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문제구나. 음악이 문제였어.
망상이 폭발하는 건 음악 때문이었다.
며칠전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들었던 음악을 산책하면서 듣는데 머릿속에서 망상 폭발하는거다. 아, 음악이 그런거였구나. 음악이 도와줬어. 마치 영화음악처럼, 내 망상은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되며 음악은 배경이 되어주는 거였어. 그 때 내가 들었던 음악은 브루노 마스의 just the way you are 였다.
노래 가사 답게 시작하는 그리고 아름답게 진행되는 망상 속에서 대상을 달리하여 이런저런 스토리를 진행시키다가, 나는 내친김에 브루노 마스의 다른 노래들도 듣는다. 사실 Natalie 를 제일 좋아하긴 하는데, 그건 여자가 돈 갖고 튄 내용이라 브루노 마스가 내 손에 잡히지 않게 도망치는게 좋을 거라고 한다. 나는 노래 들으면서 나탈리, 잡히지마, 도망쳐! 막 이러고. 그러나 내가 연달아 들은 곡은 브르노 마스의 Marry you 였고 이것은 사랑과 연애의 자연스런 수순이라 하겠으나, 나는 무릇 사랑이란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너무 사랑하는 사람과는 사귀고 싶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안그런다고 안그런다고 했는데 왜 해보지도 않고 겁부터 내냐고 그래가지고, 그 말에 넘어가서 사귀었다가, 결국 이게 뭐야, 친구로도 남아있지 못하과 완전 남이 되어버렸잖아. 내가 헤어지고 혼자 일자산에 오르면서 엉엉 울었을 때, 입밖으로 소리 내서 울부짖었더랬다. 거봐, 내가 안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그 누구냐, 그 소설가, 줄리언 반스도 자신의 책에서 그랬다. 모든 사랑은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고. 그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는 것에 덧붙여, 사랑에 있어서는 2-1=1 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2-1=-5 이렇다고 얘기한다. 들어보자.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p.109)
그러니까 다시 돌아가서, 나는 그러므로 브루노 마스의 사랑이 끝나는 노래를 듣는다. 망상도 결국 사랑의 끝으로 종결된다. 그 노래는 When I was your man 이다. 내가 너의 남자였을 때. 그럴 때가 있었지.
My pride, my ego, my needs, and my selfish ways
Caused a good strong woman like you to walk out my life
Now I never, never get to clean up the mess I made, ohh…
And it haunts me every time I close my eyes
왜그럴까. 인간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처음에는 그냥 너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완벽하다고 하면서 사랑에 빠져놓고 왜 결국 헤어지게 될까. 시간이 흐르면 그 자체만으로 부족해지는걸까. 처음엔 just the way you are 였는데 왜 그런 사람을 놓치고야 마는가. 내가 여기에 사는 이런 직업의 이런 나이의 이런 생김새의 사람이란 거 잘 알고 시작한 거잖아. 내가 여기에 사는거 알았잖아. 그거 우리의 걸림돌 아니었잖아. 특히나 when i was your man 에서의 저 가사, Caused a good strong woman like you to walk out my life/Now I never, never get to clean up the mess I made, ohh… 가 마음에 화악- 스민다. 내 얘긴줄.. a good strong woman...어디가서도 이렇게 a good strong woman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브루노 마스도 신기하네, 뭐랄까, beautiful 이나 pretty 를 안쓰고 strong 을 썼어... 흐음........ 무릇 여자란 strong 이 제일이지 않나.
아무튼 이렇게 머릿속에서 또 영화 찍으면서 웃고 우는 것을 지난주에 하고 그만뒀으면 되는데, 나는 어쩌자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또... 이번엔 바로 이별이다! 하고 내가 너의 남자였을 때를 들었고, 들으면서 마을버스를 탔고, 마을 버스 안에서, 이 개놈아 왜 처음엔 just the way you are 라고 해놓고 지금은 다른 남자랑 춤추는 나를 보고 후회하냐 똥멍충이... 이러다가, 나는 창밖으로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는 걸 본다. 헉!!!!!!!!!!!! 부랴부랴 벨을 눌렀지만 버스는 이미 지나가고 있고 결국 나는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 그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걸어갔다는 슬픈 이야기 되시겠다.....
머릿속 이야기 너무 재미있게 쓰지도 말고 감정이입하지도 말긔!! 이것이 오늘 나의 스몰 다짐.... 쩝...
여러가지 심란한 일들이 있었고 사실 그것보다는 지난번에 도배 어쩌고 책장에서 책 다 빼고 정리하면서 새로운 앱을 설치해 책을 하나하나 스캔했다. 나중에 책 살 때 여기에서 검색하면 내가 가진 책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내가 가진 책이 몇 권인지 알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1,200권까지 하다 관뒀다. 하아- 아마 몇십권 정도가 더 있을것 같긴 한데, 내심 700-800권 정도이지 않을까 하다가 1천권 넘어가는 거 보고 ....Orz
그 뒤로 책 사기를 자제했다. 안돼, 천권 넘는데 뭘 더 사, 팔고 사, 읽고 사, 하면서 내가 나를 모질게 대했고, 그리하여 지난 3주간 내가 산 책은 이게 전부다.
