보답으로 내게 소개팅을 제안했더랬다. 자신도 나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것. 처음엔 '어 그래' 라고 했다가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그 남자 안정적 돈벌이는 하고 있니?' 그는 돈을 벌고 있다고 했지만 뭔가 안정적인 것 같지 않아서, 굳이 내가 그런 남자를 뭐하러 만나나 싶어 '그냥 술친구로 소개시켜줘' 했더랬다. 그런데 이것도 딱히 필요가 없는 거다. 나는 혼자 와인 홀짝이면서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고, 지구본에서 나라 찾아보고 이러는 게 세상 씐나는데, 뭐하러 내 나이 또래의 남자를 만나서 굳이 술을 마시나, 그게 딱히 지금보다 '더'즐거울 것 같진 않은데, 빡칠 일이나 생기겠지....하고는 말았는데, 

이 얘기를 회사의 여자동료에게 하니, 그 여자동료가 그런다.


"차장님이 뭐하러 남자를 소개 받아요. 소개팅 대신에 갖고 싶었던 가방 있으면 그거나 사달라고 해요."


하는 거다. 오오, 맞네.


"그러게? 쓸데없이 남자 소개 받느니 멀버리 백이나 사달라고 해야겠네? 그게 나를 더 즐겁게 하겠네?"


오... 멋진 깨달음이다. 내가 이렇게 스스로 혼자 즐거운데, 여기에 괜히 남자 하나 만나가지고 스트레스 받느니, 예쁜 가방이나 들고다니는 게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남자 대신 가방! >.<





그나저나 내가 지난 주에 알라딘에서 네 박스를 주문했다고 말했던가.... 우산 네 개가 내게로 오고있다.... 그러면 총 다섯개가 된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므로 나는 올해, 더이상은, 정말로, 책을 사지 않도록 하겠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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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5-2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 청년 훈훈하네요 ㅋ
그나저나 4박스라니.. 락방님. 철푸닥.

다락방 2017-05-22 09:03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들은 내년이나 내후년에 배송되어서 아무 문제가 없답니다. 집에 읽을 책이 쌓여 있어서요...Orz

transient-guest 2017-05-24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쌓아놓고 읽다가 못 읽은 책은 나중에 은퇴하면 읽기로 했습니다. ㅎㅎ 조금 시골로 가서 살고 싶네요.

다락방 2017-05-24 08:01   좋아요 0 | URL
저도 자연속에 파묻히면 허구헌날 책읽어서 쌓아둔 책 다 읽을 수 있지 않을까...생각합니다...그럴 수 ... 있겠지요? 하하하하하

transient-guest 2017-05-24 08:02   좋아요 0 | URL
결론은 농장으로 ㅎㅎㄹ

다락방 2017-05-24 08:04   좋아요 0 | URL
농장에 가면 농장주도 있고 책도 읽을 수 있고...........다 해결되는 거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즈음의 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동생과 남동생, 조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숨쉬듯 자연스럽고 또 그들로부터 그 말을 듣는 것도 그러한데, 왜 연애할 때 애인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상대를 사랑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 말을 해버리는 순간 내가 약자가 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울 수도 있을 것이고. 나는 내가 사랑에 인색한 편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랑이란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떤 행동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애를 써도 그게 잘 되지 않을 때, 그러니까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도무지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을 때, 그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서운함이 아니라 '화'가 날 때,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풀어나가서 관계를 유지시키는걸까? 그 화가 온통 나를 지배할 때,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일상을 유지하는걸까? 그리고 결국 그들은 그 사랑을 어떻게 계속해나가는 걸까?


보통 부정적인 감정, 이를테면 우울함이라든가 슬픔, 화 같은 것들은,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옅어지기 마련인데, 지독한 화는 자고 일어나서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내게 기쁨과 안정만 선사하진 않는다.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상대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니까 간혹 부정적 감정을 주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다들 어떻게 견디고 사랑하며 살고 있는걸까?


