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게 들리는 거 알아요." 마니가 조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장면 같았어요. 방이 어두워지고 유일한 스포트라이트가 바로 그이를 비추는 거죠.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순간 모든 게 느려지는 것 같았고, 그이의 아름다운 입술이 열렸죠."

"진흙탕에 한 바퀴 굴러보고 싶지 않아요?" 대니얼의 오스트레일리아 억양에 마니의 자궁이 찌르르 떨렸다.

"그 귀여운 억양은 어디서 주웠어요?" 마니가 물었다.

"시드니에서요."

"젠장,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 가야겠네."

토머스 로건이 지하실에서 나와 두 사람을 소개해줬다. 나중에 마니는 주방을 청소하다 말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 남자가 바로 내가 결혼할 남자예요, 아빠."

그러자 아버지가 대꾸했다. "네가 그 웃음에 반할 줄 내 진작에 알아봤지." (p.53)




그렇게 마니는 대니얼과 결혼했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한 남자를 향해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것.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 그 둘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결혼할 남자에요, 라는 말은 그저 말로 끝나지 않고 그들은 결혼에 이르렀다. 반했고 자주 웃었고 더 자주 섹스했지만, 결혼한 후에 남자는 지나치게 자신을 과대평가했고 마니를 무시하곤 했다. 대니얼은 직장을 잃었고 모아둔 돈을 도박으로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졌고 그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카드를 쓴 흔적도 어딘가에 나타난 흔적도 그렇다고 시체가 발견된 것도 아니었다. 대니얼이 사라진 지 13개월째, 그가 도박빚을 졌다는 남자가 찾아와 그녀에게 빚을 갚으라고 협박한다. 마니는 정말 돈이 없었다. 최근에는 텔레비젼까지 팔아야 했다. 아이들 학교 준비물도 사줘야했고 먹을 것도 사야했는데, 남편이 죽은 게 아니라 사라졌기 때문에 남편의 보험금에 손을 댈 수도 없고 예금에 손을 댈 수도 없어서, 그야말로 간신히 먹고 살아야 했던 거다. 그런데 빚이라니. 그걸 어떻게 갚는담.


남자는 마니의 몸을 보고는 그의 포주가 되겠다 한다. 그렇게 한 건을 성사시키면 그가 수수료를 가져가는 식이다. 그렇게 그녀에게 빚을 갚기를 명령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 싫다. 남편이 사라진 다음에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육아까지 책임져야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그런 삶을 봐야하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다. 게다가 남편이 진 빚을 갚기 위해 몸까지 팔아야 하다니. 이 책을 20쪽 읽었을 때부터 벌써 싫었다. 그러나 내가 조 올로클린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참고 읽었다.



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던 남자가 여자에게 빚만 남겨주고 사라지는 남자가 됐을까. 왜 매력적인 미소를 가진 남자가, 그래서 결혼하면 행복을 줄거라고 생각한 남자가 삶의 고통을 안겨주고 사라진걸까. 뭐가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됐기에 행복을 상상했건만 고통이 찾아드는가. 남편이 사라지고, 여기저기 조금씩 돈을 빌리던 것도 이제 더이상 할 수가 없고, 둘째는 몸이 아파 계속 병원을 데리고 다녀야 하고, 저녁에는 몸을 팔아야 하고, 집주인은 집세를 독촉하고, 아래층 남자는 '네가 몸을 파는 걸 딸아이에게 말하겠다'며 섹스를 강요하고.. 나는 대체 이 여자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좋은 소식은 하나도 없고 어디를 돌아봐도 우울하기만 한데..그런데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싶었다. 도망치고 싶지 않을까, 죽고 싶지 않을까,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지 않을까,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것- 아이들과 자신의 자존감-을 다 놓고 싶지 않을까. 대체 왜,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 한 눈에 반하게 만들었던 남자가 도박 빚을 지고 그녀를 수렁에 던져넣었나, 왜 자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사람이 바람을 피웠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걸까.



그녀를 둘러싼 비극은 하나가 아니어서, 하나의 절망 뒤에 또 하나의 비극이 찾아오는 식이어서 읽노라면 지치게 되는데, 그런 그녀가 심리 상담을 받으러 찾아가는 사람이 바로 조 올로클린이다.



