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번째 사진책 - 즐거운 출사를 위한
곽윤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10여년 전에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내 소유의 카메라를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도 변변찮던 시절이라 알음알음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기종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최고의 카메라 반열에 올라있는 Nikon FM-2였다. 말그대로 '찰칵'거리는 묵직한 셔터소리와 찍을 때마다 필름을 감아줘야하는 완전수동 카메라지만 오히려 불편함보다는 손끝에 감기는 그 무게감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강태공들이 잊지 못하는 그 손맛처럼.

애석하게도 그 카메라는 누군지 모를 장물애비의 손에 넘어가 중고로 팔렸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FM-2는 새 것이 60만원, 중고는 언제 팔아도 40만원이라 했다. 40만원보다 훨씬 더 나에게 소중했던 그 놈을 2001년 브뤼셀에서 여권, 비행기표, 담배 한 보루, 그 간의 여행기록이 담긴 여행수첩, 기타 잡스런 가지가지와 함께 한 번에 싹쓸이 당했기 때문이다. Cannon EOS-5를 가진 지금도 FM-2를 보면 나는 눈이 돌아간다.

저자 곽윤섭 기자도 한겨레신문사에서 수습시절 처음으로 배정받은 카메라가 FM-2라 한다. 그의 직업이 사진기자라, 나처럼 한가롭게 한 장 찍고 필름 감아가면서 여유부리는 것이 즐겁지 않을진데 이미 그의 카메라는 성능 좋은 디지털카메라로 바뀌었을 것이다. 지은이의 말대로 필름 감고 바꿔끼우느라 특종 놓치지 않을까 조바심 나는 직업이니 어찌하겠는가?

시절이 조변석개라 요즘은 성능좋은 디지털카메라가 참으로 많이 널려있다. 이 책도 필름카메라 보다는 이미 대중화된 디지털카메라 사용자에게 맞도록 책이 구성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구분해두고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으로 구성된 책이다. 다만 저자의 말대로 일상에서 카메라를 접하고 사진을 찍는 '생활사진사'라는 측면에서 디지털카메라가 조금 더 강조가 되었을 뿐이다.

흔히 사진과 관련된 책은 두꺼운 아트지로 된 무겁고 커다란 사진집이 아니면, 딱딱한 이론서가 주류다. 그러하기에 책에 있어서의 사진은 무겁고 비싸 우리와 괴리된 사진집에서의 사진이거나,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엑스트라'와 같은 보조역할, 혹은 과거나 현재를 증명하고 해설하는 '쉬어가는 페이지'로서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라는 대중문화적 아이콘에 적합하도록 '생활사진사'를 정의하고 이들에게 어떻게 사진을 찍을 것인지를, 딱딱하지 않은 즐거운 사진찍기로 유도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알아야 할 셔터스피드, 조리개, 노출 등과 같은 약간의 이론을 시작으로, 프레임구성, 배경처리, 메세지 전달 등과 같이 어떻게 찍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찍을 것인가?로 책의 구성을 이루고 있는데, 후반부에는 흔히 카메라를 가지고 있을 때 누구나 해보고 싶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않는 불꽃놀이 촬영, 유성우 촬영 등에 대한 사례 얘기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이 책은 사진기를 대하고,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을지를 알려주는 옆집 형님의 깜짝 과외와 같은 책이다. 사람의 지식이라는 것이 경험과 학습의 나선효과라고 믿는 나에게, 이 책은 경험만으로 바닥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한 나의 사진찍기에 가벼운 이론적 영감을 실어줌으로서 사진을 찍고 바라보면서 어떻게 말로 설명하지 못하던 허전함을 채워주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사진집이나 엽서 등에서 본 사진처럼 흉내내어 찍어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려는 눈을 가지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이는 테크닉에 대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에 대한 훈련이 된 다음부터는 아마 대상을 진실되게 바라보려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라 믿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을 보는 방법이 있다. 일단 뜯어보라. 사진에 담긴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하나씩 해체하듯 골라내는 것이다. 그리고 각 요소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라. 주인공이 있는 사진인지, 있다면 무엇인지, 조연과 엑스트라가 있는지, 배경과 주인공 사이에는 어떤 흐름이 있는지, 또 프레임에서 주인공의 위치는 어느 자리인지도 살펴보라. 사진에 담긴 순간이 최상의 순간이 맞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라. 앞뒤 컷이 있다면 어떤 사진이었을지도 고민해 보라. 같은 방법으로 셔터와 빛에 대해서도 분석할 수 있으면 해 보자. 셔터스피드는 얼마나 될까, 빛은 어느 쪽에서 들어왔고 보조광이 있었을까, 최종적으로 이 사진가는 왜 이 사진을 찍었을까도 고민해 보자." (220p)

얼마 전 저자가 운영하는 사진클리닉 사이트 - 이 책을 쓰는데 기초를 제공한 - 에 용기를 내어 사진을 하나 의뢰했다. 역시 초심자는 소심하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조그마한 칭찬에도 기가 솟는다. 아마 그의 계속되는 사진클리닉은 "당신의 사진이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서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다."라는 Robert Capa의 말처럼 전쟁터든, 생활 속이든 어디든 가까이서 부딪히며 찍으라는 메세지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 같다.