어제 SNS 에서 정희진 의 사랑에 관련된 기사를 읽었다.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였고, 강의를 옮겨온 거였다. 일단 링크하겠다.


“사랑받을 때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받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에요”


마침 정희진의 《낯선 시선》을 읽는 중이었다. 소설은 못읽겠다 싶어 부랴부랴 고른 책이었다. 오호라, 어디 읽어보자 하고 저 기사를 읽었는데, 와, 정말 너무 좋은 거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묘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저는 밀당을 아주 싫어합니다. 일단, 밀당의 전제는, 더 사랑하는 쪽이 더 헌신하는 쪽이 약자라는 거죠. 연애에서'조차' 권력자가 되고 싶은 거죠. (중략)

제가 밀당을 싫어하는 이유는 불필요한 노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약간, '저질 권력투쟁'이라고 할까요? 

(중략)

밀당에 능해서 이룬 것이 진정한 사랑이겠어요? (기사中)



친한 친구들과 밀당에 대한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연애에 있어서 밀당은 필요한가, 하는 거였는데, 친구는 그때 내게 '난 대체 밀당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더랬다. 나 역시도 밀당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해야하지? 내가 너를 사랑하고 니가 나를 사랑하는데, 왜 밀당이 필요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굳이 밀당 같은 거 에너지 소모 하면서 할 필요 없지 않나?



정희진 쌤 강의를 들으면서도 느낀건데, 정희진 쌤은 '무지한' 남자를 엄청 싫어한다는 느낌이 든다. 해서, '무식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강의중에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문장 보니 빵터진 것.



명언이 있어요. '남자들이 말이 없는 것은 과묵해서가 아니라 화제가 없어서 혹은 무식해서다'. 말 많은 남자가 훨씬 낫습니다. 말 없는 남자는 별다른 이유가 없어요. (기사中)



물론 말 많이 한다고 해서 화제가 풍부하거나 유식한 남자인 것도 아니다. 입만 열면 개소리를 나불대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지난번 회식 생각난다. 회식 중에 소주회사 판촉하는 여자직원이 와서 '우리 소주를 시키면 선물을 주겠다'고 하니까, 남자 부장이 예쁘다고 환호하며 '우리한테 술 한잔씩 다 따라줘요' 이러는 거다. 아 씨발.. 이게 지금 뭔소리야. 그 분은 정말 따르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부장에게 "지금 뭐하는 거예요, 저 분이 우리 술을 왜 따라요?" 하고는 그 분께 "괜찮아요, 따르지 마세요" 했더랬다. 아 딥빡침이...입을 다물어야 할 때를 아는 자는 얼마나 소중한가. 입에서 똥이 나온다 진짜.



그리고 이 모든 강의의 핵심은 나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연애상담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이미 상담이 필요한 상태라면, 사랑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만족스럽고 행복하면 상담이 필요 없죠. 또 상담을 해 봤자, 자신이 변하든 상대가 변하든 해야 하는데, 그게 상담으로 가능한가요? 자기 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잖아요? 저도 연애 상담을 많이 받는데, 실은 정보를 제공할 뿐이에요. 좋게 끝내고 싶다? 좋으면 왜 끝나겠어요? 상대방의 진심? 그런 건 없어요. 모든 것은 행위가 말해줍니다. 행위로만 판단하면, 의외로 인생이 편해집니다. 쓸데없는 기대와 고민이 사라지니까요. (기사 中)



아... 뭔가 진짜 훅 들어오는 말이지 않은가.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좋으면 그게 왜 끝나나... 행위가 말해준다. 그래, 팩트는 그 '행위'에 있지 않은가. 행위를 엄연히 저질러놓고 거기다 대고 왜그랬을까를 고민하는 건..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아- 행위로만 판단하면 인생이 편하진다는 데 내가 적극 동의하지만, 그렇지만, 아아, 또, 사랑은 그런 게 아니지 않나..... 행위로만 판단하면 결정이 쉬워지지만, 그런데, 거기에 나의 감정이란 것이 섞여 버리니까, 그래서 어려운 거잖아 ㅠㅠ

안되는 줄 아는데, 그래서 놓자니 너무 좋은데... 막 이렇게 되는 거잖아??? 어휴...








