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 50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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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고작 아홉살 아이에게 왜 이런 일을 겪게 합니까, 스티븐 킹 아저씨.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너무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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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0-1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줄로... 이 책은 안 읽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다락방 2018-10-12 23:41   좋아요 0 | URL
재미있지만 그보다 앞서 너무 고통스러워요 ㅠㅠ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지수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몸이 지치고 피곤했을 때 요가를 가 수업을 들었더니, 마치고 나서 개운해진 적이 있었다. 종종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푼다'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나는 아직 그 경지는 아니지만, 그게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떤 지치고 피곤한 날에는 운동을 하는데 동작도 영 엉망이고 더 힘들고 끝나고 나서 더 지쳤던 적도 있다. 여동생은 그런 내게 '너무 피곤할 때는 운동하는 게 오히려 나빠, 그 때는 쉬는 게 훨씬 좋아' 라고 했다. 그 뒤로는 내가 내 몸을 더 잘 살피게 됐다. 이 정도의 피곤에는 집에 가서 쉬자, 혹은 이정도의 피곤에는 운동을 가자. 아직 백프로의 정확도를 가진 건 아니지만, 엊그제에도 지치고 자꾸 잠이 쏟아져 운동 가지 말까, 하다가 다음 날이 쉬는날이라 계속 쉴 순 없어 갔더니, 와 너무 좋았던 거다. 하는 내내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게 내내 느껴지는 거다. '어? 몸에 힘이 막 넘치는 것 같아!' 분명 피곤했는데, 동작들이 기존보다 더 힘차게 되는 느낌. 이 느낌은 끝까지 이어졌고, 어쩌면 내가 그전보다 더 단단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바아사나 휴식자세로 마무리까지 하고나서 선생님께 가 '오늘 수업 정말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했다. 선생님은 어떤 점이 좋았냐 물으셨고, '굉장히 드문 경험인데, 온 몸에 막 힘이 생겨서 차오르는 게 느껴졌어요' 했다. 선생님은 중간중간에 메세지들이 섬세하게 파고들었던 모양이라 하셨다. 메세지? 잘 모르겠다. 메세지가 파고들어서 힘이? 그렇지만 확실히 기존보다 집중도 잘 됐고, 동작도 잘 됐다.



요가를 하다보면 자꾸 내 몸을 들여다보게 된다. 눈으로 본다는 게 아니라 느낀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여전히 많은 동작들을 못하고 실패해서 시무룩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 나는 이쪽 근육이 짧구나' 혹은 '이 동작은 왜 안될까' 하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다음 수업시간이면 '이 동작 잘 안됐었는데 오늘은 좀 될까?' 하며 다시 생각하게 되고, '어? 지난번보다 좀 더 잘되는데? 그러면 코어에 힘 좀 생겼나?' 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이 마주하는 동작에서 선생님이 몸의 이 부분에 집중하라고 콕 짚어줄 때는, '아, 그러고보니 몸의 이 부분에 한 번도 신경쓴 적이 없네?!' 하고 새삼 그 부분을 의식하게 된다.



운동은 힘을 길러주기 때문에 좋고 또 기분도 바꿔주기 때문에 좋기도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그동안 무심했던 육체에 대해 계속 내가 신경쓰고 집중하게 만든다는 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가쿠타 미쓰요' 역시 그렇다.



그녀는 현재 9년째 계속 달리고 있다.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주말이면 반드시 달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그리고 해마다 마라톤에 나간다. 마라톤에 나가기 전에 준비 과정들이 있고, 그리고 마라톤에 한 번씩 나갈 때마다 기록을 보면서 '이번엔 이렇게 했더니 이렇구나' 부터 '다음엔 이렇게 해야겠다'까지, 자연스레 몸 상태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마라톤이 반복되다 보니, 자신이 어느 시간대에 어느 지점에서 지치게 되는지도 안다. 아, 이 부분에서는 내가 그전에 어떻게 달렸어도 반드시 지친다, 그러니 나는 이거 신경쓰지 말고 열심히 달리자, 해서 '노력하는 건 너무 싫다'고 하면서도 기록을 단축해내고야 만다.



운동에 관한 에세이를 잡지에 써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쿠타 미쓰요는 운동을 '싫다'고 하면서도, 편집자 W 군이 '등산 해볼래요?', '야간 하이킹 할래요?', '산악 달리기 할래요?' 할 때마다, '할래 할래!' 하면서 기어코 도전한다. 그럴 때마다 또 새삼 자신의 몸과 새로운 운동을 대하는 설레임 또 두려움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느 운동을 제일 좋아하는지도 알게 된다. '트레일 러닝'을 할 때,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을 보는 게 너무 좋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너무 좋고, 마라톤을 할 때면 모르는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것도 큰 힘이 된다. 여전히 '싫다'고 하면서도 주말 달리기를 빼먹으면 어쩐지 불안해져서,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도 러닝화와 운동복을 꼭 챙겨가게 되었고, 그렇게 파리에서 파키스탄에서 달려보고나니 그 동네를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고.



