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을 포함한 모든 주간지를 읽을 때는 뒤에서부터 읽는다. 뒷부분의 기사들이 사실 나에게는 더 흥미로운 기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짧기도 하고. 시사인도 신간 소개는 뒷부분에 실려있다. 그러다보면 앞부분을 안읽을 때가 많은데, 그런데 나는 왜 시사인을 읽을까? 하하하하.
여튼 이번호의 <배순탁의 音란서생>에 익숙한 사람의 사진이 실려있길래 읽었다. 이 코너는 안읽고 넘길 때도 종종있는데, 아니 가운데에 떡하니 데이비드 포스터가 있는게 아닌가.
데이비드 포스터를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그가 만든 곡들이 다 너무 좋아서 그의 앨범 몇 개도 가지고 있다. 어릴때 산거라 다 카셋트 테이프로 가지고 있었는데, 아 생각해보니 나 테이프 다 처분했지. 그렇다면 시디 몇 개는 남아 있을까? 아무튼 너무 좋아해서 편지도 쓰려고 했었는데 썼는지 안썼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썼나? 오래전의 일이라...
그가 만드는 곡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그가 대중이 무얼 좋아하는지를 잘 안다는건데, 그걸 아는 것에 있어서는 정말 천재적인 사람이란 생각을 늘 해왔다. 대단해,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나는 그가 만든 곡들중 <and when she danced>를 정말 좋아한다.
올리비아 뉴튼 존과 함께 부른 <the best of me>도 정말 정말 좋아한다.
크- 대단한 사람이지. 천재적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이렇게 많이 만들다니. 진짜 대단해... 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런 데이비드 포스터를 똭- 시사인에서 만난거다. 크- 그런데 읽다보니 배순탁이 말하기를, 아니, 넷플릭스에서 데이비드 포스터 다큐멘터리를 봤다는 게 아닌가. 뭐라고? 데이비드 포스터 다큐가 있어? 오케이 접수. 나는 당장 어제 점심부터 데이비드 포스터의 다큐를 보기 시작했다. 크-
예상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천재였다. 절대음감이었다. 결코 부자가 아닌 그의 부모는 그를 위해 노후자금까지 투자한다. 그에겐 여자형제만 여섯인데 엄마는 어릴때부터 여자형제들에겐 아침으로 토스트만 구워줬다 하고 데이비드 포스터에게는 베이컨과 에그를 줬단다.. 아니 캐나다.. 도 그래? 대환장. 여튼 그러면서 데이비드 포스터가 어떻게 음악 공부를 하고(그는 모든 악기를 다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얼 하고 싶었는지, 어떻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눈에 띄게 됐는지 등에 대해 보게 됐고 그리고 그가 시카고를 만나 인기 떨어지던 그들을 정상에 올려두었지만 그들과 사이가 멀어진 일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크. 시카고. 시카고 역시 내가 학창시절 정말 좋아했던 노래 <hard to say i'm sorry>를 부르지 않았던가. 이 노래는 아주 오랜 후에 남동생이 직장에 다니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전화를 걸어와서 물어본 노래였다. 누나, 나 지금 점심먹으면서 동료들하고 얘기했는데 이 노래 제목이 생각이 안나서 말을 못했어. 이게 뭐였지? 하고는 따따 따다다다 따다다~ 하길래 내가 시카고. 하드 투 세이 아 임 쏘리! 하기도 했던 노래다. 나는 이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이 앨범도 샀었는데 그 앨범에 함께 실린 <you're the inspiration>도 좋아한다.
이 노래 가사가 어떤줄 아는가? 에브리바디는 떨어져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녀가 말했어요, 우리가 서로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휴일은 필요한거예요. 우리가 서로로부터. 이런 가사다. 크-
시카고는 밴드였고 이 밴드는 그들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데이비드 포스터 덕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음반사의 초청도 받고 여태 활동할 수 있게도 되었지만, 그러나 보컬인 피터 세테라 말고는 사실 멤버들이 그걸 원한건 아니었다. 각자 자신이 맡았던 악기를 연주해서 자신들의 음악을 하길 바랐는데 데이비드 포스터가 와서 자신들을 일등 시켜주었지만 어떤 악기를 연주할 필요가 없게 하고 노래도 자기가 만들어버리는거다. 데이비드 포스터의 제작은 그들을 분명 정상의 자리에 서게 해주었지만, 그렇지만 그들이 그들의 노래를 하지 못하게 되고 보컬과 뜻이 안맞아 보컬이 탈퇴하게 되고.. 이런 일들에 대해서 시카고 멤버들은 여전히 데이비드 포스터에게 화를 내고 있는것 같다. 그렇게나 히트앨범을 내게 해줫는데 감사해야지!라는 시각은 외부의 시각이다. 내가 일등을 하든 억대연봉을 받든, 그런데 내가 원한게 그게 아니라면 나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쉬울 수도 있다. 그래, 이 일로 내가 돈을 많이 벌었지, 생활도 여유로워졌지, 인기도 얻었지, 그런데 내가 원한건 그런게 아니었어.. 할수도 있는거다. 돈을 많이 벌면 좋지 왜그래? 라는 물음은 묻는자의 기준이다.
