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일상적 대화에서는 혐오표현임에 분명한 대화들이 섹스 중에 오고간다면, 그것은 그저 연인들 사이의 더티토크가 되는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일상에서의 혐오표현이 침대에서는 혐오가 아닌 것이 되는걸까. 혹은 혐오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 내밀한 관계에서 서로에게 그것을 말하기를 허락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혐오인데 참고 있는 것일까, 분위기 깨기 싫어서?


나는 섹스중에 사실 그다지 어떤 험한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혐오 표현이라고 하면 섹스중에 어떤게 오고갈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것이 혐오인가 아닌가, 혐오이나 허용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게서 나오는 답이 진리일 수도 참일 수도 없겠지만, 친구가 묻는 말에 선뜻 답할 수 없었다는 거다. 그러나, 행위에 대해서라면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행위에 대해서라면 나는 요즘 매우 생각이 많았다. 요즘 포르노에 대해, 음란 영상물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이건 계속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는데, 시작은 DSO 계정의 음란물 신고 트윗 덕분이었다. 다른 SNS 를 잘 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트윗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음란물들이 아주 많이 올라온다. 아예 성을 매매하는 계정에서부터 오프라인에서 만나 섹스를 하자는 계정까지 수두룩하고, 지인들의 사진으로 음란사진에 합성해주겠다는 것, 그리고 성관계 영상까지. 신고를 하면서 알게됐는데, 거기에 올라오는 성관계 영상은 소위 내가 알아온, 내가 경험해온 성관계 영상이 아니었다. 가학적인건 물론이고 불쾌함을 넘어 폭력적이고 수치스러웠으며 혐오스러웠다.



나는 살면서 포르노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이는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감정 없는 육체관계에 대해 통 흥미를 느낄 수 없는게 아닌가, 해서도 그렇고 포르노를 어디서 어떻게 봐야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십대 초반에 [터보레이터]를 본 게 전부라 할 수 있는데, 터보레이터의 영상속 내용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터미네이터를 본따 만들었으나, 내용은 확 뒤집어져서, 미래에서 여자를 강간하기 위해 온거다. 그런데 영상 속 여자들이 매우 특이했던 게, 처음엔 강간하러 온 남자들을 보고 놀라지만, 이내 강간을 즐기고 헤어지면서는 다시 오기를 바란다는 거다. 이것이 강간판타지라는 것인가.



강간은 다른 사람의 몸에 성적으로 침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간은 내가 허락하지 않았으나 내 몸에 억지로 밀고 들어옴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라면 사람이 몇살이든, 성별이 무엇이든, 본능적으로 싫어할 것이며 두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어떤 여자들은 강간 판타지가 있다'는 말은 매우 갸웃한 것이었다. 그래, 다른 사람의 판타지에 대해서 내가 뭐라할 순 없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왜, 어째서 강간 판타지를? 그리고 내게 '나는 강간판타지가 있어'라고 말한 여자는 한 명도 없었던 반면, '강간 판타지 있는 여자들이 있다'고 말하는 건 왜 모두 남자였을까. 여자들은 스스로 강간판타지가 있다는 것을 남자가 아니면 말하기 두려워서였을까.


나는 최근 DSO 계정에서 같이 신고해달라고 음란 계정들을 올리면 그것을 부지런히 신고하고 있다. SNS특성상 성인 인증 없이도 가입이 가능하고 거기엔 초등학생도 그리고 고등학생도 모두 가입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영상들을 맞닥뜨릴 수 있다. 내가 본 영상들은 무척 충격적이었고 그걸 보면 성인의 영혼도 온전치 못할 것 같았다.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보고 있을 순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무엇보다 미성년자들이 이런 식으로 성인 남녀의 나체를 보는 것도, 그리고 성관계를 알게 되는 것도 끔직하게 싫어서(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성인남자의 고추를 보게됐고, 그것을 폭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지런히 신고를 하고있다. 신고를 해도 박멸할 순 없고 계속 생겨나지만 그래도 끝까지 따라가 신고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신고하고 있다.


신고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몇 개의 영상쯤은 보게 된다. 동물들과 관계하는 변태적인 성행위도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여자를 피멍들게 때리는 영상들을 보았고, 여자 얼굴에 정액을 쏟아붓는 것도 보았다. 아주 많은 영상들은 여자들이 남자들의 고추를 물고 있었다(더러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침을 뱉거나 오줌을 싸거나 하는 것들도 있었고, 입 안에 정액을 쏟아붓는 것도 있었다. 더 쓰는 건 이 페이퍼 자체를 음란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만하겠지만, 나는 그걸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영상 속에서 여자들이 설사 즐기는 것 같은 표정과 신음소리를 보인다해도, 내게 그것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모든 행위들에 있어서 나는 너무 소름끼치고 수치스러워서 '여자들아 그런 거 하지마' 하고 간절한 마음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나는, 그 영상들의 모든 행동들에 있어서 백프로 자유로운가?



아니었다. 나도 그 안에 어떤 행위들이 내 것이었던 적들이 분명히 있었다. 어떤 것들은 상대가 좋아하기 때문에 억지로 참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그렇게 참을 필요 없이 가능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좋아하기도 했다. 나는 분명 저 영상들을 보며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외부에서 봤을 때 그것은 분명한 폭력이었다. 애시당초 그들의 자세 자체가 달랐으니까. 그렇다면 외부에서 보기에 폭력이지만, 그것이 당사자가 되었을 때는 폭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외부에서 보면 폭력인 것이 내 것이 되는 순간 괜찮아지는 것이 되는 것일까? 외부에서 봤을 때 폭력이지만 우리 둘 사랑하는 사이, 연인사이에서는 허용되는 것이야, 너 좋고 나 좋고 우리 둘다 좋으니 이것은 섹스야, 가 되는 것일까? 나는 내가 어느 순간 그것들 중 일부를 즐겼다는 사실을 놓고 보았을 때, 내 허용치는 그만큼이지만 저들 혹은 다른이들은 나보다 허용치가 더 넓다고 판단하면 그뿐인걸까.



우선 나는 그 영상들을 보고 매우 끔찍하다고 생각했고 아프다고 생각했다. 이런 걸 찍고 그리고 즐겨 보는 사람들의 영혼이 건강할 리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상이, 남자와 여자가 어떤식으로든 성관계를 맺고 있는 영상이, 내게는 분명 끔찍하게 느껴졌다. 정말 싫다, 는 감정을 갖게 했다. 이런 영상 싫다, 이런 행위가 싫다, 는 생각을 갖게 한거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다른 성에게는 이것이 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안다. 그 지점에서 나는 심한 괴리감을 느꼈다. 같은 영상을 보고 어느 한쪽은 아 싫어, 괴로워, 고통스러워를 느끼는데 어느 한 쪽은 네 얼굴로 내 정액을 받아줬으면 해, 같은 욕망을 느낀다는 게, 따라하고 싶어한다는 게 정말이지 처절하리만큼 괴로웠다. 이걸, 이 다름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왜그럴까. 이게 어째서 가능할까, 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여자들은 이 영상이 끔찍하고 남자들은 영상속의 남자처럼 하고 싶은 건 왜그럴까.

그건 아마도 굴복하고, 무릎꿇고, 더러운 걸 몸에 받는 쪽이 여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들은 힘을 쓰고, 핥는 걸 느끼고, 배설하는 쪽이고. 남자들이 영상속에서 고통스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말과 행동이 남자들에게는 없었다. 고통스럽지 않으면서 쾌락과 배설이 따라온다면, 게다가 자신의 힘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 영상은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왜 여자인 나는 고통스럽고 왜 남자인 너는 흥분하는가.



당신이 받은 폭력은 그 남자에게 흥분이고, 당신이 받은 고문은 그 남자에게는 쾌감이다. 당신을 보는 것은 이제 그 남자에게는 마스터베이션 거리가 된다. (p.24)



다시 강간판타지 얘기로 돌아가면,

나는 강간판타지를 가진 어떤 여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부터 본인의 판타지였을까?

그러니까 만약 세상에 포르노가 없었다면, 강간하는 영상들이 없었다면, 그걸 찍고 보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없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저 스스로 '내 몸이 침범당하길 원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섹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했던 섹스들도, 내가 '내 의지'라고 생각했던 것들, 혹은 '나는 이건 별로지만 네가 좋아하니까' 참았던 것들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이 아닌' 것이 될까.