아무튼 이 훌륭한 글을 읽고 너무 좋아서 출력도 해서 읽고(이러면 안되는건가??) 밑줄도 긋고, 그래, 사랑을 공부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간 내가 사랑을 넘치게 가진 사람이었고 또 표현도 잘하는 사람이어서, 사랑에 대해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아직까지도 사랑은 직접 빠져가며 몸으로 부딪쳐가며 파악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 공부해보자, 공부가 어떻게든 도움이 될것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사랑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고, 잘하고 싶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책도 어제 주문했고(응?), 또, 이 시대 최고의 책, '이유경'의 《잘 지내나요?》를 펼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인 59페이지에서부터 65페이지까지를 읽었다. 훌륭한 책이라는 것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아직 이 책 안읽은 분들이라면, 강하게 일독을 권한다.


















나는 사실 《낯선 시선》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건데...

내가 페미니즘 공부하면서 여러 명의 강의를 들어봤지만, 정희진 쌤 강의가 제일 좋았다. 들을 때마다 사고가 확장되고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확- 들었던 거다.

이즈음의 나는 우울한 감정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이런 기분으로 소설 읽었다가 젖은 휴지처럼 널브러질까봐, 정희진 쌤 책을 뽑아 들었던 것이다. 한없이 축 가라앉지 말고, 똘망똘망 깨어있자! 하는 기분으로.

아..멋져..... 누가? 내가!

나는 자꾸 나를 제정신에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정신줄 놓지말자, 다짐하고, 해결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보자, 하는 것이다.



















역시나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날카롭게 짚어주는데, 마지막 부분의 '배려'에 대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몇 년 전 지하철 노약자석에 '인권은 배려입니다' 글귀가 적힌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익 광고가 붙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나름 문제의식을 느끼고 위원회와 인권 단체에 이 문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배려가 뭐가 나쁘냐."

모든 인간은 법 앞에, 신 앞에 평등하지만 우리가 매일 경험하듯 현실에서도 그런 것은 아니다. 평등은 지향이고,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인권은 배려가 아니라 갈등하고 경합하는 가치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주장은 이 희마한 평등 개념조차 우아하게 배반한다. 누가 누구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일까? 돈 없는 사람이 돈 있는 사람을 배려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구조적 가해자(강자)가 피해자(약자)를 배려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노약자석의 경우 장애인, 임산부, 노인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다. 당연한 권리를 상대방이 선심을 베푼다고 주장하며 고마워할 것을 요구한다면 불쾌감을 넘어 억울한 일이다. 배려나 관용은 '잘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베푸는 선의가 아니다. 배려는 동등한 적대자(適對者 혹은 敵對者)와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윤리다. (p.284-285)



'우산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 인생이라면, 배려는 우산을 독점하고 선별해서 우산을 나눠주려는 권력의 만행을 도덕으로 포장한 행위다. 정말 배려하고 싶다면, 원래 보장된 남의 권리를 시혜로 둔갑시키지 말고 자기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아니, 타고난 타인의 권리에 대해 자신이 판관 노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식, 분별력, 주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p.286-287)




진짜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였다.




저 많은 문장들은 밑에 밑줄긋기로 첨부하도록 하겠다. 첨부하는 틈틈이, 오늘 점심 뭐 먹을지 고민도 좀 해보고. 


이 책을 출근하는 도중 지하철안에서 다 읽을 것 같아, 다음 책은 뭘로 할까, 책장앞에서 고민하느라 평소보다 집에서 늦게 나왔다. 으이크, 평소보다 늦은 지하철을 타겠네, 했는데, 정작 책은 고르지 못한 채로 그냥 나왔으며, 한참을 서성이느라 지하철도 늦은 걸 탔다. 회사가서 골라보자, 내심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 말은 회사에도 책이 많이 있다는 뜻...이 맞다. 킁.



