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신형철의 글에 매혹당하지만, 이제 정신을 좀 차렸다.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다가 정신을 잃고 시집을 샀는데 그 시집을 읽고 절망하기를 두어차례. 아 그래, 나는 아니야, 나는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신형철의 글을 하나의 작품으로서 좋아하는 거지, 신형철이 좋게 본 시라고 해서 나도 좋게 볼 수는 없어. 그러니까 자꾸 유혹당해 사는 것은 이제 그만하자, 그의 글이 나에게 와서 나를 움직이기 전 가지치기를 하도록 하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장하다, 뿌듯하다.
이번호 한겨레 21에도 어김없이 신형철은 한 시집을 소개한다. '장석남'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가 바로 그것.
신형철은 이번에 시 두편을 옮겨적어 주었는데 시만 읽고서는 나는 멍때리게 되는거다. 멍-
그런데 신형철이 그 시에 해석을 해주니 아 미치겠는거다. 이렇게 근사한 시가 세상에 또 없다는 느낌.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시집 한권에 실린 모든 시에 그가 해석을 해주지 않은이상, 나는 이 시집의 시를 읽어봤자 멍 때릴게 분명하단 사실을. 신형철의 글은 좋지만, 신형철이 좋다고 말한 작품이 내게도 좋지는 않다는 걸 받아들이고 이젠 딱, 딱, 내칠 수 있다. 정말 장하다. 그래도 신형철이 이 책의 리뷰 맨 뒤에 썼던 문장에 대해서는 또 마음이 휘청휘청 거려. 큰일날 뻔 했다. 시집을 지를 뻔 했다니까!
이 시집은 대체로 고요하지만 은밀한 소란도 있다는 것. 이 소란을 딛고 얻은 고요라서 더 귀하다는 것. 봄이 거의 다 왔으니, 어쩌나, 이제 곧 마음 소란스러워지겠다는 것. (한겨레21 902호,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 中에서)
아아, 나 진짜 미칠 뻔 했다. 봄이 거의 다 왔으니, 어쩌나, 하는데, 아 진짜 어쩌지, 봄이 거의 다 왔어, 하고 나는 그 문장에 그대로 내 감정을 넣어버리고, 이제 곧 마음 소란스러워지겠다는 것, 에서는 어어어어 맞아, 나는 봄만 되면 마음이 소란스러워졌지, 그걸 어떻게 안거지, 봄이 왔으니 마음 소란스러워지는 건 당연한 수순, 하면서 이 시집을 장바구니에 넣을 뻔 했던 것. 오, 그러나 나는 냉철한 이성을 가진 차가운 도시여자. 정신 차렸다. 장바구니에 넣지 않았다. 나이쓰!
내가 아는 출판사 혹은 친한 출판사 사장님이나 편집자가 있다면, 혹은 내밀하게 친한 번역가가 있다면, 나는 꼭 부탁하고 싶다. 제발, 제발 이 책 좀 번역해주세요, 네?
『올리브 키터리지』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이다. 나는 그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데 검색할때마다 번번이 올리브 키터리지 밖에 나오질 않는거다. 지친다 지쳐. 그런데 해외도서로 보니 이 작품이 있다. 물론, 또 이 작품도 있다.
그런데 나는 저 위의 『에이미 와 이사벨』이 엄청 끌리는거다. 그래서 또 정신 못차리고 저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결제하기 직전, 오오, 또 이성이 돌아왔다. 냉철한 나의 이성. 요즘은 좀처럼 어디 멀리 가질 않아. 돌아온 이성은 내게 속삭였다. 안돼, 너 그렇게 사둔 원서가 몇 권이야, 그중에 한 권이라도 읽은 거 있어? 넌 하다못해 청소년 대상으로 한 원서도 못 읽고 내던졌잖아, 이걸 사는게 너한테 무슨 의미야?
