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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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청춘만 공허한 것이 아니었구나.
2. 청춘의 공허함이란 핑계로 그 시절의 나를 좀 더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다 그런거야.
3. 그건그렇고, 여자들은 대체 얼마나 힘들게 살아온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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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3-14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놨어요. (당연히-_-)아직 안 읽었지만요^^;. 뭔가 읽기 두려워지네요ㅠㅠ;;,

다락방 2019-03-15 09:16   좋아요 0 | URL
얇아서 금방 읽으실거에요. 저는 신형철이 극찬하는 만큼 좋진 않더라고요. 걍 보통...
 

어제는 또!!!!!!!!!!!!!! 혼술의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 페이퍼 너무 다다다닥 열심히 썼고, 남은 시간 회사에서 진짜 엄청 열심히 일해서(진짜 땀흘림, 공기청정기 설치 때문에 ㅋㅋ), 아아, 혼술의 시간 넘나 간절했다. 혼자 뭐 먹을까 생각하다가, 엊그제 편의점에서 사다둔 죠스떡볶이를 해먹자 정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싶어, 감바스를 하기로 했다. 크- 나여...


일단 편의점표 죠스떡볶이.



애초에 순대까지 같이 세팅되어있는데, 먹기 전에 크게 기대를 안했었다. 회사 동료가 별로라고 말하기도 했고. 그런데! 나는 맛있어! 좋았어! 나는 또 사먹을거야!


쌀떡이라 좋았고(저는 쌀떡볶이를 좋아합니다) 매워서 좋았다. 완전 나이스야! 재료 다 뜯어서 넣고 뜨거운 물 넣고 전자렌지에 돌리면 끝인데, 오오, 간단하고 좋아. 내가 만들어 먹는 것보다 이천배쯤 맛있다!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내 입맛에 맞는 떡볶이를 먹기는 너무 어렵다. 시판 양념을 사다가 만들어도 씅에 안차고, 내가 사는 동네에도 떡볶이가 내 입맛에 맞는 게 없다. 회사 근처에도 없어. 하아-

아주 오래전에 부산에 갔을 때 시장에서 팔던 시뻘건 쌀떡볶이 같은 게 내 취향인데, 우리 동네 시장에는 죄다 밀떡이고 양념도 내 생각만큼 강렬하질 않아서 아아..언제나 떡볶이를 향한 욕구불만에 시달렸다. 그나마 내 입맛에 맞는 게 죠스떡볶이야. 쌀에다 강렬한 맛..


편의점표 죠스떡볶이는 특유의 어떤 냉동식품 향 같은게 나긴 하는데, 오오 먹을만하다. 나름 맛있게 먹었다. 재구매 의사 있습니다. 후훗.




그리고 감바스! 두둥-





나는 이제 감바스 달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바스 사실 세상 쉬운 요리인데, 왜 실패해왔느냐, 하면, 내가 레서피를 찾아본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이러면 될것이다' 생각하고 했기 때문인 것이야. 새삼 내가 얼마나 교만한 인간인가 깨달았다. 지난번 오븐 사용법도 버튼 두 개이니 이러면 되겠지, 했지만 가스 밸브를 열지 않았었지. 사용설명서 보고서야 앗! 하고 오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감바스도 마찬가지. 올리브오일이랑 페페론치노, 마늘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하고 내 멋대로 만들었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하는수없이 얼마전에 레서피 찾아봤더니, 처음에 마늘을 볶는 게 아니라 올리브유를 많이 넣고 끓여야 하는 거였어. 나는 약간 올리브유 두른 뒤에 마늘 달달달 볶고 그다음에 올리브유 넣고 버섯 넣고 그다음에 올리브유 넣고 이정도면 됐나 했다가, 아아 올리브유 비싼데...하고 좀 아끼는 마음 같은 것 있어서... 늘 망했었지. 맛은 당연히 마늘과 올리브유 맛이라 나쁘지 않았지만 비쥬얼도 구린 망삘의 감바스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아, 나여..

그러나 레서피를 찾아본 나는 달라졌다. 물론 처음부터 확 성공한 건 아니었다. 레서피 찾아 처음 한 게 지난 주 토요일이었는데, 너무 슬라이스 얇은 마늘을 넣어서 푹 익는 바람에 젓가락으로 집으려 하면 뭉개졌더랬다.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했지. 해서, 이번엔 통마늘을 사서 반으로 자르고 했는데, 오오, 지난번 보다 훨씬 나은 감바스가 나왔어. 그러나 좀 더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늘 넣고 끓이는 시간을 좀 줄여야 겠다.