식당을 나서면서는 음악앱으로 들어가서 시카고의 노래를 들었다. 어릴 적에 가사를 외운 덕분에 대부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더라. 따라부르면서 신났다. 아직도 가사 대부분이 기억나다니, 역시 공부는 어릴 때 했어야 했어, 필요한 모든 지식은 어릴 때 습득했어야 한다... 라고 생각하면서 아직도 가사 기억하는 나 넘나 좋아 멋져. 아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지, 나는 내가 진짜 너무 좋다.. 막 이런 생각을 했단 말야?
그리고 짬을 내어 뒷부분을 또 보기 시작한다. 그의 사생활이 나온다. 다큐의 제목이 <오프 더 레코드>인만큼 나는 그간 알지 못했던 그의 사생활. 그가 다섯번이나 결혼했다는 사실이, 자식이 열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새롭고 놀랍다. 뭐라고? 게다가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 바람 피우다 집을 떠나는 일을 반복한다. 자신은 갈등을 견디지 못해 자꾸 도망치는 사람이란다. 와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그의 첫째 딸이자 외동딸은 방학 때 아버지의 집에 놀러갔는데 우리는 이렇게 가난한데 아버지의 말리부 호화저택을 보고 너무 당황했었다는 기억을 털어놓는다. 양육비는 주었다고 했는데, 와, 어떻게 이렇게나 부자인 사람이 자식들의 상황을 나몰라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자기가 부자면 자기 자식들도 부자로 살게 했어야 하는거 아닌가. 자기는 호화주택에 살면서 가난하게 사는 자기의 전아내와 아이를 그렇게 둘 수 있다니.. 데이비드 포스터는 자신의 자식들이 모두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있을거라고, 자기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얘기한다. 뭐라고 이놈아? 그러면서 계속 자식을 두고 떠나고 자식을 두고 떠나고를 반복하다니.. 와 너무 개충격인것. 아내가 있고 자식도 있는데 새로운 여자랑 사랑에 빠지면 자꾸 거기로 가, 그러다 같은 일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와 ㅋㅋㅋㅋㅋㅋㅋㅋ 다섯살, 네 살, 칠개월의 삼남매를 두고 떠난 적도 있다. 와 너무 잡스러. 그 어린 아이들 어떻게 아내 혼자 감당하라고.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가지고. 이것만으로도 보다가 여동생한테 막 빡쳐서 얘기했는데, 딥빡은 그 뒤에 있었다. 그의 모든 딸들이 인터뷰 했지만, 인터뷰하지 않은 딸이 있었으니, 그 딸은 그가 무려 스무살에 여자친구를 임신시켜 낳아 입양 보낸 딸이란다. 그 딸이 서른살 되어서 아버지를 찾아왔다고. 와 시발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넘나 대충격. 여동생한테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고 했더니 여동생이 '나도 거기까지 보다 짜증나서 껐어' 라고 하더라. 휴... 난 잘 모르겠다. 스무살에 그런 일이 잇었는데 또 결혼하고또 아이 낳고 또 버리고 가고 또 결혼하고 또 아이낳고 또 버리고 가고....
그런데 내가 이 다큐를 보면서 놀랐던 건, 인터뷰한 딸들이 모두 아버지에게 화가 나있는게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한다는거다. 아니,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다는 거다. 아버지가 혼자 부자인 걸 보고 놀란 딸조차도, 아버지가 다정하게 나를 한 번만 바라봐주기만 해도 너무 좋아요, 라고 한다. 아버지는 우리 얘기를 잘 들어주고, 우리가 전화를 하면 지금도 절대 그냥 넘기는 법이 없이 무슨 일을 하다가도 다 받아줘요, 라고 하면 또 옆에 다른 딸이 맞아맞아, 우리 전화 다 받아줘요, 이러면서 그것에 감사한다. 나는 어이가 대박 상실해버려... 아니 여러분.. 왜 아버지에게는 전화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나요? 아버지 없는 동안 여러분을 먹이고 살렸을, 그러느라 고생했을 여러분의 어머니는요... 내가 건 전화를 받아주는 게 아니라 늘 곁에 있던 어머니는요... 그런 어머니가 있는데 왜 전화 하면 항상 받아주는 아버지... 그만두자. 와... 나도 넘나 대충격 받아가지고....
