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부터 백래시, 페미사이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캘리번과 마녀, 혁명의 영점, 그리고 3월 현재 가부장제의 창조까지. 와, 같이 읽는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책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들 읽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죠. 읽다가 몇 번이나 분노해야 했고 빡쳐야 했고 또 어려워서 눈알이 팽팽 돌기도 했고...


















해서, 4월에는 좀 쉬어가는 의미로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여자 전쟁》















사실, 저도 읽지 않은 책이라 '쉬어가는' 게 가능한 책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의 부제가 <잔혹한 세상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여성을 기록하다> 인만큼, 희망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골라봤습니다. 자, 우리 남은 3월에는 가부장제 뿌셔뿌셔 하고 다가오는 4월에는 벚꽃 구경하다가 여자 전쟁 읽고 그럽시다.



여성학 책에 새로 나온 건 뭐가 있나, 어떤 책이 좋을까 살펴봤더니, 우앙, 읽고 싶게 만드는 여러 책이 나왔네요.




















특히 위의 책들중 《재생산에 관하여》는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에 관한 것이라니. 가부장제의 창조와 함께 가도 좋을 것 같아요.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는 백래시, 코르셋 과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일 것 같고요. 아, 가부장제의 창조와 함께 읽을 책이 이것 말고도 또 있더라고요.

















가부장제에 대해 더 관심 있으신 분은 이 책을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신간이라 저도 역시 안읽어본 책입니다.


여성학 신간 살펴보다, 오, 랩걸하고 닮은 책일까 싶은 책도 알게 됐어요.


















뭔가 책이 여러권 들어가있는 페이퍼지만, 여러분, 4월 같이 읽기는 '수 로이드 로버츠'의《여자 전쟁》입니다. 헷갈리지 마시고 자, 미리미리 책을 준비해두시기 바랍니다. 저도 아직 준비전이지만, 저는 주말에 외출할 예정이라 나간 김에 사가지고 들어올 예정입니다. 으하하하. 자, 준비하시고, 4월에도 함께해요!


















여러분, 힘내!!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9-03-21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읽었던 책들의 표지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오네요.
두꺼워서 혼자 읽기 어려운 책들인데, 다락방님이 으쌰으쌰 해주셔서 한 권, 한 권 읽어갈 수 있었네요.

4월에도 같이 읽어요. 봄과 벚꽃과 페미니즘이라니~~~~~~~~~~^^

다락방 2019-03-22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읽어놓고 스티키 붙여놓은 사진 보노라니 뿌듯하더라고요. 정말 같이읽기 아니었으면 저도 읽지 못했을 벽돌책들이에요. 단발님 항상 같이 읽어주시고 글도 써주시고 최선을 다해주셔서 저도 함께할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우리 계속 함께해봐요! 4월에도 정해진 책 읽어보고, 5,6,7 월 계속 어떤 책이 좋을까 생각하고 결정해서 또 같이 읽어봅시다. 빠샤!!

블랙겟타 2019-03-2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늘 수고많으셔요.
이렇게 리딩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닐텐데 저는 덕분에 숟가락만 얹질 뿐이지요. ^^;;

저는 4월의 책은 이미 책은 사두었으니...4월도 같이 읽어요!
그런데 이 글을 읽고나니...
「재생산에 대하여」랑「내안의 가부장」이 장바구니에 담아..네요?(응?)

다락방 2019-03-22 10:41   좋아요 1 | URL
제가 뭐 하는 게 있나요, 그저 책 정해서 같이 읽자!! 이렇게 하는 게 전부인데요.
그런데 이게 너무 좋아요. 여러분과 같이 읽는 거요. 같이 읽으니까 두꺼운 책도 읽을 수 있었고, 또 여러분이 쓴 다른 글들 보면서 저도 더 생각하게 되고요.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진짜 큰 힘이 돼요. 그런 의미에서 블랙겟타님께도 감사드려요! 후훗.


저 역시도 재생산에 대하여, 내 안의 가부장 장바구니에 담아뒀습니다. 아이참. 세상에 읽을 책은 왜이렇게 많은 가요? 그래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그러네요,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9-03-22 13:45   좋아요 0 | URL
저도 읽을 책이 많다는 게 좋기도..싫기도 하네요. ㅋㅋㅋㅋ (°□°;)
다락방님,주말 잘보내세요~ (๑˃̵ᴗ˂̵)و

퍼론 2019-03-22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자 !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락방 2019-03-22 14:43   좋아요 0 | URL
네,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갑시다!

공쟝쟝 2019-04-01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요 저 힘내야함 (부릅!!!)

다락방 2019-04-01 17:06   좋아요 1 | URL
자자, 힘냅시다, 쟝쟝님. 힘내요, 힘!! 빠샤!!!
 















어제 이 책을 좀 읽었는데 '나르시시즘 인격장애' 라는 단어가 언급된다. 나는 혹시 나인가 싶어서 관심있게 해당하는 각주를 읽었다.