나는 우리에게 포르노가 준 수치가, 포르노가 공급한 폭력이 내재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이, 이러는 게 섹스에서는 응당 당연하다는 것이, 이것이 은밀한 관계가 가진 '특권'이라는 것이 내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버린 거란 생각을 하게된 거다. 만약 내가 그런 영상들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그런 영상을 찍고 보는 남자들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내 섹스들을 돌이켜 보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었을 것들은 과연 몇 개나 될까. 게다가 상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수치스럽지 않았나. 수치스러움을 참지 않았나. 어떤 요구들에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하는 마음에 '싫어, 그건 하지마' 라고 요구할 순 있었지만, 그러나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이정도 까지는 그래도 할 수 있지' 로 폭력을 내재화하지 않았나. 포르노를 보고 남자들은 폭력을 자신의 것처럼 만들고, 여자들 역시 그것을 자기 안에 쌓아버린 것 같다. 나는 포르노를 보지 않는 사람이고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이 포르노 보기를 꺼려할 것이다. 물론, 보는 여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포르노를 보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라도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하지' 정도를 어느 틈에 알고 있잖아.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채로 시작하는 섹스가, 과연 평등한 관계에서 오는 섹스일까?

섹스에서, 네가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평등한가? 평등했나?

단순히 어떤 자세를 취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시작과 끝의 순간들에, 나는 폭력을 내재화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면 '그러지마' 하게되는 것들을 나는 하고 있었나. '내가' 하면 괜찮은 게 되는건가.

나는 수치스럽지 않았나.



당신은 살아남기 위해 수치심을 배우며 이 수치심을 성적 허세로 가리는 법을 익힌다. (p.28)






이 책 《포르노에 도전한다》의 원제는 《only words》이다. '단지 말' 이라는 제목인건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얼마나 적절한 가져옴인지, 그러니까 국내에서 '포르노에 도전한다'는 제목을 이끌어올 이 책이 왜 '단지 말'이란 제목을 갖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어휴, 따먹고 싶게 생겼네' 라는 말을 내가 들었을 때, 그는 나를 '아직' '따먹지'는 않았으나, 그런 욕망을 가짐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하며, 언제든지 저 남자가 그 말을 실행하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저 표현'인건가? 그저 말만 한건데 뭐 어때, 하며 웃을 수 있는가? 저 '말' 자체에 성적 희롱이 담겨있다. 그것이 그저 말뿐인가.

맥키넌은 이 책 only words 를 통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백인 전용'이라는 간판은 '유대인 사절'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차별행위로 간주된다. 인종 격리는 "나가!" "당신은 여기 못 들어오게 되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일어날 수가 없다. 상대를 높이는 것이나 깎아내리는 것이나 모두 의미 있는 기호나 의사 전달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다. (p.36)



인종적으로도 성적으로도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서, '평등'은 '단지 말'에 불과하고, 그러나 차별적 '표현'은 그저 말뿐인 게 아니다. 그것은 행위에 다름아니다. 폭력적 말은 폭력적 행위다. 포르노에서 강간이 벌어지고 정액을 쏟아낼 때, 그 안에는 강간을 당하고 정액을 받고 있는 행위가 있다. 포르노를 '표현의 자유'로 변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르노 안의 행위들은 게다가 실생활에서도 행위로 이어진다. 그게 맥키넌이 '반포르노'를 주장하는 이유이고, 내가 그녀의 책을 읽는 이유이다.





캐나다는 이미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은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그러한 견해를 거부했다. - P10

이 책은 사람들에게 표현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해악의 실상, 즉 표현이라는 것이 여성과 어린이에게, 피억압 집단을 위한 평등의 가능성에, 특히 여성들의 인권에 무슨 짓을 하는지를 바로 볼 수 있게 하려는 시도이다. - P11

상당수의 포르노가 인종적·민족적 적대감을 섹스와 연결시킨다. 또 포르노는 공격행위를 쾌락으로 제시함으로써 힘없는 자에 대한 폭력에 대해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 P17

전쟁중에는 세르비아 파시스트 군인들이 이슬람 여성과 크로아티아 여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하기 위해 수용소에 감금했다. 이런 강간·살해 캠프에는 포르노가 판을 치고 있었다. 그 캠프들에 있었던 여성들에 따르면, 군인들은 포르노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행위를 자신들에게 그대로 실행했다고 한다. 또 그녀들에게 자행된 성적 잔학행위가 그대로 포르노르 만들어지고 있다고도 보고된다. - P17

포르노는 뿌리 싶은 성적 부속물을 만들어내는데, 여성 혐오가 바로 그것이다. 그 여성 혐오는 다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르노 옹호를 추진하고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 P18

이렇게 수천 년 침묵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카메라가 발명되고,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카메라에 담겨지게 된다. 당신이 고통받는 동안 그 고통의 리듬에 맞춰 셔터 누르는 소리나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그 영상물들이 다른 어딘선가 매매되고, 사람들에게 돌려가며 보여지거나 서랍 속에 감춰져 있으리란 걸 잘 알고 있다. 그 영상물 속에, 당신이 겪었던 일들은 영원히 남게 된다. 남자들이 그것들을 갖고 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 또 누구나 그 속에 담긴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남자가 당신을 포르노 제작에 사용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은 그 영상물들을 통해 늘 다시 행해지고 되살아나며 또 느껴지고 있다. 당신이 받은 폭력은 그 남자에게 흥분이고, 당신이 받은 고문은 그 남자에게는 쾌감이다. 당신을 보는 것은 이제 그 남자에게는 마스터베이션 거리가 된다. - P24

당신에게 표현이란 마치 영화를 향해 소리지르는 것과 같다. "누구든 저 남자 좀 말려요!" 하고 소리쳐도 관객들은 아무 소리도 못들은 듯이 행동한다. 꼼짝도 하지 않고 영화를 보거나 당신에게 방해받았다는 듯이 자세를 살짝 고쳐 앉는다. 영화 속 장면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계속된다. 당신이 지른 소리의 여운이 귓속에서 사라지면 당신은 무슨 말을 하기나 했는지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당신 자신의 경험은 마치 당신 눈에는 보이나 멈출 수 없는 영화처럼 더이상 당신에게 현실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이렇게 현실의 삶이 예술을 모사模寫한다. 당신의 현실은 포르노 대본이 그리는 대로 규정된다. 당신은 살아남기 위해 수치심을 배우며 이 수치심을 성적 허세로 가리는 법을 익힌다. 또 성적 무능과 이 성적 무능을 매력으로 만드는 법을 배운다. - P27

성의 은밀함을 배우고, 아는 것을 잊어버릴 때까지 말하지 않는 습관을 익힌다. 이런 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당신은 자기 몸을 빠져 나와 대신 다른 사람을 가장하는 법을 배운다. 당신은 애교가 넘치고 고분고분하며 곧잘 남을 흉내내는 아주 수동적이고 말이 없는 자아를 개발해낸다. 한마디로 말해 당신은 여성다움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 P28

미국 여성의 38%가 소녀시절 성추행을 당한다. 우리 여성 중에 24%가 결혼생활에서 남편에게 강간을 당한다. 우리 중에 거의 절반은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강간 피해자가 되거나 강간당할 뻔한다. 많은 수가 두 번 이상 이런 경험을 겪고, 특히 유색인 여성이 심하다. 또 많은 여성이 여러 남자들한테, 그것도 대개 아는 남자들한테 당한다. 밖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85%가 사용자들한테 성적 괴롭힘을 당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의사들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섹스를 위해 매매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남자들이 언제든지, 심지어 불황 속에서도 항상 돈 주고 성을 산다는 것이다. - P29

포르노를 옹호하는 것은 표현으로서의 성적 학대를 옹호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또 동시에 포르노 및 포르노 옹호가 여성들로부터 표현, 특히 성적 학대에 대항하는 표현을 박탈해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강요된 침묵과 우리를 둘러싼 포르노 논쟁의 소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성들은 강요된 침묵 속에서, 여성들을 속박하는 굴레(이것에는 성적 특징이 주어지기 때문에)를 마치 스스로 좋아서 택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한편, 포르노 논쟁은 헌법의 보호 아래 활보하며 제대로 된 담론으로 (심지어 여성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통용되는 검열의 정의는 힘없는 사람들의 표현을 막는 정부의 행위라는 것에서, 국가권력의 배후에 숨어 힘없는 사람들을 침묵시키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폭력이라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 P31

수정헌법 제1조(譯註:1789년에 만들어지고 1791년에 효력 발생. "미합중국 의회는 특정종교를 옹호하거나 자유로운 종교행위를 금지하거나 언론 또는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또는 평온하게 집회하고 피해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 청원하는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가 이러한 생각과 감정의 교환 과정을 보장하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포르노에서 일어나는 일은 마음 속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일어난다. 무엇보다 먼저 확인해 두어야 하는 것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에게 섹스를 강요하고, 공갈협박하고, 압력을 넣고, 속이고 꾀는 것은 포르노에 들어 있는 사상이 아니라 포르노 산업이라는 것이다. 포르노에서 여성들은 윤간 장면을 찍기 위해 윤간당한다. 여성들은 윤간이라는 생각에 의해서 윤간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섹스 영화를 만들려고 여성을 폭행하고, 성기를 삽입하고, 사지를 묶어 재갈을 물리고, 옷을 벗기고, 음부를 벌려 래커와 물을 뿌리는 것은 포르노 때문이지 거기에 담긴 사상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포르노를 위해 섹스 영화를 만들려고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것이지 섹스살인의 사상이 그녀들을 죽이는 게 아니다. 포르노가 표현하는 사상을 사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포르노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짓들이 필수적이다. - P38

