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이었나." 외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밤에 자다 등에 심한 담이 결렸다고. 약상자를 뒤져 파스를 찾아냈지만 결리는 부위는 아무리 해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고, 결국 외할머니는 약국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 간 약국의 약사는 젊은 남자였다. 외할머니는 다른 약국으로 갔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있었다. "여덟 군데나 갔어요. 여자 약사를 찾아서." 외할머니는 마침내 찾은 여자 약사에게 파스를 붙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약사의 손은 찼다. 등에 남아 있는 차가운 기운은 가게 문을 열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족발을 삶는 동안에도 가시지 않았다. 쓸쓸했다. 외할머니는 쓸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평생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며 살았다. 외로움에 빠지지 않는 것, 그것이 외할머니가 가진 전부였다. "그런데 겨우 파스 하나 때문에." (pp.142-143)
이 책의 142쪽을 그리고 143쪽을 읽을때의 나는 출근길 버스 안이었다. 외할머니가 혼자 살면서 느끼는 그 쓸쓸함이 버스의 맨 뒷자석에 앉아있는 내게로 그대로 꽂혔다. 모든것이 꾹꾹 눌러담으면 넘치듯이, 아무리 도망가도 언젠가는 잡히게 되듯이, 외할머니의 쓸쓸함은 고작 파스, 파스 하나 때문에 바깥으로 넘쳐 흐르고 만다. 하! 내 외로움과 쓸쓸함을 인정해야 하는게 고작 파스 때문이라니. 그렇게 이를 악물고 더한일들을 견뎌왔건만.
이 책의 89쪽을 읽을때는 어제 퇴근길의 지하철 안이었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의 89쪽을 읽다가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사실 그 전부터 자꾸만 눈물은 고일랑 말랑 했더랬다. 그래서 나는 책을 덮었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지금 사람들이 읽고 있는 책의 89페이지가 궁금했다. 당신이 읽고있는 책의 89페이지, 그 페이지에서 가장 슬픈 문장은 어떤 문장이냐고. 나는 아마 이런 문장을 얘기할 것 같다.
할머니는 매일 큰삼촌의 방을 청소했다. (p.89)
아니면 이 문장을 얘기할까?
"내 자식이라고 모든걸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야." (p.89)
이 문장은 어떨까?
"기억하면 죽지 않아." (p.89)
이 문장부터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아침밥을 차렸다. (p.89)
아니, 89페이지에서 울기 위해서는 88쪽까지가 모두 필요했다. 저 문장들에서 눈에 눈물을 가득 담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88쪽까지가 필요했다. 있어야 했다.
이 책의 169쪽을 읽고 있는 현재, 이 책은 아름답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저마다 각자의 아픔과 각자의 행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아주 쉽게 얘기해주고 있고,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고도 조곤조곤 얘기해준다. 우리는 우리 서로가 서로의 책임이며 존재의 이유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어도 그렇고 혹은 저기 저 머나먼 곳에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어도 그렇다.
아침이다. 프리실라 안의 a good day(morinig song)을 아침에 들으면 아주 다정해진다. 그래서 묻고 싶다.
잘 잤어요?
morning
sunrise
open my eyes
and i can tell it's gonna be a good day
i can tell it's gonna be a good day
did you sleep well?
did you dream at all?
can you tell me the time?
on the alarm clock
i can tell it's gonna be a good day
i can tell it's gonna be a good day
but you can sleep in
you just keep dreamin
for us
did you sleep well? it's gonna be a good day.
잘 자야죠. 당신과 나는 서로의 책임이고 서로의 존재 이유인데. 우리가 서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어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데.
did you sleep well? it's gonna be a good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