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요?
김연지 지음 / 처음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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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이별한 지 며칠 안됐을때였다. 여전히 마음이 아팠고 헤어지자고 말을 했던 내 자신이 좀 부끄러웠고 또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 남아있을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택시 기사님께 애인하고 헤어져서 슬프다고 얘기를 했다. 이 위기를 넘겼어야 했는데 나는 넘기지 못해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래서 그게 몹시 미안하다고. 그 날 나를 처음 본 기사님은 내게 '아가씨가 그 사람을 좋아한 만큼은 딱 그 만큼이었던 거예요" 라고 하셨더랬다. 나 역시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낯선 사람으로부터, 그간의 내 사정과 성격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그 말은 당시의 꽤 큰 위로가 되었다. 맞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은 딱 이만큼이었던 거야. 나는 스스로를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김연지'라는 저자에게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데이트하는 어플 을 통해 뉴욕에 사는 남자를 알게 된 저자는, 일년반 동안 그와 연락을 유지하면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그가 있는 뉴욕으로 그를 보기 위해 슝- 날아간다는 게 큰 줄거리다. 연락을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 친해지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또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여느 연인들처럼 싸우고는 '다시는 연락하지마!'를 반복하기도 하고, 그렇게 싸우다가 '사랑해' 한마디에 풀리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연인. 물론, 그들이 아직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은 보통의 연인과 아주 크게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엇갈린다. 여자가 화가 나 데이트하는 어플을 지우고 있다가 다시 설치해보니 그로부터 연락이 와있었고, 그 사이에 그는 한국에 나흘간 머무르면서 마지막 날 네 얼굴 잠깐 볼까 연락했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연락이 안돼 만나지 못해 돌아가야 했고, 그를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여자는 결국 3개월간 뉴욕에 머무르고자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지만, 남자는 그 기간동안 시애틀로 출장 가있다가 바로 한국으로 휴가를 간다고 했다. 열네시간을 날아 뉴욕까지 갔지만 여자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그와 함께 가보고 싶었던 여자는 혼자 술을 마시고 외로움에 흐느끼기도 하지만, 뉴욕의 생활에 차츰 적응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공부에 대한 욕망도 샘솟는다. 많은 것들이 여자를 자극하는 가운데 남자를 이곳에서 만나지 못할거란 생각으로 계속 괴로워하긴 하지만, 긍정적인 그녀의 성격은 이렇게라도 뉴욕에 올 수 있게 해준 그에게 감사한다.



사랑은 내밀한 것이고 연애 역시 둘만의 것이라, 제삼자가 알지 못하는 둘 만의 은밀한 사연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기정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그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부질없다. 여자도 책의 말미에 자신이 남자를 더 많이 좋아했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긴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남자가 이 여자를 많이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남자는 여자가 화나고 토라졌을 때 전화선을 통해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여자를 달래주고 여자를 순간 구름 위로 올려놓기는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만큼은 딱 그만큼, 그러니까 나흘간 한국에 갔을 때 마지막날 '잠깐 만나볼까' 하고 연락하는 딱 그만큼이었던 것 같다. 여자가 열네시간을 날아 뉴욕에 온다고 하지만, 자신의 출장과 휴가 스케쥴을 변경할 순 없는, 딱 그만큼. 이렇게 열정적이고 뜨겁고 게다가 뉴욕에서는 아주 많은 낯선사람들로부터 예쁘다, 근사하다, 모델이 되어달라 등등의 찬사를 듣는 여자가, 자신에게 움직이는 데에는 좀 망설이는 남자를 마냥 좋아하는 것은 좀 무모해 보였지만, 사랑이란 게 어디 이성으로 되는 것인가. 그러나 사랑 그리고 이별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그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는 게 있다. 여자는 남자를 보려는 목적으로 뉴욕에 갔지만, 뉴욕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정한다. 결국 뉴욕이란 곳에 다시 가고 싶게하고 또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좋은 동기가 '사랑'이었다. 이런 여자라면 앞으로 무얼 하고 또 누굴 만나도 쭉쭉 뻗어나가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것은 과연 사랑일까, 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 에미와 레오는 많은 감정을 나눈다. 상대로부터 이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컴퓨터만 쳐다본다. 영화 《her》에서는 심지어 실체가 없는 프로그램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가 나온다. 사랑이 주는 설레임과 두근거림, 그리고 사랑이 주는 서운함과 고통까지도 그들은 모두 느낀다. 그렇지만 그들이 만나고나면?



