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원래 읽던 책들을 끝내고 시작하려 했는데, 주말내내 책을 전혀 읽지 않아 도무지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거라.. 이달 안에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싶어 일단 다른 책들 제쳐두고 이 책을 꺼내들고 나왔다.
책의 제목이나 저자에서 내가 모르는 작가든 혹은 아는 작가든 나름 기대하는 내용이나 추측하는 내용이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이 책에 대해서 워낙 유명한 책이니만큼, '뚱뚱해도 아름답고 늙어도 아름답다' 라는 말을 하는 책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인걸로 여기지 말자'는 주장쪽이기를 바라고 있다. 너도 아름다워 나도 아름다워 쟤도 아름다워, 가 아닌 '아름다움' 자체를 무용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우리는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는 것에 대한 주장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름다움 자체가 딱히 높게 여겨지는 가치가 아니라면 우리는 아름다움 이란 세뇌에 있어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테니까. 거울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겼지만 이대로 아름다워~ 라고 하기 보다는 거울은 필요에 의해서만 보게 되는 걸 지향하는 거다. 아직 초반이라 그런 내용일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펼치고 제일 처음 나온 '해제'에서 나는 좀 당황스럽다.
페미니스트들과는 달리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는 한편으로, 진화론을 새롭게 해석하여 아득한 먼 옛날 인류의 암컷들이 수컷과 함께 수렵채집과 전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피메일리스트 femaleist라고 일컫는다. 페미니스트들은 생물학적 여자female 보다 사회학적 여성woman에 관심이 많다. 생물학에 기반한 피메일리스트의 새로운 여성관은 나오미 울프의 세 번째 물결 페미니즘에 동조하는 독자들에게는 ‘불편한 진실‘로 여겨질는지 모른다.
정녕 여자란 누구이며,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P10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페미니스트들은 그렇다면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건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건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차별로 연결 시키면 안된다는 거잖아? 거다 러더 는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이미 여성들이 사냥에 참여했었다고 밝힌 바 있지 않나? 생물학에 기반한 피메일리스트...의 여성관은 남녀가 능동적으로 수렵채집에 참여했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이게 진화론적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불편해할거라는 건가? 게다가 명색이 '해제'인데 정녕 여자는 누구이며,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끝맺음이라니. 나는 이 해제가 너무 마음에 안든다. 나는 해제를 다 읽고 좀 짜증이 나서 누가한건가 봤다. 낯선 이름이다. 게다가 생뚱맞게 지식융합연구소...는 또 뭐야? 그리고 저 연배 어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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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넣고 검색했는데 2020년에 이인식의 인터뷰가 실렸고 그 당시 기사에 75세라고 나온다. 게다가 저 약력을 보면 도대체 왜 여성주의 책에 이 사람의 해제를 갖다 넣은건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 이 책,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는 2016년에 번역되어 나온 책인데 도대체 왜 해제를 70세 올드한 한국 남자에게 맡긴거지? 전혀 관련 없는 분야의 사람에게 왜? 이미 이 책의 해제를 쓰지 않아도 넘나 한자리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구먼, 굳이 나오미 울프 책에 해제 하게 만든건 도대체 어떤 생각에서 비롯된거지? 무슨 의도지? 해제 끝에 붙어 있는 '더 읽어볼만한 관련 도서'를 보면 하하하하, 이인식의 저작이 있네. '성과학 탐사'라는 책이다. 이 책.. 때문에 이인식에게 해제를 부탁한건가?
나오미 울프의 책에 너무 안어울리는 사람이 해제를 썼다. 김영사..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개정판에 해제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길 바란다, 진짜. 도대체 왜 여성주의 책의 해제를 기득권 남성에게 쓰게 하는거야? 딱히 그사람이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고 뭔가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사람 같지도 않은데, 이 책에 해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다면, 해제를 누구에게 부탁하면 좋을까? 그러자 단번에 '이민경'의 이름이 떠올랐다.
해제 다시 써라, 김영사. 이민경에게 부탁해서 제대로 쓰자. 여성주의 책 제대로 읽고 제대로 쓰는 사람에게 부탁하자.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아름다움의 강요, 포르노의 강요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또 막아내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해제를 맡기자.
윤김지영이어도 좋겠다. 철학적으로 해제를 근사하게 써낼 분이다.
마흔 넘어 대학원에 다니면서 맹렬하게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래서 결국은 책까지 써낸 민혜영에게 맡겨도 좋을 것이다.
해제에는 불만을 갖고 시작했지만, 나오미 울프의 글은 좋다.