아아, 비쥬얼부터 완벽하고 맛도 좋은, 진짜 빵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그런 훌륭한 감바스가 탄생해서 진짜 너무 좋은 것 ㅠㅠ


어제 이 맛있는 감바스를 먹으면서, 겸손해지자고 나에게 수십번 말했다.


요리(라기엔 좀 거창하긴 하지만)를 하면서도 그리고 베이킹(이라고 해봤자 뭐 스콘만 굽고 있지만)을 하면서, 내가 머릿속으로 '이러면 될거야' 라고 했다가 성공한 게 몇 번이나 되던가. 아마 없지 않던가. 스콘도 구워보고서는 다음에는 내 나름 오오 요렇게 하자, 오오 요렇게 하자 했다가 늘 어딘가 부족한 스콘이 나와버리는 거다. 그러고보면 가장 스콘에 근접했을 때는 가장 처음 구웠을 때였다. 레서피가 시키는대로 했을 때. 나는 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이러면 되겠지 후훗' 하고는 내 멋대로 만들어 늘 망치는가... 나여....



이렇게 겸손을 배운다.



그러고보면 나의 경우, 겸손을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배우게 됐던 것 같다.

요가를 할 때도 마찬가지.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아니, 해보신 거 아녜요? 너무 잘하시는데요?' 라는 말을 들을 거라고 너무나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시키는 동작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알게 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었지. 와, 이것도 못해, 이것도? 이거 남들 다하고 있는데, 못해? 대박.

요가를 하노라면, 남들 다 하는데 나만 못하는 동작은 많고,

나는 하는데 남들이 못하는 동작은 없는 것 같다.

아아, 나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 몸은 한없이 유연해 시키는 동작 모두 따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요가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머리서기는 엄두도 안나고, 여전히 헤드 투 니(head to knee)가 미치도록 어렵다. 서지를 못하겠어.



구몬 영어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 테스트를 받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후훗, 회원님은 영어 공부하실 필요 없겠는데요?' 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어. 하하. 왜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결과는 처참해서, 테스트 시험지 제대로 풀지도 못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마도 중2 과정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겸손해지자..

뭐, 그마저도 밀려서 그만뒀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렇게 무언가 새로 시작할 때, 나는 내가 굉장히 교만했다는 걸,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사람은 뭐든 새롭게 시도해야 배우는 게 있어.



아무튼, 나는 감바스의 달인이 되었다.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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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3-1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볶이에 애초에 순대가 들어있다는 거죠? 맘에 드네요. 그나저나 술은 뭘 드셨나요? ㅋㅋ 떡볶이엔 소주인데... 감바스가 뒤에 붙어 있으니 술은 뭘 드셨을지 궁금하네요;; ㅎㅎ

다락방 2019-03-14 10:09   좋아요 0 | URL
네네, 떡볶이에 애초에 순대가 들어 있습니다. 좋은 조합이에요. 히히.

술은 와인을 마셨습니다. 제가 와인 마셨다는 걸 안써놨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와인에 깍두기도 안주로 잘 먹어요. 와인 앞에 놓이면 그것은 뭐든 좋은 안주인 것이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19-03-1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녁은 다락방님 때문에 감바스. 그리고 편의점에서 죠스 떡볶이를 사다 놓을게요. ^^

다락방 2019-03-14 10:10   좋아요 0 | URL
으하하 블랑카님. 오일을 촉촉하게 잘 머금을 수 있는 빵도 꼭 같이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감바스는 빵에 오일 찍어먹는 맛에 먹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요 ㅠㅠ

죠스 떡볶이는 매워요. 그걸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후훗.

구름물고기 2019-03-1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 유쾌함이 뭍어나요 ㅎㅎ

다락방 2019-03-15 09:16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제가 유쾌한 사람이라 그런가봅니다.

단발머리 2019-03-1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너무 욕심내면 안 돼요!
감바스의 달인인데다가 겸손하기까지 하면.... 안 돼요, 안 됩니다요!
하나만 하기로 해요.
거만한 감바스의 달인이거나 겸손한 감바스 초짜거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3-15 09:16   좋아요 0 | URL
음.. 그러면 저는 감바스의 달인이니까 거만해도 되는거지요? 한없이 거만해질테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19-03-1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봐도 멋진 감바스 비주얼 +_+.........