트레일 레이스라는 산악 달리기도 신기했지만, 나는 가쿠타 미쓰요가 해본 운동중에 '볼더링'이 굉장히 하고 싶어졌다. 암벽등반과 비슷한 건데, 초보자들은 번호가 쓰여진 홀더를 잡고 왼손 오른손으로 잡아가며 움직이는 거라고 했다. 온 몸의 근육을 쓰는 것이고, 바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도 고소공포증이 느껴지며, 나는 결코 다음 번호로 손을 움직일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시달리는데. 와. 이걸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거다. 일단 요가를 좀 더 해보고나서 나중엔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쿠타 미쓰요가 도전한 운동중에는 당연히 요가도 있었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 요가에 대해 가진 편견에 대해 얘기하는데, 너무 공감이 되어서 웃었다.



사실 나는 이 체험수업 전에 요가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편견을 모두 가지고 잇었다.

긍정적 편견은 단순히 몸에 좋다기보다 몸 안쪽 깊숙한 곳까지 좋다는 것이다. 동양의학과 뭔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저 날씬해지거나 빵빵(가슴) 잘록(허리) 빵빵(엉덩이) 해지는 게 아니라, 수면 부족이나 변비, 생리불순이 해결되는 등의 효과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정적인 편견은 요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어떤 맹신 상태에 빠지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믿는 대상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주라든지 자신을 초월한 존재라든지 뉴에이지스러운 것으로, 그리하여 그것이 절정에 이르면 다들 채식주의자가 된다. 술도 안 마신다. 그러고는 어느새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술을 즐기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p.68)



하하하하. 나 역시 그랬다. 요가가 몸에 좋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은 명상이 주가 된 스트레칭 이라고 생각했다. 맹신 까지는 아니지만 채식주의자..가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요가를 한 지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이 전혀 없고, 여전히 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나는 나의 촉과 감을 믿는 사람..


지난 번 홍콩 여행때는 호텔 조식을 먹는데, 의식적으로 야채를 먹으려고 시도하다가 '아, 야채 먹기 지금 너무 싫어' 라고 말하고 야채를 안담아 왔더니 친구가 웃었더랬다. 먹지마, 하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 야채도 많이, 잘 먹는 사람인데, 요가를 일 년 넘게 해도 채식주의자가 되기는 커녕 가끔은 '아 야채먹기 싫어' 라고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요가를 하고난 뒤, 가쿠타 미쓰요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주와 관계를 맺지 않아도 괜찮은 모양이고, 고기를 끊지 않아도 상관없으며, 애주가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점투성이다. 안 할 이유가 있을까. (p.69)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운동을 시작할 때 제일 처음 하는 건 아마도 스포츠센터 등록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헬쓰장에 등록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다녔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가면 많이 간다고 할 정도로, 어떤 핑계를 대서도 가지 않았다. 어쩌다 가게 되면 런닝머신 위에서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보며 실실 걸었지. 그렇게 돈만 버리다가 여동생이 효과를 봤다는 '기체조'에도 등록했었는데, 비싼 등록비를 내고서도 역시 일주일에 한 번 갈까말까... 다녀오고나면 좋긴한데, 자꾸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웃게 시키는 게 영... 무엇보다 집에서 멀어 가기까지 큰 마음을 먹어야 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시작해볼까, 하고 등록하게 되는 게 헬쓰장이 아닐까.




내가 스포츠센터에 가는 빈도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40분 동안 러닝머신을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메뉴를 수행한다. 물론 복근을 단련시키는 메뉴도 팔이나 다리 운동보다 훨씬 강도 높게 짜여 있다. 신체 측정은 1년에 한 번 정도 하는데 여전히 복부지방은 표준보다 많고 근육량은 밑돈다.

이유는 단순한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복근운동으로는 어림없기 때문이다. 나는 복싱장에서도 복근운동을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의 복근운동으로도 역시 어림없다. 매일, 혹은 격일로 진지하게 몰두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매일, 혹은 격일로 집에서도 복근운동을 할 수 있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딱히 스포츠 센터에 다니지 않아도 괜찮지 않겠는가. 다들 그게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다면 적어도 스포츠센서테어'라는 생각으로 등록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라는 생각으로 스포츠센터에 등록했지만 '적어도'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나오지 않는다면 안 해도 마찬가지잖아 하며 발길을 끊게 된다. 이런 도식이 펼쳐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 데 어떨지.