나르시시즘 인격 장애란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통제하는 데 있어 심각한 장애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지경에 처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능력을 잃고 만다. 이 같은 질환을 앓는 사람은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으면서 자신이 대단히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바라며, 엄청난 부나 권력을 차지하고 말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자신은 이 세상의 유일한 존재며,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르고 떠받들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간관계를 거침없이 이용한다. 상대의 감정 따위는 깨끗이 무시하며, 다른 사람의 성공을 무섭게 질투하고 갖은 거만을 떤다. 한쪽의 열등감과 불안감, 다른 쪽의 과도한 자신감과 거만함 사이에서 빚어지는 내적인 긴장을 감당하지 못하는 탓에 균형 감각을 상실한 사람이 나르시시즘 인격 장애를 앓는다. (p.61)




아아, 이 각주를 읽는데, 나는 바로 전날 읽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속 '헨리'가 생각났다. 그 새끼, 나르시시즘 인격 장애였구나! 하고. 변호사를 해볼까 싶지만 어려워서 싫어, 사업을 할까 싶은데 그건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근데 나 돈많은 친구들 많아, 어휴, 이런 식으로 나는 일 못해 수시로 때려치고 그러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빚이 쌓이지만 그걸 갚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에이 뭐 어때 오늘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나 먹자' 이러는 남자인 것이야. 아내에게 '응, 다른 여자한테 정신을 잃었었지, 근데 그 여자 이제 지겨워 암캐야' 라고 말하는 남자. 세상 쓰레기.. 저 새끼, 나르시시즘 인격 장애가 있었던 거구나...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내가 살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지나친 자기애는 반드시 열등감과 함께 있다. 이렇게 못난 나, 이렇게 우울한 나를 상대가 반드시 위로하고 사랑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 지나친 자기애가 스토커를 만들고 데이트 폭력범을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건강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못하는 사람, 자신은 세상 중요한데 너는 왜 나를 나만큼 중요하게 생각안하지? 내가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너는 어떻게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지? 하아- 이런 증상이 바깥으로 나오면 헨리같은 쓰레기가 되고 더 튀어 나오면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으윽-




《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도 아직 1장 밖에 읽지 못했는데, 살인자인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여성 살인범, 그녀가 그렇다면 왜 살인까지 하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그녀는 살인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그 사연. 아마도 읽고나면 밑줄 그을 문장이 너무 많을 것 같다.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가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



자, 책을 읽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3-21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3-21 10:49   좋아요 0 | URL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댓글 덕에 솔라 읽어보고 싶어졌네요. 어쩌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감하며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비연 2019-03-21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지나친 열등감이 지나친 자기애와 과장으로 이어지곤 하죠.

다락방 2019-03-21 10:50   좋아요 1 | URL
지나친 자기애는 자칫 자기비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고요, 정말 너무 싫어요. 건강한 몸도 중요하고 건강한 자기애도 중요하다고 나이들수록 생각해요.
 















그나저나 나는 이 책의 구판을 가지고 있는데 하아... 며칠전에 읽다가 책을 박살내 버렸다. 두 조각으로 쫘악- 갈라져버렸어. 이 책을 밑줄 긋고 책장에 꽂아둘 작정이었는데, 아아..그렇다면 나는 다시 사야하는 것인가. 부숴진 책을 두고두고 볼 수 있겠는가. 사람은 왜 생각지도 못한 쪽에 돈을 쓰게 되는가.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왜 박살난거야, 책아? 내게 대답해주렴. 흙흙 ㅠㅠ

내가 널 함부로 다룬 거라면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실비아 페데리치'는 《캘리번과 마녀》,《혁명의 영점》을 통해 '마르크스'와 '푸코'가 보지 못하고 놓쳤던 것, 무시하고 지나갔던 것들을 언급한다. 왜 이것들에 대해서 그냥 넘긴거지? 하고. 

'거다 러너' 역시 기존에 노예학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썼던 올란도 패터슨이 놓치고 지나간 부분에 대해 언급한다.




패터슨은 전형적인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여성노예들까지 포함하여 노예를 '그'라고 총칭하고 여성의 노예화가 역사적으로 선행되었음을 무시하며, 그로 인해 남성과 여성에 의해 경험되는 노예제 방식에 중요한 차이가 숨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p.143)



이 책의 4장은 <여성노예>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앞부분의 1-3장보다 더 이해는 잘된다. 다만, 짐작가능하겠지만, 이해가 잘 돼서 너무 힘들다. 자, 보자.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노예가 될 사람들이 타지방 부족구성원, 말 그대로 '타인들'일 때 가장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개념을 확장하고 노예화된 사람들(the enslaved)을 어떤 면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런 지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예제 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을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p.138-139)




아아...타자화 시키고 억압하고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흐름을 읽노라니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부터 분노가 타오르지 않는가.




남성이 가구와 혈통에 '속해 있었다면', 여성은 그들에 대한 권리를 취득한 남성에게 '속해 있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쉽사리 주변인이 된다. 죽음, 별거 혹은 더 이상 성적 파트너로 소용이 없어짐으로써 남성의 보호를 잃게 되면, 여성은 주변적이 된다. 국가가 형성되고 위계와 계급이 확립되기 시작한 그 시점에, 남성은 여성집단에 있는 더 큰 취약성에 주목하였고 차이(difference)가 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분리시키고 나누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음이 분명하다. 이런 차이는 성과 나이처럼 '자연스럽고' 생물학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감금과 낙인직기와 같이 사람이 만든 것일 수도 있다. (p.139)



책을 읽다 보면 전쟁시에 전리품, 포로였던 여자들이 너무나 당연하듯 강간의 희생자 혹은 성적 노예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그 전에 읽었던 책들, 《페미사이드》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서도 재차 언급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도 여러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아킬레스'와 '브리세이스'에 대해 언급하는데, 나는 이게 너무 괴로웠다. 일전에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에서 전쟁 포로이자 아킬레스에게 강간 당하는 브리세이스를 보며 낭만적인 생각을 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속에서 브리세이스는 전쟁의 포로가 된 점, 그리고 강간당하는 것에 대해 크게 괴로워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고(내 기억은 잘못됐을 수 있다), 또한 아킬레스가 브리세이스를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 관계, 아킬레스가 주인이고 브리세이스가 노예인 장면에 대해 환상을 품었던 거다. 그 후에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에서 브리세이스를 찾아보았던가, 거기에서 아킬레스가 총애한 노예가 브리세이스라고 한 걸 보고, 총애 받는 노예라니 좋잖아? 라고 생각했던 내가 과거에 있었다. 이 책, 《가부장제의 창조》에는 아킬레스의 화를 돋우기 위해 '아가멤논'이 아킬레스 소유의 노예 '브리세이스'를 강간하고, 그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다른 여자포로 오십명을 선물해준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와...내가 대체 어떤 관계에, 무엇에 환상을 갖고 있었던거란 말인가. 너무 아프다. 주인과 노예 관계에 환상을 가졌던 나라니. 실제로 브리세이스는 누군가의 소유가 되어 이 새끼한테 강간당하고 저 새끼한테 강간당했는데. 영화에서 아킬레스가 브래드 피트였기 때문일까, 왜 거기에 환상을 가져, 왜... 아, 너무 괴로웠다.