데이비드 포스터는 천재적인 음악 프로듀서이다. 무명의 가수를 발굴해 내 키워 그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친구이자 은인이기도 하다. 캐나다에 숨겨져있던 셀린 디온을 스타로 만든 것도 데이비드 이고 마이클 부블레 역시 마찬가지. 캐서린 맥피는 자신은 언제나 데이비드 포스터의 집 문을 노크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를 알고 지내는게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무대에서는 그에게 감사하며, 그는 언제나 나의 좋은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그런데 아버지로서의 그는 남편으로서의 그는 어쩌면 그렇게나 엉망 진창일까. 휴.. 내 안에 생긴 이 복잡한 마음이 힘들다.
아, 딸들 중에 한 명은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을 한다.
"나는 아버지의 욕망에 희생당한 피해자예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거기서 보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음악들이 나오는지를 보려고. 그러다가 그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진출했다는 걸 알게됐는데, 그는 항상 자신이 혼자 통제하던 사람이어서 협업해야 하는 뮤지컬에 적응하는게 힘들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나에게 앞으로 남은 여름이 몇 번일까요? 나는 68살이에요. 열다섯번쯤 남았을까요? 나는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을거에요."
이 대사가 나를 너무 후려쳤다. 나는 여름을 너무 좋아하고, 여름에 아무리 땀을 많이 흘려도 나는 이런 여름이 너무 좋아!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매해 여름이 갈 때마다 아쉬워하지만, 그러면서도 여름은 또 오니까, 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곤 했던 거다. 그런데 데이비드 포스터의 저 말을 들으니, 아, 맞네, 나에게도 여름은 몇 번이 남은걸까, 생각해보게 되는거다. 아 영생 넘나 간절한 것. 내가 영생해야 여름을 계속 만나는데... 내가 이 나라에 있으면 여름을 만나는 횟수는 제한되지만, 그렇다면 여름이 있는 곳을 향해 나를 움직이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된다. 그러니 우울해하지 말자. 그렇지만 저 말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에게 앞으로 남은 여름은 몇 번일까.. 와... 너무 인상적인 대사였다. 물론, 68세인 지금도 성공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그에게 음악과 성공은 우선순위였지만 자식과 아내는 그 과정에서 있기도 하다 없기도 하는, 그런 존재였는가보다. 그렇다면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왜.. 휴.. 아직 삼십분 정도 남아있고 나는 다 볼 참이다.
어제는 퇴근 무렵,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초에 있다고 혹시 저녁 같이 먹을 수 있냐길래 오케이 콜! 하고는 친구를 만났다. 순댓국을 시켜두고 각자 소주를 한 병씩 마시면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둘다 수다가 너무 고팠던 터라 쉼없이 얘기했다. 와 오랜만에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우리는 주제를 막 바꿔가면서 얘기했는데, 어쩌다가 정희진 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그러다가 내가 문득 '정희진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대화가 되는게 너무 좋아 ㅠㅠ' 라고 했다. 그냥 내가 정희진을 얘기하면 상대는 그냥 알기 때문에 내가 정희진이 누구냐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이런 대화상대. 너무 오랜만이야. 흑흑 ㅠㅠ 너무 친구 안만나고 살았네 ㅠㅠ 코로나 확진자 어마어마해서 ㅠㅠ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남동생으로부터 톡이 왔다. 버트런트 러셀의 책을 읽어보았냐는 거였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읽어봤어? 무슨책인진 알아?
-러셀 좋아해. 내가 그거 읽고 러셀 중의 최고는 버트런트 러셀 이런 평 썼을걸.
-그랬군. 신해철이 강추햇던 책이었어.
-2011년에 읽었네.
-단순히 연애소설만 읽는게 아니었구나. 가십만 읽는게 아니었어.