1991년에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실리콘 유방 보형물이 여성의 몸에 일상적으로 삽입되었고, 여성이 느닷없이 유방의 크기와 모양에 관해 걱정할 정도로 포르노가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수백 만 명이나 되는 여성이 한꺼번에 어떤 걱정(예를 들면 유방의 모양에 관한 걱정)을 하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 이상해 보인다면, 성적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생각해보라. 포르노가 패션에 새롭게 영향을 끼치자 수많은 여성이 갑자기 여기저기서 "완벽한 유방"을 보게 되었고, 그 결과 당연히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유방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아름다움의 신화의 초점이 다음 걱정거리로 넘어갈 때까지 지속되었다. -p.19
내가 처음 이 책을 썼을 때 여성의 성적 자의식에 막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포르노가 이제는 그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젊은 여성들이 포르노의 영향으로 섹스에서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보여야 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과 자신이 본래 가진 성 정체성에 관한 생각을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이것이 진보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p.20
누누이 말해왔지만, 현대의 포르노는 상상을 초월하게 여성 폭력적이며, 여성들이 그 포르노를 직접적으로 시청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자들이 시청하고 자신의 연인에게 포르노를 재연하길 요구하는 한,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포르노랜드를 살아간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무엇을 '정상'으로 규정해버리면 다른 것은 '비정상'이 되어버린다. 완벽한 유방 이라는 것이 세상에 보여지면 자연스레 그것과 다른 나의 유방은 '완벽하지 않은' 유방이 된다. 그러나 왜 유방이 완벽해야 하는가. 완벽한 유방이라는 것이 애초에 왜 보여졌는가. 그것은 어디에 나와서 어떤 식의 쓸모로 기능하는가.
여성의 아름다움은 곧 젊음과 다르지 않은 말인데, 그러므로 젊은 여성은 나이든 여성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된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아름다움은 칭송받고 수많은 시선을 끌어모으고, 그래서 순간 그녀가 권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혹은 본인이 느끼기에도 내 젊음과 아름다움-그리고 완벽한 유방!-은 나를 최고로 느끼게 해, 나는 이 세상 남자들을 굴복시켜!
그러나 정말 그런가?
영화 《리벤지》의 여자는 젊고 아름다운 내연녀다. 유부남인 남자친구는 아내를 속이고 그녀를 만나고 그녀는 그의 뿌듯한 트로피이다. 그의 친구들 역시 그녀를 갈망하듯 쳐다보며 그녀를 에워싼다. 그러나 그녀의 애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친구는 그녀를 강간한다. 칭송받는 아름다움, 젊음은 남자의 요구대로 되지 않는 순간 약한 신체에 불과하다. 아무 힘을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강간을 유도한 유혹하는 몸뚱아리가 된다.
나오미 울프는 말한다.
어느 시대에나 여성에게 아름답다고 하는 특성은 그 시대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여성의 행동을 상징할 뿐이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언제나 외모가 아니라 실은 행동을 처방하려고 했다. 여성끼리의 경쟁이 신화의 일부가 된 것도 여성을 서로 분열시키기 위해서였다. 여성이 젊고 처녀라면 "아름다운" 것은 경험이 부족하고 성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이 나이 들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의 힘이 강해지기 때문이고, 그래서 여성의 세대 간 연결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나이 든 여성은 젊은 여성을 두려워하고 젊은 여성은 나이 든 여성을 두려워해, 아름다움의 신화에서는 젊은 여성이나 나이 든 여성이나 수명이 짧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급히 여성의 정체성이 "아름다움"에 근거해야 하는 것은 그래야 우리가 계속 외부의 승인에 취약한 상태가 되어 삶에 아주 중요한 자부심이라는 민감한 기관이 비바람에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 P36
위 인용문을 읽으면서 쉼보르스카의 시가 생각났다.
추억 한 토막
한창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우리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네.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소녀.
아, 무척이나 아름다웠네.
그녀의 자태가 눈부시게 황홀했기에
우리는 무심히 휴가를 즐길 수만은 없었다네.
바시아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는 반사적으로 남편의 손을 꽉 잡았네.
순간 나는 생각했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리라.
-당분간 여기 오지 마.
며칠 동안 내내 비가 올 거래.
과부인 아그네슈카만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그 사랑스러운 소녀를 반겼다네.
가장 힘이 없는 상태를 가장 아름답다고 세뇌시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여자의 행동에 제약을 두는 것. 아름다움의 신화는 그렇게 기능한다. 먹는 걸 덜 먹고 비쩍 마르고 그렇게 힘이 없는 상태, 곧 쓰러질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남자의 보호를 필요로 하게 보이는 것,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더 눈에 띄기 위해 노출을 하고 화장을 하고 그래서 더 화려하게 보이는 것. 그건 그 여성의 권력이 될 수 없다. 권력인 듯 보이지만 강한 육체 앞에 힘없이 바스라진다. 아직 이 책의 초반을 몇 장 읽었을 뿐이지만, 우리는 약한 신체를 아름다움과 같은 말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약한게 아름다운 게 아니고 하늘거리는게 아름다운 게 아니고, 무엇보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인 것도 아니다.
자, 나오미 울프를 계속 읽어보겠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원래 여성의 영역을 구성하는 요소인 양 가장하고 나타난, 다른 어떤 것들보다 여성을 가두기에 좋은 사회적 허구 가운데 하나였다.-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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