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을린 사랑』에서 여자가 종교가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의 할머니는 그녀를 그 살인으로부터 구해주며, 이곳을 도망치라고 말한다. 도망치고 도시로 가서 교육을 받으라고, 교육을 받고 너는 이런 삶을 살지 말라고 말한다.
전태일은 누가 뭐라고 말해준게 아닌데도 근로자들과 함께 일을 하다가 그 대우가 부당하다는 것을 느끼고 혼자서 근로기준법을 공부한다. 그리고 그들을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한다. 그 자신이 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나는 이 모든것들이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게 여겨졌다. 나로 말하자면 교육이 당연시 되는 환경에서 자라왔고, 학교를 다니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지금 내가 영어 회화를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학원에 다니면 될 것이고, 뭔가 깊이 있는 학문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하는 방법을 택할수도 있을거다. 나에게 이것은 그리 새삼스럽거나 특별한 생각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으니. 모르면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왔으니. 그러나 그을린 사랑에서의 할머니나 전태일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또 누가 공부하면 나아진다고 일깨워준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이것은 옳지 않으며, 상황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이 무척이나 존경스러웠다. 만약 내가 그들과 같은 환경에 놓인다면 나 역시 스스로 그것들을 깨달았을까? 아니, 전혀 그랬을 것 같지가 않다. 나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살아왔잖아' 라든가 '다 이런거지 뭐' 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고통스럽다고 인식하지도 못한채로 살았을 것이며 더 나은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깨닫고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이 책,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무엇이 계기였을까. 서로 친밀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날로 친구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이 왜 알래스카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파이프라인이 생기고 나서 무스가 눈에 띄게 줄었어. 옛날 스티븐스 마을은 들판에 고립되어 있었지. 그 마을에 가려면 유콘 강을 거치는 수밖에 없었어. 지금은 파이프라인 도로가 마을 근처를 지나가고 있어. 가을 사냥철이 되어도 무스를 볼 수 없게 된 것이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그걸 알아내고 싶은 거야." (pp.143-144)
난 이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왜 이럴까, 어째서 이럴까, 어떻게 해야할까를 스스로 생각해내고 답을 구하려고 하는 이런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이런 기질을 타고나는 걸까? 어디에 혹은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 있어도 그들은 어떤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공부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되겠지? 정말이지 존경하지 않을수가 없는것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노라면 자연이 얼마나 위대하고 무서운지를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인간이란 자연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그리고 마을 인구가 총 백명도 안되는 곳에서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 그들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함께 모여 고래를 잡고 눈 앞에서 곰을 보는 삶은, 대체 어떤 삶일까? 그때 느끼는 감정은 대체 어떤걸까? 그러나 섣불리 느껴보고 싶다거나 경험해보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알래스카에는 원래 살아오던 원주민들도 있지만,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 살다가 알래스카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건너와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알래스카에 건너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이 책은 알래스카의 자연과 그곳의 사람들을 다룬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알라딘 중고서점 매장에 다녀왔다는 알라디너들의 글이 간혹 보인다. 나도 이번 주말 오후, 아마도 다섯시에서 여섯시 사이쯤에 그 곳에 들러서 좀 구경을 하지 싶은데, 그렇다면 그 때 그 곳에는 어떤 알라디너들이 있을까? 단체로 후버까페 만남을 갖는 그런 기분이다. 책을 구경하는 틈틈이 흘깃흘깃 사람들을 좀 훔쳐봐야 겠다. 혹여 아는 얼굴이 나오면 반갑게 인사를 할 것이고 아마도 대부분 모르는 얼굴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누굴까, 누굴까 생각하면서. 흐흣. 광화문에 가면 간혹 교보문고에 들렀었는데, 이제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르면 되겠네. 신난다. 예쁘게 하고 가야지. 므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보쓰는 출근하시면서 날씨가 아주 좋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별 일 없지' 말고는 좀처럼 다른 말씀을 안하시는 분인데, 괜시리 날씨가 더 좋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