여기나 저기나 안읽은 책들이 쌓여있어. 아하하하하.

근데 어제 막 책 또 샀고..

우산 네 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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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식의 시작은 ‘다름‘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으며, 앎은 그 과정 자체다. 짧은 글도 교차 확인이 필수적인데, 대조해서 점검할 다른 지식이 없다면? "국사가 어떻게 다양성이 가능하냐?" 라는 국사학자의 말은 정치인의 제스처라면 모를까, 지식인으로서 놀랄 만한 발언이다. 지식은 가르치는(‘주입‘)것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경합의 과정이다. 다양성은 나열된 지식이 아니라 사유의 조건이다. (p.35)

유명 인사인데 잦은 부적절한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내리는 이가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출판사 관계자와 통화중에 내가 "그 정도로 심각하다면 다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겠어요?" 했더니, 남성인 그의 분석이 흥미로웠다. "선생님은 한참 모르시네. 우리나라는요, 병역만 아니면 다 컴백해요. 무슨 일을 저질렀어도 병역(비리)만 아니면 됩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의 ‘큰소리‘에는 이유가 있었다. "유승준 봐요. 지금 벌써 몇 년째예요? 그 사람이요? 1년 안데 다시 책 냅니다. 두고 보세요." (p.37)

특권층의 병역 비리에 대한 분노는 우리 사회의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부랴부랴 ‘국민은 모두 병사‘라며 국민개병(皆兵) 제도를 실시했다. 이는 국민의 범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남성들은 신분과 빈부 격차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환상을 품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사실, 이승만 정권 때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병역이 공평하기 시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병역과 관련해서 국민은 3등분 된다. 군대에 안 가는 사람, 가기 싫은데 가야 하는 사람, 못 가는 사람(여성, 장애인……). 특히 ‘못 가는 사람‘은 비(非)국민으로서 배제된 것인데 마치 면제된 것처럼 간주된다. 평등은 이 세 그룹 사이의 관계 분석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병역 비리 논란은 언제나 그들만의 리그, 즉 그야 하는 남성과 안 가는 남성들 사이의 문제로 축소된다. (p.39)

분노의 이유와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한 사회의 성숙도와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척도다. 병역 비리에 대한 분노가 압도적이고 대상에 따라 선별적으로 작용할 때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혐오 현상이다. 특히 다른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사소하게 취급되기 쉽다. 앞서 언급한 지인의 말대로 "군대 문제만 아니면 다 용서되는" 경향은 군대 비리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다. 이는 흔히 말하는 ‘자숙의 기간‘과 별도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고 ‘두 번째 기회‘는 중요하다. 주가 조작, 불량 식품 생산, 논문 표절, 배우자 구타 같은 이유로 ‘13년 동안‘ 사회 활동, 아니 입국을 막는 경우가 있는가.
똑같은 잘못을 해도 매장당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한 번쯤 이와 관련한 억울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황교안 씨는 군대에 가지 않고도 승승장구해 왔다. 그는 가정 폭력 옹호 발언, 공안 검사 경력까지 ‘청문회 비리 종합 세트‘에 새로운 목록을 추가했다. (p.39-40)

자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스템은 정규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규직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 ‘재벌부터 노숙인까지‘ 전 인구가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며 정규직인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24시간 일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맨을 제외한 절대 다수는 ‘100세 시대‘에 30대부터 잉여로 살아야 할 판이다. (p.51)

우리는 상대는커녕 자신조차 모른다. 우리가 강대국을 이용한다는 자신감은 부풀려진 자아, 망상적 자기애, 도취에 가까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관은 강자를 이용하려는 약자의 자세가 아니라 강자에 대한 동일시 욕망, 허세와 착각에서 나온다. 분명한 점은, 강자는 이러한 약자의 자기 분열을 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60)

