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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ㅣ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사서 읽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한가지는 재일조선인 - 서경식 선생의 글을 읽은 이후로는 재일동포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아직도 재일동포 중에 무국적자가 많으며, 남한이든 북한이든 통일되지 않은 조국은 그들에게 변화된 현실에 따라 그들의 역사적 정체성을 강요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 의 삶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관심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도쿄도 에다가와 조선인학교의 외로운 싸움에 이 책을 사서 몇 푼이나마 기부해 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에다가와 조선인초급학교는 일본우익의 대표인사인 도쿄도지사 이시하라의 이민족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정책으로 인해 수십년간 실질적 점유권을 지녀온 학교터에 대해 당장 반환하거나 사용료를 내라는 말도 안되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일본시민사회와 한국의 몇몇 관심어린 사람들과 함께 소송을 제기해 실질적인 승소를 이끌어 내었으나, 학교터에 대한 매입금을 마련하지 못해 여러 채널을 통해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논리적으로 실제 국유지를 학교가 점유했으니 돌려주는 것이 합당하나, 재일조선인의 삶을 되돌이켜 본다면 가당찮은 일이다.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의 삶은 가난과 차별, 이 두가지 용어만으로도 충분하다. 전쟁으로 인한 동원의 시대, 재일조선인은 험한 일에 끌려다녔고 그들의 삶의 터전은 식수 하나 제대로 끌어오지 못하는 일종의 변두리 집단거주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해방이후 일본사회에 살아남아야 하는 조선인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열정은 그 험한 땅에 직접 학교를 만들기에 이른다. 아무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지만, 그들은 한글을 가르치고 배웠다. 그게 에다가와 학교이고, 수많은 일본 내 우리의 조선인 학교이다.
머리가 뜨거웠던 시절,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다가 책을 집어던질뻔 했다. 그 시절 '忍'이라는 것은 세상에 타협하고 굴복하는 것에 다름아니었고, 내겐 이데올로그화된 지배개념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문득 책을 덮으며 이 생각이 난 것은, 저자가 생각하는 살아간다는 의미 속에는 재일조선인의 가난하고 차별받은 삶이 있을지언정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져버려서는 안된다는 그의 뒤늦은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나 밋밋하게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가 살아온 시대와 그가 살아온 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손을 내밀기 전에 이미 그들은 뜨겁게 살고 있을터였다.
저자 고사명(본명 김천삼)씨는 1932년생이다. 이 책 역시 1974년에 쓰여진 책이다. 내가 어쩌면 은근히 바랐던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나 피폐했던 삶에 대한 울부짖음이 아니라, 차분하게 옛 시절을 관조하고 거기에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특수성을 일본인들에게 높낮이 없는 투로 전달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어린 시절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그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가난하고 차별받아 죽음을 생각해 보았지 왜 차별받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천황을 위해 특공대에 지원하겠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찾아온 종전으로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 공허함이 오히려 그에게는 현실인식과 함께 삶을 의미를 찾아나서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태어날때 이미 조선은 일본이었던 개인사적 상황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책은 더 현실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