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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탈당계를 내려 받았다. 8년 가까이 당비를 낸 진성당원으로서 일말의 안타까움이라도 있어야 정상일텐데, 그저 한순간에 써서 바로 팩스로 날리고 전화 한 통으로 끝냈다. 8년 전처럼 나는 다시 무당적이다.

오래된 시절에 경험했던 유사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간 쉽지않은 화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밤, 비대위 혁신안의 핵심사항이 부결되자 '와~'하고 환호하는 대의원들을 보면서 측은함마저 날려버렸다.

개인의 주변 잡기들이 과거로 유사하게 돌아가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많아진 요즘, 씁쓸함과 반가움이 수도 없이 교차한다. 최선을 다했으니 미련없이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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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2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3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4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색하게만 느껴지만 '2000'이라는 숫자가 쏜살같이 금새 흘러 '2008'이라는 숫자를 온통 눈 앞에 던져놓았다. 새로울 것 없는 해뜨고 해지는 하루하루이겠으나, 그래도 새해라고 하는 신새벽에 뭔가 올해의 화두는 있어야 하지않겠나.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전에 솔직히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지만, 그 정도로 경직되고 어두운 사회는 이제 아니라고 믿는다. 헌팅턴은 정권교체 두번이면 절차적 민주주의는 갖추어진 사회라고 했다고도 한다. 이제 우리도 그 정도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갖춘 셈이라 위안한다.

다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뭐든 쌓는 것은 지난하고 어려우나, 뭉개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유신의 암흑같던 세월과 80년대 치열하고 전쟁같던 역사는 87년 단일화 실패로 10년이라는 세월을 더 견뎌서야 정권교체라는 열매를 주었다. 그리고 딱 10년. 97년부터 2007년이 되어서 정권은 다시 넘어갔다. 그러나 그 정권창출이라는 것에 나는 그저 '세속적인 정치적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2007년을 보내면서도 아직도 찜찜한 것은 나의 '근원적인 정치적 관심'조차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새해아침에 낡은 필름을 뒤적거리다 1996년 신한국당(민정당, 민자당의 후신이며 한나라당의 전신이다)의 노동법 개악에 길거리 시위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본다.



이제는 흔해빠진 말이 되었지만 나는 이때 처음으로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 백선생님은 많이 늙었던 기억이다. 길에서 듣던 그의 목소리에 가슴이 쩌렁쩌렁 찢어지던 기억으로 뵙다 한겨울에 야윈 모습을 뵈니 마음이 편치않았다. '선생님... 사진 한 장 찍겠습니다.'고 찍은 사진이라 표정도 어색하시기만 하다.



내 카메라는 줌이 되지 않는 50mm. 내가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에서 찍은 단병호 위원장(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사진이다. 더 가까이 가지 못한 이 사진이 오히려 더 그를 경외스럽게 보이게 했다.



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동집회에서 권영길씨를 찍은 사진이다. 역시 내가 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였다. 그것도 기자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찍은 사진이다.

10년동안 창당도 했고, 국회에도 입성했고, 원내 3당으로 자리도 갖췄지만 나의 '근원적인 정치적 관심'은 올해 처참할 정도로 뭉게졌다. 물론 실망하고 끝낼 일은 더더구나 아니지만, 많은 세월동안 쌓아온 것들이 온전히 다시 서려면 아프지만 되돌아 반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믿는다. 아주 힘들수도 있겠으나, 되돌아 반성해야만 할 것이다. 가는 길이 틀리지 않다면. 

새해아침에 낡은 사진들을 들추며, 새삼스럽게 나는 패배가 참된시작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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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나 첫 직장에서 4월을 맞았을 때 학교에선 한창 전투준비를 해야 할 시기에 회사단지의 불빛들은 그저 흐리멍텅했다. 내일이 4.3인데 왜 걸게그림 하나 없고, 애도의 목소리 하나 없나싶었다. 그 적막함이 너무나 외로워 그날 사무실서 기숙사로 퇴근하는 흐린 불빛 어두운 길에서 홀로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불렀다.