이즈음 배우 신성일 씨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그의 인생은 개인사라 치고, 그가 문제의 핵심을 요약해주었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독립된, 개별적 인격체다. 사랑은 결혼했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노력하고 훈련해야 한다." 라는 것이다. (p.62)

특히 ‘여성 혐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성 혐오라는 대칭적 용어의 발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혐 대 남현‘이라는 이분법이 그것이다. 이분법은 A와 not A라는 타자화의 문법으로, 평등으로 여겨지기 쉬운 속임수다. 미소지니라면 다르지 않았을까. 미소지니는 대립 구도를 만들어내기 힘든 단어다. 그대로 수용될 수 있다. 남성 위주 사회는 너무 오래된 역사라서 여성에 대한 비하와 차별은 남녀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를 자각하고 여성이 자신의 이중 노동,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혐오인가? (p.83)

통치 세력이 ‘관용을 베풀어서‘ 약자에게 표현의 자유를 허락한다 해도 약자가 곧바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사양‘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한국인에게 말의 자유를 허락하되 영어로 말하라는 식이다. 성별, 인종, 게급, 지식 자원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의 언어는 이미 지배 담론과 매체에 포섭되어 있다.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지고, 오해받고, ‘말더듬이 바보‘에 흥분하거나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깨는 사람은 성희롱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에 문제 제기 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적‘인 사람들은 목소리 큰 여성들, 이동권을 주장하며 거리를 점거한 장애인, ‘일반인‘과 몸 상태가 다른 노숙인 같은 소수자들이지 기득권 세력이 아니다. ‘갑‘들의 권리는 제도로 보장되어 있어서 가시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p.94-95)

한편, 흥미롭게도 색은 실제로는 배타적이지 않다. 연속적, 상호 의존적이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빨주노초파남보가 같은 색의 엷은 변화이기 때문이다(무지개 깃발은 동성애 문화의 상징). 빨강에서 시작하지만 파랑으로 끝나면서 보라색으로 다시 만난다. 마치 낮과 밤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새벽을 거쳐 계속 순환하는 것처럼 말이다. (p.104)

최근 나는 오래된 친구가 면전에서 거짓말을 일삼는 일을 겪었다.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트럼프 당선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내 대통령은 아니다", "내가 몰랐던 미국……"). 믿어지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으니,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를 계속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우울과 자살이 전 사회적 현상이 된다. 정의로운 사회나 전쟁 때처럼 시비가 뚜렷한 상황에는 자살이 적다. 의문이 사라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p.139-140)

2조 원(갤럭시노트7 폭발사건 리콜비용)을 다른 곳에 쓴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친환경 급식, 농가 부채 탕감, 가난한 암 환자를 위한 치료비, 아르바이트 시급 1만원 책정, 시간 강사 월급제, 택시 기사 사납금제 폐지, 가정 폭력 피해 여성 쉼터,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위한 의료 복지, 장애 아동을 혼자 감당하는 엄마를 위한 사업……. 잠시 ‘로또‘를 꿈꾼다.
물론 그 돈은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돈이고, 5와 7의 차이는 ‘클 것이다‘. 하지만 2조 원. 이것은 과학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향후 자본주의 사회의 방향을 가늠하는 사건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 문제인가. 기술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이익을 보는가. (내가 가장 궁금한)도대체 인류는 누구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것일까. 누가 인간을 우러러볼 것인라고 기대하는 것일까. 과학 기술 발달의 목표는 편리함인가? 대안적 편리 개념은 없을까. 어디까지 발전해야 성이 찰까. 오래된 질문조차 멈춘 시대다. (p.144-145)

