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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봄입니다. 집 옥상 산수유는 이미 피었던 꽃들이 시들해지고 벌써 푸른 잎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수술한 이후에야 노란 둥그런 뭉치처럼 보이던 산수유 꽃이 노란 가느다란 꽃술이 모여 하나의 꽃처럼 보였단 걸 알았습니다. 이제서야. 고향의 벚꽃은 이미 만개했지만, 여기는 이제야 개나리가 활짝 피고 벚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길가의 나무들도 파란 순들이 올라오고 곧 이 동네에 많은 느티나무들에서 연녹의 잎들이 쏟아져 나올테지요.

 

얼마 전 식당에서 박동규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스치듯 얼굴을 뵙자말자 거의 16년 전에 그룹연수원에서 처음 강의를 들었던 그 모습 그대로인듯하여 바로 알아볼 수 있었고, 식사를 끝낸 틈에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 그 강의가 처음이었고 이후에 한 번도 뵌 적도 없는데, 아버지 박목월 시인과의 애틋했던 얘기가 아직도 기억이 나 감사하단 말씀을 드렸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나의 마음도 있었지만, 생면부지의 젊은이가 다가와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면 그 분이 참으로 기쁠 듯해 기분 좋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악수한 손이 참 따뜻하더군요. 그렇게 봄은 사람을 들뜨게 하나 봅니다.

 

평소 늘 웃음으로 나를 맞아주는 이름도 모르는 분께 책도 한 권 선물했습니다. 그냥 감사해서. 그냥 봄이니까요. 몹쓸 정치판에도 봄이 오길 바랬는데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당비를 내는 어엿한 진성당원이지만 다른 당의 당선되길 바라던 후보 한 명이 개표방송이 새벽을 넘기도록 엎치락뒤치락 하길래 그냥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그 분과 여러 분들께 내가 지랄을 했습니다. 제발 내가 이렇게 선거할 때 고민스럽지 않게 똑바로 하시라고 시덥잖게 떠들어대다 눈을 떴는데, 170표차로 당선이 되셨더군요. 원하는 사람들이 선거라는 전장에서 다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희망은 남겨놓았기에 12월 대선을 기대해 봅니다. 안타깝고 아쉽지만, 이게 현실이니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또 힘을 내야겠지요.

 

나도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그냥 봉급받아 가면서 사는 것에 만족하기는 싫은가 봅니다. 내가 처한 곳에서라도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욕심을 거두지 않으려 합니다. 올해는 더 열심히 달려야 할 시기입니다만 그건 내 생각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내 생각 같지는 않은가 봅니다. 내 욕심만으로 다그칠 수는 없는 것이라 내심 고민스런 것도 있지만, 내가 변해야 세상이 바뀐다는 생각으로 그저 묵묵히 걸어가보려 합니다.
 
차도 한 대 구해볼까 합니다. 차 없어 불편한 건 별로 없지만, 어디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함이 가끔 불편케 합니다. 가야할 곳을 미리 정해 두었습니다. 아니 정했다는 표현보다 자연스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자들의 혼이 깃든 곳이라 봄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께 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내 삶에 스며든 당신들의 삶의 흔적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봄이니까.

 

야구도 시작이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우승 한 번 못해보고, 근래에 매년 꼴찌를 도맡았던 팀이라 응원하던 롯데(부산) 자이언츠가 어느새 4강에도 들고, 플레이오프도 치르게 되었습니다. 미래지향적이고도 오늘을 즐기기에 충분한 미친 응원이 즐거워 몇 년전부터 다시 보기 시작한 야구가 소리소문없이 일상의 즐거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즌은 시작되었고 우리 팀은 새로운 얼굴들로 꽤 좋은 초반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올해 딱 우승시키고, 내년에는 NC(창원) 다이노스로 넘어갈랍니다. 승리를 위한 전력질주! 봄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몇 년째 봄가을이 어느새 사라져 버린 날씨 탓에 봄이 되면 늘 들뜨지만 요즘은 조급해집니다. 당신도 이 봄이 가기 전에 묵었던 먼지들 다 털어내고 새 봄을 즐기길 바랍니다. 1년을 준비해 터트린 꽃들이 금새 사라져 버릴테니까요. 새 봄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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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선생은 당분간 고개를 뒤로 젖히지 말라했다. 엎드려 잠을 자야 했던 시기에 비하면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고통스럽다기보다 잠깐 불편하고 괴로웠던 시간이 지나면 만사가 편해질 것만 같았던 기대가 퇴색해버린 느낌이었다. 아...별을 보기는 글렀네. 의사선생의 말에서 나는 당분간 보지 못할 별과 하늘을 떠올렸다.

 

어릴때 언덕배기에 있던 집에 꾸역꾸역 오르다보면 시립게도 푸른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제 스스로 갖던 느낌을 좋아했던 것 같다. 오리온이다! 세 형제가 걸어 오를 때는 별을 보고 손가락을 펼치며 스스로만 갖던 내 느낌을 형제들과 공감할 수 있는 별이라 더욱 그 기억이 진해져버린 별이었나보다. 저 별은 내꺼! 넓다랂게 네모난 꼭지점을 이룬 네 개의 별 안에 조로록 박혀 있는 세 개의 별을 두고 니꺼 내꺼를 외치긴 했는데 난 어떤 하나를 정하고 내 별이라 얘기한 적이 없었다. 난 그 무리에 속해 있다는 것이, 빛을 내는 내 것이 무리 속에 막연히 존재한다는 것에 더 만족했었던 것 같다. 내 별은 있었으나 없었던 것이다.