어제 4장을 읽고 잤는데, 읽는 내내 괴로워, 브리세이스 미안해.. 이런 마음이 된것이다 ㅠㅠ


아마도 나같은 그런 환상을 품은 사람들, 그보다 앞서 환상을 품게 하려는 자들이 만든 영화 때문에 지구상에 아직도 강간문화가 존재하는 거겠지. 강간문화가 형성되고 유지되어 오는데 나 역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가슴을 푹푹 찌른다. 하아-




그래서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또 결심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걸 배우기도 하지만, 내 과거의 시간을 반성할 수도 있게 되어서. 나는 어쩌면 지금도 또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내가 과거에 빻았다는 것을 알만큼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아직 알아야 할 건 무수히 많지만,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내가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책 읽는 친구들을 주변에 두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전에 북플에 '읽고싶어요' 한 책을 보고는 한 알라디너는 '그거 내게 있는데 보내줄게' 하면서는 슝- 보내주셨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말에 또다른 알라디너는 '이 책 읽은 너의 감상이 궁금해' 라며 또 슝- 책을 보내주었고. 궁금해하는 책이 있고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지. 게다가 이렇게 이 공간에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노라면, 그 글을 읽고 누군가는 자신의 감상이나 생각을 들려주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친구가 한 책을 읽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나중에 너 읽으면 같이 얘기하자' 고 했더랬다. 그렇게 읽은 책이 《미투의 정치학》이었는데, 이렇게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가.


책을 읽는다고 반드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내가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주변에 함께 앞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책 읽는 친구들을 곁에 많이, 오래오래 두고 싶다. 우리가 아주 오래오래 읽은 책에 대해 혹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지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오늘은 가부장제의 창조 5장을 읽을 예정인데, 무려 <부인과 첩> 이란다. 아아, 나는 아마도 또!! 나의 과거의 빻음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전 5권을 읽으면서, 파라오의 아내 '네페르타리'가 그와 사랑도 하고 정치에도 관여하는 걸 보면서 너무 힘들것 같은 거다. 그래서 '아아, 왕의 부인 보다는 첩이 되는 게 낫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킬레스의 노예를 보고 환상을 갖고, 네페르타리를 보고 첩이 낫다고 생각하는 나... 오늘은 또 그때의 빻은 나를 책을 읽다 만나겠지. 대체 나는 얼마나 더 많이 빻은 나를 마주쳐야 할까. 괴롭다..


괴로워..




괴로워...



마치기전에 잠깐 하나 더 언급하자면, 위의 인용된 구절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죽음, 별거 혹은 더 이상 성적 파트너로 소용이 없어짐으로써 남성의 보호를 잃게 되면, 여성은 주변적이 된다.'


















애쉬톤 커쳐가 주연한 영화 《s 러버》에는 화려하게 여자를 꼬시는 남자가 나온다. 물론 그가 주인공인데, 영화는 '사랑에 빠지지 않고 즐기기만 하려던' 남자가 제대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남자는 한참 연상의 여자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보내는데, 남자는 그녀의 돈과 그녀가 제공하는 사치를 즐기면서도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그러다가 서서히 그 여자에게 관심을 잃게 되는 것. 이때 그 여자는 남자의 관심 혹은 흥미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걸 알고는, 소위 말하는, '예쁜이 수술'을 하고 오는 거다.


아...


내가 얼마나 당황을 했었는지. 그 때 진짜 놀랐었다. 아무리 그 남자가 좋다고 해도, 저 여자는 그렇게까지 해야했나? 그리고 떨어진 흥미를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선택한 건 하필이면 왜 성적인 거였지? 이게 너무 충격이었던 거다. 섹스를 할 수 있는 내 신체부위를 새롭게 다짐으로써 돌아오게 하려는 거라면, 내가 가진 자원이 그것 뿐이라는 반증 아닌가. 내가 저 남자를 꼬실 수 있는 건 내 질뿐이다, 라는 거 아니야. 또한 '내 질이 충분히 좁지 못해 저 남자의 맘에 들지 못한다'는 생각이고. 그러니까 여자는, 자신의 질이 충분히 남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남자가 자신으로부터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하는건데, 어제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으면서 '더이상 성적 파트너로 소용이 없어짐으로써 남성의 보호를 잃게 되면, 여성은 주변적이 된다'는 문장에 딱 저 영화의 저 장면이 생각나는 거다. 우리는, 여자들은 성적인 도구로써만 가치있는가. 세상은 대체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어떻게 주입해왔는가.



괴롭다.



괴로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9-03-21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책을 쪼개셨네요. 위편삼절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대단하시다ㅎㅎ

다락방 2019-03-21 09:16   좋아요 0 | URL
나란 여자.......Orz

2019-03-21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9-03-2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친구들 이야기 은혜로워요^^
뭐랄까.... 달달하고 심쿵하고 감동적이고 그래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03-22 07:46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에 책 읽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몰라요. 우리 오래오래 책 읽고 이야기나누며 살아요, 단발머리님. 책 친구 너무 좋아요! >.<
 
사랑을 배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너무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지나치게 큰 사랑이 압박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되돌릴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핑계를 대고 우리는 상대에게 압박을 가할 수도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 또한,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삶에 당연하듯 개입하려고 하기도 하고. 내가 가는 방향이 옳고 내 생각이 맞다는 확신으로 내가 사랑하는 상대 역시 이 길로 가고 바로 이것을 선택하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자기 확신이 가져온 오만일 것이다. 그 사랑은 상대를 향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향한 사랑일 것이고.