마찬가지로 포르노의 최종 소비단계를 보면 여성들을 공격하는 것은 포르노에 들어 있는 사상이 아니라 남자들이다. 포르노를 보고 만들어진 남성, 포르노를 보고 바뀐 남성, 포르노를 보고 충동을 느낀 남성들이 여성을 공격한다. 포르노가 시렁에서 뛰어내려 여성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이론상으로 여성들은 포르노가 가득 들어찬 창고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그래도 포르노는 껍데기 안에 조용히 들어 있다. 문제는 포르노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이 저질러지느냐, 포르노를 사용하면 무슨 일이 발생하느냐 하는 것이다. - P39

포르노 소비자들은 어떻게든 그 포르노를 3차원의 세계에서 실행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조만간 어떻게든 그렇게 한다. 포르노는 그들에게 욕구를 일으킨다. 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 그 행위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고 느낄 때, 그들은 실행한다. 그들은 매일매일의 생활로부터 흥분을 느껴 항상 성기가 발기돼 있을 수 있도록 이 세상을 포르노 천지로 만들기 위해, 그들이 택한 활동 영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포르노 소비자로서의 교사들은 여학생 제자들을 자신과 잠재적으로 동등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고 무의식중에 강간범의 입장에서 강간에 대해 가르칠 가능성이 있다. 의사들은 마취 상태의 여자들에게 성적 가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고, 분만 장면을 구경하거나 고통을 주면서 즐길 가능성이 있다. 또 의대에서 성교육을 하면서 포르노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 P43

화장실 벽에 낙서나 하는 수준의 포르노 소비자들도 있지만, 사법적 의견을 쓰는 보시자들도 분명히 있다.
아마도 포르노 소비자들 중에는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상원 법사위원회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전화를 받는 경찰관도 있을 것이고,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 기사를 편집하는 사람ㅗ 있을 것이고, 일반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포르노 소비자들 중에는 자기 처나 딸, 환자나 제자, 또는 매춘부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면서 거기 나오는 대로 시키는 사람도 있다. 또 그들 중에는 자기 종업원과 환자를 성적으로 괴롭히고, 자기 딸을 성추행하고, 자기 처를 구타하고, 매음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마다 포르노가 옆에 있고 그런 행위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이 된다. 친목회에서 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성들을 집단 강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때 그들은 포르노를 높이 쳐들고 큰 소리로 읽으면서 그대로 흉내 낸다. - P43

이들 중에 어떤 자들은 연쇄 강간범이 되거나 연쇄 강간살인범이 된다. 이런 행위들에서는 때로 포르노 사용과 제작과의 경계가 애매하다. - P43

그렇다고 해서 모든 포르노가 학대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일부 포르노가 강제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들어 모든 포르노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로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모든 포르노는 성의 불평등 상황하에서 만들어진다. 거기 사용되는 사람들은 거의가 어렸을 때 성적으로 학대받은 가난하고, 절망에 빠져 있고, 가정이 없는, 팔려 온 여성들이다. 포르노 산업은 이런 상황을 악용하면서 이윤을 착취한다. 또 포르노 산업은 이윤을 낵 위해 이런 상황을 유지시킨다. 이런 상황은 자유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선택을 강요한다. 노골적인 폭력이 들어 있지 않은 포르노의 경우조차도 여자들에게 그 장면을 연기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 P45

안드레아 드워킨과 나는 포르노를 ‘영상물과 말을 통해 여성을 복종시키는 생생한 성적 묘사물‘로 정의하는 ‘반反포르노법‘을 제안한 바 있다. - P48

포르노는 단순히 경험을 표현하거나 해석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대체한다. 메시지를 현실에서 가져오는 것을 넘어, 포르노는 현실의 자리에 대신 들어서서 실존적으로 거기 존재한다. - P51

포르노는 여자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여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여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내고, 여자에게 해서 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시각에서 ‘여자란 도대체 무엇인가‘ 혹은 ‘여자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여자를 다루는 남자는 과연 무엇인가‘에 관한 사회적 현실을 구축함으로써 그 제작과 사용 과정을 통해 세상을 온통 포르노 천지로 만든다.
사회가 포르노로 넘쳐나게 되면서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것이 바뀌고, 포르노 내에서의 표현 문제라는 관점에서 섹스 자체의 본질이 바뀐다. - P51

포르노에 나오는 여자들은 실제로 즐기는 것이고 강간은 시뮬레이션 기법이라는 주장은 하면서 왜 그 반대의 경우, 즉 여자들의 쾌감은 시뮬레이션 기법이고 강간은 실제라는 주장은 안 하는지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답은 소비자가 쾌감을 느끼려면 시나리오가 남자의 강간에 대한 환상, 자신은 여자를 학대하고 여자는 그것을 좋아하는 환상에 부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돈을 주고 처음에는 저항하는 것처럼 하다가 결국 굴복하도록 시킨다고 해서 그 섹스가 서로 교감하는 섹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포르노를 매춘의 수단으로 만든다. 그 섹스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돈이 강제력의 매개체가 되고 동의同意의 외양을 제공한다. - P55

섹스를 하면서 보는 것도 나중에 사진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사진들은 전리품이며, 사진을 보면서 성적 만족을 느낀다. 나체춤을 에로티시즘의 ‘연출‘인가 아니면 에로티시즘 그 자체, 즉 하나의 섹스행위인가? 라이브 섹스 쇼는 어떻게 다른가? 영화에서 실제로 행해진 집단강간을 보는 사람과, 영화에 나오는 집단강간을 흉내내는 실제의 집단강간을 보는 사람, 또는 실제 집단강간을 보는 사람 사이에는 남자들이 성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놓고 볼 때 아무런 차이가 없다. - P56

미국의 명예훼손에 관한 법은 지배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종속된 집단에 대해 사실상 무엇이든 말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동시에 힘있는 개인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핑계로 삼아 힘없는 사람들이 표현수단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매체의 권한을 뒷받침하는 효과만 낳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피해를 입는 쪽은 종속된 집단이며, 자신들을 나쁘게 보이도록 하는 진술은 사실이더라도 제소하겠다고 확실한 위협을 할 수 있는 쪽은 대부분 특권을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에 의해 더욱 악화된다. - P119

영상물을 갖고 생각해 보자. 포르노를 금지하는 현행법은 우선 포르노가 여성들에게 해악을 준다는 시각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런데 포르노가 퍼지면서 새로운 시장(예를 들면, 비디오나 컴퓨터)과 합법적인 장으로 영역을 넓혀가서는 여성에 대한 학대가 점점 더 학대로 보이지 안게 되자, 즉 여성에 대한 학대가 점점 더 섹스로 보이게 되자 현행법은 더욱 약화된다. 그래서 법원은 무엇이 포르노이고 무엇이 포르노가 아닌지를 점점 더 알 수 없게 된다. - P131

성인 여성들을 사용한 포르노에 관한 법의 역사에 비춰 보면 아동 포르노의 경우는 ‘기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동 포르노는 성취향이 다른 소수파의 표현(실제로 그렇더라도)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이들이 어린이와 섹스에 관한 ‘사상‘을 주장하는 것(실제로 그렇더라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아마도 심의를 받는 영화에 사용된 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런 결론과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동 포르노가 유해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순전히 어린이들과 성인들 사이에 권력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 터인데, 여전히 그런 불평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 P133

이러한 표현과 평등 문제의 맥락 속에서 다시 한번 나와 안드레아 드워킨이 성안했고 인디애나폴리스시에서 통과시킨 반포르노 조례에 대한 사법적 의견을 살펴 보자. 이 조례에서는 포르노가 행하는 해악들을 정리해서 평등권에 대한 침해로 정의하고, 그런 해악들을 차별행위로 간주하여 소추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조례에서는 포르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들의 학대에서 차지한 포르노의 역할을 입증하고, 박탈된 자신들의 민권을 회복하고, 포르노를 중지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법률적으로는 이것이 사상에 대한 검열로 간주되고 있다. - P133

