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은하수 - Somewhere in Tim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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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된 영화였고 약간의 소개 멘트만으로도 왠지 보고싶은 마음이 생겼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랑이야기라면, 딱히 새로울 것도 없어 소재 자체로만 판단하다면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 진부함을 느끼기가 쉽겠지만 그래도 내가 보지 못한 영화였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전영화로 보는 재미는 또 다른 것이기에 보고픈 마음이 새삼 강하게 임한 것 같다. 

희곡작가로서 성공적인 연극무대를 끝마치고 친구들과 즐기며 축하받는 리처드 콜리어. 그런 그를 한 노부인이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예의 주시한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와 고풍스런 회중시계를 건네주며 "내게로 돌아와요."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리처드로서는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 건넨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이었음이 분명하다. 8년 후, 성공적인 희곡작가지만 글이 뜻대로 써지지 않자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그가 묵는 오래된 호텔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이 찍힌 오래된 사진을 보자마자 자신을 강하게 매료시키는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사진 속 그녀에 대해 조사하고 마침내 그녀는 다름아닌 8년 전 단 한번 만났던 그 노부인의 젊은 시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렇게 알게된 놀라운 사실 앞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리처드는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판타지 로맨스 영화이니 이 정도의 작위성은 놀랍지도 않다. 시간여행을 통해 두 남녀는 과거 속에서 만나고 사랑하지만 끝끝내 함께할 수는 없는 비극적인 운명에 처해 있다. 영화적 설정만 놓고보면 엄청 유치할 것 같지만 막상 보면 또 볼만한 영화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영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맥켄나를 연기한 실제 제인 세이모어라는 여배우는 본드걸도 연기한 배우라는데 역시 외모가 출중하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 영화는 원작자와 각본가가 동일하다. [나는 전설이다]로 유명한 리처드 매드슨이 이런 로맨스도 집필했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원작과 영화의 결말이나 설정의 몇몇 부분은 다르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가 부드럽게 맞물려져 돌아가는 장면의 완성도도 좋게 느껴졌고 다분히 감성적인 영화였다. 영화에서 두 남녀를 이어주는 증표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곡이 쓰이는데 이 영화 덕분에 아름다운 클래식도 한 곡 더 알게 됐다. 함께 할 수 없어 흐느끼고 그리워하지만 내 사랑은 곁에 없다. 그런 현실이건만 잊히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 여전히 내 안에서 더더욱 간절해지는 사랑. 망연히 창밖만 쳐다보는 리처드. 영화 초반에 그를 만나고 돌아온 저녁, 그가 쓴 극본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던 맥켄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었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했다. 원작은 몽환적인 분위기라고 하지만 영화는 그보다는 좀더 단순하지만 서정적으로 끝을 맺는 듯하다. 진정 시간을 초월하는 건 사람의 감정과 기억뿐인 것 같다. 대단한 영화는 아니지만 내겐 특별한 의미로 각인될 듯하다. 그만큼 이 영화가 내 마음에 꼭 들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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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사이에 - 아웃케이스 없음
존 터틀타웁 감독, 산드라 블록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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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로맨틱한 사랑이야기가 보고 싶었다. 얼추 내용은 알고 있다고 해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 영화는 모르는 것이다. 산드라 블록이 연기한 '루시'란 캐릭터는 정말 사랑스럽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는 사람을 가슴에 품는다는 감정이 그런 것일까. 그는 나란 존재도 전혀 모르건만, 표현하지 못한다 해서 사랑이 빠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거나 좋아하는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이 영화의 따뜻함은 '가족'에서 비롯된다. 가족이 없는 루시의 삶은 너무 적막하고 고립되어 있어 외로워 보인다. 그런 루시가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서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함께하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 가족이란 존재는 그냥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기가 쉽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를 새삼 알게 해주었다. 그 행복감을 느끼는 동시에 사실을 말하면 가족들을 실망시킬 거라는 두려움에 망설이는 루시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된다. 이미 사랑한 사람들인 가족들과 멀어진다는 건 마음이 아픈 일이니까. 계획적으로 속이려고 한 건 아닌데도 흘러가는 상황이 진실을 고백할 타이밍을 주지 않았다.  

