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독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 학생들이 읽는다면 더더욱 좋을 문학작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작가라 하면, 난 헤르만 헤세가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아마 '데미안'의 영향 때문이 아닐지. 그러나 난 여지껏 '데미안'을 완벽히 본 적이 없다. 학생시절 볼 기회도 여러 번 있었고 보려고도 시도 했으나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다. 왜 읽다 말았을까. 난 데미안을 모른다.  

요새 불현듯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더니 눈에 가장 먼저 띄인 것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헤세의 자전적인 경험담이 녹아 있다는 문구에 꽂혔던 이유도 있었고.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한스 기벤라트란 인물과 동일시되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터. 많은 사람들이 한스의 모습 속에서 과거의 자신 혹은 현재의 자신과 흡사한 측면을 목격하실 거라 생각한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너무나 닮아있는 탓에 여러 부분에서 친밀감이 느껴졌다. 한스처럼 공부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맘 때 했던 사고의 흐름만큼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한스는 영리한 소년인지라 공부를 잘했다. 동시에 내면이 여린,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이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수영과 낚시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소년. 한스란 소년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내릴 때 어느 한 가지 사실도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비정한 기성세대들은 한스를 학생으로만 인식한다. 그들은 한스에게 삶이란 오직 공부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식이다. 삶을 소중히, 가치있게 살아가게끔 돕는 지혜를 그들은 모르고 있는 듯하다. 끈덕지게 지식만을 향한다. 그들은 쉼 없이 학문에 매진하는, 학생된 자로서 충실한 모습만을 보기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스를 혹사시키고 억압했다. 그럼으로 해서 한스의 영혼은 점점 죽어갔던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한스는 그래야만 했을까. 뒤늦게 한스는 자각한다. 결과론적으로 그들의 알량한 명예욕과 만족감을 채워주기 위해서였지 한스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스는 그런 생활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갔어야 했다. 주위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자신을 바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너무 감당하기 버거운 슬픈 결과로 되돌아온다. 한스의 죽음이란 결과를 알고 봤건만 막상 활자로 그 결말과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은 가벼운 충격에 가까웠다. 타인에게 끌려가는 인생이 아닌, 자신이 바라고 믿는 바를, 자신의 생각대로 이끄는 삶의 결정이 필요하다. 한스는 수레바퀴를 굴려서 앞으로 전진하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지쳤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지치면 앞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멈출 수밖에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orgettable. 2009-02-0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중학교 다닐 때 읽었었는데 골방? 다락방 계단에 앉아 키스하는 장면이 너무 야해서 두근두근했었어요 ㅋㅋ
민감한 청소년기에 읽으면 지금 읽고 느낀것처럼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 때는 그 때 나름의 시선으로 책을 읽겠죠.

커서 다시 읽으니 그때랑은 역시 느낌이 아예 다르더라구요, 관점도 그렇고..
마지막 문장이 참 좋아요 :) 슬프기도 하고.

거친아이 2009-02-0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나이 먹고 이제야 읽었답니다~^^ 책을 멀리하던 학생이었어요.
맞아요. 책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데, 내가 그 책을 읽을 때의 감상이 어땠느냐에 따라
책이 완전히 달라지죠. 이 작품 덕분에 헤르만 헤세의 다른 책도 덩달아 읽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