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이 회사에 근무한 지 만으로 20년이 되었다. 창립기념일에는 회사에서 주는 포상을 받게 되는데, 그 때까진 아직 몇개월 남았고, 내가 이렇게나 오래되었다고 보쓰에게 알리니 보쓰는 내게 금열쇠를 선물해주셨다. 나 태어나서 금열쇠 처음 받아보고 그래서 넘나 떨렸더랬다. 여기가 내 첫직장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러분 나 여기 20년 다녔고, 그래서 감사하고 축하한다고 황금열쇠 받았고 연봉도 (쪼금이지만) 올랐다. 나는 보쓰에게 포부도 당당하게 '월급 올려주세요!' 했던 거다. 으하하하하. 다들 대단하다고 하는데, 엄마는 황금열쇠 받았다니 너무 축하하고 대견하지만, 그런데 니가 20년간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지 알기 때문에 한편으론 짠하다, 고 하셨다. 그 말 듣는데 울컥 했네. 몇 번이나 그만둘까 생각하며 울던 날들도 분명 그 시간 안에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이렇게 한 직장에 20년째 다니고 있고, 이 회사에서 보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나만큼 다닌 관리직이 없다. 여하튼 나 대단해.. 황금열쇠를 손에 쥔 자, 누구? 나다...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나는 자주 한다.
일전에 회사 동료가 내 생일 선물을 고르는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뭘 사줄까 생각하다보면 모두 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더라고. 그런데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없는 게 없었다. 나는 나에게 필요한 걸 이미 다 내가 갖추는 사람이었다. 이제 심지어 거기에 황금열쇠까지 추가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하튼 대단한 사람이야, 나는.
게다가 사람에 대해서라면 더 그렇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존재들에 대해서도 나에게는 이미 갖추어져 있었고, 돌이켜보면 어떻게 나한테 이런 사람이 왔지 너무나 감사하다, 하게 되었다. 가족들이 그렇고 친구들이 그렇다. 게다가 새로 내 가까이 머물게 되는 사람들중에는 내 의지로 그렇게 만드는 관계들이 있지만,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사랑을 몽땅 끌어가는 이들도 있다. 나의 조카들.. 특히 이제 돌 지난 아가조카 때문에 내 안에 사랑이 넘실댄다. 가끔, 신이 특별히 나를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쯤하고.
엊그제였나, 퇴근 후 집에 갔는데 문 앞에 알라딘 박스 세 개가 있었고 ㅋㅋㅋㅋㅋ 어휴 귀찮아, 이러면서 그걸 다 가지고 들어와 포장을 뜯었다. 마침 분리수거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박스를 갖다 버리려고 얼른 뜯었네. 그리고 거기에선 이런 책들이 나왔다.
《가난 사파리》는 4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레이디 크레딧을 읽다가 사게 됐다. 아닌가,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읽다가 사게 됐나. 레이디 크레딧에 대해서라면 리뷰를 써두긴 했지만, 읽고나서야 비로소 성매매가 가능성일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치열한 가난에 놓인 적이 없고, 현재의 나로서는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성매매는 안할거야' 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러나 정말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당장 내 형편이 어렵다면, 당장 현금이 필요하다면, 그렇다면 나 역시 내 삶에 성매매를 들여놓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당장 돈이 필요한데 일단 지금 필요한 현금을 줄게, 라고 한다면 내가 거기서 '아니오'를 말할 수 있게 될까? 그럴만큼 단단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필수고 돈이 생활을 더 편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이 돈이 나를 더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돈이 없다면 불편할 것이고 마음은 자꾸 위축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약하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약한 것을 당연히 가져올텐데, 그럴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지금의 내가 과연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성매매와 가난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인용된 가난사파리가 궁금해졌다. 저 책탑 중에서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이 가난 사파리 이다.