다락방 2019-03-15 09:17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만들고 엄청 반했어요. 브로콜리도 넣으면 더 예뻤겠지만 삶기 싫으므로..
인스타 보니까 누군가는 초록 고추 썰어 넣더라고요.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다음엔 그렇게 초록색도 넣어봐야겠어요. 후훗.

moonnight 2019-03-1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멋진 혼술 안주예욧 감바스 달인님@_@;;;;; 저는 쌀떡보다 밀떡파예요ㅎㅎ^^;;; 그리고 다락방님의 자신감은 좋아요. 귀여우시기도 하고 호호^^; 저는 너무 자신감이 없어서 시작도 못 할 때 있거든요. 다락방님의 자신감을 응원합니다^^

다락방 2019-03-15 09:18   좋아요 0 | URL
저도 밀떡파였는데 언젠가부터 쌀떡파로 바뀌었어요.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밀떡의 밀냄새를 제가 안좋아하더라고요. 그리고 쌀떡의 쫄깃함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밀떡을 안먹는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쌀떡을 더 좋아하는 것일뿐 떡볶이는 사랑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가난한 집의 여자였고, 그래서 늙은 상인에게 시집을 간다. 나이 차가 많이 나기도 하고 또 남편은 하루종일 집을 나가 일을 보기도 하고 그들에겐 결혼한지 5년이 지나도록 아이도 없어, 카테리나는 너무 지루하다고 매일을 생각한다. 지루해, 지루해, 지루하다.. 할 일없는 매일도 지루하지만 늙은 남편과 무슨 재미가 있을까. 젊은 카테리나는 너무나 지루하다. 그러다 자신의 집 하인과 사랑에 빠진다. 누가 봐도 뻔히 바람둥이인 남자, 카테리나를 사랑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즐기려고 사랑하는 남자. 아아, 그러나 슬프게도 카테리나에게는 그 남자 세르게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비극은 항상 이렇게 어느 한쪽만의 진실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



세르게이에게 이것은 사랑이라고 표현하되 사랑이 아닌 욕망의 감정이었다. 자신보다 신분이 높고 돈 많은 젊은 여자와의 밤시간. 마침 남편이 장기간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동안 그들은 매일매일 쾌락의 시간을 보낸다. 카테리나에겐 사랑이었다.



"나 때문에 애간장이 다 말라버렸다고, 세료자?"

"애를 태우지 않을 재간이 없었지요."

"어떻게 애를 태웠는데? 이야기해봐."

"그걸 어떻게 말로 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정말 그리움이 사무쳤지요."

"네가 나 때문에 죽을 정도였다는 걸 나는 왜 느낄 수 없었을까, 세료자? 그런 것은 느낄 수 있다고들 하던데."

세르게이는 침묵했다. (p.36)




아아, 도망쳐, 카테리나. 당신도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잖아, 세르게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러나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인간 본연의 성질은, 사랑에 빠졌을 때 특히 더하다. '왜 나는 느낄 수 없었을까?' 라고 의심하면서도 그녀는 세르게이가 하는 달콤한 말들에 행복해하고야 마는 것. 그 달콤함과 쾌락에 빠져 이제 그녀에게는 세르게이와의 시간만이 유일하게 즐거운 것, 유일하게 행복한 것이 되었다. 그것만이 지켜야할 전부였다. 



그러나 내게 소중한 것, 나를 살게 하는 것, 나를 지켜주는 것이 단 한가지라면 얼마나 위험한가. 세르게이가 바람둥이라는 소문 때문에 만나본 여자가 많을 거라는 것을 아는 카테리나는 그에게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받고싶다.



"잘 들어, 세료자! 다른 여자들이 어땠는지 나는 알 바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 단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물론 내가 너를 원하기도 했지만, 네가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고, 네 술수 때문이란 사실은 너도 알고 있겠지.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에, 세료자 네가 나를 배신하거나, 나 대신 다른 여자를 택한다면, 나는, 결코 살아서는 너와 헤어지지 않을 거야."

세르게이는 움찔 놀랐다.

"아, 카테리나 일보브나, 당신은 나의 밝은 빛입니다." (p.40)



아아, 죽음으로 사랑을 약속하지 마, 그에게만 매달리지마..



오로지 세르게이만 사랑하고 그와 있는 것만이 행복인 카테리나는, 그들의 관계를 눈치챈 시아버지를 죽이고, 남편을 죽이고... 그렇게 이제 둘만 남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먼 친척아이가 찾아온다. 남편의 돈은 모두 그 아이에게 갈 수도 있다. 사실 카테리나에게 남편의 돈 따위는 크게 신경쓸 일도 아니었고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에겐 세르게이만 중요했지. 그러나 세르게이에게 중요한 건 사실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돈이었음을...


