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말이 되지않는 시대’엔 비트겐슈타인을 말해야 한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선집 7권 완역 이영철 교수
▲ 비트겐스타인 | |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1889~1951·사진). 미국 ‘타임’지가 20세기에 큰 영향력을 끼친 100명을 뽑을 때 유일하게 올랐던 철학자. 서양근대철학을 지배했던 ‘의식(意識)’의 문제를 ‘언어(言語)’의 문제로 바꾼 언어철학자면서도, 모든 철학사(哲學史) 집필자가 그가 등장하는 부분을 놓고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독창적이고 난해하면서도 기이한 사상가다.
또 다른 ‘어려운 사상가’인 프로이트와 니체에 이어 그의 저작들마저 마침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지난 주 완간된 일곱 권짜리 ‘비트겐슈타인 선집’(책세상)은 생전에 유일하게 출간한 문제작 ‘논리-철학 논고’를 비롯, 후기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적 탐구’와 강의록 ‘청색책·갈색책’, 유고집인 ‘소품집’ ‘쪽지’ ‘확실성에 관하여’ 등 그의 주요저작을 망라한 거질(巨帙)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놀랍게도 모두 한 사람에 의해 옮겨졌다. 16년 전 작업을 시작했던 이영철(李榮哲·52) 부산대 철학과 교수. 그는 서울대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파’ 학자다.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때로군요. 처음 비트겐슈타인을 접한 것이.”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라며 언어의 명료한 분석을 통해 이 세상을 해명하려 했던 옛 사상가가 최루탄 냄새 매캐하던 시절 한 대한민국 철학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라가 어려울 때라도 누군가는 이런 철학적인 문제를 공부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고, 그 신념은 기어코 직접 원전을 번역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결국 인간의‘사유의 병’을 치료하는 철학”이라고 말하는 이영철 교수. /부산=김용우기자 yw-kim@chosun.com | |
극도로 간결한 원문 문장을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 먼저 직역(直譯)을 한 뒤 숱한 퇴고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꼭 들어맞는 우리 말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사실(事實)은 사태(事態)들의 존립”이라는 문장의 경우 ‘사태(Sachverhalt)’는 일부 영역본(英譯本)에서 ‘원자적 사실(atomic fact)’로 번역됐지만 고심 끝에 ‘단순한 구성 요소가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어 사실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사태’를 택했다.
처음 ‘논리-철학 논고’에서 언어가 세계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그림’과도 같다고 보았던 비트겐슈타인은 사실적 명제로 드러낼 수 없는 윤리나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선 ‘말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후기로 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언어라는 것은 말을 하는 행위의 맥락에서 나오는 일종의 ‘놀이’이자 실천적 활동, 삶의 일부라고 보게 됐다. 이제 윤리와 종교도 문법만 다를 뿐 그 속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된다.
“후기로 갈수록 비트겐슈타인은 ‘치료(治療)’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철학적 문제를 가지는 것은 우리 사유(思惟)에 병(病)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에요.” 그것은 우리 언어의 혼란 때문에 생기는 개념적 문제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 자체를 바꾸는 윤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태어난 19세기 말 비엔나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와해되기 직전의 혼란기였습니다. 언어(言語)와 실제 세계 사이에 커다란 틈이 벌어진 때였죠.” 한마디로 ‘말이 말이 되지 않는’ 시대. 바로 그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21세기 초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라면 누구나 다 걸려 있는 ‘시대의 병’을 해결하기 위해 언어의 명료화에 천착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