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모를 모시고 여행하는 일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힘들기만 한것도 아니었다. 잘하고 싶은 의욕이 앞서 내가 피곤하긴 하지만, 그러나 엄마와 이모는 나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려고 하신다. 엄마와 이모는 라운지 이용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으셨던 터라, 나는 공항에서 일단 라운지로 모셨다. 자, 이게 다 내가 돈을 써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야.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다들 잘 드셔!! 했는데 차린 게 정말 별로 없었던 칼 라운지.. 그러나 우리가 라운지를 나설 때쯤 메뉴가 싹 한 번 교체되었고, 아아 남의 떡이 커보이기 때문인가요, 바뀐 메뉴들은 어째 다 괜찮아 보였다. 하하하하하.
그리고 긴 비행을 시작한다. 원래 열시간 예정이었는데 얼마전에 비행 스케쥴이 바뀌었다고 열두시간 날아가야 했다.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엄마는 ㅋㅋㅋㅋ 계속 앉아 있는게 몸이 더 아프실 것 같아 계속 돌아다니시면서 승무원들과 수다 수다 떨었고, 한 승무원이 중학생 딸을 가졌으며 친정 엄마가 비행동안 아이를 봐주신다는 것도 알게 되셨고, 한 승무원은 싱글인데 엄마가 결혼하지 말라고 한다며 자신은 요가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단다 우리 딸은 시집 안가고 요가 하고 여성학 공부하고 책 읽어요 이랬더니 나를 꼭 만나보고 싶어했다고. 아니,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과 이런 대화 ㅋㅋㅋㅋ 진짜 우리 엄마다. 아놔 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알게된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 상공을 피해야 해서 돌아가느라 시간이 더 걸린다는 사실까지도 엄마는 알아오셨다.
기내식은 긴 비행을 한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딱히 맛있지는 않다. 처음에는 곧잘 먹어도 이내 간식이 나오고 또 간식이 나오고 또 밥이 나오고.. 이런 과정에서 다 먹기란 좀 힘들어지는 것 같다. 비행 동안 엄마의 무릎이나 허리가 아프지 않을까 신경 쓰였는데, 다행히 아무 탈없이 우리는 비행을 마쳤다. 숙소에 도착하고나서 가방을 던져두고 일단 근처 마트로 가 맥주와 와인, 안주 몇가지와 물을 사가지고 왔다. 늦은 저녁이었는데 나가서 먹기보다 가져온 컵라면을 먹었다. 세상 꿀맛이었고 이제야 속이 편안해지는 그런 맛, 여러분 아시나요? 긴 비행의 기내식으로 속이 지쳐있었는데 컵라면과 햇반은 큰 위로였다.
사실 햇반은 내가 챙기는 류는 아닌데, 이모는 여행 전부터 햇반과 누룽지 얘기를 반복했던 터라, 아 어르신들 모시고 가면(이라기엔 이모는 나에게 딱히 '어르신'은 아니지만 ㅋㅋ) 햇반을 챙겨야겠구나 하고 햇반 몇 개를 챙겨두었더랬다. 그런데 덕분에 내가 맛있고 편안하게 먹었다. 이모는 누룽지와 볶은 김치도 가져왔는데 아니 누룽지, 이런 꿀아이템이 있다니? 그러니까 봉지를 뜯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가 먹는건데, 세상 편하고 고소한 거다. 오, 신이시여! 어르신들 덕분에 내가 편안하게 다음날 아침 조식으로 누룽지를 먹었다. 아주 오랫동안 호텔 조식 먹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나이들면서 예전만큼 먹을 수 없어 최근에는 호텔 조식을 잘 신청하지 않았더랬다. 엄마와 이모와 같이 가는 여행에서도 호텔 조식을 부러 신청하지 않았는데, 아침의 누룽지는 정말 좋은 시작인거다.
아무튼 호텔에 도착해 간단한 장을 보고 저녁을 먹고 씻고 둘러앉아 사온 맥주도 뜯었다. 나는 서울에서부터 안주 몇 가지를 가져왔는데, 굳이 안주를 챙겨다니는 사람이어서는 아니고, 집에 있는데 내가 언제 먹을지도 모르는 것, 이번에 가져가서 먹을까, 하고 챙겼던 것. 그중에 하나가 뭐다? 바로 이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 개봉하면 냄새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휴 마스크 쓰고 싶어지는데, 먹으면 맛있다. 이것저것 안주 꺼내서 맥주를 먹고 마무리하고, 누룽지를 다음날 아침 조식으로 먹은 거다.
그리고 잔서스한스로 향한다. 풍차가 있는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곳. 기차를 타고 다들 차례대로 기차 화장실도 이용해보고ㅋㅋㅋ 그리고 도착했는데 자, 내가 기억을 못하니까 지도를 찾아야겠지, 싶었는데 아니, 저기 관광팀이 가이드랑 함께 온 듯? 지도 안보고 그들을 졸졸 따라갔더니 이제 아는 길이 나왔다. 다리가 열리고 큰 배가 지나다니는 것도 보고, 잔서스한스에 도착하면 맡을 수 있는 초콜렛 향도 맡고, 그리고 걸으면서 풍경들을 본다.
나막신 박물관과 치즈 박물관에 갔다. 여러분, 우리 엄마 볼래염?
(여기는 잔담 레고마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 허락 안받고 올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치즈 박물관 가서 시식하는 치즈도 엄청 먹었고, 모든 관람을 마친 후에 잔담으로 넘어갔다. 점심은 잔담의 식당에서 먹었다. 엄마랑 이모는 사실 고기도 별로 안좋아하시고 ㅋㅋ 나랑 입맛도 완전히 다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나의 먹는 여행으로는 아주 큰 만족을 느낄 순 없을 것 같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엄마와 이모의 누룽지가 나를 살리니까 괜찮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식당에서 점심 와인 건배!!