결국 루시는 피터의 동생 잭과 결혼을 했다. 서로의 대한 감정을 확인했으니 당연한 결말이 아니겠는가. 누군가를 향한 점점 익어가는 사람 감정이란 것만큼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덩달아 행복한 감정에 동화될 수 있었다. 좋을 거라는 예상을 갖고 본 영화였지만 기대보다 더 좋은 감상을 얻을 수 있었서 만족스럽다. 로맨틱 영화는 순간이나마 아무리 외롭거나 사랑에 대해 무감각해진 사람이라도 사랑에 대해 꿈꾸고 만들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부질없는 헛된 기대라 해도. 앞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된다면 좀더 생각이 나겠지만, 시즌과는 관계없이 그저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영화가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너무나 호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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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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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책을 선택하는 데에도 습관이라는 것이 작용할 때가 있다. 싫어서 안 읽었다기보다 기존의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미처 그런 종류의 재미를 미처 모르기에 못 읽는 책이 있는 것 같다. 재미를 느끼면 계속 보게 될 텐데 말이다. 그동안 내가 전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인 미학이란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새록새록 생기는 와중에 순전히 재미있어 보인 탓에 고른 책이다.  

유쾌한 미학자라는 진중권의 모습을 톡톡히 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부족한 사람인, 본인과 같은 사람이 봐도 무방한 수준의 책이어서 다행이지 싶었다. 책을 보는 데 아무런 장애도 느낄 수 없었다. 그건 아마도 중심소재가 '놀이'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시대와 나이 그리고 지휘를 막론하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떤 식으로든 사람은 놀게끔 즐기게끔, 세팅된 존재인 것이다. 숙명적인 자연의 법칙처럼 말이다. 놀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단지 시대가 다르다는 이유로 공유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앞으로도 존재할 테지만, 그런 측면에서 놀이는 확연히 다른 방향의 길을 걸어왔다. 시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이의 기본틀은 변하지 않았다. 즉, 영원성을 얻었다 할까.

놀이가 발전하면 예술이 되고, 예술적 상상력은 기실 기술적 상상력과 닿아 있다. 모든 발전의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놀이가 오랜 시간동안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사실들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방식을 정확히 알고 있다. 책의 성격이 무겁거나 어려웠다면 선택하지도, 아마 끝까지 읽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익숙하지만 정확히는 모르는, 여전히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장황하지 않은 다양함이 좋았다. 이런 책을 집필하려면 많은 자료도 자료겠지만 그 모든 걸 압축시켜서 효과적으로 엮어낼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할 것이다. 상상력은 배울 수 없다는 것. 이 말에 얼마나 공감했는지 원.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세계를 동경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열광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을 보면서 자연스레 미술 업계에서 쓰는 전문용어를 몇 개를 건진 듯 했는데, 역시 느낌뿐이었다. 하나도 생각 안 난다. 상상력의 원천이 놀이에서 시작하기에 놀이가 적이 중요한 것이다. 상상력이란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내재하고 있는 것인지를 예술 작품을 보면 알게 되고 느끼게 된다. 우린 상상력으로 구현된 수많은 것들에 휩싸여 사는 꼴이다. 보다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사유하는, 상상력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상력의 중요성만큼은 자각하게 만드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보는 것이 내겐 하나의 놀이었다. 책 보면서 혼자 생각하고 노는 것. 이것이 내가 즐기는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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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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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독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 학생들이 읽는다면 더더욱 좋을 문학작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작가라 하면, 난 헤르만 헤세가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아마 '데미안'의 영향 때문이 아닐지. 그러나 난 여지껏 '데미안'을 완벽히 본 적이 없다. 학생시절 볼 기회도 여러 번 있었고 보려고도 시도 했으나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다. 왜 읽다 말았을까. 난 데미안을 모른다.  