자~ 같이 사진 찍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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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15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동카메라를 좋아하시군요. 옆지기도 그렇습니다.^^
님, 제 동생의 일 염려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고 다행히 그렇게 나쁘진 않은가 봅니다. 가슴이 조금 잠잠해집니다..

다락방 2007-03-1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가 없는 책에도 이렇듯 풍성한 리뷰가 나올수 있는것이군요. 정말 잘 읽었어요 :)

dalpan 2007-03-14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가 없다니요...곽기자 화냅니다. ㅎㅎ 꼼꼼히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락방 2007-03-1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줄거리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표현을 써야 했을까요? 전 이 책이 전문서적으로 사진찍는 방법이나 지식만 나와있는 책인줄 알았어요. 아닌가봐요. 혹여 화내시는것 같으면 잘 좀 말씀드려주세요. 헤헷 :)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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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에 이 책을 선물로 받았을 때 이미 상황은 끝으로 치닫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의 경쾌한 촉감도, 현상된 사진을 받아보는 그 설레임도 느껴본 지가 이미 오래 전이라, 이 책을 읽는 순간 내 생활에서 없어진 그 모든 것이 원치 않았던 이 상황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까 스스로 두려웠다. 살면서 지독스럽게 욕심부리는 것이 책이고, 그것도 '카파'의 책인데...

매그넘을 알게 된 건 몇 년전의 일이다.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에도 몇 차례 둘러보았고, 매그넘 홈페이지에서 사진 한 장 내려받았다고 영어로 된 메일이 와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돈 내라는 건 줄 알고 정말 놀랬었다. 매그넘은 1947년에 이 책의 저자인 Robert Capa와 Henri Cartier Bresson, David Seymour가 창립한 보도사진 에이젼시이다. 이 책의 옮긴이의 말대로 잡지사의 청탁으로 잡지사의 요구에 맞는 사진을 찍어내기 보다, 사진사가 창의적으로 찍은 사진을 모아두고 잡지사가 사가도록 만듦으로써 보도사진의 유통체계를 바꾼 일종의 독립작가집단이라 보는게 좋을 것 같다. 흔히 자본과 검열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독립영화와 같은 체계랄까. 카파와 매그넘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이 책을 다 읽고난 나는 서재에 굵직하게 버티고 있는 매그넘 사진집 "In Our Times : The World As Seen by Magnum Photographers"를 꺼내, 카파가 찍은 그 유명했던 사진들을 다시 뒤적이고 있었다. 한장..한장.. 만일 카파의 이 책을 읽지 않고서 매그넘 사진집에 실린 카파의 사진들을 이해하는 것은 화랑의 걸린 그림을 앞에두고 화가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만큼 말도 안되는 짓이었을 것이다. 전쟁보도사진이라면 누구나 보아도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게끔 하는 수 많은 장면들이 있을터이나 나는 카파의 이 책에서 전혀 그렇지않으나 가슴이 저리는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D-Day)에 참가해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찍어온 흔들린 사진도 아니고, 병사의 처참한 죽음에 대한 사진도 아니다. 마치 퍼레이드하듯 수많은 군중이 함께 걷고있는 장면 가운데쯤 아이를 안은체 시선을 내려깔고 걷고 있는 삭발한 한 여인과 그 여인의 짐으로 보이는 보따리를 들고가는 표정없는 한 남자, 많은 군중이 함께 걸으며 곁눈질하고, 웃고있다. 그리고 저 뒤쪽편으로 건물에 프랑스 삼색기가 무심히 펄럭이고...연합군의 진격으로 해방된 사르트르 마을에서의 풍경이다. 이 당시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프랑스 도시에서는 독일군에 부역하거나 협조한 여성은 전부 삭발케 했다고 한다. 아마 이 여인은 그 마을에서 쫒겨나가는 중일터이다. 한참을 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리고 가슴이 저렸다.

