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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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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다. 충분한 물질적 증거가 없을 때, 불확실한 전망을 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과학의 진정한 힘은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할 수 있는 데에서 온다.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과힉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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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 투발루에서 알래스카까지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을 가다
마크 라이너스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6년 8월
절판


2억5,100만 년 전 어느 날, 엄청난 화산 분출로 오늘날의 시베리아가 탄생했다. 수십억 톤의 뜨거운 재와 가스가 대기에 분출되어 어마어마한 폭풍과 산성비가 촉발되었다. 구름이 걷히고 나자 태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타올랐고, 지구 전역에 살던 동식물이 뜨거운 열기에 죽어버렸다. 페름기 말기의 대멸종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지구 생명에 닥친 최악의 위기로, 막바지에 가서는 세계 전 생물종의 95%가 멸종되었다. 페름기와 트라이아스기 사이의 암반층을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은 엄청나게 다양한 화석들 대신에 갑자기 단조로운 까만 이암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는 갑자기 닥친 산소결핍의 흔적으로, 황폐해진 땅덩어리에서 쓸려나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들의 사체가 해저 밑바닥에서 썩어문들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이 위기는 나중에 공룡을 쓸어버린 대재앙에서처럼 소행성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지구온난화가 야기한 위기였던 것이다. (중략) 거의 멸종 수준이었던 생물다양성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까지는 5,000만 년이 더 걸렸다.

페름기 말 암석의 산소 동위원소들을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은 최근에 이 파국적인 대멸종과 관련된 지구온난화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수치를 밝혔다. 그것은 섭씨 6도였다.

2억5,100만 년을 건너뛰어 오늘날로 돌아와보자. 세계는 빠르게 온난화되어가고 있고, 그 증거는 녹아흐르는 빙하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해수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널려 있다. 2001년 IPCC는 경계표가 될 만한 '3차 평가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는 앞으로 100년 동안 온난화의 정도를 예측한 것이었다. 여기서 상한선은 예전의 평가 때보다 더 높았다. 과학자들은 이전보다 조금 더 높여야 했던 그 수치는 바로 섭씨6도였다.-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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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걷고 싶은 길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5월
절판


여행자가 바라보는 일상은 언제나 아름답다. 지나가는 이가 들여다보는 일상은 정겹고 훈훈하기만 할 뿐, 거기에 생활의 고단함은 묻어나지 않는다. 이곳 이탈리아에서도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예쁘게 꾸며진 시골집들을 들여다볼 때 어떤 어두운 면도 보이지 않았다. 부부 사이의 이런저런 갈등도, 불안정한 직장도, 불안한 노후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꽃이 활짝 핀 정원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번져가고, 생활의 습기를 걷어낸 보송보송한 평화만이 보일 뿐. 집을 짓지 않고 유목하는 자에게 세상은 조금 더 가벼운 걸까. 꿈으로 현실을 견뎌가는 일은 슬픈 걸까, 위안인 걸까. 저녁 빛이 앞산에 가득하다.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85쪽

길에는 인적이 없다. 나무와 꽃과 바위들만 여기저기 어여쁘게 서 있다. 가만히 바위들을 들여다보면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똑같은 꽃도 저마다 키와 얼굴이 다르다. 생각해보니 나는 길섶의 바위에게 "넌 왜 그 모양으로 생겼니?" 따지지 않는다. 외따로 홀로 핀 꽃에게 "넌 왜 여기 혼자 피었니?"라고 묻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왜 그러지 못한 걸까? 왜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거나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 너그럽지 못한 걸가? 타인에게 내 기준을 강요하는 습관은 언제쯤 벗어던질 수 있을까? 자연이 주는 가르침대로 일상을 살아가면 좋을 텐데...-123쪽

내 소중한 친구이자 스승인 P. 그를 만난 곳은 탄자니아의 작은 마을 아루샤였다. P는 그곳 국립대학에서 2년째 컴퓨터를 가르치는 봉사단원이었다. 처음 만난 날 저녁, P는 내게 망원경과 물휴지, 직접 담근 김치를 건넸다. 세렝게티로 야생동물 사파리를 떠날 예정이던 나에게는 무척 귀한 선물이었다. P는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계산 없이 나누고, 눈앞에 있는 이에게 마음을 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다. P의 집에서 점심을 먹던 날, 부엌 냉장고에 붙어있는 종이를 봤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전 세계 13억의 인구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대 오늘, 배불리 먹을 만큼의 일을 했는가?"-205쪽

사실 나는 버나드 쇼의 재치도 좋아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의지를 더 사랑한다. 남들이 "어쩔 수 없지. 세상이 그러니까"라며 세상 탓이나 하고 있을 때, 그는 용감하게 선언한다.
"이성적인 인간은 세상에 자신을 적응시킨다. 비이성적인 인간은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고 한다. 발전은 비이성적인 인간의 몫이다."
멋지다. 그는 또 말한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보고 묻는다. '왜 그럴까'라고. 그러나 나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꿈꾸며 말한다. '왜 안 돼'라고."-238쪽

