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몸에 딱 달라붙는 녹색 내의를 입고 센 강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밤에도 훈훈한 5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저녁, 클러러는 새로 산 봄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짙은 파란색 리본이 달린 하늘색 토크였다. 그저 새 모자,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패션 소품일 뿐이었다. 그녀는 겨울에 두 사람이 처음 포옹했을 때 썼던 빨간 종모양의 모자 이후로 여러 가지 모자를 썼다. 검은 깃털이 달린 황갈색 모자와 가죽 술이 달린 녹색 모자가 기억났다. 하지만 봄 것임이 확실한 이 하늘색 모자는 다른 모자들과는 달리 두 사람의 시간 또한 흐르고 있음을, 그는 아직 학생이며 그녀는 계속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두 사람 사이에는 깨지기 쉽고 한시적인 연애가 존재할 뿐임을 일깨워 주었다. 그는 그녀의 모자를 고정하는 잠자리 모양 핀을 빼서 모자를 문 옆 옷걸이에 걸고 그녀의 양손을 잡아 침대로 데려갔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두 팔로 그를 끌어안으면서 귀에 대고 그의 이름을 속삭였지만, 그는 그녀의 팔을 끌러 다시 양손을 잡고는 나란히 앉았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우울해졌는지에 관해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모자를 보니 인생은 짧고 자신은 예나 지금이나 그녀에게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사랑을 나눴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이런 심야의 만남, 정사뿐이라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p.285~286
'언드러시'는 헝가리 시골에 사는 가난한 22세의 청년이다. 우연히 그의 잡지 표지 디자인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그의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그렇게 그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 장학금을 받으면서 건축을 공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정책이 바뀌어 전액 장학금 지원이 불가한터라 개인에 의한 오십프로 장학금만 받을 수 있게되었고 어쩔 수 없이 언드러시는 계속 공부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파리에서 학업을 마쳐야 하는 것. 그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신사를 떠올리며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극장으로 찾아갔고 그는 학교를 마치면 극장으로 와 극장 문을 닫을 때까지 배우들과 스텝들의 보조를 하며 돈을 번다. 연극의 주연을 맡은 여배우가 그런 그를 기특하게 여겨 '클러러'를 소개해준다. 클러러는 31세인데 16세의 딸이 있고, 그 딸에게 좋은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고 싶은게 클러러의 바람인데 언드러시가 맞춤한 남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였다. 그렇게 그는 어느 일요일 저녁 클러러의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 클러러와 클러러의 딸 엘리자베트를 만난다. 엘리자베트의 아버지는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클러러는 현재 혼자 딸을 양육하며 발레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언드러시를 클러러에게 소개해준 사람도 그리고 클러러도 언드러시를 엘리자베트의 맞춤한 짝일거라 기대했었다. 그러기를 바랐다. 그러나 언드러시는 클러러에게 꽂혀버린다. 자신보다 아홉살이나 연상인, 16세 딸의 엄마인 클러러에게. 그건 클러러도 마찬가지, 언드러시와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될줄 몰랐는데 그렇게 되어버렸어.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언드러시가 클러러와 사랑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자베트랑 짝이 되었으면~ 하였는데 클러러랑 사랑에 빠지다니. 우리는 사람의 일을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고 사랑이란 것이 누구에게 어떻게 스며들고 또 찾아갈지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현재 사랑에 빠진 건 언드러시와 클러러라는 것.
그러나 언드러시에겐 앞으로의 일이 아주 많이 남았다. 클러러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해도 자신은 자리를 잡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단 학교를 졸업해야 하는데 이제 고작 일학년일 뿐이다. 집도 가난해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혼자 낡은 집에 살면서 학교를 다니는데, 언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클러러의 든든한 남편이 될 수 있을까. 언드러시가 의지하는 형도 언드러시에게 이 사랑은 안된다고 포기하라고 했다. 너가 서른이 되고 그녀가 마흔이 되면 너에게 스무살 여자가 다가올텐데 너가 그 때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냐?