"그런데 이런 게 정말 나에게 필요할까, 세료자?"

"사실 그것은 마님에게는, 별일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지가 않아요. 저는 당신을 너무나도 존경합니다. 그렇기 대문에 마님이 다시금 비열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대하게 된다면 내 가슴이 너무나도 아플 것입니다. 마님이야 마님 편한 대로 생각하겠지만, 나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결코 행복할 수가 없군요."

세르게이는 허구한 날 카레티나 리보브나에게 이렇게 떠들어댔다. 페쟈 랴민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그 까닭인즉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집안을 모든 상인 가문 중 가장 빼어나게 만들 방법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세르게이가 내리는 결론은 항상 같았다. 즉 페쟈가 없으면, 지노비 보리스이치가 실종된 지 아홉 달이 채 지나기 전에 태어나는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아이가 전 재산을 상속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p.67)



아아, 세르게이는 가스라이팅을 심하게 가하는 것이다. 걔가 없어야 우리가 더 행복해, 다 너를 위해서야... 그렇게 살인은 살인을 낳았고, 그러나 그들의 죄는 발각되어 그들은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한시라도 세르게이와 떨어질 수 없었던 카테리나는 간수에게 돈을 쥐어가며 잠시라도 세르게이를 만나려고 애쓰는데, 아아, 세르게이는, 이미 감옥에 갇혀버린 세르게이는, 더이상 카테리나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곧 비열한 자신을 드러낸다.

다른 여자 죄수들을 유혹하고 자신이 다른 여자와 잤음을, 사랑에 빠졌음을 카테리나에게 말한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새로운 애인 앞에서 카테리나를 모욕한다.




"야, 당신, 카테리나 일보브나."

다음 날 길을 가면서 세르게이가 말했다.

"당신, 명심해둬. 첫째, 나는 당신 남편 지노비 보리스이치가 아니라는 것, 둘째, 당신도 이제 부잣집 마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열 받지 말고, 잘 들어둬.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거래할 게 없다고." (p.93)



그러나 깊은 사랑에 빠진 카테리나는 저런 대우 앞에서도 그저 토라져있다가 그와 화해하기를 원한다. 왜지요, 카테리나? 왜때문에 그러지요? 이젠 그를 버려야 할 놈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아요? 어떻게 저런 말을 듣고도 화해하려고 하지요?



세르게이는 사람들 앞에서 카테리나를 무시하고 욕하고 놀림감 삼는다. 세르게이의 새로운 어린 연인 역시 마찬가지다. 카테리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얼마나 처참하게 자신을 망가뜨리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녀에게 이것은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사실보다 더 아픈 것. 그런데 왜 카테리나는 그런 세르게이가 아니라 세르게이의 연인을 복수의 대상으로 선택한걸까. 왜 그녀와 함께 ..




마침, 바람핀 남편이 아니라 그 상대 여자를 벌하는 아내가 나오는 다른 소설도 내가 바로 전에 읽었다. '루이스 어드리크'의 사랑의 묘약이 그것인데,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먼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큰일이 일어난 것만은 당연히 알았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할지 막막했지만 사실 생각할 것이 없기도 했다. 시내에 사는 메리 본이라는 여자가 자기 집 침대에서 남편이 라시엔족 여자와 뒹구는 것을 보고 했다는 행동이 떠올랐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벽에 걸린 칼을 들었고, 침실로 돌아가 찌르기 전에 심지어 숫돌에 갈 생각까지 했다. 몇 번 찔렀을 뿐인데 피가 흘렀다. 나는 라마르틴 집안의 피를 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그녀의 화장한 뻔뻔스러운 얼굴이 떠올랐고, 그 목을 당장 잘라버리고 싶었다.

사실은 화가 나지 않았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아기가 내 품에서 젖을 배불리 먹고 잠들어 팔이 묵직했는데도 느끼지 못했다. 아비 없이 어떻게 자식들을 키울까 고민이었다. 그리고 일라이를, 그가 어떻게 점점 말수가 줄어들다 숲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는지를 생각했다. 그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자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집에 갇혀 지내는 그는 겁먹은 짐승과 다름없었다.

