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상하게 날씨가 우중충하면 책이 안 읽힌다.
차라리 비가 오면 집중이 잘 되는데.
오늘 하늘이 오락가락 했다. 비가 오긴 왔다.
햇빛이 조금 비치는가 했더니, 어두컴컴하니 내가 싫어라 하는 어둠이 내렸다.
에잇, 오늘 다 읽으려고 했는데 실패다.
내일로 미루었다.

날씨에 좌지우지 한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난 좌지우지 된다.
화창하려면 화창하게, 비가 오려면 좍좍 시원하게 비가 내리는 게 좋다.
지금 왕의 남자 한다.
귀로 보고 있다. 소리도 보고 있다.
이제껏 안 봤다. 사실 컴퓨터에도 받아 놓은 지가 언젠데, 나중에 혼자 볼란다.
조용히...그 날이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별거 아닌 거지만 난 모든 미루는 걸 잘한다.
국가대표급. 좋은 게 없다. 쩝.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6-11-1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문을 보지 마세요^^ 전 비 오는 것도 몰랐어요^^:;;

거친아이 2006-11-13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문이 바로 보여요 ^^;;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구조주의()의 선구자이며 시론() ·이미지론()으로도 유명하다. 1927년 《근사적 인식()에 관한 시론》으로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디종대학의 교수와 소르본(파리대학)에 초빙되어 과학사·과학철학을 강의했다.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철학
주요저서 《새로운 과학적 정신》(1934) 《부정()의 철학》(1940)

구조주의()의 선구자이며 시론() ·이미지론()으로도 유명하다. 1927년 《근사적 인식()에 관한 시론》으로 학위를 취득한 후 디종대학의 강사·교수를 거쳐 1940년 소르본(파리대학)에 초빙되어 과학사·과학철학을 강의하는 한편, 동 대학 부속인 과학사 ·기술사연구소장을 지냈으며, 1954년 명예교수가 되었다.

20세기 초두, 약 4분의 1세기에 걸친 ‘물리학의 혁명’을 목격하면서 과학을 그 동적()인 변화발전의 위상()에서 파악하는 가운데, 이 변혁기의 과학활동에 맞는 의미를 종래의 철학이나 일상적 인식 또는 과학자 자신에게 투영시키는 데에서 ‘과학의 철학’의 위치를 구하였다. 초기의 대표적인 저작 《새로운 과학적 정신》(1934)은 상대성이론의 비()뉴턴 역학적()인 성격이나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에 대한 세밀한 검토를 통하여 현대과학에서의 인식의 양식()을 ‘비()데카르트적 인식론’으로서 제시한 것인데, 이러한 파악이 《부정()의 철학》(1940)에서 ‘비()의 철학’으로서 결실되었다.

이상의 저작에서 과학이 초래하는 새로운 인식에 대하여 개방된 정신, 나아가서는 과학의 발전을 촉구하는 정신의 추구와 같은 자세를 볼 수 있다면 《과학적 정신의 형성》(1938)의 목표는, 그것을 방해하는 ‘인식론적 장해’의 정신분석에 의한 배제였다. 이러한 방향은 앞서 말한 과학의 진전을 촉구하는 정신의 추구와 근저()에서 교착되면서 시와 이미지의 자유분방한 역동성() 자체를 구하는 ‘4원소()’에 매개된 심층심리의 분석으로 발전하였다. 이 양자를 끊임없이 ‘상보적()’으로 전개시킨 바슐라르의 사상적인 영위는 프랑스의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현대적인 의미 확립에 기여한 동시에 J.피아제와 L.알튀세르 또는 G.캉길램을 통하여 M.푸코에게로 다채로운 영향을 끼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흐르는 강물처럼 - [초특가판]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흐르는 강물처럼'을 봤다. 이 영화를 얼마나 미루었던가. 나의 게으름을 저주했다.
낚시를 통해 가족 그리고 인생의 그 무엇을 말하는 영화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잔잔한 영화였다.
조금 지루하다면 지루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할 만한 지루함이라 만족했다.