상처로 남은 추억은 때로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실패한 사랑이 삶을 긍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실패와 상처 속 절정과도 같은 생의 한순간을 지나온 사람들은 그 순간의 영원성에 기대어 남은 생을 견뎌갈 힘을 얻기도 하는 법이다. 노먼의 죽음이 그녀(피터 래빗의 작가 포터)에게 독립적인 새 삶을 시작할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고독한 어린 시절이 그녀에게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짓게 만들었던 것처럼. 외로움이 무언가를 낳기도 하는 법이다. 내 외로움도 무언가를 낳을 날이 오리라 믿어본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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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8-2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alpan님, 훌쩍 떠나고 싶으신 거예요~? ^^

dalpan 2008-08-25 10:03   좋아요 0 | URL
훌쩍 떠나라고 친구가 사준 책이었습니다. 훽~가버릴까요? ㅎㅎ
요즘 제가 뜸해서 소식들을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늘 건강하시고.
 
산중일기 - 최인호 선답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품절


세상과 청산은 어느 쪽이 옳은가.
봄볕이 없는 곳에 꽃이 피지 않는다.

이 문구의 의미를 정확히 새길 수는 없겠지만 세속이니 청산이니, 선이니 악이니, 나니 너니 구분하고 차별할 것이 아니라 봄볕을 찾아가거라. 봄볕은 저잣거리에건 청산에건 가리지 않고 내리쪼이며, 그러기 때문에 봄꽃은 저잣거리에도 피어나고 청산에도 피어난다. 그러므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상량해서는 아니 된다. 네 마음속에서 봄볕을 찾아라. 그리하면 어느 곳에서든 꽃이 필 것이다. 꽃을 피우려면 봄볕을 찾아갈 일이지 더럽고 깨끗함, 속되고 거룸함, 악하고 선함을 구별하여 찾으려 하지 말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45쪽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소위 친구라는 미명하에 저희들끼리 떼 지어서 술을 마시고, 서로의 인연으로 사교를 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부처의 다음과 같은 경구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벗을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벗은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88쪽

남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받은 사람으로부터 되갚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복덕을 지은 것이다. 남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셈이다. 따라서 남에게 베푼 자비는 베푼 순간 잊어버려야 한다. 심지어 부모들도 자기 아이를 키운 은혜를 잊어야 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집착은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남에게 베푼 보시에 집착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남에게 입은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다.-119쪽

이상한 일이었다. 서울 거리의 우리들은 모두 각자 다른 빛깔의 옷을 입고, 각자 다른 형태의 옷을 입고 형형색색의 화장을 하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새 구두를 신고 액세서리를 치렁치렁 달아도 그 얼굴이 그 얼굴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저 방장 스님의 법회에 모인 스님들은 모두 같은 빛깔의 법의를 걸치고 같은 흰 고무신에 똑같이 삭발한 민머리인데도 자세히 보면 모두 한사람씩 자기 생각에 족한 독특한 얼굴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법회 시간이 되어 법당 안을 가득 메운 남녀노소 스님들의 얼굴들을 조심스럽게 훑어보니 모두 자기들만의 얼굴들뿐이었다.
그렇다. 개성을 만드는 것은 화장이 아니다. 옷이 아니다. 색이 아니다. 쌍꺼풀 수술이 아니고 헤어스타일이 아니다. 유행이 아니다. 지워지지 않는, 변하지 않는 개성을 만드는 일은 자신의 마음의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208쪽

절에 가면 마음이 맑게 씻어진다. 어느 절에고 행락 인파가 몰리고 술 취해 노래 부르는 주정꾼이 없으리요만 그래도 절은 대범하게 이들을 용서한다. 그 어려운 먼 길 뒤에 찾아간 절에서도 스님은 보려야 볼 수도 없다. 무엇이 부끄러운지 숨바꼭질하듯 꼬옥꼬옥 숨어서 기침 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마음대로 보려면 보시오'하고 절 문도 활짝 열어 놓고 대웅전도 활짝 열려져 있고 마당 뜨락엔 피 토하듯 붉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건만, 정작 스님들은 그 넓은 절 어디엔가 꼬옥꼬옥 숨어들어 앉아 있다. (중략) 그저 어다서나 부처님의 환하디환한 미소만 보일 뿐, 법당도 열려있고 연못 위로 시든 매화 꽃잎만 땅벌의 침처럼 내리꽂히어 떨어지고 있을 뿐.-261쪽

옛날 중국의 선사 동산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이에 동산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자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이에 동산은 대답한다.
"추울 땐 그대를 철저히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철저히 덥게 하는 곳이다."