몇 번 언급한 적 있지만, 영화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언니는 여동생에게 학교의 킹카인 그 남자아이와 사귀지 말라고 조언한다. 본인이 사귀어봤는데 진짜 영 아닌 남자였다고. 그러나 동생은 언니에게 대꾸한다. '언니도 해보고 알았잖아, 나도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나는 그동안 동생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바로 저 언니 같은 태도로 대했던 것은 아닌지, 그 영화를 보고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그 뒤로 그런 태도를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어쩌면 또 그런 태도들이 나왔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건 잘못됐어 틀렸어, 이게 더 좋아. 나는 그런 식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했을까봐 두렵다.


나이들수록 그것이 정말로 지양해야 할 태도라는 것을 더 깨닫게 된다. 언제 더 절실하게 깨닫느냐면, 누가 내게 바라지도 않은 조언을 했을 때. 내가 상대에게 조언을 해달라고한 게 아닌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것이 낫다 저렇게 살아라 말하는 것은, 듣는 이에게는 강압이고 폭력이다. 그런 일들이 닥칠때마다, '아, 역시 남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려하지말자, 조언은 누군가 요청했을 때만 조언이 될 수 있다' 라고 깨닫고 또 깨닫는다. 내 행복은 당신의 행복과 다르다.




'로라'는 자신의 동생인 '셜리'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로라의 생각은 그저 셜리의 행복, 셜리의 행복. 로라의 좋은 친구인 여성혐오자 '존'은 그런 로라에게 '네 생각을 하라'고 매번 조언하지만, 로라는 셜리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다. 셜리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내가 너무 셜리에게 집착하나'를 생각한다. 셜리가 데려온 남자가 셜리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이 남자는 아닌 것 같은데. 로라가 셜리와 셜리의 애인 헨리에게 1년간의 약혼기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자 셜리와 헨리 모두 투덜대고 언니가 동생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것이라 한다. 내가 정말 그런걸까, 내가 집착하는 걸까, 내가 동생을 빼앗기기 싫어서 그러는걸까, 내가 동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걸까...


로라가 정말 동생에게 집착하는 것일 수도, 동생을 누구에게도 보내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다. 다 가능성 있는 얘기다. 그럴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내 눈에도 헨리는 '아니올시다'의 님자였다. 만약 이 남자를 내 여동생이 데려왔다면... 그러면 나는 어쩔것인가. 아아, 헨리, 내가 너무 싫어하는 캐릭터..



"제대하면 무슨 일을 할 거예요?"

"사실 모르겠어. 변호사가 될까 생각해봤지만."

"그런데요?"

"너무 힘든 일이야. 사업을 해볼까 싶기도 하고."

"어떤 사업이요?"

"글쎄, 어떤 사업이든 시작을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난 은행에 다니는 지인이 한두 명 있고 실업계 거물도 몇 알아. 내가 밑바닥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그들이 기꺼이 도와줄거야." 그는 말을 이었다.  (p.111-112)


.

.

.

.

.

.

.

.


.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진짜 너무 싫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변호사 될까? 아이 그건 힘드니까 안돼, 사업할까? 사람들이 도와줘야지........ 너무 한심하잖아. 이런 생각을 가진 남자가 청혼을 하는데 어떻게 예스를 하나요, 셜리여......... 내가 봐도 너무 쎄한데........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여자 돈 잡아먹을 남자잖아...... 여자 고생시키고 여자 돈 다 긁어갈 남자잖아.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혼자 살자, 셜리여..... 너무 딥빡 오는 것이다. 이런 남자라는 것에 대해.



셜리와 헨리는 결혼하게 되고, 예상한대로 헨리는 자꾸 직장을 때려치고 나와서 마땅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예상한대로 헨리는 여기저기 빚을 지고, 예상한대로 헨리는 바람을 피고. 게다가 성매수를 하고 성매매 여성을 창녀라고 욕하는 남자들처럼, 헨리는 자신이 바람핀 여자를 '암캐'라고 칭한다. 사업할 때 도와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처럼, 헨리는 무조건 남탓이 먼저인 사람.



"이 주 정도 수전에게 푹 빠졌지. 잠도 안 올 만큼. 얼마 동안은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어. 그러다가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고, 얼마 안 가 아주 확실하게 지겨워졌어. 최근에는 완전히 골칫거리가 됐고."

"너무하네요."

"당신이 수전 걱정을 왜 해? 그 여자는 도덕관념도 없는 순 암캐야." (p.144)






게다가 예상한대로 헨리는 처형에게 돈을 빌려 다른 빚을 막고........그리고 불구의 몸이 되어 셜리에게 매달리며 온갖 짜증을 낸다.... 모든 걸 다 잃고 로라의 집에 들어와 살게된 셜리 부부. 하루종일 짜증을 내는 신랑의 옆에 있어주는 셜리를 보며 로라는 너무 슬프다. 셜리는 더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저 불행한 생활로부터 빠져나와야 하는데. 마침 그런 셜리에게 돈 많고 자상한 남자가 다가온다. 아아, 셜리는 저런 남자와 결혼했어야 하는데. 로라는 그런 셜리 보기가 너무 안타깝다. 셜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셜리를 저 불행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해야 해.




문제는 그거다.

