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 박수영은 2006년에 스웨덴으로 역사학 공부를 하러 가서 2009년에 논문 발표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3년을 스웨덴에서 있었던건데 스웨덴에서도 스톡홀름 대학이 아닌 웁살라 대학에 있었다고 한다. 저자가 밝힌 바에 의하면, 웁살라대학교는 영어로 개설된 과목이 다른 어느 대학보다 많고, 그래서 세계 각지에서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도 많다는 거다. 박수영도 공부하러 가서 같은 클래스의 터키, 이란, 미국.. 또 어디더라. 여하튼 글로벌 프렌십을 갖게 되는데, 그 친구들의 나이는 대부분 이십대 초반이었던 반면 그곳에 갈 때 박수영의 나이는 마흔즈음이었다. 이십년이나 나이 차이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게다가 그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생각을 교환하고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이건 어떻게 상상해볼 수 있을까, 하다가 내 대학교 4학년 때를 떠올렸다.
1학년때 학사경고를 받고 그 다음학기에는 간신히 학사경고를 면하고, 그 다음학기에도 F 가 빵빵 터져서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남들이 쉬면서 어쩌다 학교 다니는 4학년 때,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 매일 있어야 했다. 1학년 그리고 2학년 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들어야 했는데, 그게 너무 부끄러워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맨 뒤에 앉아있곤 했다. 1,2학년 때 학교 툭하면 빠지고 만화방가서 라면 먹고 있고 그랬는데, 4학년 때 그렇게 애긔들하고 수업 들을 때는 빠지니까 참 난처했다. 전 주에 혹시 숙제를 내줬는지 그렇다면 그게 뭔지.. 부끄러워 애긔들한테 물어볼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한 번은 수업 끝나자마자 번개같이 뛰어가서 교수님께 제가 지난 주에 결석했는데 과제가 뭐였나요, 물어봤더랬다. 인생이여...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나의 대학생활...
애긔들하고 수업 듣는 건 부끄럽지..라고 생각하다가, 아 그런데 나의 이 경험은 박수영의 것과는 현저히 다르다는 걸 이내 깨닫는다. 박수영은 원래 공부 잘했던 사람이(서울대 철학과 졸업) 어디 더 배워볼까? 하고 슝- 스웨덴으로 날아간거고, 나는 어떻게든 졸업을 해야 해서 그런거고..이건 경우가 달라도 아주 다르지, 달라.. 나도 안다.
나 대학 졸업식때 학사모 쓰고 있을 때 우리 과 애들이 와서 '너가 어떻게 제 때 졸업하냐'고 다들 한마디씩 했다. 너 빽있냐? 아버지가 학교 관련자분이시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내가 노력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애긔들하고 수업 들었어.. 그래서 어쨌든 학사경고에 F 를 절친 삼아 학교 다녔던 나는, 조교 언니가 찾아와서 '너 계절학기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니?' 걱정해줬던 나는, 계절 학기 한 번도 없이, 그리고 휴학도 없이, 그렇게 제 때 졸업한 것이다. 물론 졸업당시 학점 평균은 2.0 으로 마감... 아, 힘들었다. 이거 만드느라고.. 이것도 다 막판에 학점이 잘나와서(라고 했지만 3점 넘어본 적 없는 사람) 2.0 됐지, 안그러면 .... 아무튼 딱 4년 다니고 제 때 졸업한 사람이다. 애가 참 망가져서 엉망진창으로 공부도 못하고 학교도 제대로 안다녔지만, 그래도 어떻게 또 제 때 졸업하게끔 지가 그렇게 해... 애가 결국은 참 바른 길로 간다. 참 인간이야. 트루 휴먼..