크- 참으로 소박하지 않습니까.
《구의 증명》은 제목만 들어봤지 전혀 모르는 책이었는데, 얼마전에 조카가 말을 걸어왔다. 이모, 구의 증명 읽어봤어? 라고. 나는 제목만 들어봤어, 라고 말한 후에 잽싸게 정보를 찾아봤다. 표지만 보면 한국 로맨스 소설 같았는데 내용을 보니 엄청 사랑해서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는다... 뭐 이런게 나오는거다? 으음.. 비극 로맨스? 로 생각하고 있는데 조카는 읽어보고 싶은데 다 읽고 엉엉 울까봐 용기가 안나, 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오 그래? 하고는 말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읽고 조카를 주자, 하고는 부랴부랴 샀다. 일단 내가 생각한 한국 로맨스 소설.. 장르문학이 아니라 순문학 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가난한 집 아이 둘이 어릴 때부터 서로밖에 모르는 어른으로 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하는데, 너무너무 가난해서 어린 나이에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빚을 고스란히 받아 사채업자에게 쫓겨다니고..막 그러는거다. 아무리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여유롭게 살 수도 없고..그러면서도 서로 사랑해. 그러는데 남자가 죽어버리고 그런 남자의 시체를 끌어안고 여자는 그 남자를 서서히 먹어 치우는... 손톱과 머리카락을... 하아-
너무.. 엽기적이어서, 나는 아무리 아무리 사랑해도 손톱 같은거 먹고 싶지 않고, 나는 사랑 좋아하고 연애 재미있고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에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서 더 그렇겠지만 진짜루 ㅠㅠ 너무.. 아무튼 그래서 조카가 이걸 읽으면 너무 아닐 것 같은데 그렇다고 조카에게 '그거 너무 엽기적이야, 너 지금 읽지 말고 커서 읽어' 이러면 내가 검열하는건가 싶고,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내가 사서 읽었다는 말 하지 않고 조용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조카가 만약 읽게 된다면... 아니 그런데 막 자지 넣고 이런거 나오고.. 아니 나중에 어른 되어서 읽었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조카보다 두살인가 더 많았을 때 버지니아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 읽었지만 이렇게나 맑고 밝고 건강하고 스트롱하게 자란걸 보면 사실 문학은 문학일 뿐... 아 모르겠다. 혼란스러워. 아무튼 그렇다...
다른 책들은 다 살만해서 샀으니까 굳이 이유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오르한 파묵에 대해서는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오르한 파묵의 내이름은 빨강.. 이랑 또 뭐더라. 여튼 뭔가 더 읽은것 같은데 아니야, 빨강만 읽었나? 더 찾아 읽게 되지는 않는 작가였단 말이야? 그런데 나는 이 인터뷰를 보게 된다.
☞ 노벨상 작가 파묵 “죽을 때까지 여성 주인공 소설 쓰겠다” - 조선일보 (chosun.com)
위 인터뷰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이거였다.
그래서 읽어보려고 샀다. 여성 역사학자가 전염병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진행시키는지 한 번 보고 싶어서.
오늘 아침 사무실에 도착하니 금요일에 도착한 택배가 책상 위에 올려있었다. 금요일에 반차를 쓰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는데 그 후에 도착한 것이었다. 박스 안에는 이 책이 들어 있었다. 다정한 알라디너의 선물 이었다.
사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다정한 알라디너가 보내주었다. 책을 헝겊으로 쌌는데 헝겊에서는 향이 났다. 게다가 엽서까지. 오랜만에 다정한 마음이 샤라라랑~ 스며들었다.
금요일에 만난 친구들 중 두명은 창원에서 올라온 친구들이었고 한 명은 안양에서 왔다. 나까지 네 명. 창원의 친구들은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지고 있고 자기 소유의 차도 가지고 있다. 20년이상 꾸준히 근무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아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한 것들이었다. 안양 친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자영업을 하고 있다. 나는 오랜만의 만남이니만큼 웰컴주로 샴페인을 들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는데, 창원에서 오는 친구들은 세상에, 우리 만난다고 떡을 해가지고 왔다. 무지개송편과 블루베리 설기였다. 와... 여러분은 떡을 해가지고 오는 친구를 가지고 있나요? 껄껄. 우리는 호텔을 잡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계속 잘 살자고 이야기했다. 계속 잘살자, 그리고 잘되자 얘들아. 주먹을 불끈쥐고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그나저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안읽고 있어서 미치겠다. 어제 집에서 읽었는데도 50페이지까지 밖에 못나갔어.
보통 나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고, 내가 지하철 출퇴근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하철 안에서 진짜 집중 너무 잘되어가지고 이 시간을 포기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 독서의 대부분은 지하철에서 이루어진단 말이다. 내 똑똑함의 8할은 지하철의 덕이다. 나는 지하철을 포기할 수 없어!! 그런데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진도를 못빼고 있다. ㅠㅠ 집에서 읽으려고 펼치면 어찌나 잠이 쏟아지는지...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학창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책 찢어가지고 다닐까?????????????????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