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어린이 2019.봄 - 통권 64호
창비어린이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차별의 당사자이므로 나는 여성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다. 열심히 책을 읽고 강의를 따라 다니고 또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글을 쓰고. 그렇게 점점 더 여성주의에 대해 알아갔고 그리고 또 앞으로도 더 많이 알고 싶다. 알면 알수록 더 목이 마르다고 생각하고 또 내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런 참에 이 계간지, 《창비어린이》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그간 여성혐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었지만, 아동 혐오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어린이 역시 약자였고, 이 사회의 혐오는 언제나 약자를 향해 일어나는 것이니만큼, 그들이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 게다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위치에 그들이 있었다.

아, 나는 이렇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을만큼 나이들었지만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겠구나, 그저 사회가 굴러가는대로 내동댕이쳐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리고 나는 그들에 대해 너무나 무심했구나.



이런 자각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공존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런 한편, 이 책속에 글을 실은 저자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미처 내가 신경쓰지 못한 부분에 대해 신경쓰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구나. 그 점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아동의 권리를 위한 운동을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 덕분에 하던 걸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읽고 말하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또 다른 일들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이 책을 다 읽진 않았지만 모든 어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모든 어른들이 이 책속의 글들처럼 그렇게 좋은 글을 쓸 순 없더라도 읽으면서 신경을 쓸 수 있다면,  '아, 그렇구나' 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세상의 혐오는 조금씩 지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라는 표현보다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두고 재차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밑줄을 박박 긋고 가끔 꺼내어 밑줄 그은 부분들을 읽다보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찬성과 반대로 입장을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는 수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양측의 관점이 모두 타당한 명분과 가치를 지닌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섣부른 토론은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내가 이끌어 온 수업이 또 다른 혐오를 정당화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날 아이들이 낸 결론을 보고 나서야 이제까지의 교실이 어떠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교실 안의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아이는 권력자인 어른의 발화에 동조하고 따르는 것으로 차별과 배제에서 벗어났다는 착가에 빠지곤 한다. 이러한 착각은 먼저 나서서 노키즈존을 옹호하는 아이와, 스스로를 '급식충'이라고 칭하며 웃는 아이, "제가 맞을 짓을 하긴 했어요."라며 부모의 체벌을 변호하는 아이를 만들어 낸다.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3-44, )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별과 혐오는 모두 논리적이었고, 타당해 보였고, 정의와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게 운영에 방해가 되니 손님을 가려 받겠다는 운영 방침, 아이는 미숙하니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 널 사랑해서 때렸다는 체벌과 같은 것들은 모두 그럴듯한 명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명분이 당사자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4)




어느 작품이든 주연은 서사의 맨 처음부터 주인공이다. 유예 기간을 거쳐 주인공이 되는 등장인물은 없다. 소설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다. 아동은 어른의 삶을 위한 조연이 아니다. 아동과 청소년 역시 어른과 마찬가지로 '내일의 주인공'이 아닌 '오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유년기를 그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 더욱 강력한 관용과 존중을 바탕으로.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6-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