아무튼, 박수영은 나의 경우와 다르고 그렇게 역사 공부 하러 갔는데, 박수영이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로 역사 공부를 하러 갔기 때문에 내가 알게된 사실은, 스웨덴이 복지가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아니, 대학등록금 까지 공짜인것입니다. .. 네? 세상에 그런 일이. 나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등록금 인상한다고 하면 막 학생들이 시위하고 그랬는데(안그래도 개비싼데..) 스웨덴은 대학까지 등록금이 다 무료이고 이건 외국인 학생한테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박수영이 다닐 때는 그래서 공짜로 다녔는데, 박수영이 공부를 마칠 때쯤 스웨덴에서 '외국인 학생에게는 유료로 하겠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한다. 그래서 2022년 현재 웁살라대학교에서 공부하려면 외국인 학생에게는 돈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그리고, 웁살라 대학교에, 젊은이들만 있는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수강생들도 있는데, 그들은 꼭 졸업해 학위를 따는게 목적이 아니라, 듣고 싶은 강의가 있으면 그것만 듣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다. 세상에.. 내가 바라던 바로 그것이네?
내가 뉴욕대를 가고 싶다고 해도 거기 등록금 너무 비싸고 공부 하려면 거기서 거주해야 하는데 생활비도 너무 비싸고.. 그러니까 아마도 꿀 수 있는 꿈이라는 건 뉴욕대에 가서 강의 하나 들어보고 오기.. 정도가 다가 아닐까, 내심 생각했단 말이다. 그런데 웁살라대학교는 등록금이 공짜이며 게다가 듣고 싶은 강의가 있으면 그냥 들어도 된대. 세상.. 개꿀..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며, 듣는 수강생들의 나이나 국적도 다양하니, 내가 거기에 가있다 한들 뭐가 이상하리요? 만세만세만만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박수영이 공부하면서 사귄 학생들은 박수영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그러다보면 아시아, 한국, 남한에 대한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제국주의나 민족주의 등에 대한 의견을 묻거나 모르는 점에 대해 외국인 학생들이 물으면 박수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다 답해준다. 그 질문이나 답을 읽노라니, 와 거기가서 공부한 게 박수영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역사 1도 몰라서 대답해줄 수 있는게 없는데.. 어휴.. 공부 잘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역시 공부를 잘하는게 답인가.. 어쨌든 나도 배우고 싶어서 웁살라대학교에 가도록 해보겠다! 그나저나, 그렇다면 영어 공부가 먼저겠구나... 영어.. 스웨덴은 영어를 다들 너무 잘한다고 하니, 스웨덴어까지 욕심내지는 말고 일단 영어 완전정복을 꿈꾸자.
Hal Su It Da!!
웁살라대학교가 그리고 스웨덴이 너무 궁금해져서 스웨덴에 대한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세상에, 대학 등록금이 공짜이며 누구나 공부하러 갈 수 있다는 거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누구나 공부하게 문을 열어둔다면, 공부하게 되는 더 많은 사람이 생기는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나 매력적인 스웨덴을 알게된 건 이 책을 읽은 커다란 수확이지만,
그러나 에세이로서의 이 책을 말하자면 불편한 지점들이 있다.
에세이라는 특성 답게 글쓴이의 생각이나 감정이 드러나게 되는데, 간혹 어떤 생각들에 동의하지 못해 불편해지는 거다. 이를테면 처음 만난 그 학교의 학생들-나중까지 친구로 지내는-에 대한 외모 묘사가 좀 거슬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사생활을 이렇게 공개한다고? 거기에서 작가가 이들에게 허락은 받은건가 싶었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웁살라대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가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어로 자기들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그 이야기들 속에는 어떤 여학생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것도 나오고(그래서 저자는 그 사랑을 그만두라 조언한다), 허영심에 가득찬 베트남출신 미국인에 대한 뒷담화도 나온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싫어하는 건 살면서 무수히 일어나는 자연스런 일이지만, 그걸 이렇게 책으로 쓴다고? 독자가 그 사람을 만날 일이 없으니까 괜찮은걸까? 무엇보다 미국에 사는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한국인들이 자기 뒷담화 읽고 있는걸? 설마, 이름은 다 가명이겠지? 읽으면서 내내 찜찜한 부분이었다.
자 그러면 미래 설계를 해보자.
몰타가서 어학연수 한 다음에 갈고 닦은 영어 실력으로 웁살라대학교 가서 공부해야지. 그런데 웁살라 대학교에 가면 뭘 한담? 여성학? 스웨덴은 그나마 성평등한 국가라니 여성학 있지 않을까? 후훗.
Hal Su It 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