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리스트는 먼댓글이 안되는구나.)
얼마전에 마이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이 책을 너무 읽어보고 싶지만 품절이라고 썼었다. 그래서 못구하는걸까, 하다가 YES24 에 가보니 품절이란 표시가 되어 있질 않은거다. 오호라. 나는 예스에 로긴을 했는데, 휴면계정이라고 무슨 확인 과정을 거치란다. 하핫. 그래서 여튼 주문을 하는데, 이 책 한 권만으로는 배송료가 나온다. 그래서 내가 마침 갖고 싶었던 다른 책 한 권을 함께 주문했다. 그 책은 장 그르니에의 『섬』이었다.
신간도 아니고 알라딘에서는 품절이니 배송은 며칠 걸릴거라고 예상하고 느긋하게 기다리고자 했다. 그런데 며칠뒤에 문자메세지가 왔다. 주문한 상품중 한 권만 배송될거라고. 그래서 나는 불길한 마음에 내 주문을 조회해봤다. 준비된 상품은 예상대로 『섬』이었다. 나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목사의 딸들』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주문 전체취소를 하겠다고 했다. 잠시후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책은 품절이라 구할 수 없고, 정말 전체취소를 하겠냐는거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고 했더니, 일단 목사의 딸들 한 권만 부분 취소가 되고, 섬은 따로 하겠단다. 이미 배송 시작되서 반품으로 잡아야 한다는거다. 아이쿠야. 그래서 그럼 놔두라고, 그거 다시 반품잡지 말라고, 받을테니 목사의 딸들만 취소하라고 했다. 그래서 YES24에서 장 그르니에의 『섬』을 사게 됐다.
문제는 섬이 아니라 이 목사의 딸들인데, 가질 수 없다고 하니 더 갖고 싶어졌다. 아, 제기랄. 나는 인터넷에 창비를 검색해서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 책의 재고 여부를 물었다. 뭐 좀 낡아도 괜찮으니 재고가 있으면 내가 좀 구매하겠다고. 직원은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고, 잠시 후에 한 권 찾았다며 보내주겠단다. 그래서 나는 얼마를 보내드리면 되나요? 라고 물었더니
책값 8,000원에 배송료 3,000원 해서 합이 11,000원 이라고 했다.
아, 책값은 정가로 받는건가요? 네, 정가로 판매합니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11,000원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그게 11월 29일의 일이었다.
지금 바로 송금해주실건가요?
라고 창비의 직원이 내게 물었는데 나는 아뿔싸, 통장에 잔고가 영, zero 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욕나오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뇨, 다음주 월요일에 보내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나를 상대하던 직원은 아, 내일도 안되세요? 라고 물었다. 나는 좀전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분명 얼굴까지 빨개졌을것이다) 네, 내일도 안돼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말했다. 제가 다음주 월요일에 보내드릴테니 입금 확인후에 보내주세요, 라고.
내 통장에 잔고는 제로. 그러나 매달 1일에 회사에서는 나에게 식대를 초큼 넣어준다. 한 달 식량값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보름치 간식값 정도? 여튼 월요일에 그 돈이 입금됐고, 나는 유니세프 자동이체에 맞추어 일부를 송금, 지난달에 돈 없어 못낸 신문대금 송금, 목사의 딸들을 받기 위해 11,000원을 송금했다. 후아. 그러니 밥값은 남은게 없었...... 뭐, 괜찮다. 내게는 신용으로 똘똘뭉친 카드가 있으니까. ㅠㅠ
어쨌든 이 책은 곧 있으면 내게로 올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창비로 돈을 송금하기 전, 전화통화를 마치고 알라딘 중고샵을 검색해보니 아 글쎄 이 책이 6천원으로 판매되고 있는게 아닌가! 배송료 포함 8,500원이 문제가 아니라, 흑, 카드로 긁을 수 있는데...돈 없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됐는데... ㅠㅠ 그렇다고 다시 전화해서 다른데서 구했어요, 라고 하자니 재고를 찾으려고 노력했을 직원에게 너무 미안하잖아. 책상에 꺼내두었다는데. 후아-
저 책, 재미없으면 내가 가만있지 않겠어!! 으르렁-
그나저나 이 책이 대박이다. 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장 그르니에가 말하는 고양이는 지독하게 사랑스럽다. 물론, 이 책은 고양이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내가 읽었던 그 어떤 고양이에 대해 말하는 책들보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주옥같은 문장들이 한가득이라 나는 절반쯤을 읽은 지금 포스트잇을 몇 개나 붙여놨는지 모른다.