-장난하냐 나 폭 졸라 넓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면서 대화를 하다가 검색해보니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해서는 좀 어렵다고 평 써놨고,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 '당신은 러셀 중의 킹. 나는 러셀 크로보다 버트런트 러셀이 훨씬 좋다' 이렇게 써놨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런 평은 2012년에 달았다. 진짜 꼬꼬마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애긔애긔하다. (닥쳐!)
나는 남동생에게 나 러셀 두 권 읽었다, 기독교와 게으름, 그리고 행복에 대한 책도 있다, 니 누나 천재인거 기억해라, 내가 쓴 책에도 러셀 얘기 있다, 아 내 똑똑함에 너무 취한다, 자랑스러워... 라고 연달아 톡을 보냈더니 남동생은 답했다.
-어쩌다 또 하나 읽었네. 하나 얻어걸렸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동생은 집에 기독교 책 있냐고 물었다. 나는 판 기억은 없지만 나의 이 기억력은 믿을게 못되는 터라, 아마 있을걸? 이라고 말했다. 내 기억에 러셀 책이 집에 세권 있을 것이었다. 남동생은 토욜에 올텐데 그 때 봐서 빌려가든지 하겠다고 했다. 응 그래, 라고 답하곤 이렇게 덧붙였다.
-니가 뭘 얘기해도 내가 다 알아서 넘나 행복하지? 이거 행복이야. 남들은 쉽게 가질 수 없어. 느껴. 즐겨.
남동생은 어이없어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집에 가서는 기독교 책이 있나 확인을 해보기 위해 책장 앞에 섰다. 내 기억에 의하면 버트런트 러셀의 책이 세 권일 것이었고, 기독교, 게으름, 행복.. 이 있을 거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꽂혀 있을것이었다.
그런데 집에 가서 확인해보니 ㅋㅋㅋㅋㅋㅋㅋㅋ 세 권은 맞는데, 이렇게 있는게 아니었다.
아니 ㅋㅋㅋㅋㅋㅋㅋ게으름이 없고 <인기없는 에세이>가 있네?
아!
그러다 생각났다.
내 책을 읽고난 후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어보고 싶어하는 칠봉이에게, 나는 그 오래전, 내가 읽었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보낸 것이었다. 아... 칠봉아, 그 책 갖고 있니? 아니면 이제는 다른 여자랑 살면서 내가 준 책들 다 처분했니?
추억이란 놀랍다. 비움을 보고도 누군가 떠오른다니.
오래전에, 그러니까 칠봉이와 그만 만나기로 했다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주변이 온통 나를 떠오르게 하는 것들로 가득하다고 다시 말을 걸어왔었다. 마침 내가 준 머그컵에 내가 준 녹차를 우리고 있던 그는 자신의 방에 있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도 보았고, 그러다보니 여기에도 저기에도 다 내가 있었던 것.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작했었지. 리스타트...
그는 그의 방을 채운 것으로 나를 기억했는데, 나는 나의 방에 빈 것으로 그를 떠올렸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없었고, 나는 내가 밑줄 그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그에게 주었던거다. 추억이란 무엇인가. 채움에서도 기억나고 비움에서도 기억나 버리는, 그런 추억이란 무엇인가.
메모리.... 나의 메모리즈....... 요즘 영어 튀어나와서 미치겠군.
오늘 아침, '이렇게 계속 자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쎄한 느낌에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니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35분 뒤였다. 우엇 이게 무슨일이야. 내가 어제 술을 마셔서 알람 설정을 안하고 잔 것 같다. 와 대박 이게 무슨 일이야. ㅠㅠ 후다닥 일어나서 후다닥 머리를 감으면서 택시 타고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옷을 입고 집을 나서면서 계산해보니 6:31 마천행 열차를 타도 될 것 같네? 출근길 택시는 내가 특히 선호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택시 안의 나는 너무나 무력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영화를 볼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지하철을 원해! 그렇게 택시의 도움 없이 지하철을 타고 양재역에 내려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07:16 이었다. 평소보다 이십분가량 늦었던건데, 내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도 전혀 지각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봤자 일찍 가. 그러니까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뭔가 흐트러진 건 당황스럽지만, 그렇다고 일을 잘못되게 만들진 않는다. 지각할까봐 허둥대질 않아. 대단하다. 멋져. 짱이다. 진짜 나 뽕에 취한다. 하늘 아래 이런 캐릭터가 있다니.. 대단하다. 나같은 사람은 정말 나밖에 없을거야.. 너무 멋져서 눈물이 난다. ㅜㅜ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