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가난한 집의 여자였고, 그래서 늙은 상인에게 시집을 간다. 나이 차가 많이 나기도 하고 또 남편은 하루종일 집을 나가 일을 보기도 하고 그들에겐 결혼한지 5년이 지나도록 아이도 없어, 카테리나는 너무 지루하다고 매일을 생각한다. 지루해, 지루해, 지루하다.. 할 일없는 매일도 지루하지만 늙은 남편과 무슨 재미가 있을까. 젊은 카테리나는 너무나 지루하다. 그러다 자신의 집 하인과 사랑에 빠진다. 누가 봐도 뻔히 바람둥이인 남자, 카테리나를 사랑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즐기려고 사랑하는 남자. 아아, 그러나 슬프게도 카테리나에게는 그 남자 세르게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비극은 항상 이렇게 어느 한쪽만의 진실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



세르게이에게 이것은 사랑이라고 표현하되 사랑이 아닌 욕망의 감정이었다. 자신보다 신분이 높고 돈 많은 젊은 여자와의 밤시간. 마침 남편이 장기간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동안 그들은 매일매일 쾌락의 시간을 보낸다. 카테리나에겐 사랑이었다.



"나 때문에 애간장이 다 말라버렸다고, 세료자?"

"애를 태우지 않을 재간이 없었지요."

"어떻게 애를 태웠는데? 이야기해봐."

"그걸 어떻게 말로 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정말 그리움이 사무쳤지요."

"네가 나 때문에 죽을 정도였다는 걸 나는 왜 느낄 수 없었을까, 세료자? 그런 것은 느낄 수 있다고들 하던데."

세르게이는 침묵했다. (p.36)




아아, 도망쳐, 카테리나. 당신도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잖아, 세르게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러나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인간 본연의 성질은, 사랑에 빠졌을 때 특히 더하다. '왜 나는 느낄 수 없었을까?' 라고 의심하면서도 그녀는 세르게이가 하는 달콤한 말들에 행복해하고야 마는 것. 그 달콤함과 쾌락에 빠져 이제 그녀에게는 세르게이와의 시간만이 유일하게 즐거운 것, 유일하게 행복한 것이 되었다. 그것만이 지켜야할 전부였다. 



그러나 내게 소중한 것, 나를 살게 하는 것, 나를 지켜주는 것이 단 한가지라면 얼마나 위험한가. 세르게이가 바람둥이라는 소문 때문에 만나본 여자가 많을 거라는 것을 아는 카테리나는 그에게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받고싶다.



"잘 들어, 세료자! 다른 여자들이 어땠는지 나는 알 바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 단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물론 내가 너를 원하기도 했지만, 네가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고, 네 술수 때문이란 사실은 너도 알고 있겠지.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에, 세료자 네가 나를 배신하거나, 나 대신 다른 여자를 택한다면, 나는, 결코 살아서는 너와 헤어지지 않을 거야."

세르게이는 움찔 놀랐다.

"아, 카테리나 일보브나, 당신은 나의 밝은 빛입니다." (p.40)



아아, 죽음으로 사랑을 약속하지 마, 그에게만 매달리지마..



오로지 세르게이만 사랑하고 그와 있는 것만이 행복인 카테리나는, 그들의 관계를 눈치챈 시아버지를 죽이고, 남편을 죽이고... 그렇게 이제 둘만 남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먼 친척아이가 찾아온다. 남편의 돈은 모두 그 아이에게 갈 수도 있다. 사실 카테리나에게 남편의 돈 따위는 크게 신경쓸 일도 아니었고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에겐 세르게이만 중요했지. 그러나 세르게이에게 중요한 건 사실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돈이었음을...


"그런데 이런 게 정말 나에게 필요할까, 세료자?"

"사실 그것은 마님에게는, 별일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지가 않아요. 저는 당신을 너무나도 존경합니다. 그렇기 대문에 마님이 다시금 비열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대하게 된다면 내 가슴이 너무나도 아플 것입니다. 마님이야 마님 편한 대로 생각하겠지만, 나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결코 행복할 수가 없군요."

세르게이는 허구한 날 카레티나 리보브나에게 이렇게 떠들어댔다. 페쟈 랴민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그 까닭인즉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집안을 모든 상인 가문 중 가장 빼어나게 만들 방법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세르게이가 내리는 결론은 항상 같았다. 즉 페쟈가 없으면, 지노비 보리스이치가 실종된 지 아홉 달이 채 지나기 전에 태어나는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아이가 전 재산을 상속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p.67)



아아, 세르게이는 가스라이팅을 심하게 가하는 것이다. 걔가 없어야 우리가 더 행복해, 다 너를 위해서야... 그렇게 살인은 살인을 낳았고, 그러나 그들의 죄는 발각되어 그들은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한시라도 세르게이와 떨어질 수 없었던 카테리나는 간수에게 돈을 쥐어가며 잠시라도 세르게이를 만나려고 애쓰는데, 아아, 세르게이는, 이미 감옥에 갇혀버린 세르게이는, 더이상 카테리나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곧 비열한 자신을 드러낸다.