《랫맨》은 얼마전 트위터에서 추천을 보고 바로 사게된건데, 분량도 얇은 만큼 얼른 읽어치우고 주말에 남동생에게 던져주려고 제일 먼저 들고 읽기 시작했다. 내가 본 추천에서는 반전이 대단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현재 절반을 아직 읽기 전, 나에게는 불쾌함만이 남아 있다.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물론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초등3학년 여자아이가 그 때 제법 또래보다 가슴이 볼록했다고 말할 때부터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게 왜 필요했을까. 그런 식의 묘사가. 그 아이가 그 나이에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어쩌면 그 묘사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읽다보면 그래서 그랬구나 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현재로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묘사로 보인다. 게다가 여자친구가 임신했는데 2년전부터 사실은 여자친구와 섹스할 때 여자친구 동생의 얼굴을 떠올렸다고 말하는 남주를 보는 것도 꼴보기 싫고. 이게 더 진행되면 오 그렇지만 대단하군!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불쾌하기 짝이 없어서, 이 기분 그대로 유지된다면 남동생에게 던져주지 않고 팔아버릴 것이다.
《해피엔딩보다 더》는 예전부터 사려고 계속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인데 애초에 왜 넣어두었는지는 까먹었고 오래 있었으니까 그냥 샀다..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은 독서괭 님의 리뷰 읽다가 충동적으로 바로 질러버렸다. 나란 인간.. 알라딘을 끊어랏!!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죽음에 대한 책이라 예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다. 나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두려움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좀 더 읽어두자고 늘 생각하는 터다. 저 책은 이미 샀고, 내 장바구니 안에는 또다른 죽음에 대한 책이 있다. 물론,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죽음에 대한 책도 더 있다. 늙어가는 것에 대한 책도 있고.
《은밀한 호황》은 성매매 관련 책이고 4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면서 더불어 읽고 싶어서 벼르던 책이었는데, 레이디 크레딧 읽고나서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지금 당장은 꼴도 보기 싫은 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니네 너무 싫어, 대한민국, 한남민국, 성매매공화국 너무 싫고 징그럽고 끔찍하다, 해서 지쳐버렸다..
《경멸》은 미미 님과 새파랑 님이 칭찬하셔서 진작에 담아두었던 책인데 이번에 샀다. 사고 나서 넘나 놀란게, 저렇게 겉표지 보고 되게 얇은 하드커버 책일거라고 짐작하다가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 와서... 아니, 두껍네? 하게 되었다. 흐미..
《킹덤》은.. 책박스에서 꺼내는 순간 가장 쎄했던 책. 나, 어쩐지 책장에 이 책이 이미 있을 것 같아. 그런 불길한 느낌이 들지만, 그러나 찾아보지는 않기로 했다. 있다면, 그러니까 두 권이라면.. 뭐 팔지, 뭐...
요즘 읽었던 책들중에는 신간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어쨌든 읽고 나서 소장하지 않아도 될 책들은 바로바로 중고 팔기로 등록하고 있다. 나는 처분이 목적이지 돈을 많이 남기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저렴하게 등록하고 있는데, 그래서 한 두권 팔리면 예치금이 적게 들어온다. 엊그제는 이민진의 <파친코> 1,2 권을 올려두었다. 현재 판매중이지 않은 상품이기 때문에 다른 중고판매자들이 비싸게 올려두었더라. 두 권 정가가 29,000원인데 4만원대로 올리고 막 그랬어. 그래서 이번 책은 나도 비싸게 올릴까, 잠깐 갈등했다. 물론 내가 비싸게 올린다는 것은 정가에 비슷한 걸 말하는거지 결코 정가를 초과하는 걸 생각해보진 않았다. 여튼 그래서 얼마를 할까 하다가, 정말 깨끗하게 본 최상의 상품이며 책 띠지도 그대로 다시 원위치 시켜둔 바, 두 권을 24,500 원 최상으로 등록해 두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등록하자마자 팔려버렸다. 세상에나...
제가, 너무 양심적인 판매자이죠? 후훗.
아무튼 나라는 인간 자체도 모자람 없이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참, 완성형이야.
언젠가 친구가 '너는 꼬맹이때부터 완성형 인간이었을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