일단 이 책은 카뮈의 서문만으로도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나는 길거리에서 이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환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알베르 카뮈(작가)
누군가의 추천글이라거나 웅장한 서문에 반해도 실제로 그 책의 본문에 반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추천글은 과장됐을 확률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카뮈의 서문이 몹시 신뢰가 되는거다. 이 책을 선택한건 훌륭한 결정이었을거라는 확신이 드는거다. 물론, 정말 그랬고. 내가 밑줄 그은 몇몇 부분들을 옮겨보겠다.
사람이 자기의 주위에 있는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어떤 중립적인 영역 속에 담을 쌓고 들어앉아서 고립되거나 보호받을 수는 있다. 그것은 즉 자신을 몹시 사랑한다는 뜻이며 이기주의를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신을 세상만사 어느 것과도 다를 바 없는 높이에 두고 생각하며 세상의 텅 비어 있음을 느기는 경우라면 삶을 거쳐가는 갖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에 혐오를 느낄 소지를 충분히 갖추는 셈이다. 한 번의 상처쯤이야 그래도 견딜 수 있고 운명이라 여기고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바늘로 콕콕 찔리는 것 같은 상태야 참을 길이 없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럽다. 삶을 살아가노라면 자연히 바로 그 삶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절대로 그런 것 따위는 느끼지 않고 지냈으면 싶었던 감정들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기것이 저것보다 더 낫다고 여겨지는 대도 있다. <이것>과 <저것>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라고 말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렇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고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空의 매혹, p.31)
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옆자리의 쩍벌남에게 시달려가며 이 책을 읽는데 아, 어찌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문장들이던지. 지하철 의자에 앉았을 때, 왼쪽 옆과 오른쪽 옆이 모두 남자들이라면 정말 불편하다. 게다가 그들이 팔짱이라도 끼고 뒤로 확 기대면 나는 앞으로 상체를 쑥- 빼내야 한다. 그런데 팔짱끼고 있는 남자들은 이상하게 다리는 쩍벌려.. 후아- 정말 발로 차버리고 싶다. 직장에서 상사때문에 화가 나있었고, 그런 퇴근길의 지하철안이 몹시 피곤했는데, 아, 정말이지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럽지 않은가.
오후에는 침대 위에 가 엎드려서 앞발을 납죽이 뻗은 채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잔다. 어제는 흥청대며 한바탕 놀았으니 아침 일찍부터 내게 찾아와서 하루 종일 이 방에 그냥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때다 싶은지 여느때 같지 않게 한결 정답게 굴어댄다. 피곤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물루는, 내가 잠을 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없애준다. (고양이 물루, p.41)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에게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보편적인 생각들만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들이라야 이른바 그들의 <지성>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p.고양이 물루, p.57)
나 역시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서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반드시 상대도 사랑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을 확률이, 그렇지 않을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사랑하지 않는데 상대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말을 할 때 내게 아무런 감흥이 없는것처럼, 내가 말을 할 때도 상대 역시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언제나 상대에게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상기하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깨달을 때쯤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말해버리고 난 뒤다.
아, 그나저나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절반쯤 남았는데 마저 읽자니 아까워진다. 아까워서 두고 두고 읽는다는게 어떤건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랄까. 그러다가 최근에 그르니에-카뮈 서한집이 나왔다는 글을 여기저기서 본 기억이 난다. 얼마전에 카뮈 전집을 구매한 ㅌ 님이 생각났는데, 나는 그르니에 책을 한 권씩 차근차근 읽어야겠다. 그리고 ㅌ 님과 나도 서로 카뮈와 그르니에에 대한 서한집을....쿨럭.
점심 시간이 또!!!!!! 끝났다. 시간은 왜이렇게 잘도 흐르는건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