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이퍼를 우울하게 끝맺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 영화를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한다. 이 영화를 끝에 놓으면 페이퍼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울해질 것이고, 그 우울함만이 기억에 남을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았을 때처럼. 그러니 그래서는 안된다. 나는 그러고싶지 않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나서도 내 결론은 하나였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는, 차라리 혼자인 게 속 편하다고. 차라리 혼자였으면, 차라리 혼자였다면.
혼자였다면 남자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데도 억지로 술 권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고, 계약기간을 연장해주겠다며 입술을 들이미는 이사장에게 저리 꺼지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여자는, 옳지 않은 일인줄 뻔히 알면서도 불법적인 약을 환자들에게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여자는, 자신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징글징글한 노인에게 안된다는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을 것이며, 거기다 대고 치욕스럽게 통장은 저에게 맡기시는 거에요,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자신의 몸만 건사하면 된다. 혼자였다면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없어진 자식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고, 혼자였다면 딸아이의 몸에 그려진 낙서 때문에 오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혼자였다면 뺑소니 사고로 감옥에 들어간 남편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그러나 남자도 여자도, 다시 말하지만 이 엿같은 세상에서,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배우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이에 딸이 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더러워도 살고 있다. 고통은 끊임이 없고 절망은 끝나지 않는다. 혼자였다면 내 자존심을 갖다 내동댕이 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혼자였다면 세상이 나를 패대기칠 때 더러워서 안해, 라며 침을 퉤- 뱉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눈물 흘리고 빌고 애원해야한다. 밑바닥까지 밑바닥까지 하염없이 내려갈수밖에 없다.
이들에겐 유머가 없다. 웃음이 존재할 순간이 없다. 신념대로 살고 싶고 자비롭고 싶지만 그들만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우울하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오니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고, 씨양, 영화보러 들어갈 때보다 더 추웠다. 혹독한 계절이었다. 가을이든 겨울이든, 그걸 뭐라 부르든 혹독했다. 밝고 샤방샤방한 걸 보고 싶다고, 거리의 화려함과 젊은이들의 활력을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내가 걷는 거리엔 사람이 없었고, 나와 친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신촌에서 을지로까지 걸었다. 한 시간 반을 걸었고, 더럽게 추웠고, 종아리는 당겼고, 발바닥은 욱씬거렸다. 지쳤다.
분명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푹 빠졌던 때가 있었다. 트와일라잇 영화를 두 번씩이나 보고 DVD 를 사고 OST 를 틀어놓고 에드워드를 꿈에서 만나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대체 이 시리즈를 왜그렇게 좋아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도 의리때문에 마지막 시리즈를 봐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책에서 결말이 엄청 시시했기 때문에, 영화도 분명 시시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오, 이 영화는 상당히 똑똑했다. 그 시시한 결말을 바꾸지 않은채로 시시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런 방법을 쓰다니, 정말 똑똑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사람 얼굴을 CG 로 처리한 건 깜짝 놀랄만큼 실망스러운 영상이었지만;;-맙소사!-, 그동안 뉴문이나 이클립스에 대해 실망한거에 비하자면 오, 이 영화는 그중 나았다. 그래도 트와일라잇만큼 좋지는 않았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 에드워드와 벨라가 처음 만났던 순간을 기억하는 장면에서는 하아- 마음이 흐물거렸다. 그래, 그랬었지. 그렇게 시작을 했었어, 하면서. 게다가 영화 내내 영화음악은 또 어찌나 좋던지! 나는 이 영화의 OST 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때문에 몽글몽글한 기분이 되어서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안녕, 에드워드. 안녕, 벨라. 그리고 안녕, 제이콥. 나는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시리즈가 기억에 남을만큼 대단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내가 에드워드에게 한 때 흠뻑 빠져있었단 사실만큼은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지금도 그런데, 아마 시간이 더 흐르고나면, 피식- 웃겠지. 아이쿠야, 그때 내가 왜그랬을까, 하고.
그래, 이 영화를 마지막에 두어야 한다. 이 영화를 얘기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읭?)