나는 선 자리에서 불쑥 외쳤다. "남자란 다 그래!"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 의미도 없었다. (p.209-210)





'그녀가 없다면' 그가 내게로 돌아올까? 그가 그녀와 사랑에 빠져 나로부터 뒤돌아 서게 된건, '그녀가 있기'때문이었던 걸까? 그러므로 칼을 들고 향하는 게 '그녀'가 되어야 하는걸까?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닌가?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뿐만 아니라 뒤에 실린 소설 <쌈닭>까지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은 남자가 쓴 것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여자는 없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쌈닭에서는, 돈 없는 여자에게 매춘을 종용하는 여자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이 쓰여진 러시아의 공간적 시간적 배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왜, 여자에게 칼끝을 겨누는 여자, 여자를 매춘으로 모는 여자를 그려낸 것인지. 그가 딱히 여성혐오를 하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여성의 입으로 여성을 내세워 여성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고 보인다. 다만, 그가 여성이 아닌 이상 여성 혹은 여성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건 여성을 나쁘게 그려서가 아니다. 이야기는 삶과 마찬가지로 나쁜 남성이 그리고 나쁜 여성이 등장할 수 있다. 캐릭터는 다양하고, 개인으로 놓고 보자면 나 역시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기도 하니까. 한 여성에 대해 나쁜 면을 그렸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혐오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좋은 면만 가진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어떤 한계는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온전히 여성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아, 오늘 너무 폭발하듯 글을 써버렸네. 몇 개나 쓴거야... 그렇지만 지금 읽고 있는 《그래도 우리의 나날》에 대해서도 태클을 걸고 싶다... 그렇지만 그건 다 읽고 하기로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자, 이제 월급 루팡에서 벗어나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카레도 만들고, 고추장찌개도 끓여야겠다. 집에 가는 길에는 애호박과 양송이버섯을 사가야지. 아, 계량컵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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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처럼?

















몇 년동안 나긋한 달콤함에 길들었던 나는 이제 뭔가 다른 맛을 갈망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탕 맛도 그리웠다. 나는 두 가지 맛을 모두 실컷 즐기지 못했고, 그것이 내 문제이자 삶의 다른 갈래 길로 덜어선 지 한참 지나서까지 룰루를 잊지 못한 이유였다. (p.165)



'넥터 캐시포'는 룰루를 처음 본 순간 반해 사랑에 빠졌다. 아주 젊은 시절의 일이다. 룰루와 달콤한 시간을 만들어갔고, 당연히 룰루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 언덕에서 우연히 마주친 '마리' 에게 끌리게 되어 그 언덕에서 그녀와 섹스하게 되고 그렇게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룰루'는 단맛을 주는 여자였다면 '마리'는 쓴맛을 주는 여자였다.


결혼해서 아이들까지 여럿 낳았지만, 그러나 넥터는 룰루를 그리워한다. 그렇게 넥터는 룰루와 바람을 피우게 된다.



이 세상에 나랑 똑같은 성향, 똑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은 없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며 나는 세상에 유일한 나이다. 그런 나를 다른 사람이 백프로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 백프로 나를 만족시키는 존재 역시 없을 것이고. 우리는 아주 많이 다른 점들을 갖고 있으면서 그러나 서로에게 조금씩 자신의 기질을 양보하고 맞춰나가면서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설사 나랑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나를 온전히 채워줄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그 자체로 온전한 누군가가 될 수 없다. 많이 사랑해도 실컷 사랑해도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공허하며 때로는 빈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바람을 피우는 것, 자신의 배우자나 애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게 되는 것은 이 충족되지 못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타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코 버리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하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무엇이 가장 충족에 가깝게 나를 채워주는지 알고 있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때 공허할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넥터가 내가 말한 것처럼 공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난 다 원해' 라고 생각하며 쓴맛과 단맛을 찾았는데, 이렇게 이것저것 다 좋아, 그리고 다 갖고 싶어, 다 가질테야, 하는 것은 비열한 욕심 채우기에 다름 아니다. 내가 쓴맛을 선택했다면, 그렇다면 나는 단맛을 포기해야 한다. 사람은 다 가질 수가 없을 테니까. 만약 넥터가 원하는 것이 어떤 정서와 영혼 그리고 마음에 관련된 것이었다면, 가장 충족된 한 사람을 찾고 다른 사람에 대해 크게 욕심부리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한 것은 단순히 단맛 그리고 쓴맛이었다. 모두 즐기고 싶어하는 성향. 그것은 나를 채워줌과는 다르다. 충족과는 달라. 충족과는 다른, 다 갖고 싶은 무엇.


