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곰치'의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을 읽었다. 이 소설에는 뇌속에 종양이 있어 시력을 잃는 엄마가 나오고 그런 엄마를 대하는 가족들이 나온다. 아픈 엄마와 식구들이란 이야기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장면들은 별로 다를바 없을것이다. 아프면서도 가족들의 끼니걱정을 하는 엄마와, 엄마가 아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지만 적극적으로 엄마의 간호에 뛰어들지는 못하는 자식들,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남편.
소재가 이미 강한것이라면, 그러니까 모두를 울릴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일것이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만 보더라도 우리는 신경숙의 소설이 우리를 얼마나 울릴 것일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조로증에 걸린 아들을 보는 부모는 어떠할까.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을 보면서 눈물이 고이지 않기란 힘들것이다. 그러나 『엄마를 부탁해』도, 『두근두근 내인생』도 내게 결코 만족스런 소설은 아니었다. 그것들이 어떻게 건드릴지 이미 알고 시작한 독서였기 때문일것이다. 또한 어떻게 풀어내야 독자를 움직일 수 있을지도 작가들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러나 김곰치의 이 소설은 '아픈 엄마'가 등장함에도 격하지 않다. 담백하다. 아니, 담백하지 않다. 아니, 담백하다. 내가 읽은 이 소설은 담백하지만 책 속의 남자가 겪은 감정은 담백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는 있겠다. 남자는 당황하고 울고 걱정에 휩싸인다. 엄마가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도 휩싸인다. 왜 안그렇겠는가. 그러나 그의 그런 감정 변화를 보면서 내 마음이 격해지지 않는다. 대체 이건 어떻게 한걸까. 어떻게 격렬하기도 한 감정들을 표현하는데 나는 격렬해지지 않을수 있을까. 읽는 내내 나는 아, 그렇지, 그럴거야, 그런 감정 나도 알아, 그저 조용하고 얌전하게 그의 감정들에 공감할 뿐이고, 그의 말들에 동의할 뿐이다. 그러니까 김곰치의 이 소설은 '독자를 울리기 위해' 만들어진 소설이 아니라 마치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쓰여진 소설같다. 그래서 나는 같이 울기 보다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나 혼자만 못난 자식이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위로도 받게 되는것이다.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다들 이렇게 살아.
김곰치를 더 읽어볼 것.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그래, 김곰치를 더 읽어보자.
책속에서 남자의 자형이 남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옮겨본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이야기.
근데 처남, 참 이상한 게 말이다. 아버질 선산에 묻고 집에 돌아와 며칠 잠도 잘 자고 잘 지냈는데, 어느 날 방 안에 누워 있으니까, 그때만 해도 형님들은 돈 번다고 외지 나가 있제, 엄마는 안방에서 주무시제, 그러니까 집이, 세상이 문득 적막강산이라. 있으나 없으나 말없는 아버지가 없는 것뿐인데, 아무 소리 없이 벙어리 같은 아버지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질 낀데, 그런데 그게 아이라. 그래도 화장실 가는 소리, 기침 소리, 세수하는 소리, 자전차 끌고 나가는 소리 ‥‥‥이래저래 아버지 소리가 났던 거라. 근데 이제 집안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같이 괴괴한 거라.
그라더니 말이다, 밤에 불 끄고 베개 베고 누우면 엤날 생각이 살살 나. 보슬비처럼 보슬보슬 나다가 한여름 소나기 붓듯이 나. 그게 얼매나 신기한지 아나? 아, 내가 그때 아버지한테 그런 말 했제, 아버지가 내한테 무슨 말을 하려다가 쓱 쳐다보기만 하고 끙 하셨제, 그럴 때 아버지 표정, 그 눈빛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라. 변소에 아버지가 계시고 내가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를 때, 아버지가 허겁지겁 나올 때, 내가 짜증부린 거, 언젠가 내가 '돈 좀 주이소' 하고 말한 거, 그때 아버지가 돈 주고 나서 한참 텅 빈 외약간을 보다가 '어데 쓸라꼬?' 하신 거, 그런 사소한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근데 그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라. 생생해서 미치는 거라. 우와, 내가 이런 걸 우째 다 기억하노? 우와, 이것들이 우째 아직도 안 잊혀지고 있노? 너무너무 신기해. 다, 다, 다 기억나.
