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엊그제는 동생네 가족들이 모두 오기로 했었다. 내 생일 과 올케 생일이 즈음이라 다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 것. 바로 이때다 싶어 나는 토마토스프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네덜란드 여행에서 너무 맛있게 먹어서 한 번 해봐야지 하고 검색해봤는데, 굳이 토마토를 사지 않아도 토마토 퓨레로 해도 되더라. 게다가 특별한 재료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야. 야채는 원하는 걸 넣으면 될 것 같았다. 오레가노 가루가 문제인데, 이것도 마켓컬리를 통해 샀다. 내가 찾아본 레서피는 닭가슴살을 잘라서 넣었던데, 나는 고기가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굳이 넣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러니까 삼겹살이나 스테이크는 고기가 꼭 필요하지만 토마토 스프에 고기가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기는 고민없이 패스 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네덜란드에서 토마토스프를 먹을 때 스프 만으로도 맛있었지만, 식당에서 내어주는 빵에 버터를 발라 그 위에 토마토 스프를 얹어 먹으니 꿀맛이었지. 나는 내친 김에 치아바타도 준비하기로 한다. 치아바타는 재료도 별로 필요치 않고 반죽도 크게 필요치 않다. 다만 발효시간이 길 뿐. 나는 일어나서 일단 치아바타 반죽을 해서 전자렌지에 발효시키고 토마토스프에 넣을 야채들을 썰었다. 내가 선택한 야채는 양파, 양송이버섯, 당근이었다. 야채들을 작게 깍둑썰기 한 후 예열된 냄비에 버터와 야채를 넣고 달달 볶다가 토마토 퓨레, 녹여둔 치킨 스톡, 물, 오레가노 를 넣고 한참 끓인다. 끓이면서 종종 저어주고 그러고나서 다 끓인 뒤 맛을 보는데, 오 좋은데?
다 완성해두고 치아바타 반죽을 꺼내 폴딩하면서 블랙올리브를 넣어준다. 다시 발효, 다시 폴딩, 다시 발효. 그리고 모양을 잡아 오븐에 넣어 굽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사이즈의 치아바타 네 개 정도가 내가 하는 반죽 한 번에 나오는데, 한 번에 오븐에 들어가는 건 두 개. 처음 구 워진 두 개를 꺼내두고 다음 반죽을 넣어 굽고 있는데 남동생네가 먼저 도착했다.
엄마는 오늘 식사를 위해 닭볶음탕이며 오이 도라지 무침, 미역국, 양배추 물김치, 가지 볶음, 콩나물, 고추조림 등을 해두셨는데, 남동생네가 도착한 시간은 아직 점심 식사를 하기 전. 나는 치아바타가 막 구워졌는데 토마스트스와 맛보겠니? 물었더니 남동생도 올케도 좋다고 한다. 특히 올케의 눈이 반짝거린다. 내가 음식 설명을 시작한 후부터 기대감에 반짝이는 것 같다. 평소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올케다. 빵에 버터 발라서 토마토 스프를 얹어 먹으렴, 안내한 뒤 이렇게 한 상 차려주었다.
ㅋ ㅑ -
내가 만든 치아바타, 내가 만든 토마토 스프!!
남동생은 치아바타 먹다가, 아니 갓 만들어진 치아바타는 이렇게 맛있는 거냐며, 누나 치아바타 늘 맛있었는데 막 만들어진 건 완전 더 맛있다고 흥분한다. 올케는 빵을 먹어보고 버터를 발라 토마토 스프를 먹으면서 자기는 이걸로 배불러서 밥을 먹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ㅋㅋ 나는 조금 덜어서 후후 불어 식힌 뒤 두 살 아가 조카에게 토마토 스프를 먹여주었다. 평소 신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던데, 그렇다면 토마토 스프.. 안먹으려나? 아가조카는 입술 주변을 붉게 만들며 토마토스프를 아주 잘 먹었다. 저만큼 콩콩 뛰어갔다가도 다시 돌아와 입을 벌려서 토마토 스프를 넣어주었다. 엄마는 치아바타도 조금 잘라 조카에게 주었는데, 조카는 그걸 들고 다니면서 알아서 잘도 뜯어 먹더라. 아 너무 뿌듯한게 아닌가. 남동생은 이 한 상 차림이 너무 맛있고 좋다고, 누나 매일 주말에 우리 집에 와서 이렇게 해주면 안되냐 물었고, 나는 너가 아가 데리고 주말마다 오렴, 그러면 내가 해주마.. 했다. ㅋㅋ
그리고 잠시후에 남동생과 올케는 엄마가 준비한 밥도 맛있게 먹었다.