그건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다. 포온세엑스로 알게 됐던 남자와 여자가 만나게 되는 영화 《나의 PS파트너》에서 둘은 어쩌다보니 상대가 지성이고 상대가 김아중이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다고 해서 내 사랑이 더 굳건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메일로, 문자메세지로, 통화로 서로에게 사랑을 느꼈다고 해도 만나서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만났는데 이 사람이 술에 취해 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때는 지켰던 예의를 보이고 나서는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에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습관, 냄새, 버릇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고, 전화 상으로 '사랑해'라고 수없이 속삭였지만 쩝쩝거리면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 물론 만나서 더 좋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만나서 좋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고 더 좋았던 경우가 있었는데, 만나서 훅 갔을 때는 정말이지, 상대가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멀었는데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더랬다. 이처럼 만나서는 아주 많은 '다른' 경우의 수가 생긴다. 사랑한다는 말은 흔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물론 '나는 지금 이순간 사랑을 느끼고 이걸 그대로 표현할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사랑한다는 말에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이고, 이 사람과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순히 문자로, 목소리로 사랑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다른 면들을 보지도 않은 채로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자는, 책 속의 묘사로 보건데, 똑똑하고, 사랑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고. 나는 여자에게 어떤 조언도 해줄 수 없고 또한 조언할 위치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또 각자의 사랑을 한다. 이 책은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는 굵직한 줄기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거기에 붙은 많은 가지들은 뉴욕 여행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타이틀에도 <여행 에세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뉴욕을 좋아한다. 게다가 책 속 주인공처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책이었지만, 그런데 이 책이 좋지는 않다.


이 책은 여행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녀의 '미스터 프린스턴'에 대한 사랑 고백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순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이랄까. 읽다가 중간에 '이 책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잠깐 궁금했다. 저자는 이 원고를 들고는 출판사로 찾아간걸까?



음, 남자는 딱 그만큼만 좋아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 것처럼 이 책은 딱 이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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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2-01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등록하려는데 ‘광고,도박,음란성 글은 게시가 안된다‘고 에러 뜨길래

데이트앱→데이트하는 어플
폰섹스→포온세엑스

로 부득이하게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니까 등록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2-01 18:38   좋아요 1 | URL
광고, 도박, 음란성 글은 자제해주세요ㅋㅋ

다락방 2017-02-02 08:11   좋아요 0 | URL
네 주의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와같다면 2017-02-01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기억.. 끊없는 자책과 후회..

‘그 사람을 좋아한 만큼은 딱 그 만큼이었던 거예요‘ 딱 그만큼..
비로서 숨이 쉬어지고 위로가 됩니다

다락방 2017-02-02 08:11   좋아요 1 | URL
위로가 된다니 다행입니다, 나와같다면님.
딱 그만큼인 정도가 끝나면 또다른 관계, 또다른 감정이, 또다른 방식으로 시작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숨 잘 쉬고 삽시다, 나와같다면님.
:)
 

블라디보스톡!
모자 푹 눌러 쓰고 장갑 끼니 걸을만 합니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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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1-2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빼앗길 풍경입니다~ 모자와 장갑, 담요를 두르고라도 걸어보고 싶군요. 다락방님~ 굿모닝~^^

꿈꾸는섬 2017-01-29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라디보스톡~
멋져요!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hnine 2017-01-29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파리, 런던, 뭐 이정도가 아니라, 블라디보스톡이라고요??

세실 2017-01-2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다운 여행!
다락방님처럼 여행가고 싶어라.

2017-01-29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7-01-2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흠다운사진.... ^ㅠ^

시이소오 2017-01-2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락방님은 허튼 소리 안하시군요.
1년전 부터 말씀하시더니 정말 또 가셨네요. 얼마전 읽은 도진기 소설의 주요 무대가 블라디보스톡이었는데 그렇게 춥다고. 감기 조심하시고 무사귀환 하시길 ^^

몬스터 2017-01-31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우와----- 멋지네요

고양이라디오 2017-02-0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소리를 내뱉을 정도로 멋진 사진입니다. 요즘 러시아 여행가는 분들 많다고 하던데. 다락방님이 다녀오셨군요.
 