셜리는 그 삶이 언니가 생각한만큼 불행했을까? 셜리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을까? 셜리는 로라가 생각한 것처럼 책임감 때문에 계속 그러고 살았던걸까? 셜리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

로라는 셜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셜리가 불행할 것이라는 본인의 생각으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렇다면, 그 결정이 셜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아니.




소설의 마지막에야 다른 사람이 해주는 말을 통해 로라는 알게 된다. 자신이 생각한 셜리가 셜리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이 생각한 셜리의 행복이 셜리가 생각한 셜리의 행복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로라는 셜리의 삶을 행복해지도록 본인이 결정해서는 안되었다는 것을. 그 일은 로라를 아프게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지만, 어쨌든 이제 로라는 자신의 남은 생을 살아내야 한다.




얼마전 텔레비젼에서 노르웨이의 산악철도에 대해 보게됐다. 홍콩에 여행가 맛있는 걸 먹는 장도연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내 조카를 떠올렸다. 저기 타미랑 가면 어떨까, 그런데 저건 맵겠지? 저기 아이들 먹을 만한 메뉴도 있을까? 그랬던 것처럼 노르웨이의 절경, 피오르드를 보면서도 감탄하며 또 타미를 떠올렸다. 저렇게 웅장한 자연이라니, 한 번쯤 보고 싶지만 으앗, 너무 무섭다. 만약 타미가 저기 간다고 하면 나는 가지 말라고 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것이다.




(출처: 투어2000 블로그)



너무 무섭잖아, 저기 타미를 보내기엔 위험해, 라는 생각을 저절로 한 것이다. 이 생각은 한참이나 내게 '그래도 되는가?'를 묻게 했다. 나는 나라는 한 인간으로 '저 곳에 가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고, 또 내가 절실히 가고자 했다면 가려고 할것이다. 만약 누군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했다면, 나는 정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내 의지대로 할것이다. 그런데 내가 타미에게 '위험하니 가지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미를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지금이야 타미가 혼자 간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성인이 되고 저런 곳을 알게 되고, 나 저기 갈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혼자이든 친구들과 함께이든, 그것이 그 아이의 선택이라면, 그것이 그 아이의 바람이라면, 그 아이가 독립적인 한 존재인만큼, 내가 가지말라 할 순 없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위험한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아' 라고 하는건, 상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불안함을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상대가 그런 상황에서 취약할 거라고 내 멋대로 약한 존재로 결정지어 버린 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로라랑 다를게 뭐지? 나는 타미를 셜리 취급하고 있는 거잖아?




홍콩 디즈니에 갔을 때 그런 경험을 했었다. 아홉살 조카와 롤러 코스터를 탔는데, 타는 내내 나는 한 팔로 아이의 안전바를 잡고 어서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혹여라도 아이가 떨어질까봐 안절부절. 멈추고 나서야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찾아왔고, 롤러 코스터에서 내리는 순간, 아이가 무사히 내려서 다행한 마음에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이런 나를 모르는채로 조카는 '한 번 더 타자!' 하는거다. 어찌나 야속하던지. 진짜 너무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이것이 위험하고, 무섭고,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건 내 생각, 내 감정이었다. 아이는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좋아해서 바이킹도 네 번씩타고 그러는 아이인데, 나는 아이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아이가 다시는 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이는 더 타기를 원한다. 이게 아이에게는 신나는 일이야.


엉엉 소리내어 한참을 울고, 그런 나를 여동생과 조카가 달래고, 울고나니 기운이 쫙 빠져 있었다. 퍼레이드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조카는 놀이기구를 한 번 더 타고 싶다고 말했다. 조카가 한 번 더 타자고 한 건 그런 스피드 있는 게 아니어서, 언제 또 올지 모르고 이 아이를 위해 온것이니만큼, 그래 한 번 더 타자, 했다. 아아..그러나 지나는 길에 더 무서운 롤러코스터가 보였고,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조카는 방방 뛰며 타겠다고 했다. 이모는 무서워하니 타지마, 나 혼자 탈게, 라고 조카는 말했는데 도저히 혼자 태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내가 기꺼이 같이 타겠다고는 못하겠어.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여동생이 자신이 타겠다고 말하는데, '아니야, 내가 탈게' 라고 나는 도저히 말을 못하겠는 거다. 그렇게 여동생과 조카가 롤러코스터를 타러 가고 나는 제부에게 전화를 해서 이 일에 대해 말했다. 내가 엉엉 운 것 까지도. 그러자 제부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내게 말했다.



"타미는 놀이기구 타는 거 되게 좋아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맞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는 좋아한다. 아이는 좋아하는데, 아이는 신나서 즐기고 있는데 나는 아이가 타는 걸 두려워했어. 내가 두렵다고 아이에게 타지 말라고 하면 안되는 거잖아. 마찬가지로 아이가 노르웨이에 피오르드 보러 가겠다고 하면, 나는 두렵지만, 내가 두렵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가지 말라고 하면 안되는 거 아닐까. 내 두려움과 다른 사람의 두려움이 다르고 내 바람과 다른 사람의 바람이 다르다. 우리는 그걸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하는게 아닐까.




이 책의 원제는 '짐The Burden' 이라고 한다. 그러나 번역된 제목처럼, 나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작년에는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사랑을 공부하고 싶었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지 않으려면 더 사랑을 알아야 하고, 더 배워야 해, 생각했던 것. 그러나 애인에 대한 사랑이 아닌, 가족과 조카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사랑을 배운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조카보다 네 배를 살았는데도, 나는 아직 사랑에 대해 배울 게 더 많은 것 같다. 여전히 잘 모르고 여전히 부족한 어른인 것 같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삶을 이루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랑을 배워야지, 계속해서 사랑을 배워야지.




엊그제 만난 친구와 소설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서로 좋아하며 얘기했었다. 소설이 이렇게나 좋다.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들이 그 안에 있어서, 나로 하여금 또 생각하게 한다.