잔담 관람을 마치고 숙소 근처로 돌아와서는 식당엘 갔다. 엄마와 이모에게 한식 비슷한게 너무 필요했고, 그런데 아시안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보여 들어갔다. 한국 음식도 아니고 일본 음식도 아니고 뭔가 다 섞어서 자기들 나름대로의 아시안 푸드를 만든 것 같았다. 올려본다.
이게 내가 시킨 라멘인데 ㅋㅋㅋ 장조림 같은 고기에 김치와 고수가 들어있다. 나는 나쁘지 않았지만 간은 좀 세게 느껴졌다.
이건 이모가 시킨 카레우동인데 저 하얀 건더기는 두부이다. 연두부를 튀긴 것. 면은 우동 면발. 이모가 다 먹긴 했지만 딱히 취향은 아니라고 했다. ㅋㅋㅋ 그리고 울엄마껀 이것.
엄마는 이 음식들 중 제일 낫다고 하셨지만 중간에 김치 찾으셨고 ㅋㅋ 그래서 메뉴에 있던 2유로 김치를 주문했다. 그러니까 우리돈으로 3천원에 육박하는 김치인데, 나온 김치 보고 다들 놀랐다. 김밥천국의 단무지보다 적게 주는 김치였던 것.
당황..
이 저녁에 이모는 생맥주를 시키고 나는 처음 보는 병맥주를 주문해보았다. 그런데 나온 걸 보니 어떻게 오픈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거다. 이거 어떻게 오픈하니? 물으니, 직원이 오픈해주었는데, 열리면서 샴페인처럼 펑- 터진다. 우리 모두 깜짝 놀라서 ㅋㅋ 다같이 놀라니 우리도 웃고 직원도 웃었다. 내가 웃으면서 이런거 처음이라고 했는데(first time!) 직원도 함께 신나게 웃어주었다.
그런데 이 직원이, 마음에 남는다. 굉장히 젊어 보였고(어쩌면 청소년일지도?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보이시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직원이 왜때문인지 마음에 훅 들어오는 거다. 다 먹고 나가는 내내 이 직원이 마음에 있었는데, 식당 문을 나서자 식당 밖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담배를 피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그 직원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며 바이바이라고 한 후에, 엄마와 이모에게 '저 사람 남자 같아 여자 같아?' 물으니, 엄마와 이모는 둘 다 "남자!" 라고 망설임없이 대답하셨다. 아, 남자였나?
네덜란드 남자들은 평균 키가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기억이 맞는다면 평균이 180 이상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저 직원은 키가 170도 안되어 보였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여자라고 생각한걸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여자같다,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어느 지점에서 그렇게 느낀걸까? 거칠지 않은 태도인걸까? 사실 어느 성별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게 크게 중요한것도 아닌데, 뭔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그 사람의 무엇이 길에서 마주쳤던 그 크고 잘생긴 남자들보다 더 내 마음에 훅 들어오게 한걸까? 그걸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 그냥 계속 생각이 난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씻은 우리는 모두 지쳤다. 이모가 팩을 가져와서 씻고 모두 팩을 한 우리는 잠깐만 쉬자고 했다. 쉬었다가 밤에는 호텔 로비로 가 와인을 한잔씩 하자고 했다. 나는 다들 잠이 든다면 책을 읽어야지 싶어 책 한 권을 침대 옆 테이블에 꺼내두었다. 비행기 안에서 독서는 전혀 하지 않았기에..
분위기 있쥬? (그러나 안읽었다 ㅋㅋㅋ 뽀대 뽀대)
그렇지만 18,000보 이상 걸었고 모두 지친 우리는 딥슬립에 빠져버린다... 아니, 나 혼자서는 3만보도 걷는 사람인데, 엄마 이모랑 2만보도 안걷고 왜때문에 이렇게 지쳐. 모두 그대로 딥슬립.. ㅋㅋㅋㅋㅋ
우리가 딥슬립에 빠진 시간 저녁 일곱시 반.
덕분에 우리 모두 네 시에 일어나버렸... 그래서 또 누룽지 먹고 너무 좋아했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페이퍼를 쓸 수 있는 이유는, 이곳에 비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산을 준비해오긴 했지만, 우산으로 받쳐도 피할 수 없는 굵은 빗줄기가 하염없이 내려버려.. 그래서 우린 그냥 아침 먹고 커피 마시고 마트에서 샀던 오렌지도 까먹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서 다들 딩굴거리고 있다. 그래, 아무데도 못가고 딩굴거리면 그건 그대로 즐기자.
이모, 우리 한국 사람들 특히 한국 여자들은, 굳이 멍때리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멍때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잖아. 이렇게 강제적으로 멍때리게 되었을 때 그냥 멍때리자, 하고 있다. 껄껄.
이곳의 날씨는 여름이라지만 춥고, 덕분에 긴팔을 입고 자야한다. 이불이 포근하게 감싸준다고 엄마와 이모는 너무 좋아하시며, 이불 싸갖고 집에 가져가고 싶다 하신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행은, 반드시 어딘가의 무엇을 봐서만 좋은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지점에서 기쁨을 주는 것 같다. 호텔에서 처음 사용해본 바디로션의 향이 오래 기억에 남을 수도 있고, 그곳의 포근한 이불이 내내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엄마도 이불이 포근하게 엄마를 감싸준다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하신다. 호텔비 비쌌지만, 이불이 만족스럽고 커넥팅 룸이 만족스럽다. 연결된 문은 열어두었지만 어쨌든 내 방은 나 혼자 쓰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이 비가 오는데 우린 이제 어쩌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