노동자들의 행동에는 언제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열악한 노동 조건, (적절한 것과는 거리가 멂에도 불구하고 강자의 논리에 따르면) 적절한 보수, 사회적으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오랫동안 견뎌왔던 노동자들이 일을 중단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당연히 주주들의 악랄한 남용이 작용했을 겁니다.
노동자들이 언제 수익 배당금, 주식 매입 선택권 업무용 고급 승용차, 개인 잠수함, 제트기 따위를 요구하며 파업하는 것을 본 적 있나요?
반면 수익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할 수는 없는데도, 이윤에 대한 주주들의 욕망은 한도 끝도 없이 높아만 가요.
어린아이가 사탕 봉지에서 그 작은 주먹으로 사탕을 한 움큼 꺼내면, 보통 다시 내려놓으라고 충고하잖아요. "그렇게 많이 먹으면 안 돼!" 라고요.
그런데 왜 우리는 억만장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러면 안 돼!
혼자 다 먹어버리면 안 돼.
케이크는 한 조각만 먹어야지.
옷을 입은 채로 수영장에 뛰어드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 망가지든 말든 오직 수익만 생각하고 공장 문을 닫으면 안 돼! (p.134-135)

아, 참.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그리스 파산, 유럽 부채, 긴축 재정,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하고는 상관없어? 뭐 변하는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니, 상관있다고?
그게 자기 아이디어였어?
왜 그랬어. 불쌍한 그리스 사람들!
아 헤지펀드의 전설 조지 소로스와 내기를 한 거였다고. (조지는 세계 70억 인구 중에 스물세 번째 부자예요. 그는 내기를 너무 좋아해요. 문제는 돈이 많디 보니까 로또를 사도 배합 가능한 모든 번호를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자기는 어느 쪽에 걸었는데?
유럽 경제가 붕괴되고 이자율이 인상된다는 데에? (p.103-104)

그중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비리와 특혜의 선봉에 서 있는 기업은 삼성이다. 최순실에게 35억 원을 던져주고, 국민들이 한두 푼 모아 만든 국민연금에서 7천 9백억 원을 축내면서 8조 원을 주머니에 챙긴 대범한 자들의 이름은 이 책의 첫장에도 꼼꼼히 등장한다. 이건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홍라희... 한 패밀리가 수세대를 걸쳐 법치를 무력화시키며,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번도 감옥의 문턱을 밟지 않았다. 슈퍼리치들의 행태는 세게 어디서나 같다. 그들이 무너지면 이 나라도 같이 무너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하는 짓을 눈감아줘야 한다고 믿는 노예들이 있는 한, 그들은 점점 더 가혹하게 지구와 그 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파괴할 것이다. ( p.19)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아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이력에 좋을 것 같다고 판단되어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 이어간다면 제정신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노후를 위해 섹스를 참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p.174, 워런 버핏의 명언 베스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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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7-01-26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돈은 모두S 가족들이나 친인척이 다 쥐고 있군요.. 흠...... 이럴 수 가.

[그장소] 2017-01-26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녈 가계도 를 그림이 빠르겠는걸요!^^;
 

어제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다가 문득 내 책장을 봤는데, 너무 좋았다. 최근에 책을 좀 다시 정리했는데, 페미니즘 관련 책이 많아져서 아예 넓은 책장을 내어준거다. 그리고 와인까지 딱 보이는데 너무 좋아. 저 깊숙이 숨겨두었던 나만의 61년산 슈발블랑도 꺼내어 함께 사진을 찍어 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책과 와인이 함께 있는 풍경이라니. 아, 내 방 사랑해... ♡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마야'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와인 61년산 슈발블랑을 특별한 순간에 마시기 위해 아껴둔다는 마일스의 말에, '당신이 그걸 마시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에요' 라고 말했더랬다. 힛. 나는 저 와인, 언제 마시지? 아무때고 저걸 따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 되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때를 기다려보련다.
















오늘 아침부터는 '오드레 베르농'의 《그래서 나는 억만장자와 결혼했다》를 읽기 시작했다. 아직 제일 앞부분의 목수정 해설밖에 읽지 못했지만, 어떤 내용일지 너무 기대된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독서앱 〈iReadItNowHD>에 기록하기 위해 책 검색을 했다. 검색창에 중요키워드라고 생각하는 '억만장자와 결혼'을 넣었는데, 이 책이 가장 먼저 뜰거라는, 어쩌면 유일하게 이 책만 뜰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이런 책들이 주르륵 뜨더라.