이 책을 읽는 묘미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사진과 세상과 더불어 그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들이 종군기자와 군인의 차이를 물어본다면 "종군기자는 군인보다 술도 더 마시고, 여자도 더 많고, 월급도 더 받고, 자유도 더 누리는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이번 게임에서 그들은 자기 입장을 자기 의사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만약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해서 그로 인해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고민에 휩싸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기의 판돈, 즉 목숨을 자기 마음대로 걸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을 골라서 걸 수 있었고, 또 막판에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어도 되는 사람들이었지.(180p)"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그가 탁월한 종군기자인 것은 그 판돈을 위험한 전쟁마다 걸었을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생각조차도 담아내는 사진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카파는 탁월하고도 철저한 종군기자였다.

독일군이 물러간 해방된 프랑스에서 카파는 스페인 내전시절의 취재를 추억한다. "장애물 뒤의 병사, 전진하는 탱크, 환호하는 사람들의 무리..." 이미 어디에선가 찍었을법한 판박이 사진을 찍는 것은 더이상 그에게는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다만 그 꿈으로 인해 그가 곁으로 돌아오기를 2년이나 기다린 여인은 작별키스와 함께 그만 떠나버린다. 책의 내내 전쟁의 긴장감과 함께 맴도는 것이 연인과의 긴장감이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묘미이다. 카파도 사람이지 않은가? 아마도 아쉬운 기억은 아픔에서 시간이 흘러 아름다움으로 변했을 것이다.

지난 7월 선물로 받은 책은 며칠 뒤 바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뒤 관계도 끝이 났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사투 속에서 왜 사랑과 평화와 고향, 그리고 두고 온 낭만을 사람들이 떠올리는지 책을 읽는 내내 너무도 단순한 궁금증이 났다. 사랑과 낭만이 가슴에서 사라짐을 느낄 때 이 책을 들어보면 어떨지... 그리고 일상을 참으로 처절한 전쟁같이 살아보면 어떨지...하는 바보같은 단순한 생각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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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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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강바람까지 더해져 그 날은 무척이나 추웠다. 다만 난생 처음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개최되었던 "전국노동자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여의도 "금성무대"(지금은 낯선 이름이 되어버렸다. 아마 위치가 LG 트윈타워 앞인데다가 그 야외무대를 금성(LG)에서 제작을 했는지 다들 "금성무대"라 불렀다.)에 모인 사람들의 열기만은 차가운 강바람도 비켜갈만큼 뜨거웠다. 입가에 번지는 허연 입김과 펄럭이는 수 많은 깃발들. 행진 대열의 맨 앞을 나섰던 현대중공업 노조원의 우람한 팔뚝은 그 큰 깃발을 한 손으로 불끈쥐고 행진할 수 있다는 것도 그 날 처음 경이롭게 본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따뜻한 남쪽동네에서 갖 대학에 들어온 나에게는 그 날 서울은 무척 추웠다는 기억만 생생하다. 그리고 며칠 뒤면 우리 동아리에서 개최하는 초청강연회 준비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준비할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것도 그 날 집회 내내 기억나던 것 중의 하나였다.

정운영 교수와는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우리 동아리의 첫 행사이자, 나름대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것이라 손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녔는데, 역시 그 분의 이름덕이었는지 대성황이었다. 그러고보니 그를 처음 대한 건 그해 여름 선배들의 권유로 샀던 "광대의 경제학(까치)"에서 이미 책 속에서 만나기는 했었다. 어린 시절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의 칼럼들.

추위에 결정적으로 약한 나는, 강연 내내 그가 입고 온 목까지 올라오는 폴라티셔츠가 인상에 많이 남는다. 지금 막 읽기를 끝낸 이 책의 표지도 역시 그 종류의 티셔츠다. 수수한 점버와 함께. 그렇게 그는 내게 호감덩어리 그 자체였고, 그의 글이 이해되기 시작할 때쯤은 읽자마자 당장이라도 그의 글을 통째로 외워 삼켜버리고 싶을 정도의 경이로움에 내내 젖었었다. 그의 생각과 말과 글들. 그 모든 것이 부족한 나에게는 존경스러움의 상징이었기에 나는 그 강연회를 위해 버린, 아니 투자한 나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으며, 내가 준비한 사소한 것들이 내게는 당당하고도 자랑스럽게 다가왔다.

"무엇이 무너지는가?"
1991년은 소련연방의 해체가 시작된 해로 기억한다. 그 분은 강연에는 응하되 전혀 원고를 주지 않으셨는데, 강연 역시도 원고 없이 그저 온 몸으로 강연을 했을 뿐이다. 다만 A4용지에 대략의 주제만 정해주었고 그 첫번째가 "무엇이 무너지는가?"였다. 그 시절 나름대로 운동하던 사람들에게는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급속한 해체는, 이게 현실이다...라고 하면서도 차마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며 인정하기는 어려웠던...뜨거운 감자덩어리였는지 모른다. 그 날 강연내용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한다. 뒷풀이조차 함께 할 시간없이 한신대로 가신다면 훌쩍 떠나버리셨으니까.

