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성을 아무리 아무리 부지런히 읽고 있어도 진도 나가는 것이 영 시원찮고 그러느라 다른 책도 읽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책을 사는것만큼은 여전히, 부지런히, 지치지 않고 산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고, 이 책은 숱하게 정리를 하였음에도 여전히 몇 권은 건재한 나의 '무라카미 하루키 책장'칸에 당당히 꽂혀있었더랬다. 그러나 작년이었나, 친구가 이 책을 읽고 싶어해서 내가 주마 했었다. 친구는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왜 하루키 벗은 등을 봐야 하냐고 흥분해 얘기했던 기억이 내게는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 책장에서 빠진 책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참에 얼마전에 블로그 친구가 이 책을 읽고 좋다고 인용문을 달아두었는데, 아니 너무 좋고 재미있는 거다. 지금 다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하고는 이 책을 거침없이 '다시' 샀다. 왜냐하면 내 꺼는 친구 줬으니까. 그렇게 이 책을 배송 받았고, 자, 이건 곧 읽고 싶긴 하지만, 일단 하루키 책장에 꽂아두자, 하고는 눈누난나~ 하고 그 앞에 가 섰는데, 오, 마이, 갓. 이게 무슨 일이야?
분명 내 기억엔 친구에게 이걸 줬고, 친구는 이 표지를 보고 뭐야뭐야 했던 일이 있는데, 어째서 내 책장에 이게 있는거지? 그 친구가 읽고 글도 쓴 것 같았는데? 하고 찾아보니 맞았다, 그 친구는 이걸 읽고 글도 썼다. 그렇다면 내가 준게 아니라 그 친구가 '됐어' 하고는 본인이 사서 읽은 걸까? 너무 대혼란 오는 가운데, 이 일을 그 친구가 속한 단톡방에 말하니, 아아, 그 친구와 나 사이에 다른 친구 s 가 있었다. 그 친구가 읽고 싶다고 해서 내가 준다고 했는데 s 가 내가 줄게, 해서 정작 준건 s 였고, 그 자리에 나도 있었고, 그래서 받은 친구가 표지 뭐야, 할 때의 기억이 선명한 것이었다. 아아 나여. 하아. 없다는 걸 너무 확신해서 책장을 볼 생각도 안했네. 돈 아까워. 돈 몇 푼이나 번다고 또 사냐, 또 사기를... 하아. 한 권 중고샵에 등록했다. ㅠㅠ 미친 ㅠㅠ 무슨 짓이야.
트위터에서 추천 받은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을 후다닥 장바구니에 넣었다. 트라우마 라고 하면 '주디스 허먼'의 책을 나는 너무나 좋아하는데 이것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나 여성이라는 성별을 갖고 있다면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게도 그게 있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려고 엄청나게 애를 써왔고 또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내 삶에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나는 나의 그 일에 대해서 내 책, 《잘 지내나요?》에 써두었고, 그 책을 읽은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우셨다. 내가 책에
그것을 쓰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내용을 쳐내서 아주 간략하게만 적어두었지만, 엄마는 이걸 다른 사람들이 다 읽고
알게 될까 두려워 인쇄된 책들을 다 당신이 사서 버리고 싶다 하셨다.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그러고는 미안하다고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우셨고, 나는 엄마에게 엄마 나 괜찮다고 계속 말씀드려야 했다. 엄마 나 챙피하지 않고, 그거 내 잘못도 아니야,
내가 다른 사람이 모르도록 꽁꽁 그걸 감추지 않아도 돼, 라고 함께 울며 재차 말씀드려야 했다.
여동생도 읽고 있던 터라 나는 걱정스러웠다. 엄마가 나를 끌어안았던 일까지 다 알던 터라, 내 책을 읽은 여동생은 어쩌나 싶었던 거다. 그런데 여동생은 내 책을 다 읽고서는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면서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는 없을텐데 그걸 극복해온게 자랑스럽다고 동생은 내게 말했다. 동생은 자기 자식들이 상처받지 않고 살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상처받는 일이 생겼을 때 그걸 이겨내고 극복하고 언니처럼 잘 살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동생의 말이 고마워 하노이 호텔방에서 울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트라우마에 대한 책, 그것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면 관심이 있다. 이 책도 샀다.
