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웨이 선언문] 읽기 전에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나온 말이고 읽을 당시에 감탄하여 외우고 다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저것은 진리.. 바로 참 진리, 트루 진리. 되시겠다.
그러니까 어제 어린이 날. 초딩 조카 두 명을 광화문에서 만났다. 아이들이 교보문고 가고 싶어해서 같이 교보에 갔고, 어린이날이니 너희들이 갖고 싶은 거 다 사줄게, 골라라! 했다. 둘째 조카는 대부분 완구를 골랐다. 조립할 수 있는 것들과 레고와.. 첫째 조카는 플래너와 학용품들을 골랐는데, 그리고 말했다.
"이모, 트와일라잇 가지고 있어?"
"아니, 팔아버렸는데.."
"아 나 그거 읽고싶은데."
"그러면 사줄게!"
하게된 것이다. 아아, 조카야, 조카야. 트와일라잇을 읽고 싶니?
몇해전에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 책이 분권으로 나왔던 처음에,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에드워드를 좋아했더랬다. 그로부터 한 3년이 지난 후였나,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이 책이 한 권짜리로 나왔고. 나는 두 권짜리도 가지고 있었으면서 한 권짜리를 또 사서 다시! 읽었고, 그 후로 시리즈를 다 사서 읽었더랬다. 원서도 가지고 있었더랬다. (안읽었다) 극장 가서 개봉때마다 영화도 챙겨보고 한동안 트와일라잇 앓이를 하다가, 어느 순간, 어휴, 이걸 뭐하러 가지고 있는담? 하고서는 원서까지 싹 다 팔아버린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는 몰랐다. 나의 조카가 무럭무럭 자라 십대가 되면 어느 순간 트와일라잇을 읽고 싶어할 줄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네가 자라서 트와일라잇을 읽고 싶어할 줄 알았다면 이모는 팔지 않았을텐데...
나, 책들을 지금처럼 이렇게 팔아도 되는걸까?
조카는 최근에 내게 빌려간 책들 중 <노인과 바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완독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재미있는데 왜그렇게 야하냐며, 그렇게 야할 필요는 없잖아, 이모? 야한 부분 없어도 얘기 다 되던데? 라고 했다. 의외인 건, <노인과 바다>를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는 거다. 아니 대체, 초등학생이.. 노인이 고기 잡으러 가서 온갖 고생하다가 마침내 잡은 고기를 돌아오는 길에 상어한테 다 뜯기고 대가리만 남는 내용.. 의 어디가 재미있다는거지? 나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것이 어린이에게도 재미있게 읽힐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어제 만나서 조카에게 이 얘기를 하며,
결국 인생 허무하다고 하잖아?
응!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생선 대가리만 남았다고 해서 그 노인이 고기를 잡았던 과정 자체가 쓸데 없는 건 아니지.
응 맞아!
이러면서 얘기를 했다. 신기.. 초등학생이 노인과 바다를 재미있어하다니...
어쨌든 트와일라잇 시리즈 다 사줄게, 했더니 조카는 '이모 일단 트와일라잇 읽어보고 좋으면 얘기할 게. 그 때 뉴문 사줘' 했다. 알겠다고 했다. 조카들이 원하는 걸 사주고 조카들이 먹고 싶어했던 오므라이스를 사주러 식당에 갔다. 예전부터 나도 한 번 사주고 싶어서 벼르던 거였는데 반숙 오므라이스. 동그란 타원형 모양의 오므라이스를 칼로 자르면 촤르륵~ 퍼지는 것. 일전에 만났을 때 어디서 파는지 알아보고 아이들과 함께 찾아갔는데 가는 길이 멀고도 험했고 기어코 도착했더니 점심 장사가 끝났다고 해서 먹지 못했더랬다. 괜히 아이들 많이 걷게 해 미안한 마음이었고 이거 꼭 먹여주고 싶은데, 하는 마음으로 아쉬웠다가, 이번에 다시 검색해서 광화문 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엔 부랴부랴 서둘러 오픈시간 되자마자 찾아갔다. 우리는 대기손님 1번으로 기다리다 들어가게 되었고, 아이들은 드디어 오므라이스를 받아 들고 터뜨리며 환호했다. ㅋㅋㅋㅋ 그리고는 아주 맛있다며 잘도 먹었다. 나는 여동생과 스테이크를 시켜 화로에 구워 먹으면서 맥주도 한 잔 시켰다.