배워야지.

사랑을 배울것이다.




"지나친 연민이에요."
"그럴 수도 있나요?"
"네, 그건 현실을 똒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죠."
루엘린이 덧붙였다. "연민은 모욕입니다."
"대체 어떤 의미에서요?"
"바리새인의 기도가 이를 그대로 암시하고 있죠. ‘주여, 제가 그 사람과 다르다는 데 감사합니다." - P27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9-03-20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와르와 마플이 없는 크리스티 소설이라니 색다른 느낌이 드네요.코난 도일이 추리소설 작가라기 보다는 역사소설가로 불리우기를 평생 바란것처럼 크리스티 여사도 포와르와 미스 마플에서 벗어나고파서 이름도 바꿔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쓴것이 아닌가 싶은데 작가의 바램과 달리 독자들에게 크게 반향을 얻진 못한것 같습니다^^

다락방 2019-03-21 10:54   좋아요 0 | URL
반향을 일으켰는지 안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읽기에는 이 시리즈가 다 좋습니다.

얼룩말 2019-03-2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리즈 좋아해요.

다락방 2019-03-21 11:50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시리즈를 네 권 밖에 못읽었는데 며칠전에 갑자기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훗.
 
















정희진의 글을 읽고 싶어서 가장 먼저 읽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돌아가 순서대로 읽었는데, 권김현영의 글을 보고 뭔가 속이 다 시원했어. 그런 한편, 이렇게 글 쓰고 김어준의 팬으로부터 엄청 공격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어쩌면 늘상 공격당하고 있겠지만...



김어준은 한국 최초의 미투를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알고 있었으니, '변질'에 대해 누구보다 빨리 걱정한 셈이다. 십수 년간 인터넷 여론의 흐름을 파악해 온 그의 '식견'이 유일한 근거였지만, 김어준이 누군가. 2018년 10월 현재, 언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가장 신뢰도 높은 언론인 2위로 꼽힌 인물이 아닌가. 주장만으로도 여론의 향방을 좌우할만한 영향력 있는 인물인 김어준의 말을 듣자마자 정치 평론을 하는 이들은 곧 거물급 정치인의 미투가 터질 거라고 앞다투어 예상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p.38-39)




책에는 그가 방송에서 한 말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피해자를 준비시켜' 라는 워딩이 바로 그 안에 나온다. 그러니까 김어준 자신이 피해자를 준비시킨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공작하는 자들이 그럴 것이다', 라고 얘기하면서 나온 워딩인데(공작하는 사람들의 마음 너무 잘 알고 계시고요), 수많은 사람들이 듣는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순간, 이 발언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많은 사람들의 귀에 꽂힐것이며, 그 뒤에 나오는 미투는 저마다 의심하게 되지 않겠는가. 김어준이 그러는데, 공작일 수 있대, 라고. 아, 진짜 너무 싫어. 김어준이 공작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순수한 피해자 찾기에 급급해진다. 진짜 토쏠려. 너무 싫다. 캡 싫어. 왕 싫어. 진짜 짜증나게 싫고 싫다는 말을 지구 끝까지 쓰고 싶다. 그리고 안희정이 가해자가 되어 세상 앞에 선다. 좆같은 현실이야. 






"피해자를 준비시켜"라는 말은 피해자 뒤에 공작 세력이 있음을 전제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실제로 특정 세력과 결탁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피해자들은 바로 진보와 인권을 표방했던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그들의 정치적 지지자였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여성 지지자들을 남성 정치인 개인의 매력에 끌린 일종의 팬덤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무시가 가능했을 것이다. (p.40)




어차피 이 책, 미투의 정치학은 김어준빠들은 읽지 않을 책일 것 같다. 그러니 권김현영의 글을 읽을 일도 없겠지. 그렇다해도 권김현영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언급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덕분에 내 분노가 너무 크게 타올라버리긴 했지만, 김어준 처럼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는 한 편,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잇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희망적인가.


어제도 친구를 만나 나는 김어준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슬프게도 남동생은 김어준을 좋아하지만 ㅠㅠ 장동민 좋아하는 사람들도 싫고 그들이 방송을 계속할 수 있는 현실도 너무 싫다. 싫어...


아아 싫은 게 너무 많은 아침이네 ㅠㅠ



그렇다면 '예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김어준은 "지금 나와있는 뉴스가 그렇다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 나타난다는 말이고, 그 타깃은 어디냐. 결국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 이라는 말로 공작 정치의 배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만들면 사실 관계 사이에 비약이 있어도 사람들은 쉽게 그럴듯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p.43)



아 진짜 졸라 싫다... 성폭행을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진짜. 여자가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임을 밝힐 때에는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많이 아팠을 것이고 힘들었을 것이고 게다가 그걸 밝히게 됐을 때 잃을 것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걸 각오하고도 내가 성폭행을 당했다 라고 밝히는 건데, 그것이 '누군가 나타난다'는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니, 얼마나 안일한 사람인가. 얼마나 팔자 좋게 얘기하는가. 어디서 그런 소릴해, 진짜. 성폭행은 피해자에게 잊을 수 없는 폭력인데, 그것이 '다른 의도로' 폭로될 수 있다는 걸 말해버리는 순간, 성폭행과 성폭행 피해자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진짜 개싫어..



요즘만 해도 그렇다. 정준영과 승리의 일이 터지는데 이것이 무엇을 덮기 위한 것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말들. 불법촬영의 피해자, 강간의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것이 대체 무엇을 '덮기 위해' 나오는 것이라니, 어떻게 그런 말들을 해. 왜 이것이 하나의 사건이면 안된다는 말인가. 도대체 피해자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는거야.