어쨌든 그는 그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단맛의 룰루에게도 충실할 수 없고 당연히 쓴맛의 아내에게도 충실할 수 없다. 마리에게는 거짓말을 해야하고 룰루에게는 헛된 약속을 해야한다. 룰루는 더는 이렇게 아내 있는 남자의 헛된 약속에 기댈 수 없으므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한다.




넥터는 룰루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걸 상상만해도 너무 괴롭다. 아, 안되겠다, 나는 룰루를 사랑해, 룰루를 사랑한다. 결국 그는 룰루에게 가기로 마음 먹는다. 아내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편지를 남기고 집을 나선다. 




사랑하는 마리

나는 하루하루 더 힘이 드는데 이제는 이렇게 살 수 없어. 한때 당신을 사랑한 것은 틀림없지만, 요즘 룰루를 만나고 있어. 이제 그녀가 내 선택을 강요하고 나도 떠날 때가 됐어. 정말 미안해. 그녀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찾았어. 선택의 여지가 없어. 하지만 넥터 캐시포가 제 식구를 잊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p.208)



이 편지를 펼쳐본 마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사랑한 남자, 결혼한 남자, 아이까지 같이 키우던 남자가  다른여자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니.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랑이었나. 이 편지를 열어본 마리는 대체 어떠했을까.


나는 너무 괴로웠다. 너무너무 괴로웠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사랑한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한 남자가, 그런데 나에게 다른여자와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됐다고 말하다니.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내게 그렇게 말한다면, 하고 생각했다. 아, 그 다음의 남은 시간들을 나는 살아낼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이었나. 나는 무엇이었지. 더 절망적인 건,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거였다. 마리는 넥터를 사랑했다. 마리는 여전히 넥터를 사랑한다. 넥터는 마리의 유일한 사랑인데, 그런데 넥터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며 마리를 떠나겠단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결국은 그쪽을 향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 어차피 사람은 그쪽을 향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니까, 자기 자신을 채워야 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가장 만족시킬 수 있는 상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가진 상대를 찾을 수밖에 없고, 찾았다면 설사 그 때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있어도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러나, 이것이 나와 상대가 엇갈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신은 나를 충족시켜준다, 당신이 있다면 나는 다른 부족한 것도 생각나지 않고 다른 곳을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당신을 사랑한다.

그런데 당신은 나로는 안된다고 한다, 나는 당신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한다.



아, 마리, 당신은 어때요? 사랑하는 넥터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당신은 어떻게 버텼나요?


마리는,



감자 껍질을 벗긴다.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 있었다.

감자 껍질을 벗겨야겠어. 나는 혼잣말을 했다. 아이들이 적어도 오리 한 마리는 잡아올 것이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감자 그릇을 놓고 앉았다. 지금껏 살면서 치페와족 남자, 여자, 아이를 먹이느라 감자 껍질을 지긋지긋하게 벗겼다. 하지만 아직 벗길 것이 남았다. 가칫가칫한 껍질을 벗기고 싹이 난 감자 눈을 도려내자 보드랍고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것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한 조각 베어 먹었다. 사람들이 사과를 먹는 것처럼 나는 이따금 생감자를 먹었다. (p.210-211)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가라앉았고, 나는 이유가 있어서 가지 않은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유는 충분했다. 편지에서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감자 껍질을 더 벗기기 시작했고, 왜그런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그가 라마르틴 여자를 사랑한다는 그 사실은 지금껏 그가 내 삶을 불편하게 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한 온갖 행위와는 다른 차원이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집에 있는 감자를 모조리 벗겼다. (p.211-212)




사랑이 시작될무렵의 혼란스런 내가 떠올랐다. 내가 내 마음을 어쩌지를 못해 도대체 이걸 어떻게 잡나, 싶어 백팔배를 했던 일, 컬러링북을 열심히 색칠했던 일.

이별후의 내가 떠올랐다. 그 아픈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한달을 내리 울던 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간들, 위가 망가질 때까지 술을 마시던 날들.

왜 나는 감자 껍질을 벗기지 않았을까. 감자 껍질을 벗겼어야 하는데. 감자 껍질을 벗기노라면 나 역시 차분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잠시잠깐이라도, 감자 껍질을 벗기는 시간동안은 감자 껍질 벗기기에 집중할 수 있었을텐데.