조 올로클린은 심리학 교수이며 상담사라 그의 직업 특성상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를 맞닥뜨리게 되고, 그렇게 경찰 수사에 협력해야 할 일도 더러 생긴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 가족들과 단란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경찰은 가끔 밤에도 불러가고 그가 범죄에 노출되기도 해, 조 의 아내는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조와 별거중이다. 조는 아내와 별거한 지 몇 년째 되어가지만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다시 아내와 가족이 되고 싶다. 그러나 아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이 일, 이렇게 다른 사건이나 범죄에 자꾸 끼어들게 되는 일을 스스로도 어쩔 수가 없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걸 멈출 수가 없어,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저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만이 가득한 상황. 이도저도 못하면서 계속 아내를 바라보는 남자. 별거중인 그에게 가끔 다가오는 여자들이 있고, 그렇게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 데이트도 해보았지만, 지속적인 관계가 될 순 없었다. 그는 아내를 여전히 사랑했으니까.




아내는 웃음을 멈췄을 때 조를 사랑하는 것도 멈췄다.

줄리안이 전화를 건네받는다.

"찰리가 런던에서 즐거웠다더라."

"잘됐네."

"당신이 빈센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며."

"그랬지."

짦은 침묵이 흐른다. "당신이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고 찰리가 그러던데."

"누구?"

"이웃 사람."

"아."

"아주 예쁘다더라."

"유부녀고 내 환자야."

침묵이 흐른다. 말이 너무 급하게 나왔다.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남편이 실종됐어. 도와주려는 중이야."

"착하네." 이제 민망해진 줄리안이 말한다. "찰리가 그런 말은 안하기에. 나는 당신이 누군가를 찾았나 생각했지."

"누군가를 찾긴 했어. 그 여자하고 24년 전에 결혼했지."

줄리안이 한숨을 쉰다. "내 말뜻은 그게 아니잖아."

"어쩌면 그런 계약을 맺으면 어떨까 싶어." 조가 말한다.

"어떤 계약?"

"우리 둘 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다시 합치기로."

"기간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다음 주말."

줄리안이 소리 내 웃는다. 조는 그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다. 예전에는 그거면 충분했다. 조는 결코 최고의 미남이나 최고의 부자나 최고의 연인이 아니었지만, 늘 줄리안을 웃게 만들 수 있었다. (p.244-245)



나는 이런 부분을 읽기 위해 조 올로클린 시리즈를 읽는다. 조의 마음에 간절히 아내와 다시 합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리고 여전히 아내를 웃게 하고 싶어서, 그래서 애쓰는 사람. 아직도 아내의 웃음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은 남자. 조는 줄리안에게 당신이 내가 찾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왜 줄리안은 조에게 다른 사람을 찾은 줄 알았다고 말하는걸까? 내가 찾은 사람은 당신인데, 왜 나에게 누굴 찾았냐고 당신이 묻는 거야? 나는 당신을 찾았는데?



"우리 둘 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다시 합치기로."

"기간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다음 주말."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나는 당장이라도 써먹고 싶어졌다. 우리 둘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다시 합치기로 하자고. 그 기간을 어느정도로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음 주말이라고 대답하는 거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 설사 상대가 응해도 다음 주말이라는 시간동안 뭐든 생길 수 있다. 무슨 일이든. 그리고 누군가든 나타날 수가 있지. 최대한 짧게 잡으려고 한거지만, 그 짧은 기간 내에 무언가가 일어난다면.



아주 오래전에, 친구가 소개팅을 했고, 소개팅한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고. 평일에 소개팅을 했던 친구는 그 주말, 나를 비롯한 친구들과 주말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고, 차 안에서 그 남자와 다정하게 전화통화를 했다. 잘 다녀오겠노라고. 그리고 그 주말을 보내고난 후 남자는 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했다. 주말에 인라인 타러 갔다가 여자를 만났다고, 그 여자랑 다정한 관계가 될 것 같다고..