어쨌든 언드러시는 클러러를 포기할 생각이 없지만, 그러나 이 아무것도 아닌 일,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사소한 장면, 클러러가 모자를 바꿔 쓴 모습을 보고 우리는 안 될것 같아, 하고 우울해하게 된다. 그때 떠오른 생각을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그랬다.
몇해전 내가 꼭 이런 마음이었다.
먼 곳에 있는 그로부터 사진이 도착했다. 그는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했는지 하루에도 수차례 나랑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는 그의 주변사람들을 실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어떤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있는지는 그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가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자신을 사진 찍어 내게 보내주곤 했고, 그럴 때의 사진은 여전히 내 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날은 평소와 느낌이 달랐다.
우리는 여느때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는 여느때처럼 섬세하게 내게 사진을 보내줬다. 사진 속의 그는 야외에서 맥주를 앞에 두고 있었고 그의 뒤로는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색 빛과 분홍색 빛이 그의 뒤에 배경으로 보이고 있었고, 금발머리 여성의 뒷모습을 포함한 그 나라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빛이 예쁘다고 생각하고 그의 얼굴을 보면서, 그런데 나는 까닭없이 우리는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이 느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가 먼 곳에 있다는 것을 내내 알고 있었는데도 그 날은 분명하게 다가왔다. 안되겠어, 우리 사이엔 이렇게나 거리가 있구나 했다. 그 느낌은 내게 우울함을 안겨줬다.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으로 미소 짓고 앉아있는 그를 보는데, 심지어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한없이 다정했는데, 그런데 어째서, 왜, 그 순간,
우리는 멀리 있고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 때 그 느낌을 내가 일기에 써두었더랬는데.
언드러시가 클러러의 모자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불현듯 우울해질 때, 나는 그와 나의 거리를 느끼고 불현듯 우울해졌었다. 상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나만의, 언드러시 만의 느낌.
내가 이렇게 감상적으로 쓰고 재미지게 이야기하고 있지만(응?) 책이 너무 후져서 미치겠다 ㅋㅋ 이거 2권까지 있는데 이제 겨우 1권이고, 1권 읽고 있으니까 2권도 읽긴 할테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비호감인 책이라니..
책 읽으면서 내내 여자 작가가 젊은 남자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하는데 어째서 이 남자는 매력이 1도 없고 짜증나는가.. 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언드러시와 클러러는 서로 열렬히 사랑하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둘다 너무 비호감이다. 사실 뭐 자기들이 사랑하니까 남들이 어떻게보든 상관없고
니네가 뭐라든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러는거는 연인들이 으레 갖는 마음이랄까 태도랄까 그렇겠지만, 어휴, 꼴보기 싫다 진짜. 소설에서 주인공이 싫으면 그냥 다 똥인것 같다. 언드러시가 싫어.. 뭐 하나 마음에 드는게 없다. 지 혼자 막 신경질내고 화내고 토라졌다가 미안해요, 내가 그러지 말아야 했어요, 이러는데 진짜 아오 그냥 다 싫다. 이래서 어린노므 시키는 안된다니까 싶고. 애새끼가 입이 가벼워.. 애초에 나였다면 이 놈과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겠지만, 사랑에 빠졌다해도 여기저기 나와의 관계 수다 떨고 다니는 거 보면 정나미가 떨어졌을 듯. 여튼 여자 작가가 그린 남주가 별로라니... 뭐 좀 그렇다. 대프니 듀 모리에 생각도 났다. 대프니 듀 모리에도《나의 사촌 레이첼》에서 젊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흐음, 왜 이남자를 앞에 세웠을까'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다 읽고 나서
!!!!!!!!!!!!!!!!!!!!!!!!!
이렇게 되었더랬다. 앗.
쥴리 오린저도 마지막에 아 이래서 이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려나? 잘 모르겠다. 여튼 영 별로다 진짜.
이거 책 나온 당시에 사둘 때 뭔가 엄청난 작품의 느낌이었었는데 지금 읽으면서 뭐여?? 이렇게 되어가지고 읽다 말고 리뷰들을 찾아볼랬더니 '구매자'가 쓴 리뷰가 하나도 없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그렇다는 거다.
