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평점 :
[이재유] 일본에서 노동운동으로 경찰에 70여번 연행, 경성으로 강제송환, 2번의 탈옥, 경성트로이카 주도, 고문후유증으로 옥사. [김삼룡] 서대문형무소에서 이재유와 만남, 인천 하역노조에서 활동, 검거된 후 옥살이 중 해방맞이, 해방 후 남로당 주도, 원산 노동운동의 전설인 이주하와 함께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 남산근처에서 총살당함, 경성트로이카의 일원. [이현상] 한국전쟁 휴전 후 지리산 빨치산 사령관, 북으로부터 버림받고 지리산에서 토벌대에 피격, 경성트로이카의 일원.
소설 '경성 트로이카'는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배의 강도를 더해감에 따라 수많은 자칭 민족주의자들의 변절로 반도에 짙은 어두움만이 가득하던 1930년대에서 40년대 초반에 국내에서 저항세력의 주류를 이루던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을 다룬 책이다. 경성트로이카로 대변되는 이재유, 김삼룡, 이현상과 더불어 이관술, 미야케 교수, 박헌영을 비롯해 동덕여고 동창인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 사회주의자들까지도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오는데, 어찌보면 소설이라기 보다 한 편의 역사다큐멘터리를 보는 듯이 그려진 그들의 모습은 비단 영웅처럼 초인적이지도 않으며, 빨갱이라 이름 붙여진대로 냉혈한들도 아니다. 애초에 민족주의라는 것이 이념적 구분도 아니거니와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으로 이념의 성격을 띈다하더라도 이미 30~40년대에는 대다수 민중들의 해방에 대한 희망조차도 꺾어버린채 대부분의 국내 민족주의 인사들이 변절한 상황에, 조선공산당의 괘멸 이후 암암리에 지하활동을 하던 변혁세력의 주도적 이념으로 자리잡은 사회주의자들이 이념적 지표의 빈 자리를 채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에서야 아름다운 벗들의 되살아옴을 보며 즐거울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철저하게 희망에 대한 굳은 신뢰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굴하지않는 신념과 동지애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역사에 헌신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만 그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나타나지만 한때 김삼룡과 이주하가 체포되었을 당시, 북에서는 조만식 선생과 교환을 하자는 제의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이 들어선 남쪽에서는 물론이고, 소련과 북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신념과 민족의 역사라는 수레바퀴가 올곧게 굴러가는데 꽃잎처럼 흩뿌려진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책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한국현대사의 아쉬움과 더불어 그들의 역사적 헌신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지난 역사를 현재의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 이재유가 그 당시 주장했다는 주5일 근무, 의료보험, 다각적 사회보장제도가 지금 대한민국에 실현되고 있다고 대한민국이 사회주의국가는 아닌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하기에 역사적 아쉬움과 왜곡으로 가득찬 한국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던 이들에 대한 재평가는 되살아온 벗들을 맞는 우리들의 책임이라 생각된다. 변절한 수많은 자칭 민족주의자들의 변절의 불가피성에 대한 항변을 듣기 전에 버림받은 시대의 주도세력에 대한 정당성 부여가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책을 덮은 내내 들었다.
중국의 현대문인이자 변혁가인 루쉰은 희망은 있는 거라고도 없는 거라고도 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희망이 있어서 걸어가는 게 아니라 걷는 가운데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명제일 것이다. 식민지 암흑시기, 되살아온 그들은 그 암흑 속에서 새벽처럼 밝아오는 해방이라는 희망을 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