이제 드디어 6월이 왔다.
 
87년 6월의 함성과 깃발은 천지에 거대한 물결로 흘러 넘실거리는 여울로 흘렀지만, 이제는 20년 전의 그 모습이 마치 미치광이의 환청과 환영같이 오간데 없다. 보라색 스카프의 민가협 어머니들보다, 함부로 허용하지 않는 색이라는 Purple을 주제로 한 신용카드사의 광고가 생각나는 요즘. 그래... 세월이 변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 끝자락에서 대롱대롱 매달렸던 청춘이지 않았는가?

군바리 천지인 남쪽 조그만 내 고향 길거리에 붙은 한 포스터에 포함된 이 사진을 보고선 무슨 사연인지도 모르면서 양철냄비 속 뜨건 물처럼 피는 부글거렸고 머리는 뜨거워졌다. 위에서 찍었으니 숨어서 찍은 것이고, 봉에 실린 힘은 때려 피흘리는 것보다 더 긴장되었으며, 불끈쥔 두 주먹은 불의에 견디지 못하는 양심이라 내게 얘기하고 있었다. 대학에 와서 5.18 보도사진들을 보고서야 이 사진이 화려한 휴가에 포위된 빛고을에서의 사진임을 알았다. 내 인생을 뜨겁게 한 첫번째 사진이다. (저는 요즘 이미지로 나를 돌아보는 중이다.)

회사일로 기업과 함께 전국을 누비던 대학방문행사도 거의 마무리 되었다. 작년에 기획을 해 올해 처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잡일이 너무 많아 노곤한 일정이었다 싶다. 그러나 뜨거운 4월/5월/6월에 대학가를 얼쩡대면서도 일보다 더 무겁고 생소한 것은 학내 분위기였다. 개인적이고 파편적인 분위기야 익힌 알고있는 터이나, 20년을 지나 맞는 그 뜨거움이 느껴지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보이지 않아, 아...요즘 친구들 공부열심히하는구나!!라고 좋게 생각하고 돌아서기 일쑤였다.

 
                [ 87년 6월 거리의 아이 ]                     [ 20년이 지난 그시절의 청년들 : 출) 전자신문 ]

신촌 Y대에서 이 사진쯤은 걸려야하지 않겠나 했던 것은 나의 보기좋은 환영이었고, 신촌 S대에서 고시에, 공기업시험에 매달린 친구들이 안타깝다는 근심가득한 친구의 목소리는 춤동아리의 현란한 몸짓 앞에서 허한 환청처럼 들린다. 그저 그 젊은 친구의 고운 말들이 되레 위안이 되고 고마울 뿐이었다.

[ 87년 6월 연세대 정문, 이한열 직격최루탄에 피격 ]

돌릴 수 없는 세월이고 돌려서도 안되는 시간이지만, 치열한 과거가 없는 미래는 썰물 앞의 모래성이다. 몸은 과거를 살고 눈은 미래를 보자고 홀로 걸을때마다 요즘은 되뇌인다. 그럼에도 지금은 6월이고, 나는 종로로 시청으로 쏘다니며 그 환청과 환영을 듣고만 싶다. 오늘을 살고있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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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0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해야 합니다. 이날을.

dalpan 2007-07-1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이 훌쩍 지난 한참 늦은 답글이네요.죄송합니다.이날을 기억해야 할 사람이 한분 더 있으신것같아 한결 힘이 납니다.

2007-08-02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2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LG 비상 걸렸다.

휴대폰으로 LCD로 돈 못 벌어서 비상걸린게 아니고, 전 직원이 계열사인 파워콤의 Xpeed 못 팔아서 안달이 났다. 일로 만나는 사람마다 LG와 끈만 있는 사람이면 Xpeed를 권한다. 맛있는 차나 한잔 권할 것이지....

"나….절라 비굴해졌다..
이딴 거 하느니 때려 친다는 말 두 못 하구..
암튼…. 눈 딱감구 해주라..