평등이 단지 말에 불과한 게 아니라 현실인 사회에서는 인종족 또는 성적 공격과 모욕의 말들은 의미 없는 소리가 될 것이다. 사람과 물건 사이의 섹스, 인간과 종이조각 사이의 섹스, 현실세계의 남자와 비현실세계이ㅡ 여자 사이의 섹스는 성적 흥분을 깨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학대의 골동품들은 박물관의 공룡 뼈 옆에 있는 유리상자 속에나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침묵의 상황이 그 뒤에 숨어 있는 자들에게 하나의 권력 행위이고 침묵 속에 침잠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강요된 무권력의 경험이지만, 그 날이 오면 침묵의 상황은 권력행위도 아닐 것이요 강요된 무권력의 경험도 아닐 것이다. 그 날의 침묵은 생각을 넓힐 수 있는 휴식이 될 것이고, 표현에 모양을 지어주는 매력이 될 것이며, 새로운 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 P155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인권운동가들과 여성운동가들은 콤스톡의 후예가 등장했다며 긴장했다. 그러나 제2의 콤스톡은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수호하려는 남성이 아니라 포르노는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이에 대한 제재가 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캐서린 맥키넌과 안드레아 드워킨이었다. 변호사인 맥키넌과 작가인 드워킨은 포르노가 미국 사회의 여성의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장려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평등권이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포르노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포르노의 규제를 주장한 사람들은 성도덕과 윤리적 차원이나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그릇된 영향 등을 고려애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9-12-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쓰고 났더니 오늘치 에너지 다 소진되어버렸다..

단발머리 2019-12-10 12:33   좋아요 1 | URL
인용해주신 글들은 아직 다 못 읽고, 본문만 읽었어요.
읽기에도 힘든 글을 이렇게 정리하고 완성해 낸 그대에게 휴식 시간을 드리고 싶네요.
포르노에 관심이 없는데도 우리는 알아야 하고 읽어야 하네요 ㅠㅠ

다락방 2019-12-10 12:44   좋아요 1 | URL
힘들긴 하지만 너무 좋은 독서였어요. 어서 빨리 드워킨 책도 읽고 싶어요. 드워킨 책중에 <MERCY>란 원제를 가진 [신에게는 딸이 없다]라는 책도 얼른 읽어보고 싶은데 역시나 절판이고요 ㅎㅎ 출판사들이 분발해줘야 할텐데 말입니다.

[21세기에 지켜야 할 자존심] 보면 정희진 쌤이 앎은 고통을 수반한다고 하잖아요. 제가 알아가는 과정 역시 그러하리라고 생각해요.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편이 나았을까, 생각해보면 또 그건 그게 아니니까요.

열심히 읽을거에요, 단발머리님. 열심히 읽고 쓸거에요. 그래도 일단 오늘은 치킨 좀 먹어야겠어요 ㅎㅎ

잠자냥 2019-12-1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킨 먹을 만한 페이퍼네요. 두 마리 드셔도 될 거 같은데요. ㅎㅎ

전 여태까지 살면서 포르노 본 적 진짜 없는데, 이걸 또 거짓말한다고 생각하고는 괜찮으니까 말해보라고... ㅠ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포르노 권장하는 사회도 참 정상은 아닌 것 같아요. 휴... 글에서 묘사된 부분만 읽어도 끔찍한데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니 세상 참....

암튼 치킨 많이 드세요. (참, 근데 발은 꼭 씻고 드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10 17: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치킨 허락 받았다. 만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르노를 어떻게 보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남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보는걸까요? 포르노를 보는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봐요. 그게 그 위디스크.. 그런 데서 보는걸까요? 예전에 고등학생 때 목사 딸과... [동물적 본능]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건 아마도 포르노 보다는 에로 영화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자꾸만 야한 거 보자고 저를 불렀는데, 저는 매번 갈 순 없었어요. 그렇지만 포르노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뭔가 알음알음으로 남자들끼리는 수단이 있는가 봅니다.

사실 포르노 본 여자들은 드물지 않나요? [터보레이터]도 같이 비디오방에서 보던 친구가 보다말고 토할 것 같다고 나가자고 해서 중간에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토할 것 같아서 못보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해보고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다니, 정말 괴이하지요?

아무튼 저는 퇴근을 하면 빨래를 돌리면서 치킨을 먹겠습니다.

발 씻고.. 꼭 씻고요... 냄새...
 

토요일에는 도서관에 가 책 몇 권을 빌렸다. 그중에는 정희진 쌤이 공저자로 참여한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이 있다. 다른 글은 관심이 없는데 정희진 쌤의 글만은 읽고 싶어 책장에서 꺼내와서는 자리 잡고 앉아 정희진 쌤의 글을 읽었다.
















2007년의 강연을 책으로 낸것이니 한참 전의 글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대답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대답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만큼 이 글에서 나타난 생각과는 또 많은 부분들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싶었던 거다. 어쨌든 이토록 오래전의 글이라 해도 무척 좋다. 아, 역시 정희진 선생님이다, 감탄했다. 지금에야 간혹 흐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의문을 품고 고개를 갸웃하긴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세상에 나온 정희진 선생님의 글들이라면 모두 찾아 읽고 싶고 외우고 싶다. 사고의 확장이란 게 무엇인지 정희진 선생님 덕에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까. 선생님의 모든 글을 외우고 싶다고 해서 외워진다면 좋겠지만, 크... 그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워..


또한, 내가 아무리 책을 읽고 공부한다고 해도 정희진 선생님을 따라갈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전에 제자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표는 결국 청출어람이 아닌가, 라는 글을 쓴 적도 있지만, 그러나 나는 스승을 앞서는 제자가 될 순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 스승이 정희진 선생님이라면..  배우고 싶고 공부하고 싶지만, 그런 한편 공부해서 뭐하나, 싶은 마음도 동시에 든다. 해봤자 나는 이렇게 똑똑해지지도 못할텐데, 따라잡지도 못할텐데, 그래봤자 고만고만할텐데...하고 의기소침해지는 거다.


어쩌면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읽으면서 느끼는 기쁨이 전부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정희진 선생님의 글을 읽고 감탄하고 기뻐하는 것, 그것이 내가 독서에서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해봤자 내가 여기서 뭐 더 어떻게 되겠어, 그냥 읽고 감탄하고 기뻐하는 거지. 설사 그렇다해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정희진 쌤 글 읽으면서 기뻐하는 건 그것 자체로 좋으니까.


좀전에는 캐서린 맥키넌의 책을 다 읽었다. 북마크를 여러개 붙였고, 여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 내일 아침에 정리해 페이퍼 쓸 생각이다. 안드레아 드워킨의 책까지 같이 읽고 쓰고 싶지만, 하아, 상호대차로 신청한 책을 ㅠㅠ 동대문 도서관에서 잘못 보내줬다. 리스트는 맞게 뽑아서 보내주고서는 책은 다른 걸 줬어 ㅠㅠ 결국 동시에 읽을 수 없었다. 흑흑.


어쨌든 정희진을 읽고 맥키넌을 읽고 ... 너무 좋은 것이다.



이 사람들의 글을 읽고 달달 외우고 싶다.

지적인 이상형들이다 ㅠㅠ


남녀평등은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인가요? 아니면,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인가요? 여성과 사회적 지위가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남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은 평등이고 ‘여권 신장‘인데,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은 아마 남성분들 대다수가 추락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청중 웃음) 여성에게 "남자 못지않네"라고 하는 것과 남성에게 "계집애 같은 놈"이라고 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의미 자체가 이미 불평등하다는 거죠. 남녀평등, 양성평등 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 P224

저는 평등의 기준을 문제 삼고 싶습니다. 남녀평등을 위해 남성들은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서, 왜 여성에게는 군대에 가라고 합니까? 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평등을 위해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를 개선해야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아지기 위해 장애를 ‘초월‘하고 ‘극복‘해야 하나요? 평등은 공정한 것, 사회적 정의를 원하는 것이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들이 남성하고 같아지겠다고 남성들이 여태까지 잘못해온 고문이나 전쟁 같은 일까지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처럼 다양한 차원에서 "여자도 군대 가라"라는 이야기를 비판할 수 있겠지요. - P224

여성주의는, 어떤 면에서 여성이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이라는 사회 제도를 문제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별 때문에 여성(남성)들이 이익을 보기도 하고, 차별을 받기도 하죠. 예를들면, 대개 남자 아이에게는 하늘색 내복을 입히고 여자 아이한테는 분홍색 내복을 입히죠.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요. 이런 걸 가지고 저 같은 사람이 성차별이니 인권 침해니 억압이니 하면, 정신 나간 여자가 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때가 속 비트‘라든가 ‘강력 슈퍼타이‘같은 세제의 포장지는 다 푸른색이에요. 강력함을 나타날 때는 푸른색을 쓰죠. 그런데 ‘울샴푸‘같은 섬유 유연제들은 다 분홍색이거든요. 어린아이들에게 성별에 따라 내복을 입힐 때는 그 자체가 사회적 의미를 발생시키지 않지요. 그런데 푸른색이 힘을 상징하면서부터는 사회적 의미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남성성하고 연결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죠. - P226