아무튼 히틀러가 아직 살아있고 이제 전쟁이 일어나려고 하니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더 두고봐야겠다. 클러러가 엄청난 비밀을 품은 걸로 나오는데 그 비밀이 설마 내가 추측하는 그거일까봐 머리가 지끈거린다. 휴.. 그게 아니길... 클러러는 고향 헝가리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고 하는데, 페넬로페 크루즈 나오는 [귀향] 생각도 나고 그렇다.
뭐 나야 꼴보기 싫다고 하지만, 언드러시가 인생 사랑 만난건 언드러시 인생의 축복이다. 사실 스물두살 밖에 안됐으니 인생 사랑인지 아닌지는 더 나중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사랑에 빠진 그 당시에는 얼마나 좋겄어.. 게다가 꼬박 열흘을 클러러의 집에서 클러러랑 함께 보내게 된다.
언드러시는 여태껏 살면서 그 후의 열흘과 같은 나날을 보낼 수있으리라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이후 수년 동안 암울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 열흘의 시간으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죽어서 더 밝은 내세가 아닌 무형의 적막 속에 남겨진다 해도, 클러러 모르겐슈테른과 함께 그날들을 보냈다는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을 거라고 되뇌곤 했다. -p.205
나도 내 인생에 그런 순간이 있었다니 정말 기적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 순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고 종종 생각하곤 한다. 그럴 때면 박효신의 노래를 떠올린다.
언드러시는 클러러와 헤어지는 생각만해도 너무 슬프다. 우리는 잘 안될텐데, 그래도 살 수 있을까?
"알아요. 그러나 난 당신을 못 보고는 살 수 없어요."
"하지만 그게 최선일 거예요."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지금 여기서 멈추는 게 아마도 최선일 거예요. 삶이 우리의 소중한 감정을 망쳐 놓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알아 버렸는데 그녀가 없는 삶을 어떻게 살겠는가? 그는 울고 싶었다. 아니면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고 싶었다. 그가 말했다. "여태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건 장난일 뿐이라고? 우리의 삶이 다시 시작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젠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p.211
언드러시가 모르는 게 있다면 그녀를 못 보고도 살 수 있다는 거다. 그녀를 보지 못해도 해는 뜨고 바람은 불고 밥도 먹고 걷기도 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그럴 수 있다. 살아갈 수 있다. 왜 못살아, 살지. 살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날들에 다른 기쁨과 다른 행복들이 수시로 찾아들것이다. 와 내가 이렇게 운이 좋다니,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나다니,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되다니, 하면서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 그렇지만, 클러러와 함께 했던, 클러러만이 줄 수 있었던 그 감정은 누구도 줄 수 없겠지.
그게 인생이란다, 언드러시야..
아무튼 클러러와 언드러시가 어떻게 되는지 이 책을 계속 읽어보겠다.
얼마전에 <모죠의 일지>를 보았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웹툰은 세상 무해해서 내가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장면을 보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보고 너무 좋아서 나도 홈까페를 운영하기로 했고(응?) 홈까페에 걸맞는 음악의 선곡을 마쳐, 리스트를 쫙 뽑아놨다. 혹시라도 집에서 홈까페 차릴 분들을 위해 친절하게 나의 홈까페 음악 리스트를 여기에 공유한다.


(애플뮤직 사용하시는 분은 @fallen7789 로 검색해 이 리스트 그대로 재생 가능합니다!!
☞ http://music.apple.com/profile/fallen7789 )
으하하하하하하하.
친구들과 여행 가면 호텔방에서 항상 그 날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또 음악을 틀어둔다. 이번 리스트는 앞으로 여행의 준비 되시겠다. 언제 갈 진 모르지만..
그럼 안녕.
그들은 매일 밤 함께 목욕을 하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사랑을 나눴다. 언드러시는간이 쾌락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놀라운 것을 알게 되었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 클러러 생각이 날 때 몸을 돌리기만 하면 그녀를 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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