감자 껍질을 벗기는 마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혹여라도 내게 마리처럼,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라는 말을 듣는 때가 온다면, 잊지 말고 감자 껍질을 벗기자. 그 때를 대비해 감자를 사서 쌓아둘까 싶었지만, 감자는 싹이 나면 솔라닌이란 독이 생겨, 마냥 둘 수 없다. 그러니 사서 쌓아두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야. 우리 중학교 때 배웠지요, 솔라닌? 가뜩이나 가슴이 찢어지는데 솔라닌까지 먹으면 안돼요, 감자를 사서 쌓아두면 안됩니다. 감자 껍질을 벗겨야 한다면, 새로 사서 벗기는 걸로..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 앞에 이미 마음이 무너져잇는데, 감자 사러 시장까지 갔다올라니까 세상 귀찮네. 게다가 한두개 껍질 벗긴다고 고요해지지 않을 터, 한박스는 사야할텐데 또 그러면 세상 무겁잖아? 아아 생각만해도 짜증나는구먼. 제발 이런 과정 내가 거치지 않도록, 나에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는 말을 하지 마.




이러저러한 시간들이 쌓이고 넥터는 여전히 마리와 함께 늙어간다. 마리는 여전히 넥터를 사랑한다.



그녀는 그를 줄곧 사랑했다. 그 사실이 어마어마한 양의 벽돌이 떨어지는 것처럼 나를 내리쳤다. 어느 날 나는 하루종일 손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야릇한 감각을 느꼈다. 손의 감각을 타고나면 열망이 당신을 거기로 데려간다. 나는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불타올랐고, 밖으로 나가 둘 중 한 명이 죽거나 미칠 때까지 사랑할 여자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따금 나는 누군가의 내면을 훌륭히 치료하지만, 장기전을 하기에는 지구력이 부족한 것 같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그런 지구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자질이 아무 노력 없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p.298)




그러나 넥터는 치매를 앓고 있고, 간혹 제정신이 돌아오는데, 아아,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넥터는, 룰루와 섹스한다.



이제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멀쩡할 때의 그가 걸핏하면 라마르틴(룰루)을 갈망한다는 것이었다. (p.305)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동안 내내 옆에 마리가 있는데, 마리는 한결같이 넥터를 사랑하는데, 그런데 정신이 멀쩡해질때면 넥터는 룰루를 갈망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슬퍼.

너무너무.

너무.



마리는 대체 어떤 삶을 산거야,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거야 ㅠㅠ




일전의 '휘성'의 <안되나요>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여동생과 대화했던 게 떠올랐다. '그 사람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돼요,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이라는 가사에서 여동생은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그것은 나를 보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려는 거냐고. 나 역시 여동생의 말에 동의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른 사람 사랑하면서 내 옆에 있는 건 무슨 의미야, 그렇지만, 그걸 뻔히 알면서도 옆에 있고 싶은 마음.. 그런 처절한 마음 아닐까, 라는 대화를 했었던 거다.

그러나 나는 견딜 수 없다, 견디지 못할 것이다, 견디고 싶지 않다. 정신이 멀쩡해질 때 다른 여자를 원하는 남자와 같이 산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어, 내가 아무리 아무리 그를 사랑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 사랑하는 걸 뻔히 알면서 그의 옆에 있고 싶지 않다. 그런 상황에 나를 둘 수 없다. 나는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 거야. 차라리 평생 그를 그리워할지언정, 혼자서 살아갈테다. 감자 껍질을 벗기면서, 책을 읽으면서,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 산책을 하면서, 차라리 혼자 살테야. 당신이 없는 것도 괴롭지만, 내 옆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걸 지켜보는 걸 오우- 감당할 수 없다. 그걸 감당하지 마요, 왜 자신을 학대해, 그러지마...





우리가 우리라면,

여전히 우리가 우리라면,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라면,

감자를 쌓아두고 껍질을 벗길 일은 없겠지.



이 책의 제목이 사랑의 묘약인데, 이 책에 그렇다면 사랑의 묘약이 나올까?

나온다.

잘못된 사랑을 바로잡기 위해 사랑의 묘약이 나온다.

그러나 그 사랑의 묘약은 의도한 바대로 효과를 나타냈을까?



아니,

사랑의 묘약같은 건 없다.

사랑은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다. 사랑은, 의도가 하는 일이 아니다.

사랑의 묘약은 없다.



그러나 내게는 지구력이 있다.