슬픔이 없는 곳이 바로 슬픔이 있는 곳이며, 기쁨이 없는 곳 또한 바로 기쁨이 있는 곳이다. 고통과 슬픔을 피해 다니는 동안 세월은 물끄러미 사라져 간다.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없는 자리가 바로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264쪽

침묵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침묵보다 말을 하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문을 걸어 잠그고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것보다 사람들 속에서 함께 어울리되 물들지 않음이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깊은 산속에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이 번잡하다면 그는 비록 산속에 있으나 실은 장터에 앉아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침묵 수행이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가득 찬 말을 비우는 일이다. 아무런 욕망의 말도 남겨 두지 않는 것이다.

침묵은 마음의 무엇인가를 무작정 비우는 일이 아니라 침묵을 채워서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267쪽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이렇듯 진리는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다. (고 성철스님께서 내리신 법어)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은 진리가 아니라 진실 속에서 살다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크나큰 진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진실을 살다가는 것이 진리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의미입니다.-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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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구판절판


이란은 앞으로 걸었지만, 사진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은 쉼 없이 떨려왔다. 그녀는 봉투 안에서 가족사진을 꺼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억눌렀다. 그렇게 애써 자신의 격한 감정을 억누르며 걸었지만, 송범평이 일찍이 위풍당당하게 붉은 깃발을 흔들었던 다리에 다다랐을 즈음 시위 대열이 그녀의 갈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봉투 속의 사진을 꺼내보고 말았다. 첫눈에 송범평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머지 세 식구의 웃는 얼굴이 들어오기도 전에 그녀는 그만 무너져내렸다. 지난 사흘 동안 힘겹게 견뎌온 슬픔과 고통이 사진 속 생생한 송범평의 웃는 얼굴로 인해 한순간에 그녀를 무너뜨려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뜨린 것이다.-245(1권)쪽

송강은 확실히 바보처럼 그 자리에 선 채로 임홍이 지나칠 때 "저..."라는 한 마디조차 내뱉지 못했고, 임홍이 멀리 사라진 후, 다른 여공들도 모두 멀리 떠나간 후에야 임홍이 자신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송강은 그때 별안간 이광두가 임홍이 절대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한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방금 임홍이 지나칠 때 보인 냉랭한 표정이 그 점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송강은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나무 곁을 떠나 큰길을 따라 돌아올 때는 몸이 제비처럼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어제 일은 한 편의 달콤한 꿈에 불과한 거라고 생각하며 꿈에서 깨어난 듯 송강은 입을 비튼 채 웃었고, 꿈속의 장면을 다시 음미하며 꿈이 현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비록 상상 속에서의 행복이었지만 얼마나 편안했는가 말이다.-108(2권)쪽

송강은 씁쓸히 웃으며 하역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일 하며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다 폐를 다친 이야기를 했고, 이야기를 들은 이광두는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 이 개후레자식. 일자리 구하러 동네방네 다 돌아다녔으면서 나 이광두한테는 안 오구. 너 이 개후레자식. 너 지금 니 꼬라지를 봐라. 허리도 작살나고 폐도 작살나구. 너 이 개후레자식아. 왜 날 안 찾아온거야?"
이광두의 욕설에 송강은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들은 여전히 형제였던 것이다. 송강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찾아왔잖아."
(중략)
이광두의 입에서 다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런 쪼다 같은 새끼.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뭔데?"
송강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나 편지나 신문 보내는 것 정도고, 다른 일은 못해. 능력이 없어서..."
"이 칠칠치 못한 쪼다새끼야. 임홍이 진짜 눈이 멀었지. 너한테 시집을 가다니."
이광두는 분을 삭이지 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다.-67(3권)쪽

그때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송강이 안경을 벗어서 닦은 후 다시 쓰고 보니 태양이 반쯤 저물었고, 열차는 반쯤 지고 있는 태양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 사람의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는 기차에 뭉개질 안경이 아까워 벗어서 방금까지 앉아 있던 돌 위에 얹어두었지만 잘 보이지 않아 웃옷을 벗어 돌 위에 깔고 그 위에 다시 안경을 얹어놓았다. 그러고 나서 깊숙이 사람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셨고, 다시 마스크를 썼다. 그 순간 그는 죽은 자는 호흡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시체 수습을 하러 오는 사람에게 전염될까 봐 걱정했으니 말이다. 그는 앞으로 네 걸음을 걸어 두 팔을 벌린 채 철로 위에 누웠다. 철로 양측에 걸린 겨드랑이가 너무 아파 앞으로 조금 기어가 철로 위에 배를 올려놓았다. 휠씬 편안했다. 다가오는 기차에 철로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그의 몸도 따라 요동쳤다. 그는 또다시 하늘빛이 그리웠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에 펼쳐진 붉은 장미꽃밭 같은 논을 보았다. 정말 아름다웠다. 바로 그때 갑자기 놀랍게도 갈매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갈매기는 울고 있었는데, 날갯짓을 하며 멀리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열차의 덜컹대는 소리가 그의 허리를 지나쳤을 때 임종의 눈길에 남은 마지막 정경은 고독한 한 마리 갈매기가 광활한 꽃밭을 날고 있는 모습이었다.-259(3권)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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