나는 스포츠센터에 다니는 건 효과가 업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로는 안 된다고, 진심으로 몰두하지 않으면 결과라는 건 나오지 않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p.40-41)




남동생은 헬쓰장에 여러해 다니다가 결국 제 방에 운동기구를 들여놓고는 헬쓰장 등록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피곤한 날에도 집에서 기구로 운동을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반드시 스포츠센터에 다녀야 하는 건 아니었다. '강한 의지'가 있다면, 다니는 것도 열심히 다닐테도 집에서도 열심히 할테고, 그것든 반드시 어떤 효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었다.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명상과 스트레칭이 아닌, 근육 운동이어서 너무 놀랐더랬다. 한 시간동안 간신히 낑낑대고 아이고.. 신음 소리를 내며 마치고 나니 너무 힘이 들고 배가 고팠다. 덕분에 집에 가 늦은 밤에 양푼에다 밥을 비벼 먹었는데, 그렇게 몇 번 하고나니 '아, 이러다가 요가 돼지 되는거구나' 싶었던 거다. 하하하하. 가쿠타 미쓰요 역시 그 과정을 거쳤다.



내가 스포츠센터에 등록한 건 8년쯤 전이다. 그보다 조금 앞서 복싱장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밥과 맥주가 그전보다 훨씬 맛있어져서 4kg 쪘다. 안 돼, 이대로 복싱장을 계속 다니면 점점 비대해지겠어. (p.37-38)



가쿠다 미쓰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운동을 하면서 가쿠다 미쓰요는 즐기고 있다. 운동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 운동을 얕봤었다는 것도 순순히 시인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달라지는 걸 자세히 보고 느낀다. 그리고 '더' 좋아지고 싶어한다. 이대로 멈춰있는 게 아니라,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육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느끼면서 그리고 더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는 것. 내 몸에 대한 집중. 그것이 운동이 가져오는 가장 긍정적 효과가 아닐까 싶다. 가쿠다 미쓰요는 그런 효과를 이미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고, 꾸준히 마라톤을 나가면서 더 좋은 기록을 세워나간다. 새로운 운동에도 도전하면서. 그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면, 가쿠다 미쓰요가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언제까지고 계속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마라톤이 힘들어지는 지점에 와서, 완주까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할 때에도, 가쿠다 미쓰요는 '마치고나서 포장마차에서 맥주를 마시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린다. 그것이 자신에게 큰 보상이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노화가 찾아오면서 나는 예전보다 술 마시는 양이 줄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조금 줄이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조금 줄여야,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싶은 만큼 건강하게 마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므로 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들이쉬고 내쉬고 호흡하면서 팔다리를 쭉쭉 뻗는 일이, 팔이나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내는 일이, 그렇게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다가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리는 일이 몹시 만족스럽다. 요가를 마치면서 개운해지고 또 특별히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럴 때면 , '아아, 지금의 나에게 요가가 없었다면 나는 이 시간들을 도대체 어떻게 버텨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우울한 마음, 우울한 생각을 잠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몸을 움직여 근육을 쓰는 일, 땀을 내는 일은 중요하다. 가쿠다 미쓰요는 노력하기 싫다고 하고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하던 것에 있어서는 어디 한 번 계속해볼 참이다.




마지막으로, 가쿠다 미쓰요님. 실연은 40대에도 옵디다...


이렇게 소설 때문에 풀이 죽어 있을 때 실연을 했다. 실연 그 자체보다 연령의 불균형에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남의 일이라 여겼던 중년 연배에 부쩍부쩍 가까워져서 일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됐는데 실연 따위나 하고 있다니. 실연이란 젊은이의 특권 아닌가. 30대가 돼서도 실연하는 것인가. (p.9)



아, 진짜 마지막으로, 가쿠다 미쓰요는 보르도의 포도밭 달리기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한다. 코스를 완주할 때까지 수시로 와인도 주고 고기도 주고 굴도 주고... 그런 마라톤 대회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상당수의 사람이 와인 밭에 쑥쑥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 데는 깜짝 놀랐다. 가지런히 늘어선 나무들 사이에 쏙 숨어서 엉덩이를 이쪽으로 돌리고 볼일을 본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까지 안쪽으로 들어가서 쪼그려 앉아 있다. 굉한한데. 내가 도쿄 레스토랑이나 집에서 마시는 보르도 와인에는 1년에 한 번 이 사람들의…… 아니다, 생각을 말자. (p.258)



그건그렇고,

중년의 여성들이여, 운동합시다!!