그는 감각을 되찾으려고 길가에 차를 세웠다. 또 한 병 마시고 싶다는 비뚤어진 희망을 품자 그는 마음이 밝아졌다. 시내로 가야겠다. 한 병을 더 마시면 정신이 말짱해질 것이다. 길은 5마일이나 구불구불 이어졌고 밤하늘에는 달빛도 없었지만 거기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P279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푹 자고 눈을 뜨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서 대지를 덥혔다. 정오가 지난 시각이었다. 내 생각에, 눈을 뜨고 있을 때는 괴로워서 자꾸 미루게 되는 어려운 결정은 실컷 자고 나서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날 깨자마자 나는 할머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 P327

다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을 만큼 나는 캐시포에게 매달렸다. 그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그리고 얻었다. 하지만 한동안 그는 사랑으로 나를 맘대로 다루었다. - P356

그들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려 나는 깜짝 놀랐다. 도통 종잡을 수 없어 짜증이 나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들이 무엇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무엇에 발끈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긴 인생 역정으로 짐작하건대 큰 운명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삶에서 남자란 체스판의 졸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소녀처럼 장난쳤고, 집고양이처럼 시시덕거렸으며, 야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내 등뒤에서 속닥거렸고, 짐짓 내 지위를 존중하는 척하다 깎아내렸다. - P448

상실을 끌어안은 밤, 속사포처럼 지껄인 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 밤이었지만 결국 나는 잠잠해졌고 거품이 보글거리는 달콤한 오렌지 소다수를 홀짝이는 마리 캐시포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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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어린이 2019.봄 - 통권 64호
창비어린이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차별의 당사자이므로 나는 여성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다. 열심히 책을 읽고 강의를 따라 다니고 또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글을 쓰고. 그렇게 점점 더 여성주의에 대해 알아갔고 그리고 또 앞으로도 더 많이 알고 싶다. 알면 알수록 더 목이 마르다고 생각하고 또 내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런 참에 이 계간지, 《창비어린이》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그간 여성혐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었지만, 아동 혐오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어린이 역시 약자였고, 이 사회의 혐오는 언제나 약자를 향해 일어나는 것이니만큼, 그들이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 게다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위치에 그들이 있었다.

아, 나는 이렇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을만큼 나이들었지만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겠구나, 그저 사회가 굴러가는대로 내동댕이쳐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리고 나는 그들에 대해 너무나 무심했구나.



이런 자각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공존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런 한편, 이 책속에 글을 실은 저자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미처 내가 신경쓰지 못한 부분에 대해 신경쓰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구나. 그 점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아동의 권리를 위한 운동을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 덕분에 하던 걸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읽고 말하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또 다른 일들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이 책을 다 읽진 않았지만 모든 어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모든 어른들이 이 책속의 글들처럼 그렇게 좋은 글을 쓸 순 없더라도 읽으면서 신경을 쓸 수 있다면,  '아, 그렇구나' 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세상의 혐오는 조금씩 지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라는 표현보다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두고 재차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밑줄을 박박 긋고 가끔 꺼내어 밑줄 그은 부분들을 읽다보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찬성과 반대로 입장을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는 수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양측의 관점이 모두 타당한 명분과 가치를 지닌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섣부른 토론은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내가 이끌어 온 수업이 또 다른 혐오를 정당화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날 아이들이 낸 결론을 보고 나서야 이제까지의 교실이 어떠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교실 안의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아이는 권력자인 어른의 발화에 동조하고 따르는 것으로 차별과 배제에서 벗어났다는 착가에 빠지곤 한다. 이러한 착각은 먼저 나서서 노키즈존을 옹호하는 아이와, 스스로를 '급식충'이라고 칭하며 웃는 아이, "제가 맞을 짓을 하긴 했어요."라며 부모의 체벌을 변호하는 아이를 만들어 낸다.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3-44, )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별과 혐오는 모두 논리적이었고, 타당해 보였고, 정의와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게 운영에 방해가 되니 손님을 가려 받겠다는 운영 방침, 아이는 미숙하니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 널 사랑해서 때렸다는 체벌과 같은 것들은 모두 그럴듯한 명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명분이 당사자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4)




어느 작품이든 주연은 서사의 맨 처음부터 주인공이다. 유예 기간을 거쳐 주인공이 되는 등장인물은 없다. 소설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다. 아동은 어른의 삶을 위한 조연이 아니다. 아동과 청소년 역시 어른과 마찬가지로 '내일의 주인공'이 아닌 '오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유년기를 그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 더욱 강력한 관용과 존중을 바탕으로.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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