(중략)
처남, 처남, 그러면서도 잊힌다. 그게 또 서글픈 기라. 아버지, 벌써 가십니꺼? 허공에 대고 하는 말이라도 내 귀에 참 섭섭하게 들린다. (pp.221-222)
내가 가는 인터넷의 공간이라고 해봤자 거의 없다. 타 블로그는 지인들 몇의 블로그만 간혹 들어갈 뿐이고, 그 외에는 알라딘이 전부다. 나는 포털싸이트의 뉴스나 연예인 기사에도 흥미가 없고 검색어1위가 무엇이든 별 관심이 없다. 무심함 그 자체인지라, 간혹 다른 사람들의 화제에서 빗겨나갈 때가 있다. 아 그래? 하고 몰랐다고 말을하면 인터넷에서 한참 시끄러웠는데 왜 너는 모르냐 라는 말들을 하곤한다. 그러게, 나는 인터넷이 시끄럽든말든 별 신경을 안쓰고 사는것 같다. 어쨌든 나는 알라딘에 올려진 대부분의 글을 읽는다. 글쓴이에 대한 호감도와는 상관없이 알라딘서재-최신서재글-마이페이퍼 로 들어가서 올려지는 글들을 대부분 훑어본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렇게 마이리뷰도 보게됐는데, 아, 놀랐다, 소설에 대한 리뷰가 별로 없다!! 나는 막연하게 사람들이 소설을 많이 읽을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독서인들은 소설을 읽을거라고 생각한거다. 그런데 알라딘 마이리뷰에 등록된걸 보노라니 자기계발서와 참고서 인문서적등 비소설 류가 좌르르륵 올려져 있는거다. 물론 소설을 읽는 이들은 리뷰를 올리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걸지도 모르지만, 오, 나는 정말 놀랐다. 나는 내가 잘 안읽기 때문에 비소설류의 책이 이렇게나 많이 읽히는지 몰랐다. 오. 뭔가 신선해. 사람들은 소설을...잘 안읽는걸까? 생각해보니 베스트셀러의 상위권에는 언제나 자기계발서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는 책'을 읽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오, 아닌가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는 책은 안읽는가보다. 오.....
여기서 다시 『엄마를 부탁해』와 『두근두근 내인생』을 언급하게 되는데, 이 두책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 이라든가 '내가 사랑하는 작가'에 포함시키지는 않지만, 만약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그보다도 책을 잘 안읽는 사람들이 앞으로 책읽기를 시도하고 싶다면 이 두 소설을 권하기는 할것이다. 이 책들은 그런점에서 꽤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읽기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이야기와 문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기는 어렵지 않을것이다. 이 책들은 또 소설을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해줄 수 있을것이다.
마이리뷰에 소설이 별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걸 보면서, 아 사람들은 더 잘 살고 싶고 더 지혜로워지고 싶은거구나,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욕망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망이 더 큰걸까. 나는 왜 소설만 읽을까?
아침 출근길에는 오랜만에 루시드 폴의 [그대, 손으로]를 들었다. 무척 좋았다.
1월1일에 3개월 순수구매금액이 69만원이었는데, 지금은 53만원으로 줄었다. 우하하하하하. 앗싸~ 할 수 있어!! 10만원대로 낮춰주겠어! 1월 16일에 구매한 것이 나의 2012년 유일한 구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출간된 황정은의 신간과 노인과 바다를 읽을 수 있었다. 우하하하. 다 친구들을 잘 둔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