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과음을 해서 독서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잠들기 전에 책을 몇 장 읽고자는 것이 나의 그날 하루 마지막 일과인데 어제는 뻗어 잤다. 술을 많이 마셨어...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나는 스파게티가 먹고 싶었고 스파게티를 와인과 함께 먹으면 또 너무 좋잖아. 엄마한테 톡을 보내 물었다. 집에 스파게티 면이 남아있는지 좀 봐달라고. 엄마는 있다고 하셨다. 그래, 그렇다면 소스만 사가자. 나는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로제 소스를 샀다. 로제 한 번 사봐야지. 집에 도착해 후딱 씻고 스파게티 면을 삶으면서 와인을 한 병 꺼내와 오픈하고 잔에 따라 마시기 시작한다. 스파게티 면 삶은 시간 아깝잖아요, 그냥 보낼 수 없잖아요, 그렇게 마신다, 나는, 와인을... 홀짝홀짝.
프라이팬에 불을 켜고 올리브유를 휘이이익 두른 뒤에 슬라이스한 마늘을 넣고 달달달 볶다가 삶아진 스파게티 면을 건져내 한번 살짝 볶아주고 소스를 들이붓는다. 그리고 이케이케 잘 젓고 볶아가지고 마신다, 나는, 와인을, 그리고 먹는다, 나는, 스파게티를...
오랜만에 스파게티 넘나 맛있네. 엄마랑 맛있게 먹는다. 그렇지만 퇴근후에 집에 와 요리를 해먹는 것은, 아무리 만들어진 소스를 사온다 하더라도 시간이 걸린다. 저녁을 먹는 시간이 너무 늦어.. 나는 보통 열시반이면 잠드는데 이렇게 만들어서 먹으려고 하니 여덟시가 넘어버렸잖아..인생...
동생들로부터 톡이 왔다. 집에 잘 도착했냐, 저녁 메뉴는 뭐냐. 나는 스파게티 먹고 있다고 사진을 보냈다. 보통 음식 사진 보낼 때 술이 있으면 술도 같이 찍어보내는데 동생들과의 단톡방에서 어제는 망설이다가 스파게티만 찍어 보냈다. 와인을 포함한 사진을 보내면..남동생한테 혼날까봐. 누나 술 좀 마시지마, 내일 출근할건데 왜 평일에 마시냐, 잔소리가 쏟아질까봐... 스파게티만 보냈단 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어떻게 알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날카로운 새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와인 사진도 찍어보냈다. 개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와인 한 병 개봉한 게 마시다보니 얼마 안남아서 니나노~ 걍 다 마셔버리자~ 하면서 마셨고 나는 평소보다 늦게 자게 됐고 게다가 숙취로 인해 오늘 아침 너무 피곤한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술마신 어제의 나를 미워했다. 왜 마셨어, 왜, 왜, 왜............. ㅠㅠ 그렇게 피곤해하며 열무김치에 고추장으로 밥 이케이케 잘 비벼가지고 겁나 맛잇게 먹고(요즘 마이 패이버릿) 집을 나섰는데, 아, 나는 진짜 이 이른 아침의 공기가 너무 좋다. 여름날 이른 아침의 이 기운.. 너무 좋아. 육체는 숙취로 피로에 쩔어있는데 아 여름의 아침은 만세 만만세야. 나는 내가 삶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삶을, 세상을 사랑해. 미친듯이 사랑해. 그렇지만 컨디션은 하나 사마시자. 그렇게 지하철역에 들어갔고 편의점 가려는데 편의점 문 닫으면 어째요.... 하아-
너무 피곤해서 글자를 하나도 볼 수 없을 것 같아 오늘 지하철 안에서는 책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퍼뜩, 어젯밤에 누군가로부터 온 문자메세지 생각이 났다. 앗, 만나자고 한 문자였는데? 날짜도 정한것 같은데 기억이 1도 안나네? 어휴.. 술김에 약속 잡아서 까먹을뻔 했네 ㅠㅠ 아이고 깜짝이야. 그래서 언제로 잡았나 보려고 다시 문자메세지를 확인하고 아, 이날로 잡았구나, 하고는 스케쥴에 적으려고 스케쥴 앱을 열었는데, 얼라리여? 스케쥴 앱에 이미 잘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취중에도 해야할 걸 꼼꼼하게 하는 나란 여자... 나는 세상을, 삶을 사랑하고 아아, 내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 술마신 어제의 나는 좀 밉지만, 그런 와중에도 까먹지 않으려고 기록해놓는 나란 여자 세상 멋진 여자야. 세상을 사랑합니다, 삶을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나 만세다.