친구가 소개팅을 하고 그 남자와 만나보기로 하고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기 까지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친구는 남자를 만났고, 조금 설레었고, 조금 기대했고, 그리고 만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조 올로클린은 줄리안에게 '다음 주말'이라고 말했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줄리안은 출근하다가, 까페에 갔다가, 식사하러 갔다가, 거리를 걷다가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는 '다음 주말은 얼마 안남았다'고 잔뜩 기대하게 될것이고, 그리고 그 다음주말동안 조 올로클린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대로일 것이다. 어쩌면 그가 마주하게 될 것은, 그 짧은 시간동안 누군가를 만났다, 찾았다는 줄리안의 말일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잠깐 사귀던 남자에게 이별을 고한 적이 있다. 그는 몇 번이고 내게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 말했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내가 자신에게 돌아올 때까지, 3개월이고 3년이고 기다리겠노라 했다. 그러나 그는 3주도 안되어 다른 여자를 사귀었다.


시간은 각자에게 다른 속도로 흐른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나의 일주일이, 나의 3개월이, 나의 10개월이 모두에게 같은 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늘 그대로인데, 그대로의 일상 그대로의 마음으로 한결같이 이제나 저제나 일주일을 보내고 3개월을 보내고 10개월을 보내는데, 이 시간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많은 것들이 변하고 또 이뤄지고 또 무너지기도 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10개월은 묵묵히 견디고 일상을 받아들이며 하루 하루 쌓아가는,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모든 것들이 변하고 새로이 시작될 수 있다.


나는 조 올로클린이 '다음 주말'이라고 말한 게 너무 따뜻해서,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서, 그래서 아내가 웃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렇지만 그 다음 주말이라는 것이 저 대화 속에서 농담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조의 바람대로 되기에는, 그가 아무리 짧은 시간으로 잡았다 해도, 아내에게는 무엇이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시간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슬프다. 조는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 시간은 그대로의 시간이며, 기다리기엔 길지만, 그래도 줄리안이 내게 올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조의 시간은 '아내에게만' 열려있기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시간이지만, 그러나 아내에게는 '모두에게 열려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 아주 많은 것들이 다음주말이 오기 전까지 일어날 수 있다.


이게 나의 다음 주말과 당신의 다음 주말이 다른 이유다.

이게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의 10개월과 모두에게 열려있는 사람의 10개월이 다른 이유다.

한 사람에게만 열려있는 사람에게는 하루나 3개월이나 1년이 같지만,

모두에게 열려있는 사람에게는 그 시간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도 다양하게 채워질 수 있으니까.




조 올로클린은 친구가 많지 않다. 형사에서 은퇴한 '루이츠'가 그의 가장 친한친구이며 유일한 친구이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고 심리학 박사이며 상담사이고, 아내와 딸들을 사랑한다. 그가 상담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다양하고, 경찰에게 불려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때도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러나 그가 마음을 열고 곁을 준 사람은 아내와, 딸들과, 루이츠가 전부이다. 만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마음을 주는 곳이 많다는 것은 아니니까. 



어제 이 책을 자기전에 펴들고서는 기어코 다 읽고자고야 말았다. 책 속의 사건이 너무 싫었는데, 그러나 이렇게 조의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하염없이 무너져 버려서, 자꾸만 이 사람 편을 들고 있어서, 너무 마음이 쓰여서, 나는 계속 조 올로클린을 읽을 것 같다. 조 올로클린은 결국 어떻게 될까? 아내의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어제 새벽까지 읽고 자느라 오늘 아침 출근길에 너무 피곤했는데, 그러면서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라 해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소설을 계속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이야기, 즉, 자신이 읽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굳건하게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가 있어, 그것을 소설속에서 찾으려는 게 아닐까. 그러나 소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글이라, '그래 바로 이런 거야' 하는 부분들을 찾아내 즐거울 때도 있지만, 그것이 백프로 흡족하진 않다. 내가 원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는, 결국 나만의 것일 테니까. 이 소설에서 이만큼, 저 소설에서 저만큼 내가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찾아내다가, 그렇게 읽고 또 읽으면서 찾아내다가, 종국에는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내가 써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들은 결국 '내가 가장 읽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써야한다'고 생각해서 소설을 쓰게된 건 아닐까?



오늘 조 올로클린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의 '다음 주말'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가장 원하는 결말을 내기 위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겠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설을 쓰겠다는 건 아니지만...



조 올로클린, 지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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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8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소설쓰심되죠~소설전도사이신데 ㅋ다락방님 책 두권 희망도서로 빌려 대출할려는데 연체먹어 기다리는데 ...ㅠㅠ즐건 하루 되십시오!

다락방 2018-10-08 10:15   좋아요 1 | URL
아악 카알벨루치님.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뜨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디 재미있게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