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퇴근길. 8호선을 타고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쳤는데 시선은 자꾸 옆자리 남자의 손으로 향한다. 그는 어떤 책을 보고 있었는데(도무지 그 책이 무언지는 알 수가 없더라)그 책장을 넘기는 손이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나는 그의 얼굴을 차마 보지는 못하고 저 책은 대체 무슨책일까 궁금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내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에라, 이렇게 된 바에야, 나는 내 책은 펼쳐 놓은채로 계속해서 그의 손을 본다. 그러다 흘깃 그를 보았다. 그는 아마도 이십대 후반쯤 됐던 것 같다. 얼굴을 본게 아니라 차림으로 추측한거니 제대로 된 짐작은 아닐것.
다른 남자들도 책장을 넘기는 손이 저토록 우아할까? 아니면 이 남자만 그런걸까? 손이 크고 예뻐서 유독 눈길이 가는걸까? 아니면 책장을 넘기니까 손이 크고 예뻐 보이는걸까? 정신을 바싹 차려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침을 흘리며 그의 손을 덥썩 잡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내 손 좀 한번만 잡아주세요, 하게 됐을지도 모를테니까. 만약 그렇게 말했다면 그는 '내가 먼저 손 잡아달라고 말한' 생에 두번째 남자가 되었을거다.
오늘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책 읽는 남자의 모습에 반해서 그를 쫓아가고 싶었다고 쓴 글을 읽었는데, 나는 책장을 넘기는 남자의 손에 반해서 순식간에 손을 잡아달라고 말할 뻔 했다. 조심하자.
-토요일 오후의 외출. 마침 아빠도 외출하신다고 하고 지하철 역까지는 방향이 같다. 아빠, 내가 같이 가 줄게, 하며 아빠랑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러자 아빠가 말씀하셨다.
"락방아. 니가 깍쟁이(여동생)랑 다른게 뭔지 아니?"
나는 뭔데? 하고 묻자 아빠는 말씀하셨다.
"깍쟁이는 아빠랑 둘이 걸으면 아빠 손을 잡고 걸어. 그런데 넌 도대체 애가 아빠 손을 잡을 생각을 안해. 넌 애교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애교있는 사람들이 떡이라도 하나 더 얻어먹는거야."
아, 증말. orz
아빠. 손을 잡고 싶어야 잡지. 아빠라고 그냥 막 잡나. 그리고 난 떡 싫어.
-나는 오늘 퇴근길(술에 취하지 않는다면)부터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읽을 예정이고, 지하철 2호선과 8호선, 5호선을 탈 예정이며, 주말에 분홍색 네일아트를 했다. 나의 예쁜 친구는 내 손톱에 벚꽃이 내려 앉았다고 해주었다. 말도 예쁘게 하는 친구 ♡
만약 지하철안에서 분홍색 손톱을 한 여자가 『불멸』을 들고 있다면, "다락방님~" 하고 불러도 좋다. 상대방 봐가며 맞다고 대답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