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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서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긴 세 시간 동안 읽었다. 

아이러니하지, 꾸밈노동에 대해서도 말하는 책을 꾸밈 전문가에게 시간과 몸을 맡기고 내내 읽었다는 게. 


자기 자신에 대한 돌봄, 일하는 여성의 시간/꾸밈노동/업무태도/결혼과육아/성차별에 대한 모든 고충들, 다이어트와 몸에 대한 강박, 여성성에 대한 강요와 정작 여성성이 주인의식을 갖고 발휘되자 나타나는 혐오 등이 섞여서 한꺼번에 디밀어진다. 

일본 사회의 여성에 대한 단면이 잘려져 나와 수없이 겹쳐진 층들이 들이밀어지는 듯한 느낌. 


소설의 제재는 가지이 마나코가 과연 남자들을 죽였는가? 가지이 마나코는 어떤 여자인가? 이 부분인데 정작 소설의 시작은 리카가 친구 레이코를 만나러 가면서부터다. 왜 이런 시작인가 처음에는 의아해하면서 읽었는데, 책을 덮고나니 너무나 잘 이해되는 첫장면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다. 


가지이 마나코를 취재하면서부터 소설은 본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고, 나는 과연 이 취재가 대체 어디로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하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소설은 딴 길로 샌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른 일면들이 저마다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인물들의 다른 일면을 등장시키는 작가의 솜씨가 능숙해서 가지이 마나코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런데도 궁금해서 계속 넘기게 된다. 이를테면 시노이 요시노리와 얽히는 장면 같은 거. 


가지이 마나코는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애인에게 대접해보라고 하는데, 세상에, 요리를 만들 고민에 골몰하는 리카가 만나는 것은 시노이 요시노리인 것이다. 이 전, 시노이 요시노리가 처음 등장할 때 리카는 화장실에서 화장도 지우고, 머리도 불끈 묶고 일부러 여성적인 면모를 지우겠다는 결의를 드러내면서 만나러 간단 말이다. 하지만 리카가 그렇게 여자로서 시노이를 만나는 게 아니라고 외모로서 주장을 하면 할수록, 리카가 시노이 요시노리와 만날 때의 성적인 긴장감이 드높아지는 게 느껴진다. 리카가 성적인 긴장감을 느끼고 있으니 외모를 의식하는 거 아니겠는가? 시노이 요시노리가 리카를 성적으로 대한 적은 전혀 없는 정보원이지만, 리카가 그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저 편안한 취재원으로만 생각한다면 대체 왜 외모를 의식하겠는가? 

그런데 애인에게 대접할 요리를 만들어야하는 마당에 만나러 가는 게 시노이인 것이다. 

하, 별 거 아닌 장면인데 읽는 내가 이렇게 긴장하면서 책장을 넘기는지. 

그리고 이렇게 만났는데, 시노이 요시노리의 전혀 몰랐던 아내와 딸에 대한 과거가 언뜻 드러나면서, 리카는 오븐이 있는 시노이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와... 나는 침을 삼키면서 본 것이다. 그래서? 그럼 만든 케이크는 시노이에게 대접하는거야? 그런 거야? 


뭐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가지이 마나코를 소재로 대화하다가 어떤 부분에 이르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날카롭게 튀는 못 같은 레이코의 반응이 정말 이해가 안되던 것도, 읽어나가다보면 레이코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된다. 알게 되자마자 곧 레이코의 폭주가 시작되어버리고, 아, 정말 난 레이코가 이해되면서도 잘 모르겠다 싶을 때 레이코의 과거에 대한 장면이 시작되는데, 그 부분에서 레이코에 대한 어이없는 마음도 스륵 녹아버렸다. 

문장은 그냥 단순하게 리카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 거였지만, 

그 부분이 눈에 들어왔을 때 먼저 앞에서 

리카는 여학교의 잘생긴 아이돌 같은 존재였고, 레이코는 리카를 정말 좋아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레이코는 리카를 동경하는 존재처럼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았고, 리카를 위해 주먹밥 도시락까지 싸서 가져왔고... 

그리고, 리카와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고.

그 부분에서 그만 레이코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폭주했지. 