이 영화가 1992년 작품이니까 오래 됐다.
풋풋한 젊은 브래드 피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에 나온 멋진 자연 풍경과 그 속에서 낚시하는 장면이 멋져 보였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 중 낚시하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까지 낚시대 한번 만져본 적도
없는 나지만, 낚시라는 걸 하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영화는 회상을 통하는데 회상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라고 이제껏
생각해왔던 나였지만 이런 회상은 지친다기 보다는 아련한 회상이다.

가족을 말하는 영화나 인생을 말하는 영화를 보면 잠깐이지만
깊은 생각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내 옆을 지켜주는 함께 사는 사람이 시간이 흐르거나 흐르기 전에 갑자기
내 곁을 떠난다면 어떨까. 그 상실감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시간이란 기억을 쌓는 과정이다.
사람은 죽어도 함께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기에 달라진 모습일 테지만 함께 할 수 있겠지.

기억에 남는 대사는 맥클레인 목사가 죽기 전 마지막 설교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없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한 말.
맞다. 이해를 꼭 해야만 사랑하는 것은 아닐 테다.
마지막 장면에서 노인이 된 노먼이 흐르는 강물에서 낚시를 하는 장면에서
"이해는 못했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라고 했다. 난 이 말이 참 좋았다. 아직도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는 말.

내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흐르는 강물처럼"은 내겐 가슴속에 남을 좋은 영화였다.
완벽한 이해 없이도 좋아할 수 있을 테니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12-0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영화 꼭 보고 싶은데 품절이네요. 저도 미루고 미루던 게으름을 후회하고 있어요.

거친아이 2006-12-0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봐야지 봐야지 하고선 못 본 영화가 수두룩해요.
다음에 비디오라도 빌려서 보셔요~^^

marine 2006-12-3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독특한 영화였던 것 같아요 전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오는 줄 알고 열심히 봤는데 제작만 했다는군요

거친아이 2006-12-3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버트 레드포드 이름만 알지 잘 몰라요~^^;;
전 이 영화 참 좋더라구요. 뭐 대단한 얘깃거리나 장면 같은 건 없어도요.

chamnakoo 2007-01-04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목사님의 말씀 ~ 가족간의 사랑이란것은 이세상의 다른 어떤 사랑과는 다른것 같아요...그리고 영화음악도 참 좋죠...참 많이 들었었는데...

거친아이 2007-01-04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armnakoo 님, 처음 뵙네요 ^^ 맞아요. 가족간의 사랑은 분명 다른 거 같아요.
전 영화음악으로 먼저 만나고 나중에 이 영화 봤었어요.
 

일주일 넘게 컴퓨터 안했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역시 적응이란 편안함을 안겨준다.
처음의 금단 현상은 사라졌더랬다.

내가 중독이면 대한민국에서 컴퓨터하는 사람은 다 중독자게??
나를 중독자로 취급하는 사람이 같은 집에 산다.
엄마다.
이런 억울한 오해가 어디있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난 컴퓨터를 하지 않았다.

심심해서 죽을 뻔 했다.
역시 컴퓨터 없으면 안돼.
그렇게 돼버렸다.

메인화면에 미야베 미유키 책 사라고 걸려 있다.
사고 싶다.
화차 읽어야 하는데...
마술은 속삭인다도...

서재질 열심히 했을 때 적립금 타 먹었던 적이
언젠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 때가 좋았지.
지금은 가능성 희박하다. 이런.
차곡차곡 서재질이나 하자.
재미있으니까.^^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연 2006-11-0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서재질만큼 재밌는 건 없죠..ㅋㅋㅋ

거친아이 2006-11-0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동감입니다...그리고 동물원에 가기 리뷰 넘 멋졌어요.
흔적만 안 남겼다 뿐이지 님의 글을 읽으며 오오,,,감탄했답니다~~ ^^

물만두 2006-11-0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어머님도 같이 하시게 만드세요^^ 울 엄니 고스돕 치십니다~

아영엄마 2006-11-09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적립금도 중독현상을 부치기는 강력한 요인이죠. 물만두님 말씀처럼 어머니도 이 세계에 빠지시면 못 헤어나실 듯.. 대신 컴퓨터가 어머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이 문제겠지만 ...^^

거친아이 2006-11-0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엄마도 가끔 하세요. 드라마 다시보기 같은 거만 하세요.
아영엄마/ 서재적립금 맛에 빠지면 헤어나질 못하죠. 바랄 수 없을 만큼의 순위에서 밀려나지 않은 이상은요. 전 순위도 안 나와요. ㅎㅎ 컴은 앞으로도 제 껍니다.
엄마는 안 하실 걸요~장담합니다!!
 