일단 자본주의 사회에는 남자와 여자 두 개의 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성, 곧 남성만 존재하죠. 이분법은 하나만을 위한 세계고나 입니다. 여성은 남성의 대립적, 대칭적 범주가 아니라 잔여지요. 곧 남성은 남성이지만,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아닌 존재‘를 의미하지요. - P227

누군가 제게 농담 섞어서, "보통 여성주의자들이 재수 없는 말을 많이 하니까, 그런 이미지를 상쇄시키려면 페미니스트들도 예쁘고 섹시하면 된다"라고 말해서 충격받은 적이 있습니다. (청중 웃음) "사람들이 너를 싫어하는 것은 네가 페미니즘을 말하기 때문이 아니고, 못생겨서 그렇다"라는 거예요. 페미니스트든, 간첩이든, 강도든 간에 여자는 예쁘면 만사 오케이라는 거니다. 간첩 얼짱, 강도 얼짱...., 이게 다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 여성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활동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그러니까 저한테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위해서 예쁘게 하고 다니라는 거죠. (청중 웃음) <황진이>같은 드라마들이 사람들에게 여성의 미모가 얼마나 대단한 자원인가를 학습하게 하지요. 그런데 사실 여성은 또 너무 예뻐도 안 돼요. 너무 예쁘면 실력이 없어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어차피 이중 메시지예요. - P229

가부장제에 대한 정의 중에 이런 게 있어요. 가부장제는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언어"다. 여성이 아이를 낳기 때문에, 계보를 따진다면 인간사회는 여성 중심일 수밖에 없어요. 모계일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면, 어떤 여성이 열 명의 남자하고 잤다고 칩시다. 그러면 임신한 아이가 누구의 애인지는 여성 본인만 알죠. ‘성(姓)‘이라는 글자에 계집 녀 변을 쓰는 것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보를 남성이 가족제도로, 언어체제로 여성의 권리를 삐앗아간 거죠. 남자의 승인이 있어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상속도 가능하고, 동성동본을 따지는 것도 남성의 성이 기준이 되죠.
결국 아이는 여자가 낳는데, 그것에 대한 소유권과 시민권을 남성이 독접한 것이 가부장제입니다. 그리고 여성의 노동력과 몸에 남성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썬 남성의 계열로 만든 것이 족보죠. - P231

쉽게 이야기하면, 계열을 만드는 노동과 일은 다 여성들이 하는데, 남성이 자신들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이름을 붙이고 조직한다는 것입니다. - P231

제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프란츠 파농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인도 제도에서 태어난 정신과 의사인데, 알제리 혁명투쟁에 참가해서 민족해방을 위해 싸우다가 서른여섯 살에 죽었죠. 그런데 파농한테 흑인들을 고문하는 유럽 제국주의 경찰이 정신과 상담을 청합니다. 어차피 고문하는 것이 직업이니까,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죄의식도 느끼기 싫고, 직장을 잃기도 싫으니까요. 하지만 이 둘은 굉장히 양립하기 어려운 거잖아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여학생들이 자주 합니다. "선생님, 여성주의를 괴롭지 않게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사람마다 괴로움과 쾌락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고통 없는 앎은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P233

남성들은 계급이나 권력 등 자원이 많을수록 여자들이 많죠? 어떤 의미에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동산(動産)‘이잖아요. 모든 남성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들이 자기 여자친구나 부인한테 살 빼라고 말하는 이유가 뭐예요? 여성의 미모가 자기 계급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부자가 미인을 얻는다‘등이 그런 말들이죠. 예쁜 여자는 남성의 자존심이나, 남성이 갖고 있는 재산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반면에 계급이 낮은 남성들은 여자가 없죠. ‘농촌총각 문제‘가 이런 거지요. 성매매는 계급이 낮은 남성들이 한 명의 여성도 ‘가질 수 없기 대문에‘ 전통적인 집결지(‘사창가‘)에서 한 여성을 많은 남성들이 공유하는 거잖아요? - P237

반면 여성들은 계급이 높을수록 남자가 많나요? 물론 그런 ‘훌륭한‘여성들도 간혹 있겠지만,(청중 웃음) 계급이 높거나 지식이 많은 여성들은 대부분 싱글이거나 한 명도 감당이 안 되서 이중노동에 시달리죠? 반대로 계급이 낮은 여성일수록, 많은 남성을 상대해야 할 경우가 많지요.
다시 말하면, 성별에 따라서 계급과 섹스가 맺는 관계가 정반대입니다. - P238

사회운동이 실패하는 이유는 사회가 남성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남성들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갖고 있지는 않잖아요. 지배적 남성성을 갖고 있는 엘리트 계층 남성들은 극히 소수죠. 대부분 남성들은 약자예요. 계급적으로 성적으로 그렇고, 연령이나 학벌, 지역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많은 약자들이 왜 사회운동에 참여하지 않는가? 자신을 이상적인 남자들하고 동일시하면서, 성차별을 하잖아요. 쉽게 이야기하면, 계급이 높은 남자한테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걸 여자한테 풉니다. 여자들과 단결해서 그 남자를 칠 생각을 하지 않고.... 모든 그룹에 남성이 있고, 모든 그룹에 여성이 있어요. 각 집단의 남성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 그룹의 여성들과 연대하지 않고, 다른 그룹의 남성들과 남성 연대를 합니다. - P250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장애 남성 여러분, 당신은 비장애 남성한테 억압을 받았으면 우리랑 같이 연대해서 비장애 남성들의 잘못된 성매매를 바꾸고 대안적인 성문화를 만들어야지, 왜 당신을 억압하는 사람들과 동일시를 하나요?" 오늘은 장애를 예로 들어 이야기했지만, 동성애자 차별, 계급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지배계급 남성보다 그렇지 않은 남성들이 여성 비하가 심한 경우가 많잖아요? 자신의 소외성을 남성성으로 보상받기 위해서. 사실 노동운동을 분열시킨 것은 여성노동운동이 아니라 가부장제죠.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하고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자본가들과 연대하는 것은,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똑같이 발생하는 문제죠. - P250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09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0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12-10 08:4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아 입간지러!!! 이야기 듣는데 너무 두분같아서 맞네 맞아~ㅋㅋㅋㅋ 햇눈뎈ㅋㅋㅋ 좋은 이야기였어요 ㅋㅋㅋ

2019-12-1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12-10 09:33   좋아요 0 | URL
정희진 샘 강연에 두분이 나타나신적 잇죠?ㅋㅋㅋㅋㅋㅋ 그때 강연들으러 갓엇대요 ㅋㅋㅋ케

다락방 2019-12-10 09:34   좋아요 0 | URL
악 네 맞아요! 아니 근데 저를 어떻게 알아봤을까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주말이 다 갔다. 어제 마시다 남겨둔 와인을 따라서 텔레비젼 앞 거실에 앉았는데 이 시간에 사람들은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걸까? 리모콘을 들고 채널을 아무리 돌려봐도 볼만한 게 없다. 흥미를 끄는 프로그램이 없어. 다시보기로 걸어서 세계속으로나 세계테마기행을 볼까, 하다가, 다시 텔레비젼을 끄고 책 앞에 앉는다. 역시 책이 최고야. 책과 와인이 있는 일요일 저녁. 


낮잠을 좀 자둔 터라 아마도 오늘 늦은 밤까지 깨어있을텐데, 역시 책만한 친구가 없다.






















그리고 개인중고샵에 책들을 등록했다. 한 번도 읽지 않은 새책까지 저렴하게 내놨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usedshop/wshopitem.aspx?SC=12609



일요일 저녁 19:51

먼데이 모닝 05: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언제나 '기다림'이란 화두에 끌린다. 길고 긴 기다림과 목적지에 닿겠다는 그 마음은 언제나 나를 건드린다. 그런 면에서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좋았다. SF 라는 장르를 빌어서도 충분히 경력단절 여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걸 드러내준 <관내분실>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작가의 글이었다. 그 따뜻함은 최은영의 소설과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특별할 게 없다. 앞에서부터 내리 세 편의 단편을 읽노라니 모두 주는 느낌이 비슷해, 아 다른 단편 역시 그러하겠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단편들을 모아둔 이 단편집 한 권의 분위기는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문목하' 작가도 동시에 떠올렸는데, 내게는 김초엽 보다는 문목하, 로 정리될 수 있겠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북마크를 하나도 붙이지 않았다. 문장면에서는 인상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말.