레이코의 폭주가 시작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리카의 마음처럼, 나 역시 소설이 너무 레이코처럼 폭주하는 건 아닌가 한숨을 쉬었지만, 아무튼, 책장을 덮고 난 후의 기분은 몹시 만족스럽다. 

리카 같은 방식의 승리도 있는 거야, 깨닫게 되는. 

리카는 구치소에 갇혀 있는 가지이 마나코를 만나러 가면서 내내 가지이 마나코가 원하는 것을 대신 먹고, 하고, 느낌을 자신만의 말로 말해주러 갔었으니까, 이런 식의 승리도 잘 어울린다. 

가지이 마나코에게 한 방 얻어맞은 리카가 다시 그 한 방을 돌려주지는 못하지만 뭐 어때, 리카는 정말 많은 걸 얻었다. 넘어져도 그냥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넘어진 장소에서 뭔가를 주워서 일어난다. 

이제 리카는 예전과는 다른 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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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을 왜 담았는지 요새 기억을 못하는 일이 많아져서, 담은 이유를 적어둬야겠다!

하이브 마인드. 칼 뉴포트를 내가 미처 몰랐는데 인상깊게 읽었던 열정의 배신이 이 작가 책이었더라구! 

그 후로 칼 뉴포트를 딥 워크, 디지털 미니멀리즘까지 따라가면서 읽으면서 스크린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는 것, 깊이 집중하는 딥워크를 훈련하는 방식에 대해 많이 배웠다. 집중의 생산성 역시 훈련으로 길러내야 하는 항목인 것이다. 

이후 나도 따라서 딥워크를 훈련하고 있었는데, 이게 좀 쉽지 않다.

회사에서의 생산성과 집필 생산성에 대해 각각 나누어 생산성을 높이려 애쓰는 중이다. 이러려면 다른 시간들 역시 어느 정도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컨트롤해야 할 필요가 있다. 10분 후 열리는 게임 속 던전에 들어가려고 알람을 맞춰놓고 10분 남았다고 확 집중력을 높여서 일을 한 다음, 10분 후 딱 앉아서 게임을 하고, 딱 던전 플레이가 끝나자마자 바로 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드물잖아. 왜 예가 게임이냐면... 요새 내 장애물이 게임이라서 그러하다. 

휴. 

하이브 마인드도 회사에서의 업무 컨트롤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올에이 우등생들의 공부습관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울트라 러닝은 칼 뉴포트가 언급한 책이라서 담아두었다. 

내가 이걸 샀나 안 샀나 기억이 잘 안 나서 책장을 뒤져보아야 한다.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음, 도움이 되겠어 확신하고 사려고 했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말이야. 


버터는 책 소개만으로 홀라당 반해서 그만 읽으려고 담아두었고. 















리커버링은 캐롤라인 냅과 더불어 언급되기에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시그리드 누네즈는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쓴 우리가 사는 방식에 대한 하이드 님의 리뷰를 읽고 궁금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런데, 출간일 순으로 정렬을 해보니 어떻게 지내요가 더 신간인데 이것도 만만찮게 재미있어보여서 담았다. 


잔류인구는 어둠의 속도를 쓴 엘리자베스 문의 신간이니까 사야지! 밀리의 서재에서 광고할 때부터 너무너무 사고 싶었는데, 나는 책을 정기구독하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아서 언젠가 출간이 되겠거니 하고 기다렸다. 

빛이 드는 법은 루이즈 페니 여사님의 신간이니까 당연히 사야하구.

영혼 통행증은 미미 여사님 신간이니까 사야겠지!!
















서미애, 송시우, 정해연의 미스터리 소설집 단 하나의 이름도 잊히지 않게는 지인의 리뷰를 보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서미애 작가, 송시우 작가에 대해서는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정해연 작가는 몰랐다. 그런데 리뷰를 보니 너무 기대되어서... 담았지. 

단풍나무 저택의 유산은 제목이 아주 고딕풍인데 내용도 고딕 풍의 퀴어로맨스라고 해서 기대가 되지 뭔가.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전쟁. 

