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안사고 버티다가 애플워치를 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애플워치를 산 날, 호카 매장에 가서 발 사이즈를 측정하고 신발도 신어보고 구매했다. 내가 구매한 건 트레일러닝화. 달리기를 하다 보면 달리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고 달리기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트레일러닝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물론 트레일러닝의 존재를 그전에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일전에 [아무튼, 산]을 읽으면서 저자가 트레일 러닝도 한다는 걸 알았었는데, 산이 너무 좋으면 그렇게도 되는구나, 해서 트레일 러닝에 대해 뭐라고 썼었는지는 기억은 안난다. 최근에 트레일러닝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아무튼 산, 다시 읽어봐야겠네, 한다. 거기에서 뭐라고 했더라.
나는 5킬로를 간신히 달려내는 사람이다. 간신히 40분 안에 들어오는 사람. 그러니 그보다 더 격한 운동인 트레일러닝은 아직 내가 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일테다. 그런데 나는 그걸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 비포장도로를, 산을 달리는 일을 꼭 해보고 싶었던 거다. 해보기도 전부터 기분이 정말 끝내줄 것 같은거다. 나는 오르막길을 달릴 능력은 아직 안된다. 내리막길과 평지를 달리는 걸로 트레일러닝을 경험해보자! 달릴 때 미끄러우면 다칠 확률 있으니, 그래, 트레일러닝화를 사는거야! 그렇게 애플워치와 트레일러닝화를 갖췄던 거다. 그리고, 내가 달리기로 결심한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머리에 수건을 두건처럼 동여매고 일자산으로 향했다. 일자산까지 걷는건 제법 시간이 걸려 그 뒤에 달리려면 체력을 좀 아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일자산 입구에 내렸다. 워치와 핸드폰의 런데이앱을 작동시킨 후, 나는 일자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오르막이라 뛸 수가 없어, 걷는다. 걷기만 하는데도 오르막은 힘들다. 경사가 심한게 아닌데도 오르막은 힘들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이제는 내가 뛸 수 있을만한 곳이 나왔다. 나는 달렸다. 신나게 달렸다. 오르막이 나오면 다시 걷고 내리막이나 평지가 나오면 다시 뛰었다. 나는 그렇게 숲길을 달렸다.
와- 정말이지 기분이 끝내줬다.
내 몸은 내 통제를 벗어나 잇었다.
내리막길을 달리면 가속이 붙어 이어지는 평지까지 빠르게 뛰게 되고 내리막길을 달리면 가속이 붙어 이어지는 오르막에서도 몇 걸음쯤은 뜀박질로 오를 수도 있다. 사실 절반 이상은 걸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뛰는 내내 너무나 짜릿했다. 이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다 넘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찾아들었지만, 와 너무나 신나고 짜릿했다.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은 시원했고 비포장도로를 밟는 느낌은 끝내줬다. 온 몸의 근육이 모두 아우성치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아드레날린은 과다분비 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은 시원했고 숲의 향기는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와, 정말 끝내줘, 끝내준다!! 그러다가도 이내 달리는 나에게로 생각이 돌아온다.
세상에, 내가 산을 달리고 있어.
내가,
무려,
산을,
달리고 있어!!
내가 이럴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는데. 내가 산을 달릴거라고 나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산을 달리다니, 내가!
산을 달리는 내내 모든게 좋았다. 오르막길에서 어쩔 수 없이 걸으면서 허벅지가 땡기는 걸 느꼈다. 그러다 뛰노라면 팔은 격하게 흔들렸다. 정말, 정말, 끝내주는 기분이다!!
아 너무 보람찬 하루였다.
뛰고 집까지 걸어왔는데 샤워한 후에도 몸에서 에너지가 솟는 것 같았다. 정말, 정말 너무 좋았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와 너무 좋아!! 나는 앞으로 종종 이 산을 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기분, 포기할 수 없어!! 이 느낌, 정말 짜릿해!! >.<
산을 달리고 와서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에너지가 남아돌아, 계란을 먹자, 계란을 먹자! 하고 계란샌드위치도 만들었다. 만세!!
엄마 아빠도 엄청 맛있게 드셨다. 껄껄. 난 .. 좀 짱이야.
책을 샀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알게된 작가 '클레어 데더러'의 책을 읽어보려고 검색했는데, 원래 읽고 싶었던 책은 검색되지 않고 [POSER] 란 에세이가 검색되는게 아닌가. 어? 표지.. 뭐야? 요가야? 존재도 몰랐던 책이어서 책 소개를 잠깐 본 뒤, 요가라니 좋아쒀! 하고 바로 주문 때려버렸다. 요즘 요가를 통 안하고 있긴한데 내가 요가를 버릴 사람은 아니어서 어디 한 번 읽어보자, 한 것. 책을 받고 한 번 후루룩 보니 글씨가 너무 작다. 아, 글씨 너무 작네 옛날책인가... 하다가 첫 페이지를 읽었다.
중년에 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누군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드는 일인 것 같다. 그속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나에 관한 정보가 잔뜩 적혀 있다. -p.11
우엇. 백프로 동의 전적으로 공감!! 나는 이 첫문장이 너무나 좋아서 그 뒤로는 읽지도 않고 바로 한 권을 더 주문해 여동생에게로 보냈다. 첫문장만 읽고 바로 선물해버린 것. 내가 처음 요가 수업 듣고, 아니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내 몸에 대해 새로운 걸 알게 됐단 말이지. 그런데 그건 내가 결코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내가 비틀기가 안된다는 것, 한 발로 서기가 안된다는 것, 팔이 짭다는 것, 어깨가 펴지지 않는다는 것 등등.. 내가 이것도 안된다고? 이것도? 하는 날들로 그 시간들을 보냈었는데, 아아, 클레어 데더러도 그랬구나!! 진짜 너무 좋았다. 아직 그 뒤는 안읽어서 어떤지 모르겠다.
요술복 저 분홍색 책은 존재를 알던 책이었는데 뭔가 너무 뻔해 보여서 관심도 안주고 있다가, 얼마전 ㅇㅅ 님 서재에서 인용문 보고 오오~ 하고 바로 구매했다. 껄껄.
아무튼 어제 아침의 서투른 트레일러닝으로 인해 엉덩이에 근육통이 왔다.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