어찌되었든 나는 SF 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국내 여자 작가들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문목하, 김초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19-1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딱 다락방님이 느낀 거의 그대로여서 중반까지 읽고 덮어둔 상태입니다. 큰 재미를 못 본지라 이 책에 대한 다수의 열광이 살짝 갸우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sf 를 몰라서 그른가 싶기도 하고 그랬음요.

다락방 2019-12-08 19:55   좋아요 0 | URL
sf를 모르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이야기의 진행,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는 중에 책 읽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의 감상도 저랑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저도 좀 갸우뚱 했습니다. 치니님은 중간에 덮으셨네요. ㅎㅎ 관내분실은 읽으세요 치니님. 그건 좋아요!

blanca 2020-01-2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지금 이 책 이북 결제 직전인데 읽을까요, 말까요. 냉정하게 얘기해 주세요.

다락방 2020-01-20 17:32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은 읽으셔도 좋을겁니다. 아마 근사한 리뷰를 써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랑 다르게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우리 모두는 대화가 간절해질 때가 있다. 각자 어떤 대화냐는 다르겠지만, 아 여기에 있어서만큼은,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친밀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 하는 바람을 가질 것이다.


나의 경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에너지를 듬뿍 받는 타입이다. 앞으로의 일상을 유지하게 해줄 힘이 된달까. 사랑만이 유일한 답이 아니며 사랑이 언제나 답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랑 없이도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랑을 주고 또 받는다는 확신에서 오는 충족감은 그 자체로 고유하고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은 많은 경우에 대화로 가능해진다.


슬퍼하거나 짜증날 때 유독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내 안에 사랑과 욕망이 가득찼을 때, 기쁨과 환희가 가득찼을 때 그걸 털어놓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다. 내가 얼마나 사랑을 하는지 그리고 사랑을 받는지, 내가 얼마나 지금 기쁜지 얼마나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는지를 얘기하고 싶어진다.


며칠전 읽었던 책으로 리뷰도 썼지만, 공부뽕 가득 찬 것에 대해서도 마구 수다를 떨고 싶다. 그 날 당장 친구와 문자메세지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거기에 대해서 아직 나는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 더 하고 싶다. 저자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했는지에 대해서 조잘조잘 얘기하고 싶다. 아직 그 공부뽕에 대해서도 다 얘기하지 못해 뭔가 가슴 속에 쌓여있는데, 그런데 또 얘기하고 싶은 게 생겼다. 'E. M. 포스터'의 《모리스》를 읽고 그런게 생겨버렸다.


상대의 눈을 보고 묻고 싶은데, 너라면 어떨것 같아 묻고 또 그 답을 듣고 싶은데, 한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모리스에 나를 대입해 이야기나눠보고 싶은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나는 욕구불만이다. 자, 글로라도 쓰도록 하자.



















모리스는 대학에 다니며 클라이브랑 사랑을 하게된다. 남자와 남자이니 동성애다. 그들은 3년간 사랑을 나눈다. 그들에게 생애 처음 사랑이었고 또 그들은 서로에게 반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클라이브의 태도가 좀 달라진 것 같다. 모리스는 예전처럼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클라이브는 묘하게 달라졌어. 그러더니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한다. '네가 싫어져서' 가 아니라, 이제 자신이 '정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남자를 사랑했던 그는, 이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다. 동성애는 감춰야하고 병이고 죄악이었던 그 당시에 클라이브는 자신이 이제 '정상'이, 무려 '정상'이 되었다고 하는 거다. 그러면서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하는 거다.



이것은 모리스에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나랑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성(SEX)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어버렸다고 하니, 대체 이를 어쩐단 말인가.



앞으로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여태 이성애를 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가족이 아닌 타인은 '남자'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와 연애하던 시절 나를 인간적으로도 좋아하고 이성(SEX)적으로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연애를 했다. 우리는 그 시절 많은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하며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는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나만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내 사랑을 줬고 열정을 줬다. 시간과 에너지도 줬다. 우리가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나와 그렇게 사랑을 나누다 어느날 사랑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 이제 더이상 너랑 연애를 할 수 없어, 나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어." 라고 한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는걸까. 나는 어쩌지? 다른 성(SEX)을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나에게로 돌아와'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먹힐까? 아예 성적 취향이 바뀌어버린건데, 그런 사람에게 나에게 돌아와, 우린 다시 사랑해야해, 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클라이브는 이제 '정상'이 되어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리스와의 사랑도 끝나버렸다고. 그러나 모리스에게 이 얘기는 갑작스럽고 모리스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는데, 내 사랑은 정리되지 않았는데, 너는 이미 정리가 되었고 다른 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당연히 모리스는 클라이브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클라이브가 여자랑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을 때조차도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다. 그 기대는 그렇게나 오래 간다. 그러나 클라이브에게 동성애는 이제 역겨운 것이 되어있고, 모리스가 어서 빨리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축복받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클라이브와 모리스는 가장 가까운 사이었다가 이제 그 누구보다 멀어진 사이가 된다.


그러나 클라이브가 모리스를 사랑했던 시절, 그 강렬한 우정은 진짜였으므로,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다시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을거야, 그렇게 되어야지. 그러나 모리스의 동성애를 고쳐야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리스의 사랑, 모리스의 성적 취향은 고쳐질 수 없는 그 자신만의 것이었다. 선천적인 것이었다. 그런 모리스 안에는 다른 남성을 향한 욕망이 들끓어 오른다. 플라토닉 한것만이 아닌, 육체적인 사랑을 갈망한다. 그는 그 모든 걸 나눌 애인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치료도 받으려 해보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건,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모리스가 되어, 나에게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라고 말하는 나의 이성애인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나는 무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나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성적 취향이 바뀌었다면, 그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돌아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만약 다른 여자가 생긴 거라면, 다른 사랑을 하는 거라면, 기다릴 수 있다. 어쩌면, 그 언젠가, 먼 훗날에라도 나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아주 조금, 아주 조금쯤은 있는 거니까. 동백이 엄마는 용식이에게 '기다리면 안와, 기다리는 사람은 쳐들어오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어'라고 하였지만, 그래도, 어쩌면, 조금쯤의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그가 좋아하는 성별에 내가 속하니까.

그러나 그가 동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면 나의 기다림은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나는 거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가 이성애를 하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되었듯이, 다시 이성애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만약 그가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나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이 끝나버렸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친구로 남는 방법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모리스는 클라이브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클라이브와 모리스의 관계는 나와 그의 관계와 다르고, 나는 모리스가 아니다. 나는 될 수 있다. 나는 가끔 그의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내 안에 애정으로 그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소식을 전하며 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을 접고, 연인의 포지션은 세이 굿바이 해야겠지만, 친구의 포지션으로 새롭게 헬로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잡아도 소용이 없잖아. 그러면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친구라는 포지션을 내 안에 되새기면서.



"그러면 우리 좋은 일 있으면 알려주는 사이가 되자."

"그래."

"음, 나쁜일도 알려주자, 그냥 일어나는 일 모두 다."

"그게 사귀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러면 30프로만 이야기하자."

"알았어."


우리는 그렇게 오래오래 친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동성애인을 질투하게 될까? 모르겠다.




모리스는 스물네살이다. 새로운 애인을 만났다. 모리스는 젊다. 나는 모리스가 참 젊구나, 생각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그는 이미 성숙한 어른이지만, 그러나 지금의 내가 보는 모리스는 젊다. 계급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면서 가진 모든 걸 버리고 우리 함께하자, 라고 말할 수 있는 데에서는 아, 나는 그가 한없이 젊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그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답이었을지도 몰라. 현실감각 없이 무조건 사랑하니까 우린 함께하자, 라는 것이 궁극적 답이 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어야 했을까?



나는 아무 상관 없어. 누구라도 만날 거고, 어떤 일도 피하지 않을 거야. 의심하려면 의심하라고 해. 그런 건 이제 지겨워. 형한테 표를 취소해 달라고 해. 비용은 내가 댈 테니. 그게 바로 우리가 자유를 얻는 출발점이 되는 거야. 그리고 나서 다음 일로 넘어가는 거지. 모험이지만 이 세상에 모험 아닌 일은 없어.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잖아. (p.329)



그러게.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런데도 그런 선택들을 하고 결국은 이렇게 사는 것이, 내게 최선이었을까? 나는 잘하고 있는걸까? 나는 최선을 선택한걸까? 이게 맞는건가? 이게 나한테 더 나은건가?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모리스와 그의 애인에게는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 그러니까 모리스가 '그가 어디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떠올릴 수 있는 장소. 약속을 한 것도 아니지만, '어딜가야 그를 볼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바로 나올 수 있는 답.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그가 있는 장소, 그가 있고자 하는 장소, 그에게 그곳에서 만나자, 했던 바로 그 장소, 펜지의 보트하우스.