이건 장강명 작가 에세이 책 한 번 써봅시다에서 언급되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책 한번 써봅시다는 내가 리뷰를 보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었고, 아주 재미있었다. 서두는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으나 이후 하루키의 에세이가 소설가라는 초점에 맞추어 전개되었다면, 책 한번 써봅시다는 책을 한 번도 완성시켜보지 않은 사람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방법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좀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쓰여진 느낌이 든다. 


다시 보통 사람들의 전쟁으로 돌아가면, 원서는 2018년에, 한국에는 2019년에 출간된 책인데 논픽션 파트에서 언급된 책이다. 한국에서도 곳곳에서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중이고, cgv의 인원 감축, 주유소의 셀프 주유화, 직원이 없는 아이스크림 가게나 인형 가게 등등을 현실에서 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체계적으로 조사한 보고서라니 꼭 읽어봐야할 것 같다. 이런 논픽션들 아주 좋아해. 

인터뷰집도 좋아한다. 

오리지널 마인드와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은 인터뷰집이고 트위터나 리뷰에서 등장하는 인용들이 마음에 들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 그런데 여기 세 권은 전부 이북이 있었네!!!

이북으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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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사 일이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한동안 읽지 못했다. 마지막 주에 허겁지겁 질주하듯이 읽어서 간신히 완독!


다양한 저술들을 인용하면서 여자가 어떻게 여자로서 만들어지는지를 사회문화적으로, 여자의 성장과정을 전부 다루는 저서라, 보봐르는 정말이지 천재인 것 같다. 여자가 '인간의 비참함을 자기 자신의 죄악처럼 느끼지도, 속죄를 구하지도 않아서'(p.965) 미지의 것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완전한 창조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는  이 고찰은 너무나 유명해서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도 알고 있었지만, 저서 안에서 맥락을 거치며 읽으니 너무 대단하다. 


신화를 다룬 파트가 읽기 힘들어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으나 제 2권으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었다. 


제2의 성 2권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애써 기억 속에 밀쳐두었던 옛 일들을 무수하게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에, 근처 공사장의 인부들이 학교 교문 앞에 줄지어 앉아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던 우리들을 가리켜서 평가질하던 일들이 있었다. 일하느라 흙먼지와 오물이 잔뜩 묻고 때가 잔뜩 낀 손톱으로 담배를 피우며 가래를 수시로 뱉으면서, 여자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쟤는 다리가 굵고 쟤는 가슴이 크고 쟤는 그래서 몇 점이고 쟤는 걸음걸이가 단정치 못하고...


여자아이의 사춘기가 유별난 것은 흔한 속설로 숱하게 이야기되고, 원래 여자아이란 그런 것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보봐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 자기가 자신의 주체로서 온전히 뛰어다니던 아이가 자라나면서,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 마음에 들도록 해야하고 자기를 객체로 만들어야한다고.(p.403)' 가르침을 받는데 사춘기가 어떻게 유별나지 않을 수 있을까? 


한쪽에서는 어린아이 취급을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마치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는 양 신체와 말투와 행동거지 모두를 조각조각내어 평가질을 해대는데 아무리 다른 쪽에서 인격적으로 대우한다 할지라도 언제 어떻게 자칭 미식가의 앞에 올려진 음식인 양 처우가 바뀔지 모르는 신세에 불과하다는 걸 절절하게 깨닫는 시기 아닌가.


'자기자신을 일자로 설정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이 타자로서 보인다는 것은 기묘한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 수업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자기를 여자로서 파악하는 여자아이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p.425) 


보봐르가 보기에는 여자가 쉽게 우는 것조차도 교육 탓이다. 

'여자는 생리적으로 교감 신경계를 통제하는 힘이 남자보다 약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육이 그녀에게 되는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쳤다. ... 풍습이 남자들에게 우는 것을 금지한 이래로 남자들은 울지 않게 되었다. 여자는 항상 세상에 대해 실패의 태도를 취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는 한 번도 세상을 진정으로 떠맡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여자가 세상의 적의와 자기 운명의 부당함을 새롭게 자각하는 데는 장애물 하나로 충분하다. 그 때 그녀는 가장 믿을만한 피난처인 자기 자신에게로 서둘러 도망간다.' (p.831)


각 부들의 제목은 내용을 읽는 내내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준다. 