한시쯤 여동생네가 도착했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일단 밥을 먹고 초등6 조카는 이제 토마토 스프를 달라고 했다. 나는 위와 마찬가지로 차려주었다. 여동생은 치아바타 반죽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거냐고 계속 놀라워했고 조카는 토마토스프+치아바타+ 버터조합에 황홀해 했다. 이 날 토마토스프를 제일 많이 먹은건 바로 이 초등조카였고 이 아이는 나랑 외출후 돌아와서 저녁에 또 토마토 스프를 달라고 했으며 남은 빵도 모조리 먹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이모 토마토 스프 남았어? 하더니 숫제 들고 마셔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뿌듯한 하루였다. 그렇지만, 너무 힘들었다. 개힘들었어. 도대체 이게 뭐라고, 내가 준비한 거라곤 치아바타와 토마토스프 밖에 없는데 부엌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ㅠㅠ
사람마다 예민한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때로는 꾹 참게 되는 지점들을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을까. 내 경우에 신경적으로 예민한 것을 누군가와 음식을 함께 먹을 때 있다. 다른건 괜찮은데 한 냄비 안에 같이 숟가락 넣고 먹는 게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다. 가족이어도 애인이어도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네 입에 들어가서 네 침 묻은 숟가락을 다시 이 냄비 안에 넣고 그걸 내가 먹는다는 생각을 하면 진짜 참을 수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말하면 너무 예민하다고 할까봐 꾹 참고 먹을 때가 있고 아니면 아무말 없이 내 숟가락을 내려놓는 때도 생긴다. 가급적 자기 앞접시에 덜어먹는 쪽을 그래서 나는 선호한다. 한 번은 회사 동료랑 함께 밥을 먹는데 내가 메인 메뉴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따로 두었음에도, 내가 먼저 그걸로 떠 먹는 걸 보여줬음에도, 자기 숟가락으로 국물 가져다가 슥슥 밥 비벼먹고 다시 그 숟가락으로 또 국물이랑 건더기 가져가는 거 보고서 밥맛이 확 떨어졌더랬다. 진짜 못먹겠는거다. 다음에 다시 그 동료랑 둘이 밥을 먹을 일이 잇었을 때 나는 서둘러 다 반으로 나누어 각자 앞으로 가져갔다. 네 침은 네가 먹어라, 나는 싫다.
이건 신경적으로 예민한 지점이라면, 하아- 나는 피부가 너무 예민해서 ㅠㅠ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이 얘기다.
사실 나는 알러지 반응을 꽤 여러개 가지고 있다. 고양이털과 개털에 심한 알러지가 있고 어패류에도 알러지가 있다. 닥터가 '이러면 고양이 키우는 곳 근처에만 가도 힘들텐데요' 라고 했었고 어패류에 대해서는 '평소에는 괜찮겠지만 컨디션이 나쁘면 확 일어날 수 있으니, 이럴거면 안먹는게 낫지않느냐' 라고 한 적이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네 집에서 하루 잤다가 호흡기에 온통 난리가 나서 다음날 꽤 힘들었었는데, 그 후에야 내가 알러지 검사를 하고 반응을 알게 됐었다. 새우를 먹고 온 몸이 모기물린 듯 일어나서 새벽에 응급실에 간 적도 있다. 그래서 나름 조심하느라고 하는데, 한두개 먹어보고 괜찮으면 조금 더 먹는 식이다. 해외에 나가면 수습이 힘들까봐 거의 입에도 대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고.
그러니까 토요일, 조카들과 동생네와 시간을 보내고 나는 부엌에서 내내 있었던터라 너무 피곤했는데,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들어, 하고는 저녁무렵 조카들을 데리고 천호동에 있는 교보문고에 갔다. 갔다 돌아오는데 제부가 저녁에 술안주로 해물찜을 먹자고 하는게 아닌가. 해물찜 먹어본 지 오래라 오케바리, 하고서는 집에 돌아가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제부랑 도라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해물찜을 먹기 시작했다. 해물찜의 압권은 콩나물 아닌가. 나는 콩나물을 먹고, 곤이를 먹고, 새우를 하나 먹고, 꽃게를 반마리 먹었다. 여기 어디쯤에서부터 재채기가 미친듯이 나기 시작했고 아무리 코를 풀어도 또 재채기가 또 재채기가 나는 거다. 여동생은 언니 알러지 같은데, 했고 나도 그런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네 하면서 계속 재채기에 콧물을 흘리고 그 후엔 목소리가 완전히 가버렸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힘들었어 진짜. 그러고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에 목 오른쪽이 너무 간지러운거다. 좁쌀같은게 손바닥만하게 일어나있더라. 으악 ㅠㅠ 너무 가지럽고 화끈거리고 괴로워 ㅠㅠㅠㅠㅠ 이거 어제 해물 때문인가, 하다가 흑흑, 아직 약국 문도 안 연 시간이야, 하면서 나는 조카들과 함께 밥을 먹으려고 앞치마를 하는 순간! 원인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예민하게 신경쓰는 것 하나는 부엌에 들어갈 때는 앞치마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자라면서 본 엄마는 앞치마를 하는 분이 아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엌에 들어가면 일단 앞치마를 한다. 간단한 설거지라도 하다못해 계란프라이라도 할라치면 나는 반드시 앞치마를 한다. 앞치마를 하지 않은 상태로 무언가 하는게 진짜 싫은거다. 그런데 집에 있는 앞치마는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던가 엄마가 저렴한 걸 사다준 거라서 언젠가 좋은 앞치마 사야지 벼르던 참이었다. 한 번은 무슨 전시회 갔다가 앞치마 팔길래 살까 했더니 오만원이나 하는게 아닌가. 어휴 앞치마 비싸네 하고는 돌아섰다. 그런참에 이번 네덜란드에서 주방용품 파는 가게 들어갔다가 앞치마를 보고 큰 맘 먹고 샀던거다. 무려 28 유로! 그래, 이걸로 이제 나는 좋은 앞치마, 그것도 네덜란드에서 사온 앞치마를 착용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거야! 했는데, 아아, 조카들과 밥을 먹으려던 일요일 아침, 앞치마를 목에 걸자마자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친 것이다. 네 목에 그것은 앞치마로구나. 그러니까 내가 산 앞치마는 이런 것.