운동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다정하게 지냅시다!!



대회에 몇 번쯤 나가다 보면 그 말의 무게가 정말로 실감난다. 나는 처음으로 나간 장거리 마라톤에서 타인, 특히 나이 많은 사람이나 몹시 뚱뚱한 사람에게 추월당할 때마다 경쟁심에 불타서 무심결에 속도를 높이고는 3km 지점에서 기권하고 싶을 정도로 지쳤었다. 적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경쟁심이다. (p.24)

그렇게 긴자의 상징 와코 앞을 지날 때 응원하러 와준 마라톤팀 사람들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에게 뛰어가 손을 흔들었다. 다들 나를 알아보고서 활짝 웃으며 저마다 힘내라고 말해줬다. 금방 지나쳐버렸지만 눈물이 날 것 같아 난처했다. 달리다가 아는 사람의 응원을 받는 게 이렇게까지 기쁠 줄은 몰랐다. (p.27)

친구나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곤 한다. 스포츠센터란 그만두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고. 실로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센터에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안 나가게 되어 "두 달 동안 한 번밖에 못 갔어. 한 시간 트레이닝하는 데 두 달 치 회비가……"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그런데 두 달 치 회비를 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반년 치 회비에 해당하는 고액 트레이닝을 시작하고, 그러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다들 그만둔다. (p.35)

대학시절부터 선배를 존경하긴 했지만, 왠지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라고도 느꼈다. 그건 순전히 선배는 운동부원 같은 사람인데 내가 그쪽 방면으로는 아예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배가 왜 희희낙락 몸을 움직이는지, 또 어째서 몸을 움직이는 것에 관해 끝도 없이 이야기하는지 나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다섯 시간이나 함께 달리다니, 인연이란 참 신기하구나.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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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2018-10-10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 운동하러 가기 싫어서 뭉그적 거리는데 가야 겠어요ㅠㅠ. 요가 하면서 손목 안아프신가요?저도 1년정도 했는데 손목과 팔이 너무 아파서 그만 뒀어요. 근육이 없고 코어로 힘써야 하는걸 팔로 하다보니.1년 넘게 해도 차투랑가 단다도 잘 못하겠더라구요

다락방 2018-10-10 09:51   좋아요 0 | URL
저는 어느 때에는 다운독 하기도 힘들만큼 손바닥이 아프더라고요. 코어로 힘써야 하는데 자꾸 손에다 힘을 줘서 그런것 같았어요. 그런데 자연스레 나아졌고, 그러다가 또 언젠가 손바닥이 아프긴 했었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요. 저도 차투랑가에서 업독으로 이어지는 건 여전히 잘 못하는데 무릎 대고 하는 건 좀 힘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머리서기 해내고 싶은데 머리를 바닥에 대기만 해도 머리가 너무 아파요. 그래서 이건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일단 기본적인 동작들만이라도 잘 해내자 싶어요. 아마 체중감량을 하면 더 잘될 것 같아요.

헤헷. 운동 잘 다녀오세요!!

붕붕툐툐 2018-10-1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나 공감가는 글이네요~ 내 몸을 바라보는 일이 요가를 하며 더 선명해졌어요~

다락방 2018-10-10 09:52   좋아요 1 | URL
븅븅툐툐님도 요가 하시는 군요! 저는 이렇게 자꾸 제 몸을 들여다보는 일이 너무 좋더라고요. 안쓰던 신체의 부분을 의식하는 일이 너무 좋아요. 의식하다보면 그 부분을 자꾸 움직이게 되잖아요. 요즘 그래서 사무실에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위로 쭉 뻗거나 뒤로 뻗거나 하면서 팔을 움직여주고 있어요. ^_____^

syo 2018-10-10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할까??

다락방 2018-10-10 10:13   좋아요 0 | URL
헤이, 컴온!!

무해한모리군 2018-10-1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어제 아이 목욕시키고 들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아픈 중인데 이글을 보니 스트레칭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저도 할까...

다락방 2018-10-10 14:00   좋아요 0 | URL
모리님, 하세요. 하십시다. 하다못해 매일 스트레칭만 해줘도 몸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아요. 가급적이면 일주일에 두번 이라도 근육운동 하면 더 좋을 것 같고요! 운동도 즐기고 먹고 마시는 것도 즐기면서 건강해져요, 우리!