요새 불현듯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더니 눈에 가장 먼저 띄인 것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헤세의 자전적인 경험담이 녹아 있다는 문구에 꽂혔던 이유도 있었고.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한스 기벤라트란 인물과 동일시되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터. 많은 사람들이 한스의 모습 속에서 과거의 자신 혹은 현재의 자신과 흡사한 측면을 목격하실 거라 생각한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너무나 닮아있는 탓에 여러 부분에서 친밀감이 느껴졌다. 한스처럼 공부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맘 때 했던 사고의 흐름만큼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한스는 영리한 소년인지라 공부를 잘했다. 동시에 내면이 여린,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이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수영과 낚시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소년. 한스란 소년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내릴 때 어느 한 가지 사실도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비정한 기성세대들은 한스를 학생으로만 인식한다. 그들은 한스에게 삶이란 오직 공부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식이다. 삶을 소중히, 가치있게 살아가게끔 돕는 지혜를 그들은 모르고 있는 듯하다. 끈덕지게 지식만을 향한다. 그들은 쉼 없이 학문에 매진하는, 학생된 자로서 충실한 모습만을 보기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스를 혹사시키고 억압했다. 그럼으로 해서 한스의 영혼은 점점 죽어갔던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한스는 그래야만 했을까. 뒤늦게 한스는 자각한다. 결과론적으로 그들의 알량한 명예욕과 만족감을 채워주기 위해서였지 한스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스는 그런 생활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갔어야 했다. 주위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자신을 바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너무 감당하기 버거운 슬픈 결과로 되돌아온다. 한스의 죽음이란 결과를 알고 봤건만 막상 활자로 그 결말과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은 가벼운 충격에 가까웠다. 타인에게 끌려가는 인생이 아닌, 자신이 바라고 믿는 바를, 자신의 생각대로 이끄는 삶의 결정이 필요하다. 한스는 수레바퀴를 굴려서 앞으로 전진하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지쳤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지치면 앞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멈출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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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2-0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중학교 다닐 때 읽었었는데 골방? 다락방 계단에 앉아 키스하는 장면이 너무 야해서 두근두근했었어요 ㅋㅋ
민감한 청소년기에 읽으면 지금 읽고 느낀것처럼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 때는 그 때 나름의 시선으로 책을 읽겠죠.

커서 다시 읽으니 그때랑은 역시 느낌이 아예 다르더라구요, 관점도 그렇고..
마지막 문장이 참 좋아요 :) 슬프기도 하고.

거친아이 2009-02-0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나이 먹고 이제야 읽었답니다~^^ 책을 멀리하던 학생이었어요.
맞아요. 책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데, 내가 그 책을 읽을 때의 감상이 어땠느냐에 따라
책이 완전히 달라지죠. 이 작품 덕분에 헤르만 헤세의 다른 책도 덩달아 읽고 싶어졌어요.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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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에세이라면,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음이 활짝 열어진 듯한 감상을 받을 수 있는 건 이 글이 맑디 맑은 진심으로 쓰여진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하나뿐인 손자 샘에게 보내는 편지. 세상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며 살아갈 샘에게 깊은 사랑으로 써내려간 할아버지의 편지는 샘뿐만이 아니라 글을 읽는 모든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쓸모 있는 지혜들을 선사해주는 것이다.  

할아버지 자신이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불편한 몸이 되었듯이, 샘에게 일어난 자폐증이란 현상도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와 같다. 물론 일어나지 않았다면, 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인생은 내 마음처럼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고통의 세월을 살아내면서 몸소 체득한 삶의 지혜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결핍이라는 것, 연약함이란 것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자신도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마음이 괴롭고 심란할 때가 자주 있곤 한다. 완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를 갈망한다고 해서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고 도리어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진정으로 내가 희망해야 하는 바는,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고 숱한 문제들을 관통하며 살아가야겠지만 내가 보다 넓어지고 깊어져서 그런 문제들을 앞에 두고 주눅 들거나 겁 먹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내가 가진 연약함도 끌어안고 사랑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불어 행복해지는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세상 모두가 가지고 있는 법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건 이해를 동반하는 것이니까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바르게 사랑할 수 있으려면 타인에 대한 나의 이해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내 헛된 욕망을 다스려야 하겠다. 내면의 상처 또한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아무는 것이라니까 굳이 상처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 

할아버지가 샘과 이 편지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내면의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며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삶을 충실히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책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한 감동으로 채워지는 책이다. 책에서 받은 좋은 영향을 쉬이 잊지 않고 생활 속에서 잘 수용하며 살아가야겠다. 현실이 암담해서 힘에 부칠 때, 상황을 극복하기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내 마음이 너무 크게 자리해서 내 뜻대로 마음을 비워내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감정적으로만 문제를 생각하는 습관은 피하고 책에서 배운 귀한 가르침을 상기해서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옮기며 사는 내가 되고 싶다. 참으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태도가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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