그래, 의미가 없다. 나는 다시 차가운 도시여자가 되어 저 책을 장바구니에서 내보냈다. 그런데 읽고싶다. 그러니 제발, 누군가 나타나서 번역 좀 해주었으면. 번역해서 국내도서로 좀 판매해줬으면. 흑흑. 저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는 것 보다 내가 영어 공부하는게 더 빠를까? 아니, 나는 영어 공부 안하는 여자사람. 후아-
나는 아무런 힘도 없는 서울시 강동구에 거주하는 책 읽는 사람 1人일 뿐이지만, 저 책을 번역해주는 번역인과 출판인이 있다면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뭐, 제 감사는 어디에도 쓸 데가 없긴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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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책소개]
Isabelle과 Amy는 여느 가정의 엄마와 16살의 딸처럼 평범한 모녀 사이이다. 식사를 할 때나, 잠을 잘 때나 심지어 일을 할 때에도 함께 하고 마을에서 회자되는 소문도 함께 얘기했다. 그런데 Amy가 그녀의 수학 선생과 자동차에서 사랑을 나누다 들킨 후, 모녀 사이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Amy의 스캔들은 온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Isabelle은 마을 사람들의 가혹한 평판이었는데 더 그녀를 아프게 한 것은 Isabelle 자신의 과거였다. 그리고 Amy는 자신의 고통을 다른 곳에서 위안 받으려고 할 때 마을의 또 다른 사건을 보면서 인간의 행복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위트 있으면서 또한 심오한 본 작품은 작가의 파월풀한 필력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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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내 연애의 모든 것.
어젯밤에 읽다가 잠들고 오늘 아침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에서 읽는데, 오와- 나는 내내 바랐다. 출근길이 조금 더 멀었으면, 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직은 내리고 싶지 않아, 하는 기분. 아, 맙소사. 새한국당 남자의원과 진보노동당 여자의원이 국회의원회관 남자화장실에 들어가 서로의 허벅지를 움켜쥐고..............우아.................힝.........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의 책장을 휘리릭 휘리릭 멈추지않고 넘기는 것 처럼 작가도 멈추지 않고 이 글을 단숨에 쓰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처음 키보드에 손을 대자마자 마구마구 손이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마치 로맨틱코메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이 책은, 대체적으로 많은 로맨스 영화가 그렇듯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등장하고 또 혼자 사랑하는 남녀도 등장한다.
"‥‥‥난생처음 실연이라는 걸 당해 보니까 알겠다. 너한테 미안해."
정윤희는 철렁, 심장을 떨어뜨리며 멈춰 서서 김수영을 쳐다본다.
"‥‥‥알고 있었구나?"
따라 멈춰 선 그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녀의 심장을 내려다 본다.
"그렇게 오랫동안 모를 수 있는 건 없어." (p.297)
남자는 오랜시간 자신을 짝사랑해온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상대가 나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모를 수 있는 건 없어, 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나는 가만히 생각해봤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라는 건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말하는걸까. 이 남자는 언제 눈치챈 걸까. 나 역시도 오랜 시간 누군가를 혼자 좋아했던 적이 있었고, 그리고 그 시간이 극과 극을 오가는 기분들로 표현되곤 했는데, 왜 그 남자는 눈치 채지 못한걸까. 더 오랜 시간을 포기하지 말고 바라봐야 했던걸까. 내가 그를 혼자 좋아했던 시간은 상대가 알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던 걸까.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혼자 좋아하고 바라봐야 '그렇게 오랫동안 모를 수 있는 건 없어' 라고 말하며 내 마음을 들여다봐줄 수 있는걸까.
그건그렇고,
만약 책 속에서처럼 여당과 야당의 의원이 사랑에 빠진다면, 그리고 그것을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책 속에서 진보노동당의 대표인 여자의원은 자신이 새한국당의 의원과 연애중이란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될 경우 자신의 진정성이 의심받을까 두려워하고, 그녀의 의심은 사실로 드러나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혹은 그에게 실망했다고 말한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나와 정치적 노선이 같다면 좋겠지만, 기본적인 생각이 일치한다면 좋겠지만, 달라도 사랑은 할 수 있는거 아닌가. 나이가 달라도 사랑하고 국적이 달라도 사랑하는데 소속 정당이 다른게 무슨 대수라고. 정말 한 정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끼게 될까? 국회의원의 연애에? 총각인 남자와 처녀인 여자가 만나서 연애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배신감을 느낄만한 그런 일이 되는걸까? 그들은 공인이기 때문에? 설마....설마....설마 그럴까?
아무튼 오랜만에 유.쾌.한. 책읽기였다. 읽으면서 느낀건데, 역시 사랑은 하지 않는 쪽보다 하는 쪽이 나은것 같다. 연애를 할때야 비로소 사람은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고 못난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밑바닥을 매일 들여다보는 것은 곤란하지만, 어쩌다가 한 번쯤은 그것도 들여다봐 줘야하지 않겠는가.
하아- 점심을 먹었더니 이제 슬슬 잠이 온다. 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