아주 오래전부터 나도 펜지의 보트하우스 같은 장소를 꿈꾸었다. 나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거기에 가면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고 찾아오면 어김없이 나를 만날 수 있는 장소. 그러나 애인과 있었던 시간을 돌이켜보고 또 돌이켜보아도 나는 그런 장소를 말한 적이 없다. 그런 장소가 없었으니까. 올림픽공원의 어느 호수앞 벤치, 이런거 정해뒀으면 좋았을텐데. 함께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다 벤치에 앉으면서, 나는 외로울 때면 항상 여기를 와요, 나는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꿈이었어, 나는 모든 생각을 여기에서만 해, 나는 여기에 오면 마음에 안정을 찾아, 여기 이곳을 내가 무척 좋아해, 여기서 저 호수를 바라보면 그곳이 천국인 것 같아, 나는 주로 여기서 시간을 보내, 여기서 책을 읽는 게 가장 완벽해, 나는 항상 당신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 나만의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런 곳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에게 그걸 언급한 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를 만나고 싶어질 때, 그러나 대체 어디로 가야 나를 만날지 알 수 없을 때, 아 맞다 거기에 가면 그녀가 있어! 이런거 확신하고 달려올 수 있을텐데. 다다다닥 숨이 차게 뛰어 오면 벤치에 여느때처럼 가만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혹은 책을 읽는 나를 만날 수 있을텐데. 그러면 그는 가쁜 숨을 다독일 수 있을텐데. 헉헉, 숨을 내쉬면서 진정시키고, 여기에 오면 너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 여기에 있는 건 변함이 없네, 같은 말을 할 수 있을텐데. 나는 그에게 여기에 있는 거 알면서 왜 뛰어왔어, 하면서 내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고, 가만 옆에 와 앉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넬텐데. 땀 닦아, 냄새난다...


(응?)



모리스와 애인에게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는 게 너무 부럽다. 너무 부러워. 약속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워. 나도 갖고 싶어, 펜지의 보트하우스. 그리고 그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도 몰라, 나는. 그가 어디를 좋아하는지, 그가 주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몰라. 아, 자기 방 침대... 그런 거 말고. 나도 그런 거 있어야 되는데, 오고 싶을 때 와서 나 만날 수 있게.


자, 잘들어라.

내가 이제 말해줄게.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를.

어디에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는지 말해줄게.

약속없이 나를 만나려면 어디로 와야 하는지 말해줄게.

잘 들어, 두번 말하지 않아. 이 여자가 어디있을까, 어디로 가면 이 여자를 볼 수 있을까, 안타까워 뛰어오고 싶다면, 나는, 바로, 언제나,




회사에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일곱시반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그 시간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회사에 있다!!!!!!!!!!!!!!!!!!!!!!!!!!!!!!!!!!!!!!



내 사무실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초조해하지말고, 어디에 있을까 발 구르지 말고, 안타까워하지말고, 애태우지말고, 그냥,



회사로 와! 내 사무실로 와! 내 회사가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 다!!






어제 집에 가서 바질페스토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오전에 그걸 만들 생각에 들떠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만들었어. 그렇게 상을 차려냈다.





그러나 맛은.. 내가 기대한만큼은 아니었어. 흐음. 나는 내가 만든 파스타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만들어서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어쩌면 파스타 를 안좋아하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거 먹다가 결국 밥을 갖다 먹었는데, 왜냐하면 저 사진만 보면 우아한듯 보이지만, 사실 감춰진 솔직한 사진은 이것이다.





갓김치랑 총각무김치가 있었다. 이것이 솔직한 나의 술상이여. 저렇게 먹다가 밥 먹고 싶어서 밥 가져와서 먹으면서, 역시 나는 밥과 김치가 좋아. 내가 만든 파스타는 싫어.. 하게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만든 파스타를 나는 싫어해. 으하하하하.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배도 좀 불렀고. 넷플릭스 화면을 열고 뭘 볼까 하다가, <인간중독> 포스터를 보았다. 오래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송승헌의 섹스씬 연기가 매우 구렸다고 기억하고 있고, 영화도 별로였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송승헌에 비해 꽤 열연했다고 기억하는데, 그런데 여자주인공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도 역시 마찬가지. 그러자 매우 속상해졌다. 한 영화에서 여배우에 대해 기억하는 게 노출이 많고 섹스씬 열연이라니, 이제와서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니. 물론 내가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 못하는 타입이긴 하지만 뭔가 배우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다시 오만년만에 인간중독을 재생시켰다. 여전히 송승헌의 섹스신은 엄청 구렸다. 도무지 움직일줄 모르는 남자였다. 저렇게 잘생겨서 연기를 어쩜 저렇게 하냐 싶었다. 여자배우가 확실히 훨씬 더 열심히 연기하는 것 같았다. 여자배우 이름은 '임지연' 이었다. 이 영화 당시에 에로틱하다고 엄청 선전하고 배우의 노출씬으로 얘기도 있었던것 같은데, 그 후에 그녀는 어떻게 되었나. 그 당시 그녀의 노출이나 에로틱한 장면들로 이슈가 되었을지언정,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얼굴은 어디로 갔나. 그녀의 일은?





영화를 다시 본 게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니, 임지연은 분명 다른 필모들을 채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본 임지연의 얼굴은 여전히 낯설었다. 아무것도 안하진 않았을텐데, 분명 뭔가 했을텐데.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검색해보니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나왔더라. 그러나 그중에 내가 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워낙에 한국 영화를 안보고 텔레비젼을 안보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라는 배우가 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뭔가 하나를 더 보자, 싶었다. 어쩌면 이렇게 볼만한 게 없을까. 내가 좋아할만한 작품이 아무것도 없네.. 그나마 다운로드가 가능한 게 [럭키] 였다. 유해진 주연의 럭키.. 아아, 나에게 내적갈등 찾아온다. 간신도 보기 싫은데 그렇다면 럭키 뿐인가.. 럭키.. 넘나 내 취향 아닌 영화.. 관심이 1도 없는 영화인데, 나는 임지연을 보기 위해 럭키를 보아야 하나. 나여..


넷플릭스에 럭키를 넣고 검색해보았다. 있었다. 그래, 넷플로 보자. 임지연님, 님을 보기 위해, 님을 기억하기 위해 저는 럭키를 봅니다. 럭키를 다운로드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좀 더 좋은 작품을 필모에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말이다 보니 다들 시간이 빠르다, 벌써 12월이다 얘기를 한다. 그만큼 많이 하는 얘기가 아마도 '한 것도 없이 시간만 갔네'일 것이다. 해놓은게 뭐있나, 아무것도 없다, 하는 얘기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무언가를 했을거다. 하다못해 맹렬히 살아오기라도 했잖아.


회사에 입사한지 이제 1년 되어가는 막내가 며칠전에 그랬다. 차장님 벌써 12월이에요, 입사하고나니 시간이 빨라요, 아무것도 한 거 없는데 나이만 먹어요, 하고. 이제 이십대 초반의 막내가 자신이 일년간 한 게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씨가 한 게 왜 없어, 회사에 입사해서 돈 벌고 있고 2개월전부터는 운동도 시작했잖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 두 가지를 올해 시작했는데, 얼마나 대단해."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날까지 살아오면서도 '살면서 한 게 없어'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또 말을 하기도 하고. 이번 해에 나에게는 어떤 뚜렷한 사건도 업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이 시간이 흐른 건 아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무사히 마쳤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가.



일 년간 일상을 보내느라 다들 고생하지 않았나.





오늘 아침엔 집에서 밥을 안먹고 나왔는데 회사 오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스벅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굳이 사진 찍어 올린다.







아, 그리고 이 얘기 저 얘기 해서 까먹었을까봐 끝에 다시 쓰는데,



태사자는 집에 있고

나는 회사에 있다.


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 회사로 오면 된다.

까먹지마.