단발머리 2018-10-1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세 문장은 가슴에 파고드네요~~~
운동해야 되는데, 해야되는데, 해야되는뎅.... ㅠㅠ

다락방 2018-10-10 14:0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요가중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요즘엔 안하시나요?
얼른 중년 운동의 세계로 오세요~~~ ㅎㅎ

비공개 2018-10-1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빌렸다가 몇장읽고 반납해 버렸는데 다시 빌릴까요? 아니 그시간에 차라리 운동을 해야겠죠. ㅋ 올해는 이미 글렀고 내년부터? ㅋㅋ 마녀체력 읽고 그 다음날 헬스장이라도 등록하려고 그랬는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겨울날씨네요.. 우리 삼겹살이나 먹어요 ㅋㅋㅋ

다락방 2018-10-11 16:52   좋아요 0 | URL
이 책 읽고나면 운동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게다가 팔랑팔랑 잘도 넘어가서 시간도 많이 안뺏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일단 우리는 밀린 삼겹살이나 먹읍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나 2018-10-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는 것 먹으려고 전 운동합니다~~

다락방 2018-10-12 14:03   좋아요 0 | URL
먹는거든 마시는 거든 여행이든, 그게 뭐든 좋아하는 걸 계속 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우선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운동을 계속하는 게 방법인 듯 합니다. 저는 요가 재등록 앞두고 지금 고민중이에요. 계속할까, 좀 쉬다 할까, 그만둘까(는 사실 별로 예정에 없긴 해요).....
 
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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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브리얼 제빈'은 젊은 시절 '모니카 르윈스키' 를 '젊고 야망있고 이기적인 여자'로 생각했다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나니, 르윈스키가 아닌, 그들 사이의 권력 관계에 집중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것이 이 책, [비바, 제인]을 쓰게된 동기이자 이유였다.


' 르윈스키가 내 딸이라면.. ' (기사링크)



스무살 '아비바'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유명 정치인의 선거캠프에 들어가게 되는데, 잘생기고 젠틀한 유명 정치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니, 그것이 '사랑에 빠진 건 아니'라는 건, 사실 아비바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엄마에게 말할 때 그것은 반드시 '사랑이어야만' 했다. 아버지뻘의 나이에 유부남인 정치인이 스무살 인턴과 섹스를 하는데, 하아- 그 섹스에는 한 번도 성기 삽입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비바와 정치인의 이 관계는 정치인의 쾌락을 위한 것이었다.


이 일이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그녀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자신의 어리석은 과거에 있었던 일' 쯤으로 여길 수 있었겠지만, 그러나 이 일은 스캔들이 되어 세상에 터지고 만다. 이 일이 바깥으로 터지기 직전, 정치인이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알고' 그녀를 '이용'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살 그녀에게,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렇게 아비바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닐 낙인이 찍힌다. 다른 곳에 취직을 할 수도 없고 학교에 갈 수도 없다. 덩달아 아비바의 엄마 까지도 교장으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다. 아비바, 그 이름만 구글에 넣으면 그녀가 어떤 여자였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어떻게 살 수 잇었을까. 고작 이십대 초반인데, 앞으로 먹고 사는 일을 대체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왜 남자 정치인과 여자 비서와의 스캔들에서 낙인은 여자 비서에게만 찍힐까. 왜 섹스동영상은 여자에겐 협박이 되고 남자에겐 무기가 될까? 왜 둘이었는데 한 쪽에게는 앞으로의 삶을 끝장내고 한 쪽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까? 이미 끝장나버린 것 같은 이 삶을, 아비바는 어떻게 견뎌나가야 할까? 먼 데로 가서 이름을 바꾸고 살아도 어떻게든 누군가는 알아낼텐데. 남은 삶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채 길기만 한 건 아닐까. 




그러나 아비바는 '살아간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하기'

아비바가 내게 알려주었다.



당신은 그녀에게 다가가 조언을 구했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 당신이 말했다.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그녀가 말했다. (p.395)




그리고 아비바 곁에는 그것이 아비바 잘못이 아님을 아는, 아비바의 싸움을 응원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엠베스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따랐다. 끊어야 했지만, 커피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녀가 보기에, 살아가는 것은 나쁜 습관을 들이는 과정이다. 죽어가는 것은 그것들을 없애는 과정이다. 죽음은 습관이 없는 땅이었다. 커피도 없고.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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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0-0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작가가 처음인데 링크해 주신곳에서 사진 보고 놀랐어요. 한국계 작가군요.
영어는 할 줄 아니?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을 작가의 어린시절도 생각해보고요.
한국에서는 항상 현재 진행중인 섹스동영상 사건도 생각났어요.
잘못했던 남자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낙인 찍인 여자들은 설 곳이 없는 이 비정상을,
아비바는 이겨내네요. 멋지네요, 진심이요....