나는 쥬디스 버틀러가 영 별로고 어쩐지 셋트 같은 '뤼스 이리가라이'도 영.. 나한테 맞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러나 여성학에 대한 책을 읽는다면 언젠가는 읽고 넘어가야 할 책인 것 같아 11월의 도서로 《하나이지 않은 성》을 지정해두었다. 그러나 10월 도서 보부아르 읽으면서 지금 엄청 허덕이고 있고, 아아, 보부아르 바로 다음이 이리가라이 이면 안되는 거였는데... 하면서 땅을치며 후회하고 있던 바 이 책을 샀는데, 아니 생각보다 안두꺼워요? 그래서 몹시 씐났다. 좋았어. 벽돌이 아녀!! 그런데 후루룩 넘겨보니 세상에, 글씨가 왕사탕 만한거에요. 보부아르 제2의 성 읽다가 이거 보니까 글씨가 완전 너무 커. 돋보기 끼고 봤던 사람들 돋보기 다 버려!! 글자가 크다. 으하하하하하하하.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이리가라이도 읽을 수 있을 지 몰라. 작은 희망이가 생긴다고 한다. 물론, 글자의 크기와 내용의 어려움 정도는 아무 상관 없지마는....
여러분, 희망, 희망을 갖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목표같은 게 있는 건 아니지만, 나를 위해서라도 육식을 좀 줄여야하지 않나, 라는 생각은 언젠가부터 계속 해오고 있다.
사실 다이어트나 운동 그리고 채식관련 책까지, 읽노라면 새삼스럽게 모르는 내용들이 나오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보는 건, 읽으면서 다시 의지를 새롭게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식을 좀 줄여나가자, 하고 며칠 신경써서 지키다가도 다시 원래의 식습관으로 돌아오니 내가 나를 위해 다시 나에게 작은 자극을 주어보려고 이 책을 샀다.
마침 얼마전에 댓글로 누군가가 이 책에 대한 언급을 해주어 검색해보았고 그래서 숱한 채식관련 책 중에 이걸 선택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하면 그게 뭐든 잔소리가 된다. 공부해라, 운동해라, 채식해라 같은 거. 그게 아무리 좋다고 해도 누가 하라고 하면 잔소리가 되고 그래서 듣기도 싫고 하지도 않게 되지만, 내가 원해서 시작하면 좀 더 능동적이 된다.
나도 참 나를 모르겠다. 나름 제로 웨이스트 키친에 관심이 있어서 그 관심을 좀 더 증폭시켜보고자, 뭔가 관심이 있다면 거기에 대한 지식을 좀 더 늘려보고자 이 책도 샀다. 당장 시작하는 건 무리고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공부든 운동이든 뭐든 사실 생각했다면 당장 시작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야 뭐라도 조금 더 가까이 근접할 수 있지 않나.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되고 또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나는 온갖 채소와 과일 그리고 꽃들이 있는 풍경을 좋아한다. 아직 사놓고 훑어보지도 않았지만, 책 안에 그런 사진 담겨 있을 것 같아서 좀 설렌다.
이 책을 영어본으로 읽거나 영어본과 함께 읽는 분들이 페이퍼를 적어주시면 세상 근사하더라. 너무 멋져. 나도 그런 사람 되고 싶어서 당장 샀다. 욕심이 똥구멍까지 찬 1인...
Second 글자는 책 표지 디자인 상 부러 지워져있는 것. 오오, 대단한 디자인이다.
아무튼 꺅 너무 좋아, 나도 영어 영어, 뽀대 뽀대, 하고는 샀지만 한 번 휘리릭 한 다음에 흐음, 읽을 순 없겠군, 하고 저기 저 쪽에 쌓아두었다.
뽀대를 지키는 것은 돈이 많이 든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처음 접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극찬이었다.
'나무'에 대한거라는데, 내가 그걸 소설로 읽을 때 과연 재미있을까 하면 사실 전혀 짐작도 안된다. 나무? 지루하지 않을까? 왜 나무 이야기로 이렇게 두껍게?? 그렇지만 그간 소설을 읽어본 경험에 의하면, 내가 흥미없는 분야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책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책은 읽어보기 전까지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책은 몇 장만 읽어도 짐작이 너무 가능해 던져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친애하는 알라디너의 리뷰를 보고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리고 샀다.