으응? 이게 뭐여? 심지어 이 책들이 주르륵 뜨고, 내가 찾는 책은 정작 너무나 밑에 자리한 게 아닌가! 이거 뭐지, 만화책인가...로맨스소설 시리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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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와 결혼 4 - 줄거리>

늘씬하고 큰 키의 매력적인 외모와 지적인 섹시함이 철철 넘치는 줄리에타. 그렇지만 이성에게서 어떤 흥분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녀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느껴보려고 했던 수많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녀는 징징거리는 일을 그만두고 섹스가 없는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원하는 방식대로 마음껏 가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소여. 사업상 거래로 만난 첫 미팅부터 줄리에타와 육체적으로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 그러나 줄리에타는 자신의 불감증을 두려워하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소여에게서 거리를 두려하는데...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줄리에타를 놓아줄 수 없는 소여는 하룻밤 안에 오르가슴을 주지 못하면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는 제안을 하고... 그의 제안에 흔들리는 줄리에타! 선과 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눈동자와 조각 같은 그의 입술은 줄리에타의 몸을 깨우고 반응하게 만드는데...

매력적이고 빠른 전개가 인상적인 <억만장자의 결혼>은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내용으로, 달콤하면서도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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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통해 검색해보니 종이책은 아니고 전자책이더라. 내게는 전자책 리더기가 있다. 그리고 올해 나는 여행을 좀 여러차례 다닐 계획이니 전자책 리더기를 가지고 다닐 터. 이미 그 안에 인문서와 페미니즘 도서가 있지만...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키워드 검색으로, 이 책들이 내 눈에 들어왔단 말인가! 이것은 이 책과 내가 지금 만날 운명인 건 아닐까. 아 궁금하다..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내용...달콤하면서도 섹시한.... 뭐지? 나... 이 책 사야되나? 아니 왜 갑자기....이런 책이 내 눈에 똭!! 뭐지... 아.....줄거리 보면 그간 읽어왔던 할리퀸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느낌인데....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인간은 로맨스에 살고 로맨스에 죽는가...아니, 내가 그런가.............줄리에타의 몸을 깨우고 반응.......................흐음....................... 너는 왜 지금 이 시점에 내 눈에 띈거니??



오늘 아침에 출근하고나서 커피를 내렸다. 요즘엔 텀블러 들고 다니는 거 너무 귀찮아서, 그냥 일회용 드립커피를 사서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물을 뜨겁게 끓이고, 그걸 부어 드립커피를 마신다.





포장을 벗기고난 직후, 아직 물을 붓기 전에 커피원두의 냄새가 참 좋다. 그 향 때문에 이 커피를 마시는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뜨거운 물을 붓고 졸졸졸 커피가 내려지는 걸 보면서, 십년전이 생각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십년 전에 만났던 남자. 2월이었다. 그가 내가 사는 동네로 왔고, 우리는 동네에 있는 카페에 가서 병맥주를 마시고 밥집으로 향했다. 버섯샤브샤브였는데, 그걸 주문하면서 소주도 시켜서는 밥과 함께 마셨다. 좋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에로틱한 말과 행동이 있었고, 오랜만에 커피가 졸졸졸 내려지는 걸 보면서 그 날을 떠올리노라니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 거다. 아... 사람이 살아가면서 에로틱한 말과 행동을 잊지 않는게 중요해... 아니, 적어도 나에겐 그래. 피식피식 웃으면서 너무 좋아가지고, 아, 그 당시에는 그 사람과 내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몰랐는데, 지금 우리는 이렇게 되었구나... 뭐 이런 생각하면서 헤죽헤죽 웃었다. 좋은 아침이구나. 물론,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미친듯이 뛰었던 헉헉거리는 아침이긴 했지만, 이렇게 커피를 내리면서 과거의 에로틱한 기억을 떠올리는 아침은 좋지 아니한가!! 그 남자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남자중에 가장 적극적이었고 가장 뜨거웠고 가장 에로틱했다. 어휴.. 그만 생각해야지. 이래가지고 어디 일을 하겠어?