상실은 보편적 경험이지만 애도는 자격을 요구한다. 그 자격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했는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름만 식구이거나 심지어 가족을 괴롭혔던 사람도 ‘정상 가족‘ 규범에 부합하면 가족으로 간주된다. 장례식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가족 간의 갈등이나 주먹다짐은 그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처럼 부고란은 이성애 제도와 중산층 중심의 일부일처제를 생산, 유지, 상기하고 이데올로기를 사실로 만들어 보도한다. 인위적 제도가 자연스러운 인생사로 둔갑하는 것이다. (p.166-167)

나는 연년생 삼 남매 집안의 큰딸이다. 우리 셋은 우애는 없는데 자주 만난다. 결국 주로 싸우고 헤어진다. 며칠 전 여동생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왜이렇게 화가 많을까……." 남동생은 평소 말하고 싶었던 주제였는지 즉각 반응했다. "그러게 말야! 누나들은 왜 그렇게 만날 분노가 많아. 나를 봐, 화내는 거 봤어?" 그러자 여동생이 발끈했다. "야! 너, 말 잘했다. 맞아, 너는 화를 안 내. 근데 남을 화나게 하는 데 아주 선수야!" (p.174)

화내는 사람, 화나게 하는 사람. 누가 더 문제일까. 인간의 감정은 외부 자극이 아니라 개인의 반응이 결정한다. 스트레스가 좋은 예인데 다양한 척도가 있지만(1위 가까운 이의 죽음, 2위 결혼, 3위 이사 등), 고통은 개인의 스트레스 내성(耐性)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즉 화나는 일이 있어도 화를 안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일부 심리학의 입장이고, 한편으로 분노는 정의감이자 힘이기도 하다. 정당하게 분노할 일이 있어도 우아하고 차분하고 세련되게 대응해야 한다는 통념은 가해자의 이중 메세지다. (p.173-174)

사회 구조는 인성을 창조한다. 르네상스적 인간, 근대적 인간, 자본주의형 인간이란 말이 있는 이유다. 정부는 사회 구성원의 공존을 위한 인프라를 민영화 논리로 파괴하고, 기업은 승자 독식의 모범을 보여준다. 생존은 오롯이 개인에게 떠넘겨졌다. 돈과 성공이 최고 가치고 미모, 행복, 마음의 평화까지 갖춰야 하는 사회다. 이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일단 불가능한 일인데 사람들은 맹렬히 추구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억울한 일이 있으면 바로잡으면 되지, 출세까지 해야 되나. (p.177)

행복한 가해자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피해자에게 회개를 설교하는 상황. ‘기(氣)가 막힘‘을 넘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서 발생하는 ‘악‘의 새로운 경지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위치를 모르는 사람처럼 독을 뿜는 존재는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말하는 자기에 대한 인식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아무 말이나 한다. (p.180)

내가 속한 커뮤니티들은 ‘주류 사회‘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는 누가 결혼한다 그러면 보통 "뭐 하는 사람이냐? 언제 하냐?" 이렇게 묻지만, 내 친구들은 "여자야? 남자야?"라고 묻는다. 만일, 전자처럼 질문한다면 내가 속한 모임의 성원이 되기 어렵고, 그런 경우도 거의 없다. (p.186-187)

고통을 이길 수 없는 이들의 눈물과 분노, 넋 나간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개하다는 발상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은 물론 당대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기준에서도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감수성은 창의력의 기본 요건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각 마비, 심리학에서는 사이코패스로 정의한다. (p.218-219)

소통할수록, 가까워질수록 외로워진다. 더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럴수록 메울 수 없는 차이를 발견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에게서 상처받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서 더 상처받는다. 혼자 있을 때 덜 외롭다. 특히 자기 충족적인 사람, 자기 몰두형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오히려 충만감을 느낀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가장 외롭다. (p.238)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은 작가의 의도를 떠나 사회적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벗은 몸은 성별 중립적이지 않다. 남성에게 여성의 나체는 쾌락이다. 남성들은 돈을 주고 여성의 몸을 구매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험은 다르다. 남성의 성기 노출이 범죄인 이유다. (p.252-253)