나는 십대시절, 모두가 홍콩 영화에 빠져 홍콩 배우들의 이름을 들먹일때, 아이들이 유덕화와 장국영의 책받침을 들고 다닐때,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헐리우드 배우들을 사랑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홍콩 영화는 이해도 잘 안되고 재미도 없는거다. 유덕화를 좋아하고 잘생겼다고 하는 아이들에게도 심드렁했다. 뭐가 잘생겼단거야? 하면서. 나는 그당시 패트릭 스웨이지를 좋아했고 탐 크루즈를 좋아했다. 케빈 코스트너를 좋아했고 키에누 리브스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감탄했다. 세상에. 유덕화...이렇게 잘생겼었어? 아니, 잘생겼다는 표현은 어딘가 좀 저렴하게 느껴진다. 충분하지 못한 표현이다. 유덕화가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었습니까?
이 영화는 만약 피곤한 상태로 본다면 졸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지루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것 같다. 두시간을 거의 꽉 채우는 영화인데 클라이막스라고 할 것도 없고 요란할 것도 없다. 그저 조용히, 남자와 오래 함께하던 식모는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옆에 있어준다. 영화속에서 유덕화는 엄마보다도 더 자신의 곁에 있어줬던 식모(가정부라고 해야하나)에게 어찌나 살갑게 대하는지, 대부분의 보통 남자들이 연인을 대하는 것 보다도 유덕화가 가정부를 대하는 게 훨씬 더 로맨틱하고 근사했다. 그는 영화의 제작자인데 시사회에 그녀를 초대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다. 그녀를 길 안쪽에 걷게 하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아 뒷짐을 진다.
캐쥬얼한 옷을 입고 가방을 둘러멘 유덕화도 멋지고 양복을 입은 유덕화도 멋지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다정한 그가 멋지다. 배려하고 사려깊고 매너있는 그가 정말이지 근사하다. 이 따뜻한 드라마보다도,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극중 유덕화에게 너무 반해버려가지고 이 영화가 좋았다. 물론 영화도 간혹 뭉클하게 하지만, 어쨌든 유덕화에게 쑝갔다는 얘기.
그간 나는 유덕화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는 그런데 대체 몇 살이지? 하는 궁금함에 구글창에 그의 이름을 넣어봤다. 헐. 헐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는 헐, 이란 말을 쓰기가 싫은데. 그런데 그냥 헐, 밖에 안나와. 그러니까 그는 1961년생이다. 1961년생이면...몇...살입니까? 아니, 그런데 왜이렇게 멋집니까? 멋진 남자는 나이 들어도 멋지군요. 멋진 여자도 그럴테지요. 계속 멋지게 늙어갈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멋진겁니다. 히융. 그 커다란 손으로 내 손을 한 번 만 잡아주세요,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저 거리를 유덕화와 손잡고 걷는다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가슴이 벅차오르겠지. 나는 이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거야. 흑흑. 주말 내도록 유덕화 생각 뿐이었다.
지난주와 지지난주 무한도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요즘 나는 뒤늦게 무도빠가 되었다), 나는 다시보기로 지지난주 못친소를 보았다. 그랬더니 오늘 꿈에 유재석이 나왔다. 꿈에서 나는 무한도전 멤버였고 올림폭공원에서 멤버들과 추격전을 벌였다. 그런데 시민 한 명이 유재석에게 뭐라고 해서 유재석이 화나고 실망을 했다. 나는 신참 멤버였는데 유재석의 옆으로 가서 유재석을 달래줬다. 위로를 해줬다. 유재석의 아내는 (꿈에) 임신을 했다고 했다. 나는 유재석을 위로하면서 손을 잡고 걸었다. 유재석은 나에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자신에게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런데 올림픽공원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았고, 우리는 손을 잡고 꽤 오래 걸었고, 그래서 스캔들이 났다. 그렇지만 손잡은 거 가지고 스캔들 나 봤자지, 뭐 이런 생각을 했던것 같은데 알람이 울렸다. 유덕화와 손잡고 싶다는 생각만 내내 했더니 유재석하고 손잡는 꿈을 꿨다. 어쩐지 웃기지만 또 어쩐지 슬프고 불쌍하기도 하네...orz
아, 나 책 이야기도 할 게 많은데 페이퍼가 너무 길어져 버렸다. 여기서 뚝- 끊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