그는 반듯하게 살기로 했지만, 그건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도 속이지 안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이것이 시금석이었는데-남성에게만 끌리는 마음을 두고 여자를 좋아하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남자를 사랑했고, 예전에도 항상 그랬다. 남자를 끌어안고 싶었고 자기 존재를 그들과 융합시키기를 열망했다. 이제 자신의 사랑에 응답해 준 남자를 잃어버리고서 그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 P85

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너댓 명가량의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물론 그도 클라이브와 마찬가지로 홀어머니에 여자 형제만 둘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둘 사이의 유대감을 설명하기에는 클라이브의 두뇌가 너무 냉철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홀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고, 그건 최소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둘이 다시 만나자마자 그는 솟구치는 감정에 휘말려 친밀한 관계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 남자는 부르주아였고 세련미도 없고 어리석었다. 마음을 터놓을 상대로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더럼은 집에서 일어난 문제를 그에게 이야기했고, 그가 채프먼을 무시하고 돌려 보낸 일에 정도 이상으로 감격했다. 홀이 장난을 치기 시작하자 클라이브는 매혹되었다. - P99

「모리스, 모리스, 모리스 ……아, 모리스 ……」
「알아.」
「모리스, 사랑해.」
「나도.」
둘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키스했다. 그런 뒤 모리스는 올 때처럼 창문을 넘어 사라졌다. - P102

그 뒤로 2년 동안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남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누렸다. 그들은 천성이 다정하고 굳건했으며, 클라이브 덕분에 날카로운 분별력도 발휘되었다. 클라이브는 황홀한 감정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서 영원한 것을 향한 길을 낼 수 있음을 알고, 지속적 힘을 가진 관계를 꾸려 냈다. 사랑을 만든 것이 모리스라면, 그것을 보존하고 사랑의 강물로 정원에 물을 댄 것은 클라이브였다. 그는 냉소나 감상 때문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낭비되는 걸 참지 못했다. - P137

클라이브는 요즘 온화한 태도를 잃었다. 모리스가 볼 때 그것이 가장 심각한 증상이었다. 그는 작은 악의가 담긴 말들을 심심찮게 했고, 모리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을 이용해서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그는 모리스를 완전히 알지 못했다. 그랬다면 강건한 자의 사랑을 흔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이따금 그가 외면적으로 공격을 피하는 듯 보이는 것은 반응을 하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부터 다른 뺨도 내주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면적으로는 아무것도 그를 흔들지 못했다. 합일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 분개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때로 평행을 다리는 대화를 자못 유쾌한 태도로 진행하면서 가끔 클리이브가 곁에 있음을 확인하듯 그를 툭툭 쳤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가 뒤따라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홀로 빛을 향해 나아갔다. - P154

「알렉, 너한테 친구가 있는 꿈을 꾼 적이 있니? 오직 <내 친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닌 사람, 너를 도와주고 너도 그를 돕는 사람. 친구.」모리스는 갑자기 감상에 젖어 되뇌었다. 「너의 온 생을 함께하고 너도 그의 온 생을 함께할 사람. 그런데 나는 꿈이 아니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가 않다.」 - P278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는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애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불가피했다. 그런 뒤 눈이 아파 오기 시작했고, 그는 지난 경험으로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았다. 그는 곧 자제력을 찾았다.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선 뒤 몇 군데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했고, 어머니를 달래고 만찬 주최자에게 사과를 하고, 면도를 하고 옷을 차려입고는 평소처럼 출근햇다. 산더미 같은 일이 그를 맞았다. 그의 삶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도 없었다. 클라이브를 만나기 전에 그랬듯이, 그와 헤어진 뒤 그랬듯이, 그는 다시 외로움을 안고 남겨졌고 그것은 이제 영원할 것이다. 그는 실패했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알렉도 실패하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한 사람이었다. 사랑은 실패했다. 사랑은 이따금 기쁨을 가져다주는 감정일 뿐이었다.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P330

그는 지난 6년 동안 피운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 넣고 로맨스가 시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렉은 영웅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그저 모리스처럼 사회에 파묻힌 한 남자였으며, 그를 위해 바다도 숲도 산들바람도 태양도 찬미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날밤 호텔에 가지 말아야 했다. 그 때문에 너무도 큰 기대를 품게 되었다. 빗속에서 악수만 나누고 헤어져야 했다. - P332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너져선 안 된다. 그는 클라이브 때문에 무수히 무너졌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이렇게 컴컴해지는 폐허에서 무너진다면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마음을 굳게 먹는 것, 냉정을 유지하는 것, 믿음을 갖는 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 P339

모리스는 손을 폈다. 빛나는 꽃잎들이 그 안에서 나타났다. 「그래, 너는 내게 얼마간은 마음을 쓰지.」그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 얼마간에 내 인생 전부를 걸 수는 없어.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는 앤한테 네 인생을 걸고 있어. 너는 그 관계가 플라토닉한지 어쩐지 하는 건 걱정하지 않고 그저 그게 네 인생 전부를 걸 만큼 중요하다는 것만 알아. 나는 네가 앤과 정치에 쏟고 남는 5분 동안 써주는 마음에 내 인생을 걸 수는 없어. 날 만나는 일만 없다면 너는 나를 위해서 모든 걸 다 해줄 거야. 이 지옥 같은 1년 내내 그랬으니까. 너는 내가 네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또 나를 결혼시키려고 아낌없이 수고할 거야. 그래야 손을 털 수 있을 테니까. 너도 나에겐 얼마간은 신경을 쓰지. 나도 알아.」 - P346

클라이브가 항변하려 하자 그가 계속 말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네가 원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네 사람이었겠지만, 이제 내 인생은 다른 남자의 것이 되었어. 평생 한탄 속에 방황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그 남자는 네게는 충격적인 의미로 내 사람이야.」 - P347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9-12-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타 왜 푸짐해요? 설레게? ㅋㅋㅋㅋㅋㅋㅋ 저 새우 봐 동해바다 새우 다 들었네! 나 왜 신남??

다락방 2019-12-05 14:25   좋아요 0 | URL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까요?

(저 새우 베트남산 새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05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모리스 관련 내용 읽으면서는 아련했는데 갑자기 파스타에 총각무에서 빵터지잖아요. ㅋㅋㅋㅋ 파스타에 갓김치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다락방 님 덕분에 모리스 다시 한번 읽어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9-12-05 14:45   좋아요 0 | URL
파스타에 갓김치 먹으니 갓김치가 파스타를 죽여버렸어요. 결국 갓김치승!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이 책 읽고 뭔가 막 아!! 이렇게 되어서 토요일에 모리스 영화 충동적으로 예매해뒀거든요. 근데 극장 가자니 세상 귀찮음이 밀려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취소할까, 또 이러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12-05 15:31   좋아요 0 | URL
우아 이 영화 엄청 좋아요. 근데 거의 막 내렸던데 어디서 예매를!
전 시간 안 맞아서 결국 스크린에서 보는 거 놓쳤어요. ㅠㅠ
(아 뾰루지 글 봤어요. 집에서 쉬세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05 15:53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KU시네마테크 에서 합니다. 건대.. 건대는 저희 집에서 멀지 않아 예약했건만..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컨디션 봐서 다시 예약하든가 해야겠어요.

하늘초록 2019-12-0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봤어요..글 읽어보니 책이 훨 좋을것같네요..^^

다락방 2019-12-06 17:41   좋아요 0 | URL
이 책 좋아하는 분들 많던데, 저도 읽으니까 좋더라고요.

보슬비 2019-12-0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꾸떡한 파스타가 좋아서 자주 막해서 먹어도 맛있던데요 ㅋㅋㅋㅋㅋ
사실 저도 바질페스토로 파스타는 성공 못했어요. 오히려 바질 페스토는 호밀빵에 발라서 치즈 올려먹거나, 맛있는 빵에 찍어 먹는쪽이 더 맛있더라구요. 그리고 이번에 저도 파스타 먹으면사 갓김치 먹었는데, 다른점은 푹 삭은 갓김치를 씻어서 달달고소하고 볶아서 같이 먹으니 피클보다 더 낫더라구요 ^^

다락방 2019-12-08 13:05   좋아요 1 | URL
바질페스토는 역시 빵에다 발라먹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스파게티는 정말 별로였어요. 그냥 오일파스타가 나은 듯..
보슬비님은 진짜 요리왕이신 것 같아요. 갓김치를 씻어서 볶아 먹을 생각을 하다니... 와, 저는 읽으면서도 그 맛이 상상도 안돼요. 오늘 아침은 늦게 일어나 라면 끓여서 밥 말아 먹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9-12-07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12-08 13:04   좋아요 1 | URL
https://blog.aladin.co.kr/fallen77/9985143

이 페이퍼 참고하세요. 태사자를 아실 수 있습니다!!

clavis 2019-12-1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생했어요 ㅠㅠㅠ락방님 누구세요? 누구시기에 저의 1년을 위로해주시나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가장 로맨틱하게 만드시는 회사에 계신 락방님!

저도 가장 작은 것을 가장 열정적으로..
체육과목 레포트하러 떠나겠습니다

다락방 2019-12-17 14:19   좋아요 1 | URL
체육과목도 레포트가 있나요... 어지러운 세상이네요.
아니, 클래비스님이야 말로 누구보다 고생하신 분이 아닙니까.
그 먼 나라에서 시험보랴 공부하랴 연습하랴 적응하랴..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일 년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클래비스님. 연말과 연초에는 그토록이나 고생한 클래비스님께 평안과 안정이 깃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