여전히 궁금하다. 김어준의 '공작' 운운은 미투를 둘러싸고 벌어진 질 나쁜 농담의 하나였을까 아니면 그 자체가 미투 운동을 훼방 놓으려는 공작이었을까. (p.44)




어제 마신 술로 아직 숙취가 가시지 않았는데 분노하려니 너무 에너지 딸린다. 점심때 콩나물국밥 먹고 기운 차려야지. 그래도 아침에 집에 컨디션하고 상쾌한 있어서 두개 한꺼번에 먹었다. 휴.. 나한테서 지금도 술냄새 날 것 같다고 동료에게 톡을 보냈는데,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상쾌한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아 진짜 겁나 좋은 동료다 ㅋㅋㅋㅋㅋㅋㅋ 상쾌한을 가지고 다니는 동료라니, 그리고 그것을 내게 줄 수 있는 마음이라니. 상쾌한 넘나 소중한데...




이번엔 정희진의 글로 가보자. (생뚱맞게 이상한 데 갔다왔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권력 관계의 부산물이 아니라 성별 위계 관계의 구조적인 토대로서, 남성 지배의 중요한 동인(動因)이다. 즉, 남성의 폭력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권력의 한 형태이다. (p.77 Theweleit, Klaus, Male Fantasies, Volume 1. Womem Floods Bodies History, translated by Conway Stephe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7.)




정희진 쌤의 강연을 여러차례 듣다보니 책의 내용과도 좀 겹친다. 강연에서 하셨던 말씀을 책에도 써두셨더라. 그런데 마침 이런 문장을 만났다.



"아버지(master)의 연장으로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 오드리 로드(Audre Lorde)의 이 말은 삶을 갱신하고 싶은 모든 인간이 처한 조건일 것이다. (p.79)




아버지의 연장으로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



이 문장을 바로 얼마전에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싶어서 내가 읽은 책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 책, 미투의 정치학을 읽기 바로 전에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고 있었는데, 거기에 나온 말이었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한 《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에 나왔던가. 아니면 정희진 쌤 강연에서 들어서 익숙한건가. 아아 모르겠다, 어디에서 본거지...




















많은 이들이 어느 분야에서 성폭력이 많이 발생하는지 궁금해한다. 이 역시 자세하게 해명되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발생률은 은폐 구조와 해결 방식 때문에 차이가 날 뿐이지 특정 분야가 유난히 많거나 '깨끗하다'고 볼 수 없다. 유일한 인구학적 특징은 가해자가 남성이라는 사실 뿐이다. 특별히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분야가 따로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p.87)




유독 성범죄가 많은 분야가 따로 있지 않은것처럼, 정준영도 정준영 하나가 아닐 것이다. 정준영이 속했던 단톡방?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지, 정준영이 특이했던 게 아니야. 이제는 그런 단톡방을 가진 걸 부끄러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안에 속해서 낄낄댈 수 있는 거, 그거 진짜 수치스런 일이야. '남자들은 다 그래' 라는 말로 넘어갈 게 아니라, 그렇다면 남자들은 다 문제인거야. 




많은 사람들이 미투로 드러난 현실에 놀랐겠지만, 가해-피해 구조는 극히 일부분만 드러났을 뿐이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2004년 성매매특별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초기에 일부 남자들이 이 법이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불행감'에서 헌법 소원을 제기한 적이 있다. 사실 이들은 불행할 이유가 없었다. 법 제정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성매매특별법이 규제할 수 있는 성매매는 전체 성 산업의 1~5% 사이다. 성매매의 다양성과 증식 속도는 현장에서 삼사십 년 일한 운동가들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다. 

여성이 겪는 성적 폭력은 비상시가 아니라 상시적인 일이다.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p.88)




성매매... 가 행복해요? 그게 행복을 줘요, 남자들아? 성매매 단속하면 불행해요? 진짜 불쌍한 인간들이네..




미투 운동에 반발하는 남성들이 가장 흔히 하는 주장은 다음 두 가지다. "미투는 여성들의 자의적(自意的)인 해석에 따른 것이다, 이 문제가 남녀 대립 구도로 가서는 안 된다." 논의 구도 자체가 틀린 주장이다. 재현되는 모든 이야기는 자의적, 부분적 지식이다. 여성의 이야기를 자의적이라고 판단하는 이들의 인식과 판단 역시 자의적이다. "모든 이야기는 자의적이라 등위가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위치에 따른 자의성을 고려하는 적극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갑'의 자의성과 '을'의 자의성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남녀 대립 구도?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이라도 남녀가 대립한(동등한) 적이 있었던가. (p.89)



여성주의는 누가 남성이고 누가 여성인가를 정하는 권력의 소재를 밝히는 사회 운동이다.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 다툼에서 여성의 피해를 강조하는 사유가 아니다. 흑인과 백인은 대립하는가? 부자와 빈자는 대립하는가? 그렇다면 유토피아일 것이다. 억압과 피억압,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피착취 구도를 '대립'이라는 중립적 언어로 표현하는 발상으로는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남녀 대립'은 차라리 희망 사항이다. 남녀가 대립하는 사회라면 '바바리우먼'도 있어야 하고 남성도 2백만 명쯤은 성 판매로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여성에게 성폭력당하는 남성도 수시로 뉴스에 나와야 한다. '매 맞는 남편'은 평생 동안 폭력 아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p.89-90)




정희진은 미투를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글을 썼지만, 아래와 같은 문장은 단톡방에서 여자들을 물화시켜 낄낄대는 모든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통하는 말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미투는 거의 모든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의 몸에 행사해 온 무한 접근권(강간, 낙태, 추행, '구애' ……)이 임계점을 넘어서 터진 것이다. 남성은 여성의 몸에 대한 '거리감', 즉 인권 의식이 희박하다.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 다르고, 상호 접근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극단적으로 다른 상태에서 이제까지 남성들은 자신의 몸을 권력화해 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몸은 여성에게는 그 자체로 무기가 된다. 이때 젠더 이외의 학력, 교양, 외모, 나이, 계급, 이념, 지역, 인구학적, 개인적 차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성기 노출 범죄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 범죄의 가해자인 '바바리맨'이 아닌 남성이 절대다수다. 하지만 이들은 바바리맨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이득을 얻는다. (p.91)




정희진, 한채윤, 권김현영의 글이 다 좋긴 했지만, 머리말의 정희진 글에서는 많이 실망했다.



