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청계산과 관악산은 가까이 붙어있는 산이지만 성질이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악'자 들어간 산치고 걷기 고운 산은 별로 없다. 그만큼 관악은 뾰죽한 바위도 많고 다소 산세가 험한 곳도 많다. 그에 비해 청계산은 보슬보슬한 흙산같은 느낌이다. 이번에 처음 오른 칠갑산도 흙산이다. 어떤 등산로를 타더라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산이고, 왕복 세 시간이면 초보자라도 충분히 오르내릴 수 있는 산이다.
촉촉히 대지에 빗줄기가 내리던 시간에 시작된 산행은 오락가락 하는 비 덕에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하는 소란을 떨게 만들었다. 난 우의도 없을 뿐더러, 그냥 내리면 맞지...라는 생각으로 편히 걸었다. 일부러 엉뚱한 곳으로 시선돌려 경치보며 걷는 연습도 했다. 평평한 칠갑산이니 가능한 일이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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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정상답게 어찌 그리도 절묘하게 알았는지 딱 오른 시간에 맞춰 하늘이 요동쳤다. 그리고는 됫박으로 퍼부어댔다. 이런...된장할...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요즘 내리는 비에 흠뻑 젖어본 적 있나?라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재밋기도 하다. 더 내렸으면...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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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가 오는 날이다 보니 시야가 좋지 않았다. 산 중턱에 내려와서야 구름에서 걷힌 산세가 보인다. 계룡산이 명산이라 하나 예전에 올라서 받은 느낌은 동네 뒷산에 오른 느낌이었다. 산 하나 그저 불쑥 솟아있고 내려다보면 동네가 훤히 보이는 산. 별로 재미없다. 지리산처럼 산너머 산밖에 안보이는 곳은 아니라도 칠갑산은 산은 낮으나 산세는 수려했다. 구한말 최익현 선생이 이곳 청양에서 척화의병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글쎄... 빨치산처럼 숨어 뛰어다닐만한 곳은 아니다싶다.
도심에는 없는 상쾌한 공기와 푹신한 흙맛이 느껴지는 우중산행. 칠갑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