어제는 여동생네 식구들이 왔다. 설까지 있다가 돌아간다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엄마한테 '엄마, 나 회사 근처에 호텔 잡고 있다 올게...' 라고 했더랬다. 조카들을 사랑하지만, 그렇지만 퇴근 후에 조카들과 노는 날이 연속된다면... 으음... 피하고 싶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읽었던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에서도 '바버라 아몬드'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책을 낼 무렵 아몬드에게는 손주들이 있었다. 2011년 <보스톤글로브> 인터뷰에서 할머니가 되니까 ‘양가감정‘이 덜하냐는 질문에 그는 ˝조부모 노릇Grandparenthood은 부모 노릇과 달리 순수한 기쁨이다. (…) 하루이틀 뒤 조금도 미안한 마음 없이 짐 싸서 집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바버라 아몬드, p.59)





이모도 마찬가지. 짐 싸서 집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순수한 기쁨이다...






아니나다를까, 퇴근 후에 집에 돌아갔더니 날 맞이하는 건 사랑스런 조카들과 동시에 깨진 냄비받침이었다.



나는 너무 빵터져서 웃었다. 이거 누가 그랬어? 하고 물으니 팔 살 조카가 자신의 동생과 자기를 가리키며 '우리 둘이!'이러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원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이가 없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옆에서 나의 엄마는 '얘네가 이거 격파했어' 이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째 조카는 요즘 태권도를 배우고 있단 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아- 내가 너무 웃겨서 이거 사진 찍고 있으니 제부가 냄비받침 새로 사주겠다고 한다. 나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이거 너무 웃겨서 사진 찍는 거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셋파크 냄비받침, 안녕.. 잘가..



엄마가 소불고기를 했다고 해서 와인을 꺼내어 고기를 먹는데 조카들이 식탁에서 가지를 않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할머니 너무 좋아 이러면서 껌딱지처럼 할머니 옆에 붙어 있는데, 엄마가 '저리 가서 좀 놀아!!' 했더니 저리 가긴 갔다. 갔는데 한참을 지들끼리 숙덕거리더니, 이런 장면이 연출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조카들이 왔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카들이 왔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회사에서 선물받아온 참치캔 30개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카들이 저러고 갖고 놀고 있더라 ㅋㅋㅋㅋㅋㅋ 박스에서 꺼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이놈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시간이 되어도 아이들이 잘 생각을 안해, 이모는 잘거야, 하고 내 방에 들어왔는데 첫째 조카가 잠깐 내방에 들어왔다 나간다. 그래서 나는 조카에게 잘 자라고 인사했다.



- 잘자!

- 이모 잘자!

- 안녕!

- 이모 사랑해!

- 나도!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완전 사랑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너무 예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비록 냄비받침을 깨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렇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우리는 떨어져 사는 게 좋은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처럼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만나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내가 이모인 게 좋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나저나 억만장자와 결혼이라니,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은 억만장자랑 결혼하는 로맨스 책과는 거리가 아주 멀지만, 그건 그렇고, 억만장자는..어디있나. 내가 살면서 만날 수나 있나. 나는 그간 연애했던 남자들도 나보다 다 돈이 없었던 남자들이었는데.. 심지어 나보다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난 적도 없는데, 내가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남자들이 성실했지만, 다 돈을 못벌었다... 그런데 억만장자는... 어디있지??? 억만장자는 어디에 있나요????? 내 친구들도 다 나랑 형편이 비슷한데....... 억만장자는 왜 내 친구의 친구로라도 존재하지 않는가.....어째서 그렇지? 왜죠? 

그러므로 나는 억만장자와 결혼할 수가 없다. 로또를 사야 당첨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억만장자랑 알고 지내야 결혼의 가능성이 싹트지. 이건 뭐, 존재 자체를 알 수가 없으니...



안녕,

잘가요, 억만장자.. 

온 적도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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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1-25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너무 귀여운 조카들~~ 참치성에 빵 터졌어요.
울 조카들은 이모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던데... 역시 여자 조카가 있어야돼요. ㅠ.ㅠ

다락방 2017-01-26 08:55   좋아요 1 | URL
조카 진짜 너무 예쁘고 너무 사랑해요. 같이 오래 있으면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긴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정말 예뻐요. 이모 사랑해~ 할 때면 진짜 너무 좋아서 미치겠어요. 존재 만으로도 행복을 줄 수 있다니,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