4부 '해방을 향해'의 첫번째 장이 '독립한 여자'인 건 얼마나 또렷한 방향성인지. 

'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오직 나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 그녀는 록펠러 같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립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투표권과 직업을 아울러 갖는다고 해서 완전한 해방이라고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노동은 자유가 아니다. ... 사회구조는 여성 조건의 진보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남자들에게 항상 속해있던 이 세계는 아직도 그들이 각인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p.928) 


 이 대목에서 달라 코스따의 '페미니즘의 투쟁'을 떠올린 것은 직전 달의 페미니즘 같이 읽기 대상 도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달라 코스따는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다가 필요성을 느껴서 여성 노동자들만의 단체를 따로 조직했었다는 대목을 인상깊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의 투쟁은 내가 끝까지 완독을 못했는데 아직도 못한 상태네, 다시 읽고 리뷰를 써야지. 


'남자가 누리는 그리고 유년기부터 느껴 온 특권은 인간이라는 소명과 남자라는 운명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p.930)

'세계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세계의 죄를 자기의 죄로 여기며 세계의 진보를 자랑스럽게 여기기 위해서는 특권자 계급에 속해야만 한다. 세계를 변화시키고 생각하고 드러냄으로써 세계를 정당화하는 것은 거기에서 명령권을 장악하고 있는 특권자들에게만 속한다. ... 지금까지 인간이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은 여자 속에서가 아니라 남자 속에서다.' (p.965) 


그래서 결국 보봐르가 해방을 외치며 목표로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성의 차이를 넘어서 자기의 자유로운 실존의 험난한 영광 속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여자는 자기의 역사, 문제, 의구심, 희망을 인류의 그것과 융합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여자는 자기의 삶과 작품에서 인격 뿐만 아니라 현실 전체를 드러내보이려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한 창조자는 될 수 없을 것이다.'(p.965)


제 2의 성을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다락방님 덕분에 힘내서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다! 

다음 주에는 익숙한 타자를 들춰보고, 그 다음 주에는 11월 대상 도서를 읽어야지. 

보봐르가 인용했던 무수한 텍스트들 가운데 스탕달과 소피아 톨스토이의 일기는 읽어보고 싶은데 소피아 톨스토이의 일기는 국내에 출간 준비했었다는 소식만 찾아낼 수 있었고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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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0-31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10월의 마지막말 끝내셨네요.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이 책은 읽어두는 게 좋은 책이니만큼 함께 읽을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아요. 두꺼운 책이라 혼자서는 좀처럼 진도가 안나가는데 읽어보면 또 정말 좋은 책이잖아요. 고생하셨습니다!!

ladygrey 2021-11-01 10:40   좋아요 0 | URL
마지막 날 안에 끝내려고 노력했는데 끝내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고전은 정말 읽을 가치가 충분했어요! 많은 걸 얻는 독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이제 내게 남은 위시 장미 이야기를 하다가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년에 올 장미까지 생각하면 이제 나는 엔간한 위시 장미는 손에 넣은 셈인데, 아직 구해야하는 것이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다.

프랑스 델바 사에서 내놓은 이 장미는 정확히는 수브니어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이름인데 노란 장미에 대한 내 불호를 깨어버린 미모를 자랑한다.

생각난 김에 마르셀 프루스트를 읽어볼까 검색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옛 기억으로는 첫 권이 참 지루했던 기억이 있고 2권 후에 읽다가 중단했던 듯하다.
그 때는 내가 20대 초반이었고 도서관에 처박혀서 공강시간마다 읽으러 가면 아무도 손대지 않아서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언 이십년 가까이 지나 다시 잡아본 이 책은…
왜 지루하다고 느꼈는지 의문일 정도로 취향을 꿰뚫는 거였다!
뭐야 이 무수한 개인적인 회상과 상상과 생각의 조각들이라니 하염없이 남의 일상을 읽는 걸 좋아하는 내 취향을 저격하는 소설인데 대체 왜 지루하다고 느꼈었을까?
20대의 나는 지금보다 tmi를 좋아하지 않았었나?