집에 돌아와 트와일라잇 50쪽 까지 읽은 조카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껄껄.
조카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거였는데 광화문과 인사동을 걷는 동안 조카들과 손을 잡고 걸었다. 내가 나의 조카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 어린이들과 손을 잡고 걸어볼까. 내 조카들이 아니라면 어떤 아이들이 내 손을 잡아줄까. 조카들은 나의 손을 잡고 또는 팔짱을 껴고 쫑알쫑알 계속 이야기를 했다. 어휴, 내게 조카들이 있어. ㅠㅠ
엊그제 도나 해러웨이 페이퍼 쓰면서 잠깐 철학 팟캐스트에 대해 언급했더랬다. 그 팟캐의 링크는 먼댓글로 가면 첨부되어 있고, 친구가 소개시켜 줘서 처음 알게된 팟캐이고 그래서 도나 해러웨이편(35,36화)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는데, 와 진짜 너무 좋은거다. 들어보니 여자 진행자는 철학으로 강의를 하는 사람이었고 남자 진행자는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것 같았다. 그 둘이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대화 자체가 좋은거다. 어땠어요? 왜요? 어느 점이 어려웠어요? 뭐가 인상깊었나요? 이러면서 조곤조곤 둘이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이런 식의 대화라면 끝나질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이런게 바로 철학적인 대화인걸까? 끊임없이 상대에게 왜냐고 묻는 것. 타인과의 대화에서 할 말이 없다고 하는 것은 공통된 소재가 없어 그렇기도 하지만, 상대에게 왜냐고 묻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왜냐고 묻는 것은 궁극적으로 너의 생각을 알고 싶다, 궁금하다는 것인데, 상대와 대화가 단절된다는 것은 그럴 의지가 없다는 게 아닐까.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대화는 이런식인건가,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 아무래도 도나 해러웨이를 추천한 사람이 여자 진행자였고(그 사람은 '썬' 이라고 불리더라) 그래서 이해가안됐다, 라고 하는 남자진행자(이사람은 '쨈'으로 불렸다)에게 부연 설명을 해주곤 했는데, 그런 모든 이야기들을 듣는게 너무 좋은 거다. 당연히! 도나 해러웨이에 대한 호감도 생겼다. 도나 해러웨이, 이사람 대체 뭐지? 싶으면서, 도나 해러웨이가 결국 '관계'에 대해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너무 좋은거다. 그러면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선으로 관계를 설명해달라 쨈이 요구하자 썬은 이렇게 말한다.
모더니즘에서는 내가 있고 너가 있고 관계가 생겼다, 여기에서는 너와 내가 있는게 중요하고 그 후에 관계가 형성된다고 본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관계가 있고 우리는 그 안에 존재한다, 여기서는 관계가 우선시되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거기안에 위치하게 된다, 는 거다.
이게 정확한 워딩은 아니고 내가 기억하는 뉘앙스인데,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적 관계에 대해 도나 해러웨이가 해러웨이 선언문에서 얘기한다는 거다. 아니, 너무 재미있잖아?
그런 한편, 이 두 진행자에 대해 궁금증도 생겼다. 그 두편만 듣고 다른 건 안듣다가 오늘 출근길에 잠깐 맨 마지막화를 들었는데, 쨈은 논문을 끝내고 졸업하고 연구소에 취직했으며 퇴근후에는 코딩 강의를 듣고 있다고 했다. 썬은 계속 강의를 하고 논문을 또 준비하고 협동 논문도 준비하고 있으며 단행본 작업도 여러개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단행본 작업을 하고 있다면, 이미 나온 단행본도 있지 않을까? 나는 특히 이 여자진행자인 썬의 단행본이 너무 궁금한데, 팟캐의 어디에도 이 여자분의 신상에 대한게 없다. 대화의 맥락상 이 둘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 대학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이름도 모르겠어. 나는 컴퓨터를 켜고 오늘 아침, 포켓필로소피 진행자를 검색하다가 빙고! 알게 되었다. 썬은 이런 책들을 썼다.
아 뭐지, 궁금하다. 읽어보고 싶어. 나는 이 두 권 모두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직 내게는 도착하지 않은 박스가 두 박스 있지만...이것들도 사는 걸로. 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씐난다!!
도나 해러웨이 여러분(응?) 팟캐스트 들으면 도움이 됩니다. 들어보세요. 음화화핫.
자, 그럼 이제 책이나 사러 가자.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