책을 읽지 않고 출근하는 길에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데, 어제 새로 나온 알라딘 커피를 주문햇단 말야? 사무실에는 이미 시다모 디카페인과 엘 소코로.. 있는데 아아, 사무실 내 책상은 작은 까페가 되어 가고 있어...아무튼 그런데 새로 나왔다고 이미 마셔본 여동생이(잽싸다!) 고소하다고 하길래 나도 헐레벌떡 주문해가지고 그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엘살바도르 엘 보르보욘 아직 상품 검색 안되네요, 알라딘 님...)
그런데 왜때문에 그라인더 사고싶어지지? 그라인더..그라인더란 무엇인가...
몇해전에 내게도 그라인더가 있었다. 수동 그라인더. 작은 것이었는데 씐나서 거기에 커피콩 넣고 두어번 갈다가 내가 어느천년에 이걸 갈아 먹냐.. 빡쳐서 저기 구석에 처박았단 말야. 그러면 그 남은 원두는 어쨌느냐. 빡친 나를 보고 엄마가 '너 스트레스 안받게 해줄게' 하면서 믹서기 가져와서 싹다 갈아주셨단 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그래서 있는 그라인더 안쓰고 있는데 작년이었나 재작년에 친구가 그라인더 작은거 하나 살거라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친구에게 너만 괜찮다면 내게 한 두어번 썼던 그라인더가 있는데 줄 수 있다, 했더니 너무 좋다고 달라는거다. 그래서 내가 줬지? 친구가 너무 잘쓰고 있다고 나중에 만나서 또 얘기하길래 나한테는 안쓰는 물건인데 네가 잘 써주니 나도 너무 좋다...라고 한 찬란한 역사가 있단 말이다. 그런데 이제와 지금, 그라인더를 왜 다시 사고 싶지? 나도 핸드드립 분쇄로 안사고 원두로 사서 그라인더에 넣고 갈고 싶다. 알라딘, 알라딘은 내게 답을 줄것이다. 커피도 알라딘, 필터도 알라딘, 드립 서버도 알라딘, 드리퍼도 알라딘.. 그래, 그라인더도 알라딘에서 저렴하게 구매하자! 아니야, 구매까지는 하지말고 걍 보기만 할까? 하고 알라딘에 들어가 출근길에 나는 보았네, 그라인더를...
<핸드밀> 이라고 적혀있는데 핸드밀과 그라인더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무튼 그런데 와 너무 비싼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죄다 4만원대야. 그렇다면 더 저려미는 여기에 없구먼...하고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저려미가 나오는데 2만원대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비싼거구나, 그라인더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전에 누가 그냥 준거라서 몰랐지, 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싼거네 제기랄? 그래서 안사는걸로... 사무실의 까페는 미완성으로다가.....
엄마 좋은 사람... 너무 좋은 엄마... 나 빡친다고 커피콩 믹서기에 갈아준 엄마... 내가 볶음밥 한다고 야채 썰다가 이걸 언제 썰고 있어 개빡쳐하는거 알고 내가 뭐 한다고 하면 내가 야채 썰어줄게, 해주는 우리 엄마. 엄마의 사랑은 크고 깊습니다. 우리 엄마 사랑해.....
컨디션 사러 편의점 가야겠다. 오늘은 아이스로 내려서 디카페인 마시고 있다. 왜냐하면 이따가 보르보욘 오며는 뜨겁게 내려 마실거거든. 나는 이렇게나 계획적인 사람. 하루를 계획한다. 졸 멋져.. 냉철하다. 도시의 차가운 여성.......오늘 돼지곱창 약속 있어가지고 내가 어제 술을 가볍게 한 잔 하려고 했는데 한 병 해버리는 무지막지한 여성...나는 도시의 무지막지하고 차가운 여성......