서니데이 2017-01-2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17-01-26 14:5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누군가 세상을 태어나 그 삶을 다하기까지의 이야기가 한 편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제목처럼 이 책은 가만가만한데, 책날개에 실린 저자소개조차도 가만하다. 이 책의 저자인 '최윤필'은 저자소개에서 자신을 '요컨대 나는 국적·지역·성·젠더·학력 차별의 양지에 살았다' 라고 표현한다. 양지에 살았다는 그가 뭔가 특별한 이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고 이성애자 사내아이, 서울대 사회학과,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게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도 이 사회에서는 양지에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보게 될 시야에도 관여한다. 너네가 기득권이다, 라고 사회적 약자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내가 왜?' 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부인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렇듯,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더 특별한' 무얼 가진 게 아니면서도, 그는 자신의 양지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이토록 누군가의 부고를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이들 중에는 내가 기존에 그 존재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게다가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노라면, 사실 그간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예 인식조차 해보지 못했던 면들에 대해서 부르짖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재소자의 인권도, 국가의 국민에 대한 감시도, 자살 조력자에 대한 것도, 평소에 내가 인식하고 사는 부분들이 아니니까. 이슈가 되면 그 때 잠깐 반짝할 뿐, 나는 그것들로부터 아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사람들, 한 평생을, 식상한 표현 그대로 '뜨겁게' 살다간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의 축을, 사회적 약자에 맞춰놓고 움직였다. 성폭행 피해자들을 돕고, 여성의 낙태권에 대해 주장하고, 학살 당하는 인류의 편에 서고, 전쟁을 반대한다. 경찰의 비리를 고발하고, 모성에 대해 연구해 발표하고, 여성 할례 금지 운동을 한다. 어떻게 하면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에서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살아가던 이들에 대한 가만한 부고가 여기, 이 책에 실려있다. 알지도 못했던 존재에 대한 웅장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고작 4-5장 정도에 압축되어 표현되어 있는데, 짧다면 짧다고 볼 수도 있을 그들의 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저자의 가만한 마음 위에 얹혀져, 아름답고 또한 거룩하다. 인상적인 건,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이 책에 실린 모든 이들, 그들중에 여성이란 성별을 가진 이들은, 모두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다. 나 역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시작하면서, 저절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까지 갖게 되었는데, 페미니스트라는 건, 소수자의 삶이 소멸되지 않게 그들의 삶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결한 것임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더더욱 페미니스트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그저 부고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탄생부터 삶의 전반적인 과정까지, 그들이 살아생전 했던 말들과 행동들까지 고스란히 알려주는데, 이 모든 걸 어떻게 다 알 수 있었을까, 궁금했던 바, 미주에 그 답이 나와있었다. 그는 각 인물에 대한 책과 기사들을 많이 참고했다. 한 사람의 생을 어떻게 다른 한 사람이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관련 기사와 책을 살피며 그 사람의 삶을 곰곰 생각했을 저자를 떠올려보며 그 노력에 감사하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이 이렇게나 노력을 했다.



좋은 글을 만나면 언제나 나 역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더 좋은 글에 대해 고민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라니, 나도 더 아름다운, 더 좋은, 더 따뜻한 글을 쓰고 싶어지는 거다. 그러나 이 책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그가 글을 아름답게 쓰기 이전에, 그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 자체가 깊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는, 글을 잘 쓰기 이전에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게 먼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곧 더 좋은 사람이 되야 한다는 의미일테다.



아름다운 글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이들중 누군가의 삶에 대해 한 편쯤은, 가만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읽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 여기, 이런 삶이 있었어, 들어봐, 하고.






바버라 아몬드Barbara Almond는 정신분석·상담 의사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라는 책을 썼다. 책에서 그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 희생을 뭉뚱그려 ‘모성motherhood‘은 무조건 완벽하고 최고여야 한다는 아득한 기준을 부정했다. 끊임없이 ‘모범 어머니‘를 찾아 전시하는 사회, 모든 어머니가 그런 모범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사회를 비판했다. 책의 제목처럼, 그녀는 모성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나란히 있고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진심으로 미워할 때도 있다고 썼다. 당신만 아이를 미워하는 게 아니고, 그게 잘못된 일도 아니며 한결같이 감싸주는 게 아이에게 좋은 일도 아니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라고 썼다. (바버라 아몬드, p.51)

책을 낼 무렵 아몬드에게는 손주들이 있었다. 2011년 <보스톤글로브> 인터뷰에서 할머니가 되니까 ‘양가감정‘이 덜하냐는 질문에 그는 "조부모 노릇Grandparenthood은 부모 노릇과 달리 순수한 기쁨이다. (…) 하루이틀 뒤 조금도 미안한 마음 없이 짐 싸서 집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바버라 아몬드, p.59)