 

‘말이 말이 되지않는 시대’엔 비트겐슈타인을 말해야 한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선집 7권 완역 이영철 교수

▲ 비트겐스타인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1889~1951·사진). 미국 ‘타임’지가 20세기에 큰 영향력을 끼친 100명을 뽑을 때 유일하게 올랐던 철학자. 서양근대철학을 지배했던 ‘의식(意識)’의 문제를 ‘언어(言語)’의 문제로 바꾼 언어철학자면서도, 모든 철학사(哲學史) 집필자가 그가 등장하는 부분을 놓고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독창적이고 난해하면서도 기이한 사상가다.

또 다른 ‘어려운 사상가’인 프로이트와 니체에 이어 그의 저작들마저 마침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지난 주 완간된 일곱 권짜리 ‘비트겐슈타인 선집’(책세상)은 생전에 유일하게 출간한 문제작 ‘논리-철학 논고’를 비롯, 후기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적 탐구’와 강의록 ‘청색책·갈색책’, 유고집인 ‘소품집’ ‘쪽지’ ‘확실성에 관하여’ 등 그의 주요저작을 망라한 거질(巨帙)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놀랍게도 모두 한 사람에 의해 옮겨졌다. 16년 전 작업을 시작했던 이영철(李榮哲·52) 부산대 철학과 교수. 그는 서울대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파’ 학자다.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때로군요. 처음 비트겐슈타인을 접한 것이.”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라며 언어의 명료한 분석을 통해 이 세상을 해명하려 했던 옛 사상가가 최루탄 냄새 매캐하던 시절 한 대한민국 철학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라가 어려울 때라도 누군가는 이런 철학적인 문제를 공부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고, 그 신념은 기어코 직접 원전을 번역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결국 인간의‘사유의 병’을 치료하는 철학”이라고 말하는 이영철 교수. /부산=김용우기자 yw-kim@chosun.com
극도로 간결한 원문 문장을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 먼저 직역(直譯)을 한 뒤 숱한 퇴고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꼭 들어맞는 우리 말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사실(事實)은 사태(事態)들의 존립”이라는 문장의 경우 ‘사태(Sachverhalt)’는 일부 영역본(英譯本)에서 ‘원자적 사실(atomic fact)’로 번역됐지만 고심 끝에 ‘단순한 구성 요소가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어 사실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사태’를 택했다.

처음 ‘논리-철학 논고’에서 언어가 세계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그림’과도 같다고 보았던 비트겐슈타인은 사실적 명제로 드러낼 수 없는 윤리나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선 ‘말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후기로 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언어라는 것은 말을 하는 행위의 맥락에서 나오는 일종의 ‘놀이’이자 실천적 활동, 삶의 일부라고 보게 됐다. 이제 윤리와 종교도 문법만 다를 뿐 그 속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된다.

“후기로 갈수록 비트겐슈타인은 ‘치료(治療)’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철학적 문제를 가지는 것은 우리 사유(思惟)에 병(病)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에요.” 그것은 우리 언어의 혼란 때문에 생기는 개념적 문제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 자체를 바꾸는 윤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태어난 19세기 말 비엔나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와해되기 직전의 혼란기였습니다. 언어(言語)와 실제 세계 사이에 커다란 틈이 벌어진 때였죠.” 한마디로 ‘말이 말이 되지 않는’ 시대. 바로 그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21세기 초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라면 누구나 다 걸려 있는 ‘시대의 병’을 해결하기 위해 언어의 명료화에 천착했던 겁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6-11-10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추천서재 보고 왔어요. 이글 담아가고 싶어요.^^

거친아이 2006-11-1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담아가셔요~ 저도 기사보다가 퍼온 건데요.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