오히려 그렇게 그가 남긴 여운은 현재까지 내내 남아, 그의 글이라면 신문쪼가리를 찢어서라도 읽고 보관했다. 나의 나이 든 스크랩북에는 10년이 넘은 그의 칼럼들이 즐비하다. 직장생활 초기에는 그의 글 때문에 한겨레신문을 구독했는데, 우리 회사 우리 사업장에 한겨레는 딱 1부, 나의 신문만이 배달되었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참으로 그 분에 의해 얽힌 많은 것들이 되살아나 나 역시도 놀라울 지경이다. 아무 조건없는 존경이랄까?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이 칼럼집은 유고집이라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작년 9월 돌아가신 이후, 그간 중앙일보에 게재한 칼럼을 모아 "마지막 칼럼집"으로 출판이 된 책이라 한다. 그의 글쓰기는 언제 읽어도 여전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현상들을 수 많은 인용과 비유를 통해 아주 손쉽고도 적절하게 나타냄으로써 그의 다독(多讀)과 다식(多植)함에 기가 질리고, 결코 현학적이지 않은 명쾌한 해법 또한 읽는 이로 하여금 한결 화통하게 만든다. 적절한 분량에 적절한 비유에 적절한 해법에 적절한 눈높이. 내가 그를 고분고분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 역시도 그가 평소에 써 오던 칼럼의 글쓰기가 크게 틀리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 한겨레에서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기면서 글쓰기가 틀려졌다는 단호한 비판들이 나오는 단초들을 나 역시도 이 칼럼집을 통해 여러 번 발견하게 되었다. "부자들의 전대를 풀게하라"는 칼럼에서 "부자를 달래라! 그들이 이뻐서가 아니라 그들이 전대를 풀어야 담배보다 급한 점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등과 같은 류의 해법은 예전에 비해 다분히 중도적이고 타협적인 대안, 어찌보면 예전의 모습에서 한참 오른쪽으로 옮겨간 모습으로 비춰지고, 이는 특히나 한겨레가 아닌 조중동 중의 하나인 중앙일보에 실리는 점이 본질적 의미의 해석에서 더 크게 확대되어 비춰지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국내 정치경제, 특히 노무현 참여정부의 정책이나 실체적 정책구현 양식에서의 비평은 대기업(재벌)의 입장이나 보수적 견지에서 많은 부분 지면을 할애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그렇게 각박하게 몰아세우고 싶지는 않다. 어느 글에선가 중앙일보로 옮긴 뒷얘기도 본 적이 있고, 그 역시도 사람들의 그런 비판적 목소리를 못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겪고있는 이 '삶'이라는 것으로 변명을 삼아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더 이상 책을 지극히도 사랑하던 그를 뵐 수 없고, 그의 감칠맛나는 예리한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친구의 말대로 나는 그를 이해함으로써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함으로써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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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a1000 2006-12-0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지식인을위한 변명은 안하셔도 될듯 합니다. 여전히 그는.. 사상적 편견이 없고, 그의 책은 여전히 문장을 되새김질 하게 만들며, 또 여전히 학문에 대한 그리고 배움에 대한 자극을 줍니다... 그분은 변한것이 없습니다. 다만, 세월이 그분의 필체를 좀 부드럽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paviana 2006-12-08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마지막 문단에, 저도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dalpan 2006-12-0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lla1000님, paviana님 감사합니다. 얼결에..소 뒷발차기에... 떡!하니 "이주의 마이리뷰"에 걸려들어 블로그 개설이래 이리도 급작스런 방문자에 저도 놀랍습니다. 정교수님의 글을 많이도 좋아했기에 책 얘기보다 소솔한 제 감정을 더 많이 적은 잡념의 단상인데...운이 좋았네요.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비연 2006-12-0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리뷰 축하드려요^^ 정운영님의 이 책을 저도 최근에 읽고 너무 좋았더랬습니다. 누구나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결함도 있고 그렇겠지만, 항상 올곧은 자세를 견지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분은 존경할 만한 대상인 것 같아요^^

노바리 2006-12-1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운영 선생 글은 아직 하나도 읽어본 게 없는데, 책 꼭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기왕이면 이전의 책들도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dalpan 2006-12-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바리님...정운영선생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저도 칼럼집이 나올때마다 빠짐없이 읽고 채워놓았는데 후회하지 않으실 글들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06-12-12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 좋은 리뷰를 읽고 잔잔한 여운을 느낍니다.
10년간의 스크랩 글들이 그분에 대한 님의 존경을 그대로 보여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