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요즘 어떠냐고 물어오면 나는 아주 좋다, 평안하다고 답하고 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을 알고 있는 가까운 이들은 내 마음이 어떨지를 염려하는데, 나는 무척 평안하고 여유롭다.
그러나 평안하고 여유롭다고 말하는게 무색하게 왜이렇게 자꾸 바쁘지? 오늘은 괜찮을것이다 했지만 오늘도 또 하루종일 바빳네. 나 여유로운거 맞나?
평일에는 회사에서 여유로울 것 같지만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고 연휴가 나흘이나 되니 나는 또 여유로워야 했지만 또 연휴 내내 종종거리고 다녔다. 하루는 남동생 집에 가서 놀고 하루는 남동생 가족들과 캠핑을 갔다. 도봉산 입구의 캠핑은 바로 산이 보여 풍경이 좋았다. 고기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조카랑 공놀이도 하고.
자, 그리고 마지막날. 하하하하하.
나는 요가원정을 떠났다. 어디로? 숙대입구로.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한 번은 들어봤을 '요가소년'과 요가를 하러 갔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요가소년은 평소에 유튭으로 요가 영상을 업로드하는데 제법 구독자도 많고, 나도 여러차례 요가소년의 요가를 틀어두고 따라하곤 했다. 나는 주로 베이직 요가를 따라했었다. 그 요가소년이 한국에 왔고 숙대입구 요가센터에서 요가를 한다는거다. 여동생이 언니 이거 같이 해보지 않을래, 물어와서 그래, 어디 너랑 같이 요가하러 가보자, 하고 나는 꿀같은 연휴의 마지막날을 요가소년과 요가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ㅋ ㅑ ~ 요가에 진심인 나..
도착한 요가센터는 매트가 다 깔려있었는데 오오, 매트가 만두카네요? (매트계의 귀족이다.)
여동생은 맨 앞 가운데에 앉았는데 나는 아무래도 이런데 올만한 사람들이면 다들 요가 고수일텐데 나같은 하수가 가운데 있기가 좀 저어되어 앞줄의 구석으로 가 앉았더랬다. 다소 일찍 도착해 요가소년의 스몰토크를 좀 들으면서 둘러보는데 흐음.. 매트에 자리잡는 사람들을 계속 보다보니, 모두가 다 고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진 않아? 갑자기 자신감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나는 가운데를 차지한 여동생의 옆자리로 옮겼다. 맨 앞줄의 가운데라는 뜻이 되시겠다.
그리고 요가를 시작한다.
어제 한 요가는 인요가 였는데, 사실 인요가는 내 성정과 가장 거리가 먼 요가이다.
가만히 조용하게 한 동작에 오래 머무르기, 가 인요가의 컨셉인데, 사실 나는 도무지 가만 있지를 못하는 사람이란 말이지. 그래서 요가소년의 요가 프로그램이 인요가라고 했을 때, 흐음, 왜 하필 인요가일까, 빈야사나 아쉬탕가가 좋을텐데, 하였지만, 뭐 하여튼 그렇게 인요가를 맞이하게 되었고, 요가소년의 지시에 따라 한 동작에 가만히 머무르면서, 그런데 내가 인요가를 하니까 그나마 한 동작에 가만 머무르기를 할 수 있는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부러 시간 내서 해 줘야만 내가 이런걸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니까? 나에게 이 가만히 머무르기는 반드시 필요한데 부러 해주지 않으면 도무지 하지를 않아. 가만히 머무르기라고 해서 쉬울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나 계속 낑낑거렸다 ㅋㅋㅋ 하다가 중간에 쉼자세로 돌아오기도 했고. 어휴 뭐가 이렇게 힘들어. 중간에 시계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언제 끝나냐, 빨리 사바아사나 와라...눕고 싶다...
낑낑대고 무너지면서 그러나, 이 한낮에 요가를 한다는 건 정말이지 얼마나 좋은가, 했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처음엔 잔뜩 긴장했지만, 요가의 동작들을 하나 하나 해나가면서 그 긴장은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시간을 꼭 채우고 -아니 요가소년은 마지막에 한시간에서 십분을 더 넘겼다고 했다- 요가소년의 제안에 따라 단체사진 촬영을 했다. 사실 사진 같은거, 찍고 싶지 않았지만.. 흠흠. 할 수 없지. 그곳에 온 사람들 모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어주신 직원분은
"저 아이폰이라서 에어드랍으로 다 보내드릴게요!" 하시는데 ㅋㅋㅋ 그렇게 사람들 다 우르르 몰려갔는데, 나는 그 와중에
"선생님, 제가 에어드랍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요.." 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요가한 어떤 분이 친절하게 이렇게 이렇게 핸드폰 다 만져주시고, 잠시 후에는 직원분도 내 폰 만져주셔서 사진을 무사히 다 받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모자이크 중 한 명이 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인생 살다보니 별 일이 다있네. 요가 하러 숙대입구 까지 가보고-평소에 갈 일 없는 곳이다- 요가소년과 함께 요가도 해보고. 다 끝나고 센터를 나서면서 여동생과 밥을 먹기로 했는데 연휴라 그런지 문을 닫은 식당이 많았다. 그와중에 <구복만두>라는 곳이 보이는데 미슐랭 맛집이라는게 아닌가. 우리는 둘이서 만두 세 종류를 시켜서 배부르게 먹었다.




인생 진짜 꿀잼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것. 몰랐어요, 내가 인생의 이 시점에서 숙대입구 가서 요가소년과 요가할 줄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연휴의 마지막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