다락방 2018-10-10 07:59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작가의 책이 세 번째거든요. 그런데 이 작가가 한국계라는 것은 저도 이번에 이 기사 읽고 처음 알았어요. 먼저 읽었던 작가의 책, [섬에 있는 서점]도 따뜻하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읽다보니 작가가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작가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르윈스키를 이기적인 여자로 생각했다가 이제는 그것이 권력관계에서 시작된거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지점,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냈다는 것도 그렇고요.

아비바처럼 잘 이겨내기를 바라지만, 그렇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을 거예요. 어린 딸이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에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정말이지 더 단단해졌음 좋겠어요.
 
룸살롱 공화국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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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구체적 숫자와 금액을 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정치인,판사,검사,경찰,재벌들을 비롯한 남자들의 역겨운 룸살롱 문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더럽다. 나는 이 더러운 한남민국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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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10-10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섣불리 ‘읽고 싶어요’를 누르기가 어렵네요... 저는 아직도 외면하고 싶은가 봐요...ㅠㅠ

다락방 2018-10-10 08:57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내가 이걸 왜 읽고있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휴... ㅠㅠ
 
















"촌스럽게 들리는 거 알아요." 마니가 조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장면 같았어요. 방이 어두워지고 유일한 스포트라이트가 바로 그이를 비추는 거죠.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순간 모든 게 느려지는 것 같았고, 그이의 아름다운 입술이 열렸죠."

"진흙탕에 한 바퀴 굴러보고 싶지 않아요?" 대니얼의 오스트레일리아 억양에 마니의 자궁이 찌르르 떨렸다.

"그 귀여운 억양은 어디서 주웠어요?" 마니가 물었다.

"시드니에서요."

"젠장,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 가야겠네."

토머스 로건이 지하실에서 나와 두 사람을 소개해줬다. 나중에 마니는 주방을 청소하다 말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 남자가 바로 내가 결혼할 남자예요, 아빠."

그러자 아버지가 대꾸했다. "네가 그 웃음에 반할 줄 내 진작에 알아봤지." (p.53)




그렇게 마니는 대니얼과 결혼했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한 남자를 향해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것.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 그 둘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결혼할 남자에요, 라는 말은 그저 말로 끝나지 않고 그들은 결혼에 이르렀다. 반했고 자주 웃었고 더 자주 섹스했지만, 결혼한 후에 남자는 지나치게 자신을 과대평가했고 마니를 무시하곤 했다. 대니얼은 직장을 잃었고 모아둔 돈을 도박으로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졌고 그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카드를 쓴 흔적도 어딘가에 나타난 흔적도 그렇다고 시체가 발견된 것도 아니었다. 대니얼이 사라진 지 13개월째, 그가 도박빚을 졌다는 남자가 찾아와 그녀에게 빚을 갚으라고 협박한다. 마니는 정말 돈이 없었다. 최근에는 텔레비젼까지 팔아야 했다. 아이들 학교 준비물도 사줘야했고 먹을 것도 사야했는데, 남편이 죽은 게 아니라 사라졌기 때문에 남편의 보험금에 손을 댈 수도 없고 예금에 손을 댈 수도 없어서, 그야말로 간신히 먹고 살아야 했던 거다. 그런데 빚이라니. 그걸 어떻게 갚는담.


남자는 마니의 몸을 보고는 그의 포주가 되겠다 한다. 그렇게 한 건을 성사시키면 그가 수수료를 가져가는 식이다. 그렇게 그녀에게 빚을 갚기를 명령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 싫다. 남편이 사라진 다음에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육아까지 책임져야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그런 삶을 봐야하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다. 게다가 남편이 진 빚을 갚기 위해 몸까지 팔아야 하다니. 이 책을 20쪽 읽었을 때부터 벌써 싫었다. 그러나 내가 조 올로클린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참고 읽었다.



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던 남자가 여자에게 빚만 남겨주고 사라지는 남자가 됐을까. 왜 매력적인 미소를 가진 남자가, 그래서 결혼하면 행복을 줄거라고 생각한 남자가 삶의 고통을 안겨주고 사라진걸까. 뭐가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됐기에 행복을 상상했건만 고통이 찾아드는가. 남편이 사라지고, 여기저기 조금씩 돈을 빌리던 것도 이제 더이상 할 수가 없고, 둘째는 몸이 아파 계속 병원을 데리고 다녀야 하고, 저녁에는 몸을 팔아야 하고, 집주인은 집세를 독촉하고, 아래층 남자는 '네가 몸을 파는 걸 딸아이에게 말하겠다'며 섹스를 강요하고.. 나는 대체 이 여자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좋은 소식은 하나도 없고 어디를 돌아봐도 우울하기만 한데..그런데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싶었다. 도망치고 싶지 않을까, 죽고 싶지 않을까,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지 않을까,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것- 아이들과 자신의 자존감-을 다 놓고 싶지 않을까. 대체 왜,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 한 눈에 반하게 만들었던 남자가 도박 빚을 지고 그녀를 수렁에 던져넣었나, 왜 자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사람이 바람을 피웠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걸까.