독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았다. "같은 여자로서 신경숙의 성공에 대해 함께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남자보다 더 심한 비판을 할 수 있느냐, 여성의 시기심이 더 강하다는 사실에 절망한다"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감히 신경숙 씨의 경쟁자도 아닐뿐더러, 여기서 나와 신경숙 씨는 여성이 아니다. 나는 그때 여성으로서 여성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독자‘로서 ‘작가‘에 대해 말한 것이다. 우연히 성별이 일치했을 뿐이다.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과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데, 여성의 행동은 성별만으로 환원되는 경우가 많다. (p.265)

2015년 10월 29일 박 대통령은 이화여대를 방문했다. 이를 저지하는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이 있었고 대통령은 무사히 행사장에 입장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행사에 참석한 여성 인사들과의 모임은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이를 보도한 종합 편성 채널의 남성 앵커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다. "여대생이 여성 대통령을 반대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요. 여성이 여성을 배척하는 이런 분위기, 어떻게 보십니까?" 이 사건 역시 여성이 여성의 방문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 ‘대통령‘에게 항의한 경우다. 학생들이 여성 혐오가 있어서 여성 대통령 입장을 막은 것이 아니다. 행사장의 ‘좋은‘ 분위기는, 여성과 여성의 관계가 아니라 보수와 보수의 정체성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p.266)

탁월한 여성 정신분석학자 카렌 호나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가장 방해되는 구조는 여성 간의 갈등을 ‘시기심‘으로 명명하는 사회라고 분석한 바 있다. (p.267)

"예전에 비하면 여자들 살기 좋아졌어, 장애인 처우가 나아졌어, 지금 굶는 사람은 없잖아……." 이런 말이 오갈 때 나는 묻는다. "그들한테 직접 물어보셨나요? 본인이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이처럼 일단 말하는 사람의 위치성이 논쟁거리다. 말의 정당성은 문구 자체보다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당신 말은 옳지만,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야."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차별받는 당사자가 "저의 지위가 많이 상승했어요."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대개 구조적으로 ‘가해자‘의 입장에 있으며 타인의 현실을 모른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발언 자격이 없다. 마치 일본이 우리에게 "예전에 비하면 너희에게 잘해주고 있지 않니."라고 말하는 격이다. (p.277)

‘나아졌다‘는 판단은 어느 시대에 근거한 것일까. 중세에 비하면 누구나 나아졌(을지 모른)다.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조선 시대에 비하면 지금 여자들은……"인데, 나아졌는지 아닌지 나는 ㄴ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내 의문은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거지‘든, 왜 이들의 처지는 항상 과거와 비교되는가이다. 만일 2013년의 한국을 미국의 1600년대(조선 시대)와 비교한다면 기분 좋겠는가. (p.277-278)

장애인의 지위는 당대 비장애인의 지위와 비교해야지, 왜 조선 시대 장애인의 지위와 비교하는가. 중산층 여성의 지위는 중산층 남성과 비교해야지, 왜 가난한 남성과 비교하는가. 현대 여성의 지위는 현대 남성과 비교해야지, 왜 조선 시대 여성과 비교하는가. (p.278)

음주 상태에서 인간 행동의 변화 양상은 자연과학의 의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술로 ‘필름이 끊긴‘ 사람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술을 마셔도 남녀가 성별을 바꿔 행동하지는 않으며, 모르는 외국어를 갑자기 구사하지도 않는다. 술을 마셔도 아무나 때리지 않는다. 대개는 ‘집에 와서, 가족‘을 구타한다. (p.281)

상대방이 차별한다 해도, 그것을 수용하지 않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무관심하게 생각한다면 억압자가 의도한 차별의 효과나 이익을 보기 어렵다. 이렇게 생각할 때, 차별에 대한 다양한 실천도 가능하다. ‘차별 가해자‘에게 같은 대우를 요구하는 투쟁도 필요하지만(하지만 이런 투쟁은 대개 실패하기 쉽다. 상대방이 수용할 리 만무하며 게다가 소위 ‘적을 닮아 가기‘ 쉽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시선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도 중요한 저항이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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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7-05-1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시선] 꼭 읽어봐야지!!