'정아은'의 《엄마의 독서》를 최근 점심시간마다 이북으로 '듣고' 있었다. 와 좋네, 정아은의 소설을 내가 두 권인가 읽었는데 소설보다 좋다, 이러면서 씐나서 듣고 최근에 나온 책도 사야지, 하면서 눈누난나 했는데, 어어... 갈수록 이상해진다. 그러니까 두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는거다. 낮에는 회사 가고 밤에는 대학원에 가겠다는 것. 그렇게 남편은 자기계발에 힘쓰고 대학원 수업이 끝나면 같이 수업 들은 사람들과 술도 한 잔 마시고 들어오는데, 그동안 아이들과 계속 치대는 건 엄마이자 아내가 된단 말이다. 그러니 빡치는 거 너무나 당연한데, 그러다가 나중에 시간을 지나 돌아보니 남편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 하나 늘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면서 모든게 사회탓이다... 라고 하는거다. 나는 여기서 당황해버렸다. 아, 어차피 함께 살 남편이니 좋은면만 보려고 하는 자기합리화는 반드시 필요한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당황했어. 그래, 자본주의 사회, 경쟁 사회에서 더 돈을 많이 벌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대학원 가는 것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다 자라서 더이상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을 때, 십년후나 이십년후쯤 사회에 나가려 했을 때 남편과 아내가 벌어들일 수 있는 돈,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혹여라도 이혼이라도 해봐. 남편에겐 직급이 남아있을 것이고 스펙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에겐?
물론 정아은은 그 뒤로 문학상도 타고 소설도 써내고 나름의 커리어를 잘 구축하지만, 모든 여자들이 아이를 돌보면서 글을 쓸 수 잇는 것도 아닌데, 저런 부분이 나오고서 부터는 자꾸만 그래 남편도 힘들겠지, 다 사회탓이야, 이래버리니까... 어느순간 듣기가 싫어져버렸다. 함께 살기로 결정한 이상 저런 합리화, 나만 힘든게 아니야 남편도 힘들거야, 라고 끌어안고 자신을 다독이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나도 그렇게 될까? 만약 내가 결혼해서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고 둘째를 임신한 시점에 남편이 대학원을 진학하겠다고 하면.....응, 당신도 힘들겠지, 그래 열심히 공부해..... 자본주의가 우리를 힘들게 하네.... 할 수 잇었을까? 그러기에 나는 무지막지한 도시의 차가운 여성이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도 나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여튼, 절반 이상 들었는데...언젠가 마저 다 듣기는 하겠지만 새로 나온 책은 장바구니에서 뺐다.
그래서, 어제 점심에는 동태탕에 곤이를 추가해 먹으면서(곤이 너무 맛있지 않아요? 탱글탱글. 인간은 왜 곤이까지 먹는가... 무지막지한 차가운 도시의 여성이여...), 넷플릭스에 올라온 《고스터버스터즈》를 보기 시작했다. 이거 몇해전에 '비디오방' 에서 봤던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아직도 비디오방이 있는지 몰랐는데, 거기가 서울이 아니라..지방이어서 아직 있었던건가. 아무튼 오만년만에 비디오방 가서 영화봤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때 봤던건데 다시 보고 싶었고 마침 넷플릭스에 올라왔길래 보기 시작했는데, 우앙- 세상 재밌어. 처음에 세명이서 유령 해치우러 가길래 '흐음, 네 명 아니었나... 세명이었나보구나' 이러면서 보는데 나중에 한 명이 '나도 멤버할래' 이래가지고 네 명이 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제 다 못봤으니 오늘 점심에 또 봐야지. 오늘 점심은, 흐음, 쌀국수 먹을까? 해장 해장? 아 이제 그만 쓰고 컨디션 사먹으러 나가야겠당.
아무튼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변함없이 여전히 3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