너무 궁금하고 너무 흥분되는데, 아니 그런데 책을 받아보고 나니 이리가라이의 하나이지 않은 성보다 두껍고 하드커버라서 살짝 당황했다.
네??
ㅋㅋㅋㅋㅋ
그리고 이런 책들을 샀다.
책탑 사진으로 인증해볼까. 후훗.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왔다. 평소보다 하나 앞선 열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다면 회사에도 평소보다 훨씬 일찍 도착할 터였다. 가방 안에 빵이 있으니 커피를 내려서 아침의 여유, 모닝 여유를 즐겨야지 눈누난나~ 하고는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강동역에서 타지만 버스가 오는 것에 따라 올림픽공원 역이나 가락시장 역으로 가기도 한다. 오늘은 강동역에 가는 버스를 더 오래 기다려야 하길래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올림픽공원 역에 내렸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열차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탔고, 가방 안에서 제2의 성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으, 보부아르 천재천재 짱이야. 지금 낙태 부분 읽는데 넘나 멋진 보부아르, 크- 하고는 가방을 열고 필통 안에서 펜을 꺼내려고 했단 말이야? 엇 그런데 다음 역이 둔촌역 이라는 거다. 응?
응?
응?
나는 갸웃하기 시작한다. 왜.. 둔촌역이지? 내가 그쪽에서 왔는데? 가만있자 버스는 그렇게 오지만 지하철은 중간에 뭐가 달라지나? 아냐, 내가 5호선 한두번 타? 그러다 문이 열렸고 바깥의 화살표 방향을 보니 그 다음역은 강동 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제야 벼락같은 깨달음.
앗.
내가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탔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얼른 접고 가방을 들고 후다닥 뛰어서 간신히 문이 닫히기 전에 내릴 수 있었다. 아니, 왜 왔던 방향으로 도로 가고 있는거야 나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미쳤어?
나는 너무 당황하여 반대쪽 승강장을 향해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다. 아니 미쳤어 왜 반대방향으로 가. 그렇게 계단을 급히 올라가다가 확 넘어졌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들고있던 가방도 떨어지고 책도 저 쪽으로 떨어졌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무슨 일이야.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ㅠㅠ
얼른 가방과 책을 수습해 반대쪽 승강장으로 갔다. 열차는 12분 후에 도착한다고 되어 있었다. 12분 이라니. 너무 길다. 나가서 택시 탈까? 하다가 아서라, 가만 앉아 있어, 오늘의 삽질은 이걸로 끝내자, 하고는 벤치에 앉아 지하철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괜히 택시 탄다고 나갔다가 나가는 길이 12분 족히 걸릴 것인데, 그런 짓을 뭐하러 하나. 삽질하느라 시간 버렸고 또 지금 이렇게 12분 기다리지만, 워낙 일찍 나온 터라 어차피 지각하고는 거리가 멀다. 나는 앉았고 기다렸다.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차분해질까. 어떻게 해야 지금 너무 싫은 내 자신이 다시 좋아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넘어질 때 다친건지 종아리랑 손바닥이 아팠다. 레깅스를 걷고 살펴보니 종아리에 좀 멍이 들었더라. 하아. 오늘 아침의 내가 너무 싫다, 월요일 아침부터 왜이래 ㅠㅠ 하루이틀 출근해? 내년 5월달이면 만으로 20년 채우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반대로 타, 왜 넘어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무실에 출근해 환기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동생들에게 아침 일을 얘기했더니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고 다독다독 해줬다. 그래, 괜찮아, 무사히 잘 왔고 커피도 마셨어. 그랬다가 좀전에 화장실에 갔는데 ㅠㅠ 허벅지에 큰 멍이 있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회사 동료에게 얘기했다. 동료는 괜찮냐고 아프지 않냐고 물었고, 멍든건 금세 낫겠지만 내 자신이 싫어졌어, 라고 나는 얘기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이건 그냥.. 무의식이 한 일인것 같다. 회사에 가기 싫다는 나의 무의식. 사실은 회사에 도착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저 깊은 마음. 그것이 나를 이렇게 만든게 아닌가 싶다.
커피나 한 잔 더 내려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