그녀를 둘러싼 비극은 하나가 아니어서, 하나의 절망 뒤에 또 하나의 비극이 찾아오는 식이어서 읽노라면 지치게 되는데, 그런 그녀가 심리 상담을 받으러 찾아가는 사람이 바로 조 올로클린이다.



조 올로클린은 심리학 교수이며 상담사라 그의 직업 특성상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를 맞닥뜨리게 되고, 그렇게 경찰 수사에 협력해야 할 일도 더러 생긴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 가족들과 단란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경찰은 가끔 밤에도 불러가고 그가 범죄에 노출되기도 해, 조 의 아내는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조와 별거중이다. 조는 아내와 별거한 지 몇 년째 되어가지만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다시 아내와 가족이 되고 싶다. 그러나 아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이 일, 이렇게 다른 사건이나 범죄에 자꾸 끼어들게 되는 일을 스스로도 어쩔 수가 없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걸 멈출 수가 없어,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저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만이 가득한 상황. 이도저도 못하면서 계속 아내를 바라보는 남자. 별거중인 그에게 가끔 다가오는 여자들이 있고, 그렇게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 데이트도 해보았지만, 지속적인 관계가 될 순 없었다. 그는 아내를 여전히 사랑했으니까.




아내는 웃음을 멈췄을 때 조를 사랑하는 것도 멈췄다.

줄리안이 전화를 건네받는다.

"찰리가 런던에서 즐거웠다더라."

"잘됐네."

"당신이 빈센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며."

"그랬지."

짦은 침묵이 흐른다. "당신이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고 찰리가 그러던데."

"누구?"

"이웃 사람."

"아."

"아주 예쁘다더라."

"유부녀고 내 환자야."

침묵이 흐른다. 말이 너무 급하게 나왔다.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남편이 실종됐어. 도와주려는 중이야."

"착하네." 이제 민망해진 줄리안이 말한다. "찰리가 그런 말은 안하기에. 나는 당신이 누군가를 찾았나 생각했지."

"누군가를 찾긴 했어. 그 여자하고 24년 전에 결혼했지."

줄리안이 한숨을 쉰다. "내 말뜻은 그게 아니잖아."

"어쩌면 그런 계약을 맺으면 어떨까 싶어." 조가 말한다.

"어떤 계약?"

"우리 둘 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다시 합치기로."

"기간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다음 주말."

줄리안이 소리 내 웃는다. 조는 그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다. 예전에는 그거면 충분했다. 조는 결코 최고의 미남이나 최고의 부자나 최고의 연인이 아니었지만, 늘 줄리안을 웃게 만들 수 있었다. (p.244-245)



나는 이런 부분을 읽기 위해 조 올로클린 시리즈를 읽는다. 조의 마음에 간절히 아내와 다시 합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리고 여전히 아내를 웃게 하고 싶어서, 그래서 애쓰는 사람. 아직도 아내의 웃음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은 남자. 조는 줄리안에게 당신이 내가 찾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왜 줄리안은 조에게 다른 사람을 찾은 줄 알았다고 말하는걸까? 내가 찾은 사람은 당신인데, 왜 나에게 누굴 찾았냐고 당신이 묻는 거야? 나는 당신을 찾았는데?



"우리 둘 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다시 합치기로."

"기간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다음 주말."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나는 당장이라도 써먹고 싶어졌다. 우리 둘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다시 합치기로 하자고. 그 기간을 어느정도로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음 주말이라고 대답하는 거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 설사 상대가 응해도 다음 주말이라는 시간동안 뭐든 생길 수 있다. 무슨 일이든. 그리고 누군가든 나타날 수가 있지. 최대한 짧게 잡으려고 한거지만, 그 짧은 기간 내에 무언가가 일어난다면.



아주 오래전에, 친구가 소개팅을 했고, 소개팅한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고. 평일에 소개팅을 했던 친구는 그 주말, 나를 비롯한 친구들과 주말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고, 차 안에서 그 남자와 다정하게 전화통화를 했다. 잘 다녀오겠노라고. 그리고 그 주말을 보내고난 후 남자는 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했다. 주말에 인라인 타러 갔다가 여자를 만났다고, 그 여자랑 다정한 관계가 될 것 같다고..