목에 두르는 부분에 저 메탈. 저것이 나를 건드린 거다 ㅠㅠ 아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괴로워 ㅠㅠㅠㅠㅠ 엄마가 너는 메탈 알러지 있는거 알면서 왜 이걸 샀냐고 하시더니 저 메탈 다 빼버리고 묶어버리겠다 하셨다. 나는 28유로나 주고 산 예쁜 앞치마를 그렇게 막 다루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착용할 순 없다. 이렇게나 아프고 괴로운데. 나는 여동생에게 어제 하루 착용한 것이니 네가 가지렴, 하고는 줬다. 여동생은 덕분에 고맙다고 했고 엄마는 안타까워 하셨다. 그렇지만 망가뜨리는 것보다는 온전하게 사랑받으렴 앞치마야 ㅠㅠ
나는 일전에도 청바지 입고 놀러갔다 온 후 후크 닿았던 부분부터 시작해서 가슴 밑까지 온통 일어나서 병원에 가 치료 받은 적이 있다. 샌들 신고 발등이 일어나 가려워서 도대체 겉에서 보면 메탈이 없는데, 하고 샌들 발등부분을 뒤집어 보았더니 안에 쇠로 뭔가 고정이 되어 있더라 ㅠㅠ
여동생은 내가 처방받은 약들과 연고들을 다 가지고 와 검색한 뒤에 이걸 바르고 대신에 사흘 내내 발라야 하고 일주일 넘기면 안된다, 라고 해주고 이 알약고 이 알약을 함께 빼먹으라고 해주었다. 나는 여동생 말대로 했고 두드러기는 가라앉았다. ㅠㅠㅠ 아마도 몸이 고단해서 심하게 일어난 것 같았다. 전날 밤의 재채기는 해물이었던 것 같고(꽃게였을까 ㅠㅠ) 다음날 아침의 것은 메탈이었다. 아 쉬바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도 이런 예민한 내가 싫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떤 물건에 메탈이 포함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내 피부에 갖다대고 실험을 해도 좋을 정도다. 휴.....
자, 그리고 원래부터 하려고 했던 얘기. 바로 책이 온 얘기. 그러나 책을 '산'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다 선물이니까. 껄껄껄껄. 다들, 부러워할 준비 되셨나요? 껄껄껄. 이제부터 잘난척 이천프로 나갑니다.
자 위의 책들은 생일 선물로 받은 책들이며 커피, 육포이다. 포스트잇 플래그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 구도가 잘 안나와서 치움. <링컨 하이웨이>는 사실 생일선물의 명목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여기에 넣어두면 선물한 분도 좋아하실 것 같고 또 뽀대가 난다. 에이모 토울스 신간 나오길 기다렸다가 나오자마자 잽싸게 선물을 해주셨던 거다. 안그러면 내가 사버리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책들을 골랐을 분들을 생각하면, 다들 내가 책을 많이, 자주, 잽싸게 산다는 걸 아는 분들이셔서 내심 이건 아직 안샀겠지, 하고 페이퍼를 살피셨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고 그렇다. 물론 어떤 분들은 갖고 싶은 책을 말해달라 말씀하기도 하셨다. 그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신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서도 한 권 선물받았는데 그건 아직 도착을 안했다. 아쉬워라.. 같이 찍으면 더 뽀대 날텐데...
자, 그리고 이건!!
생일이라고 받은 알라딘상품권으로 주문한 것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개멋지다 진짜. 이 열 권의 책들이 다 상품권으로 산거다. 물론 커피도! 그런데 신이시여, 제게 아직도 십만원 이상의 상품권이 남은거 실화입니까? 껄껄.
자, 이 책들을 모아볼까?
아아 이 진정한 책탑이라니,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하아- 너무 좋다, 너무 좋다. 그렇지만,
8월 15일인 지금까지 내가 8월에 읽은 책은 딸랑 한 권, 저주 토끼 뿐이다...
여행 다녀온 후부터 책을 안보고 있다.
이렇게 책을 엄청나게 쌓아두고 읽지는 않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그리고 또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있다. 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