최근 몇 년간 일부 페미니스트(랟펨, 터프 ……)역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주장하고 있다. (머리말, p.31)



나는 위의 문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게다가 정희진 쌤이 '터프'란 표현을 쓰다니, 너무 놀랐다. 이 책에 실린 '루인'의 글을 보면 트랜스젠더를 혐오해 일어나는 범죄의 예시가 나오는데, 모두 가해자는 남성이었다. 실제 혐오와 또 혐오 범죄는 남성이 일으키고 있는데, 혐오와 배제로 명칭이 생기는 건 페미니스트라니,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나는 정희진 쌤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정희진 쌤 글이라면 닥치고 읽을 생각이지만, 언젠가부터 묘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이 생기고 있다. 모든 면에서 나와 일치할 순 없는거지만, 그런 점들을 깨달으면 사실 좀 씁쓸하다.  



그러나 무릇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 어떻게 모든 것에서 일치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그러나 주변을 둘러볼 뿐.



콩나물국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 맞다. 사진 올려야 된다. 내가 책에 스티키 붙인 사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춘향은 관아로 오라는 사또의 명령부터 이미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항거 불가능성은 춘향에게 성적 요구를 하는 그 순간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다. 변학도는 춘향에게 이런 상황을 강요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이 바로 ‘위력‘이다. - P136

이 사건(피해자가 잠든 척하고 거부하지 않았으므로 가해자가 무죄가 된 사건)에서 피해자가 잠든 척했으니 저항이 없었던 것도 명백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없었던 것도 명백하다.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거부를 선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법은 명시적 거부 의사 표시를 기준으로 삼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 동의할지, 거부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곧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니다. 피해자는 애당초 동의와 거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P138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성폭력은 춘향에게 ‘동침을 요구할 요량‘으로 변학도가 춘향을 억지로 관아로 불렀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앞의 2014년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몸을 만지기 위해 피해자가 잠이 들었는지를 확인하려고 이불을 들추는 것 자체가 시작이다. 법은 바로 이 폭력의 시작점을 감지해야 한다. - P139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19-03-19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어준의 라디오방송 듣다가 미투 이야기 이후로 끊어버린 1인으로서.... 공감합니다... 의식이 좀 이상함.

다락방 2019-03-19 12:56   좋아요 1 | URL
무슨 교주처럼 행동하는 것 같아서 너무 싫어요. -_-

잠자냥 2019-03-19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쌤과 묘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다락방 님의 사고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ㅎㅎ 부디 계속 청출어람하시길 바랍니다! 상쾌한 드시고 오후는 상쾌하게~

다락방 2019-03-19 13:03   좋아요 1 | URL
그런걸까요? 저는 제 사고의 성장을 원하지만, 정말 성장하고 있는걸까요? 이것은 청출어람일까요?

뭐가됐든 열심히 계속 하겠습니다!!!
댓글 감사드려요. 엄청 위로가 되네요 ㅠㅠ

단발머리 2019-03-19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도 무척 좋은 글이네요.
다락방님이 이해한 지점을 꼭꼭 짚어주시니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생각들도 새록새록 떠오르구요.
저 역시 읽기 어려운 지점들이 여럿 있어서 다시 읽어야지, 하는 책인데 리뷰로 만나니 더 반갑네요.

제일 반가운 건 역시나 스티키 인증샷이죠!
이런 근사한 사진이라니....
스티키 만든 사람 상 줘야 하나요? 아님 다락방님 상 줘야 하나요?


다락방 2019-03-20 10:43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실린 ‘루인‘의 글 읽으면서 저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쪽이 내 방향과 같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도 사서 읽어봐야겠다 싶었고요. 이 책의 저자들이 다들 굉장히 열심히 공부한 사람인 것 같아서 참 좋더라고요. 나도 계속 공부해야지, 라고 새삼 다짐하게 되고요. 우리 계속 공부합시다, 단발머리님. 같이 공부하도록 해요.

스티키 만든 사람 보다, 그리고 이 사진 찍은 저보다, 저에게 스티키 선물해준 사람에게 상을 줘야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후훗. 안그래도 스티키 너무 써대서 다음번 책 지름에 또 주문해야겠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블랙겟타 2019-03-20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진보를 대변한다는 사람들 또한 이 사안만큼은 작은 문제로 치부해버리더군요.
그러니 해일-조개니 미투공작으로 밖에 판단하는 거죠.
김어준을 비롯한 정치 셀럽들의 그동안의 공은 어느정도 인정하는 바입니다만
모든 사항을 정치공학적으로 보는건 비약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저도 다음에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

책 리뷰를 읽을 때마다 다락방님의 스티키 인증샷에 자연스레 기다려지는 건 뭐죠?? ㅋㅋㅋㅋ

다락방 2019-03-21 08:21   좋아요 1 | URL
최근의 정준영 사건에 대해서도 유머로 소비하려는 남자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살면서 깨달은 건, 여혐에는 진보와 보수가 구분되지 않고 나이도 구분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이 책은 얇아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더라고요. 하루만에 끝내실 수 있을 겁니다. 도전! ㅎㅎ

아아, 스티키 사야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도 계속 보여드리려면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