콰스니 부부의 탄생으로 인디애나 주의 동성혼 합법화 투쟁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14년 6월에 영 판사는 동성혼 불허는 연방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100여 건의 동성혼 신청 소송 사례를 이거에 주정부로 보내 즉각 혼인확인서를 발급하도록 판결한다. 판결에서 영 판사는 "조만간 미국 시민은 원고들과 같은 커플의 결혼을 흔히 보게 될 것이며, 그걸 ‘동성혼‘이 아니라 그냥 ‘결혼‘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젠더와 성적 지향을 빼면 그들은 거르의 여느 부부와 조금도 다를 바 없으며, 다르지 않은 그들을 다르지 않게 대하라는 게 미합중국 헌법의 요구다"라고 밝혔다. (니키 콰스니,p.74-75)

법과 제도의 진전이 시민 의식과 관습 속에 스미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일상의 보이지 않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온전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법 제도와 별개로 천부의 권리를 시민들의 감각 속에 끊임없이 노출하는 게 중요하다. 인종 분리의 담장을 넘어 흑인이 진입하고, 동성애자 커플이 손을 맞잡고 거리와 광장을 활보하고, 남성이 전유한 노동과 유희의 경계를 허무는 일. 끊임없이 자극하고 부딪쳐 더디더라도 점차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가 되는 일은 집단이 거대한 대오를 이뤄서 힘과 함성으로 법 제도에 맞서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투쟁의 일부다. (델 윌리엄스, p.123-124)

한국은 군비 지출 세계 10위에 무기 수입 세계 9위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복지비는 OECD 조사 대상 28개국 중 최하위다. 2015년 한국 국방 예산은 전년에 비해 4.9퍼센트 증가한 37조4560억 원으로 북한 실질 GDP의 두 배가 넘는다. (루스 레거 시버드, p.320)

시버드가 첫 보고서를 낸 이래로 세게는, 적어도 거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는 비교적 멀찍이 서 있게 됏다. 그 평화는 시버드의 뜻처럼 군비 감축을 통해서가 아니라 파국적인 군사력 축적으로 이룩된 평화다. 하지만 시버드는 "군사력으로 안전을 도모하려는 관료 사회가 지속되는 한 이 지구는 결코 안전해질 수 없다. (…) 우리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우리를 죽일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은 원론적으로 옳지만 냉정히 말해서 그의 ‘우리‘가 인류라는 이름의 우리는 아니다. 군사 강국의 정치와 군수산업은 지금도 이 지구의 어딘가에서 전쟁무기 수요를 창출하고 있고, 한반도도 그중 한 곳이다. ‘세계 군축 행동의 날‘ 슬로건("전쟁 대신 복지를")을 한국에서는 "우리 세금을 무기 대신 복지에!"라고 외친다. (루스 레거 시버드, p.321)

영국이 낙태를 합법화한 건 1967년이었다. 어디나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때까지 영국 산부인과 환자의 태반이 불법 낙태 수술 후유증 환자였고, 그들 대부분은 미혼 여성이었다. 리비가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은 것도, 아이를 키우느라 병원을 그만두고 셰필드 지역 보건의GP가 된 것도, 낙태를 불법화환 법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1960년대 초 기혼 여성 가족계획과 미혼·독신 여성 피임을 돕는 ‘408클리닉‘이라는 여성보건센터를 개설했다. 여성(자신)의 삶에 대한 법의 부당한 간섭을 어떻게든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그의 클리닉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여성들이 아니라 윤리 경찰을 자임한 성직자와 지역 유지들이었다. 그들은 설교와 신문 칼럼등을 통해 클리닉의 부도덕성을 성토했다. 리비는 "그건 우리가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최고의 홍보였다. (…) 여성들이 몰려들어 클리닉이 있던 블록을 에워쌀 정도였다." (엘리자베스 리비 윌슨, p.335)

리비는 1990년 은퇴 후 가족계획 국제 NGO인 ‘마리스토프스인터내셔널 MSI‘을 도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1년간 봉사 활동을 했다. 2009년 인터뷰에서 그는 "전 세계 어디나 여성은 다 똑같다. 내가 만난 시에라리온 여성들은 글래스고에서 만난 수많은 가난한 여성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남편을 두려워하고, 섹스를 거부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또 아이를 낳곤 했다"라고 말했다. 법은 법이고, 가부장 권력은 또 가부장 권력이라는 얘기였다. (엘리자베스 리비 윌슨,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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