다른 사람의 정밀하게 다듬어진 트위터를 보는 기분으로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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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와 밑줄긋기 사이에 문단을 넣고 싶은데 그런 기능은 없는 모양이다. 















가족 안에서 여성의 수동성은 그 자체로 '생산적'이다. 

... 생략

둘째, 자율성을 완전히 부정당하기 때문에 좌절을 느끼고, 이 좌절을 언제나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연속적인 욕구, 즉 소비 비슷한 것으로 승화해야만 하므로, 여성은 생산적인 존재가 된다. 소비는 여성이 가사노동을 할 때 갖는 강박적인 완벽주의에 정확히 상응한다.

p.47


이 부분이 좀 어렵다. 자율성을 완전히 부정당하기 때문이라는 구절은 노동력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사회자원- 혹은 노동력이기 때문이지만 노동력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읽었다. 하지만 소비 부분이 이해가 잘 안된다. 소비가 어떻게 집안일에서의 완벽주의(페이지를 찾기 어렵지만, 앞에서 굳이 그렇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집안일에서의 완벽주의를 취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와 상응하는 것일까?

가사노동과 소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이미 다뤄진 이론이 있는데 내가 그 이론을 전혀 모르는 거라는 느낌이 든다. 


집 안에 뭐가 있어야하는지 여성들에게 말하는 것은 분명 우리 일이 아니다. 아무도 다른 이의 욕구를 규정할 순 없다. 우리는 투쟁을 조직하고, 그 투쟁으로 이런 승화가 불필요해지는 데 관심이 있다. p.47-48


그리고 다음 단락에서...

성적 수동성이 바로 튀어나와서, 이 부분 역시 조금 혼란스러움. 

가사 노동과 성적 수동성이 연결되는 부분이... 


일단 이 부분은 제껴놓고. 

계속 읽다보니 저 소비와 가사노동의 상응관계는 아마도 여성이 가정을 소비의 중심지로 만든다는 공격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여성은 노동력을 재생산해낼 뿐 그 자신이 노동력이 아닌데도 노동력에게 더 많은 소비를 해야하는 자본을 벌어오라고 괴롭힌다는 관념에 대한 반론인 것 같다. 혹은, 여성은 검소해야한다는 압박에 대한 반론이거나. 


가족 안에서 여성이 맡은 역할의 세 번째 측면은, 여성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억압하는 인물,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규율을 강조하는 사람이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앞서 논의했듯이 여성의 인격이 특수한 유행의 저해를 받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편이라는 폭압, 가정이라는 폭압, 자신의 전 존재가 '영웅적인 어머니와 행복한 아내'라는 이상형을 거부하는데도 그런 이상형이 되고자 고군분투해야하는 폭압 아래에서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p53


아, 나 이 부분 너무 좋았는데-. 

여기 읽으니까 뭐가 떠올랐냐면, 아내에게는 비밀로 아이를 어린이집(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아이와 둘이서 놀러가면서 아내에게 비밀을 만드는 남편 이야기였다. 그리고,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냐며 아내를 힐난하는 남편들의 목소리. 성인 아들을 하나 더 키운다고 한탄하는 아내들의 목소리. 저 폭압을 말하는 문장에 얼마나 많은 몰아세움이 담겨있는지, 읽고 또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썼는지 감탄하고 공감하면서. 


산아 제한 연구가 이토록 더디게 진행되고, 거의 전 세계에서 임신 중절이 금지되고 결국 '치료'목적으로만 허락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이것들을 요구하는 것은 안이한 개혁주의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 자본주의적으로 관리되면 거듭해서 계급 차별, 특히 여성 차별을 만들어낸다. p.54


 이 부분을 읽자마자 얼마 전에 읽은 멜린다 게이츠의 책이 바로 떠올랐다. 멜린다 게이츠는 여성 생존이 산아 제한, 피임, 임신 중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자세한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설명한다. 


연결할 생각이 전혀 없이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노동계급가족은 더욱 무너뜨리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노동계급가족이 노동자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자로서, 그리고 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계급가족은 자본을 지탱하고 있기도 하다. 노동계급가족은 계급의 유지 및 생존을 좌우하지만, 이때 계급의 유지 및 생존은 계급 자체에 반하여 여성을 희생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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