다른 여자 죄수들을 유혹하고 자신이 다른 여자와 잤음을, 사랑에 빠졌음을 카테리나에게 말한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새로운 애인 앞에서 카테리나를 모욕한다.




"야, 당신, 카테리나 일보브나."

다음 날 길을 가면서 세르게이가 말했다.

"당신, 명심해둬. 첫째, 나는 당신 남편 지노비 보리스이치가 아니라는 것, 둘째, 당신도 이제 부잣집 마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열 받지 말고, 잘 들어둬.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거래할 게 없다고." (p.93)



그러나 깊은 사랑에 빠진 카테리나는 저런 대우 앞에서도 그저 토라져있다가 그와 화해하기를 원한다. 왜지요, 카테리나? 왜때문에 그러지요? 이젠 그를 버려야 할 놈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아요? 어떻게 저런 말을 듣고도 화해하려고 하지요?



세르게이는 사람들 앞에서 카테리나를 무시하고 욕하고 놀림감 삼는다. 세르게이의 새로운 어린 연인 역시 마찬가지다. 카테리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얼마나 처참하게 자신을 망가뜨리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녀에게 이것은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사실보다 더 아픈 것. 그런데 왜 카테리나는 그런 세르게이가 아니라 세르게이의 연인을 복수의 대상으로 선택한걸까. 왜 그녀와 함께 ..




마침, 바람핀 남편이 아니라 그 상대 여자를 벌하는 아내가 나오는 다른 소설도 내가 바로 전에 읽었다. '루이스 어드리크'의 사랑의 묘약이 그것인데,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먼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큰일이 일어난 것만은 당연히 알았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할지 막막했지만 사실 생각할 것이 없기도 했다. 시내에 사는 메리 본이라는 여자가 자기 집 침대에서 남편이 라시엔족 여자와 뒹구는 것을 보고 했다는 행동이 떠올랐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벽에 걸린 칼을 들었고, 침실로 돌아가 찌르기 전에 심지어 숫돌에 갈 생각까지 했다. 몇 번 찔렀을 뿐인데 피가 흘렀다. 나는 라마르틴 집안의 피를 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그녀의 화장한 뻔뻔스러운 얼굴이 떠올랐고, 그 목을 당장 잘라버리고 싶었다.

사실은 화가 나지 않았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아기가 내 품에서 젖을 배불리 먹고 잠들어 팔이 묵직했는데도 느끼지 못했다. 아비 없이 어떻게 자식들을 키울까 고민이었다. 그리고 일라이를, 그가 어떻게 점점 말수가 줄어들다 숲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는지를 생각했다. 그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자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집에 갇혀 지내는 그는 겁먹은 짐승과 다름없었다.

나는 선 자리에서 불쑥 외쳤다. "남자란 다 그래!"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 의미도 없었다. (p.209-210)





'그녀가 없다면' 그가 내게로 돌아올까? 그가 그녀와 사랑에 빠져 나로부터 뒤돌아 서게 된건, '그녀가 있기'때문이었던 걸까? 그러므로 칼을 들고 향하는 게 '그녀'가 되어야 하는걸까?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닌가?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뿐만 아니라 뒤에 실린 소설 <쌈닭>까지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은 남자가 쓴 것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여자는 없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쌈닭에서는, 돈 없는 여자에게 매춘을 종용하는 여자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이 쓰여진 러시아의 공간적 시간적 배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왜, 여자에게 칼끝을 겨누는 여자, 여자를 매춘으로 모는 여자를 그려낸 것인지. 그가 딱히 여성혐오를 하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여성의 입으로 여성을 내세워 여성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고 보인다. 다만, 그가 여성이 아닌 이상 여성 혹은 여성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건 여성을 나쁘게 그려서가 아니다. 이야기는 삶과 마찬가지로 나쁜 남성이 그리고 나쁜 여성이 등장할 수 있다. 캐릭터는 다양하고, 개인으로 놓고 보자면 나 역시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기도 하니까. 한 여성에 대해 나쁜 면을 그렸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혐오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좋은 면만 가진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어떤 한계는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온전히 여성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아, 오늘 너무 폭발하듯 글을 써버렸네. 몇 개나 쓴거야... 그렇지만 지금 읽고 있는 《그래도 우리의 나날》에 대해서도 태클을 걸고 싶다... 그렇지만 그건 다 읽고 하기로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자, 이제 월급 루팡에서 벗어나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카레도 만들고, 고추장찌개도 끓여야겠다. 집에 가는 길에는 애호박과 양송이버섯을 사가야지. 아, 계량컵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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