오늘 페이퍼에 소개된 책들은 정말 최고군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05-19 14:12   좋아요 0 | URL
네, 최고의 책을 최고의 책과 함께 소개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낯부끄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7-05-1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낯선 시선> 줄 좀 그었는데 ㅎㅎ 너무 많아 다 옮길수가 없어 스리슬쩍 패쓰했는데 다락방님 올려주신거 다시 읽어보니... 역시나 키햐~~ 조오타~~ ㅎㅎㅎ

그나저나 세트로 훌륭한 책 이유경 작가님의 <잘 지내나요?> 59-65페이지를 꼼꼼히 읽고 싶은데 제 책을 친구에게 선물한 관계로 오늘 바로 재구매 들어갑니다. 히힛 😊

다락방 2017-05-19 16:04   좋아요 0 | URL
저 밑줄긋기 올리다가 지쳤더랬어요. 중간에 포기할까...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그렇지만! 굳건한 의지!! 를 가지고 결국 다 옮기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아, 정말 저는 대단한 것입니다.

아니, 그나저나 단발머리님은 아주 훌륭한 분이시군요? 좋은 책은 선물도 하시는, 아주 현명하고 아름다운 분이셔요. 지구상에 더할나위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모르게 사랑합니다, 라는 말이 나와버려요. 후훗.

사랑합니다 2017-05-1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하지만 밀당하고 싶어요

다락방 2017-05-19 21:14   좋아요 0 | URL
ㅎㅎ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 심리는 어떤건가요?

사랑합니다 2017-05-20 20:4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못된 심리지요

clavis 2017-05-2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대로 이유경씨의 ˝잘 지내나요?˝의 59ㅡ65페이지를 읽기 위해 교보로 나섭니다.알라딘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서 빨리 읽어야 무식도 덜어지고,말도 덜 적어질 수 있고,그렇겠지요??? 시를 안주셔서 시집도 한아름 사올겁니다 팽~!!

2017-05-22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5-22 09:02   좋아요 1 | URL
클래비스님 이렇게 귀엽기 있긔없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7-05-22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많은 물


비가 차창을 뚫어버릴 듯 퍼붓는다

윈도브러시가 바삐 빗물을 밀어낸다

밀어낸 자리를 다시 밀고 오는 울음

저녁때쯤 길이 퉁퉁 불어 있겠다

차 안에 앉아서 비가 따닥따닥 떨어질 때마다

젖고, 아프고,

결국 젖게 하는 사람은

한때 비를 가려주었던 사람이다

삶에 물기를 원했지만 이토록

많은 물은 아니었다

윈도브러시는 물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밀어내고

있으므로

그 물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저렇게 밀려났던 아우성

그리고

아직 건너오지 못한 한사람

이따금 이렇게 퍼붓듯 비 오실 때

남아서 남아서

막무가내가 된다



















벚꽃이 달아난다



그는 나를 앞에 두고 옆사람과 너무 화사하다

이편 그늘까지 화사하구나

죽방렴 사이를 빠져나가는 한 마리 멸치처럼

빠른 내 그늘을 눈치채지 못한다

나무둥치라 여긴 내 중심은 자주 거무스름하다

임산부가 행복하다면 가뜩 낀 기미는 말할 수 없었던

속내일까



덜컹거리며 꽃길 백 리,

어쩌자고 화염길 천 리,



나는 역방향에 앉아서

그가 다 보고 난 풍경을 

뒤늦게 훑는다



그 자리 그대로인데

풍경은 왜 놀란 듯 달아나고 있는지



벚꽃은 제가 절정인 줄 모르고

절정은 또한 제 시절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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