내 돌아가서 술 사마.. 이런 기회로 한번 더 얼굴 본다구 좋게 생각해야 하나.. 뜨*랄…
가입하고 6개월쓰면.. 13만원 준단다..
채워서 보내줌 고맙지.. 그럼.. 수고해라.."

San Diego에 출장 가 있는 친구가 연락이 왔다. 본인이 토로한대로 비굴모드다. 꼬박꼬박 하루에 한번씩 전화온다. 마감 다 됐다....라며. 꼴에 회사생활 10년차가 이런 일로 비굴해지니 친구인 나도 연민(?)의 정으로 가득 차 오른다. 0505 전화번호 팔다가, 019 팔다가, 이젠 Xpeed냐? 회사 때려치워라 임마.... 니가 밥 멕여줄래?....

내가 집 옮긴 이후로, 선이 달린 것들은 다 끊고 면벽수련 중인데, 결국 San Diego에서 보내 준 전화 한통에 허물어져 버렸다. 구태를 벗지못한 재벌 LG로 인해 온 국민이 피곤할터이다. LG야 인자 고마해라. 만이 뭇다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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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3-28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집에서도 알라딘을 하시겠네요. 후훗 :)

dalpan 2007-03-2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선 없는 방구석이 좋았는데, 무선을 놓으려니 돈이 또 더 들길래...그냥 냅뒀습니다. 이제부턴 광속으로 날아다닙니다. 허허..

페르소나 2007-03-2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일전화오는 파워콤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mphone99 2007-05-23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굴한 친구 왔다 간다. 덕분에 할당 다 채웠다.. 복 받을거야.. 앞으로 다섯달 더 써주는거 잊지 마라.. 매달 술 사마..^^

dalpan 2007-05-23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허...비굴친구. 오랜만일세! 어제밤에 인터넷 안되더라. 광랜이 이래도 되는거야? 그래도 매달 술산다는 소리 들으니 기쁘구마! 근데 여기 잘 찾아왔네? 허허..
 

올해 가을은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따뜻했다는 느낌이다. 실제 기온이 평년을 웃돌아서 그런지 나의 체감온도가 올라가서 그런지는 모를 일이나, 어쨌든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땡큐였다.

작년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질 때 소리가 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추풍에 낙엽이 떨어져 쌓이는 소리가 아니라, 가냘프게 매달려 있던 낙엽이 가지를 떠나는 그 순간에 뚝!하고 나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나무가 우는만큼 그 아래서 고개 떨구고 걷는 나도 지독히 속이 쓰렸다. 귀만 밝아졌는지 겨울에는 눈 오는 소리조차 선명해 사람마음을 어지럽혔다. 숨통이 막히니 귀가 터졌던 것일까?

새삼스러운 일이도 아니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수 많은 소리가 존재함을 느낄 때, 나만 무던했던지 계절의 바뀜이 도도하게 느껴질 때, 내가 눈 앞 현상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진실과 정의가 존재함을 느낄 때...나는 겸허해진다. 밝아진다. 그리고 막혔던 숨통이 터져버린다.

시간이 잘도 흘러 또 12월이다. 한 해를 마감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올해 12월에는 그간 빚진 사람들에게 뭔가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생을 공부하고 또 배풀며 살라던 어른들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한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가찮은 일이지만, 요근래 시덥잖은 나로 인해 고민하고 시름시름 했던, 짐덩이에 깨지고 잊어가던 나를 지켜주던, 한 순간이라도 웃음을 던져주던 그 잊지못할 분들께 유달리 따뜻했던 올 가을햇살처럼 그지없는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잠자기 전 일상을 되짚고, 12월에 일 년을 되짚고, 생의 끈을 놓을 때 일생을 되짚어 기쁘고 감사하기를 희망한다.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것은 마무리가 있기에 가능하다. 다시 돌아온 12월이 기쁘고, 만나고 통할 많은 사람들이 있어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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