친구가 소개팅을 하고 그 남자와 만나보기로 하고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기 까지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친구는 남자를 만났고, 조금 설레었고, 조금 기대했고, 그리고 만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조 올로클린은 줄리안에게 '다음 주말'이라고 말했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줄리안은 출근하다가, 까페에 갔다가, 식사하러 갔다가, 거리를 걷다가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는 '다음 주말은 얼마 안남았다'고 잔뜩 기대하게 될것이고, 그리고 그 다음주말동안 조 올로클린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대로일 것이다. 어쩌면 그가 마주하게 될 것은, 그 짧은 시간동안 누군가를 만났다, 찾았다는 줄리안의 말일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잠깐 사귀던 남자에게 이별을 고한 적이 있다. 그는 몇 번이고 내게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 말했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내가 자신에게 돌아올 때까지, 3개월이고 3년이고 기다리겠노라 했다. 그러나 그는 3주도 안되어 다른 여자를 사귀었다.


시간은 각자에게 다른 속도로 흐른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나의 일주일이, 나의 3개월이, 나의 10개월이 모두에게 같은 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늘 그대로인데, 그대로의 일상 그대로의 마음으로 한결같이 이제나 저제나 일주일을 보내고 3개월을 보내고 10개월을 보내는데, 이 시간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많은 것들이 변하고 또 이뤄지고 또 무너지기도 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10개월은 묵묵히 견디고 일상을 받아들이며 하루 하루 쌓아가는,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모든 것들이 변하고 새로이 시작될 수 있다.


나는 조 올로클린이 '다음 주말'이라고 말한 게 너무 따뜻해서,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서, 그래서 아내가 웃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렇지만 그 다음 주말이라는 것이 저 대화 속에서 농담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조의 바람대로 되기에는, 그가 아무리 짧은 시간으로 잡았다 해도, 아내에게는 무엇이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시간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슬프다. 조는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 시간은 그대로의 시간이며, 기다리기엔 길지만, 그래도 줄리안이 내게 올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조의 시간은 '아내에게만' 열려있기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시간이지만, 그러나 아내에게는 '모두에게 열려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 아주 많은 것들이 다음주말이 오기 전까지 일어날 수 있다.


이게 나의 다음 주말과 당신의 다음 주말이 다른 이유다.

이게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의 10개월과 모두에게 열려있는 사람의 10개월이 다른 이유다.

한 사람에게만 열려있는 사람에게는 하루나 3개월이나 1년이 같지만,

모두에게 열려있는 사람에게는 그 시간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도 다양하게 채워질 수 있으니까.




조 올로클린은 친구가 많지 않다. 형사에서 은퇴한 '루이츠'가 그의 가장 친한친구이며 유일한 친구이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고 심리학 박사이며 상담사이고, 아내와 딸들을 사랑한다. 그가 상담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다양하고, 경찰에게 불려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때도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러나 그가 마음을 열고 곁을 준 사람은 아내와, 딸들과, 루이츠가 전부이다. 만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마음을 주는 곳이 많다는 것은 아니니까. 



어제 이 책을 자기전에 펴들고서는 기어코 다 읽고자고야 말았다. 책 속의 사건이 너무 싫었는데, 그러나 이렇게 조의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하염없이 무너져 버려서, 자꾸만 이 사람 편을 들고 있어서, 너무 마음이 쓰여서, 나는 계속 조 올로클린을 읽을 것 같다. 조 올로클린은 결국 어떻게 될까? 아내의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어제 새벽까지 읽고 자느라 오늘 아침 출근길에 너무 피곤했는데, 그러면서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라 해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소설을 계속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이야기, 즉, 자신이 읽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굳건하게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가 있어, 그것을 소설속에서 찾으려는 게 아닐까. 그러나 소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글이라, '그래 바로 이런 거야' 하는 부분들을 찾아내 즐거울 때도 있지만, 그것이 백프로 흡족하진 않다. 내가 원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는, 결국 나만의 것일 테니까. 이 소설에서 이만큼, 저 소설에서 저만큼 내가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찾아내다가, 그렇게 읽고 또 읽으면서 찾아내다가, 종국에는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내가 써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들은 결국 '내가 가장 읽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써야한다'고 생각해서 소설을 쓰게된 건 아닐까?



오늘 조 올로클린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의 '다음 주말'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가장 원하는 결말을 내기 위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겠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설을 쓰겠다는 건 아니지만...



조 올로클린, 지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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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8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소설쓰심되죠~소설전도사이신데 ㅋ다락방님 책 두권 희망도서로 빌려 대출할려는데 연체먹어 기다리는데 ...ㅠㅠ즐건 하루 되십시오!

다락방 2018-10-08 10:15   좋아요 1 | URL
아악 카알벨루치님.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뜨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디 재미있게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