 

 

눈이 좋아져 밤에 참 많은 별들이 보인다. 안경을 쓰고 보면 더 많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옥상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오리온이 눈에 들어왔다. 10년 전 지리산 연하천 길바닥 침랑 안에서 비박하며 보던 은하수만큼은 아니지만, 무심히 많은 시간을 조용히 제 갈 길을 운행하는 별이 오늘밤에는 더 반갑고도 서럽다.

 

길 잃은 가냘픈 별이 조용히 양치기 목동의 어깨에 내려앉아 잠들었노라며 별 속에서 먼동을 기다리던 양치기의 마음을 노래한 알퐁스 도데는 그저 그 순간이 아름다웠음을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양치기도 스테파네트도 조용히 운행하는 별처럼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무리지어 우리라고 말하던 것들도 각자 제 길이 있는 것이다. 그런 뻔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만 내 것을 모르는 것일까? 오늘 밤도 오리온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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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큰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대학 졸업 때 남는 시간에 만들어 선물했던 진공관앰프를 먹통이 된 체로 작년에 돌려받기는 했는데, 먼지쌓여 집구석에 처박혀있다 지난 주말에서야 진공관앰프만의 그 은은한 소리를 멋지게 살려냈다. 집에 음악이 흐르지 않으니 그것만큼 또 삭막한게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다 잠원동의 '한사장님'을 찾아냈는데 주말에서야 묵직한 고물 앰프를 들고 아파트 작업실로 찾아갔다. 허리도 아픈데 이눔의 고물덩어리는 왜 이리 무거운지...

한사장님의 아파트 거실에서 수리를 마친 내 앰프로 살려낸 그 은은한 소리! 저음의 Jazz에서 찢어지는 소프라노, 튕겨져 구르는 가야금 소리까지 내 귀에는 완벽했다. 박수! 박수!

누가 이렇게 설계했냐며 한소리 듣고, 이래저래 수리했다는 설명도 듣고, 6개 중에 2개를 러시아산 진공관으로 갈아끼웠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던 순간 또 뭐가 맘에 안들었는지 앰프를 들고 작업실로 가신다. 대충해서 집으로 보내기는 싫으시단다. 또 다시 박수! 박수!
 

= 나의 진공관 앰프 (거친 외형이라 그다지 멋있지는 않지만, 밤에 불끄고 진공관의 붉고 푸른 불기둥과 함께 은은한 소리를 들으라치면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

작업하시는 동안 친한 척을 했다. 이건 내 장끼다. 의도된 장끼가 아니라 내가 사람을 대하는 습관이다. 결국 한사장님은 미국 Texas에서 주재원으로 살았던 시절을 읊었고, 근무했던 회사까지 알아내었는데... 내가 아주 잘 아는 회사였다. 98년에 그만두었다하니 아마도 IMF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사장님'은 수리도 하지만, 직접 진공관앰프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방 하나는 아예 작업실이고, 거실을 비롯해 온 집안이 거의 앰프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이젠 은퇴하고 집에서 좋아하는 일로 소일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엔지니어로서의 기질은 다분해 보인 것에 웬지 내 마음은 더 씁쓰레하다. 재능있고 하고싶은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과 마치 장인같은 중년의 엔지니어를 볼 수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 이유였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40대 중반 넘어서까지 엔지니어 하는 사람 드물다. 회사에서도 엔지니어로 놔두지 않을뿐더러, 상대적으로 외국에 비해 국내에서는 수지타산도 안맞기 때문이다. 과거지사를 말씀하시는 안경너머의 반짝이는 눈빛만은 거짓없는 솔직함이라 믿었기에, 낯익은 사농공상의 흔적이 새삼스레 씁쓸했음이다.

그나저나 이제 집구석에 은은한 선율이 흐를테니 나도 좀 인간다워지려나? 생각만으로도 실실 웃음이 나는게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뱀꼬리 : 사실 작년에 스타 알라디너인 아프***님을 만났을 때, 고장이 나긴 했으나 저 앰프를 아프***님께 드리기로 했었다. 글만 잘 쓰는 똑똑한 서생인줄 알았는데, 아프***님은 인디에서 드럼을 친다는 말에 내가 획~ 가버렸고, 기분 좋게 '당신가져라'라고 했는데... 술깨고 집에와서 가만 생각하니 저 고물덩어리를 어찌 선물로 주겠나싶어 미안했지만 약속을 저버리고 그냥 쌩깠다. 그리고 몇 달을 묵히다 지난주에 알음알음 한사장님을 찾아가 고쳤다.

미안하오. 아프***님. 근데 저거 고치는데 돈 좀 들었소. 안가져간게 잘 한거요. 제가 음악없이 살아 상태가 메롱인지라, 좀만 듣고 드리리다. 담에 술 집에서 사는 얘기와 함께 저놈의 인도시기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술은 당신이 사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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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1-23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거 저거 부럽군요. 저도 저런거 하나 나중에 갖고 싶어요. 멋지다아.

dalpan 2008-01-23 10:20   좋아요 0 | URL
일단 우리집에 함 와서 차 한잔 즐기면서, 성능을 확인해 봄이 어떠하오?
님은 어찌 잘 지내시오?

마늘빵 2008-01-23 13:21   좋아요 0 | URL
오오 좋아요! 저런 진공관 엠프에는 왠지 계속 반복되는 유럽 테크노를 틀어야할거 같아요.

dalpan 2008-01-24 01:26   좋아요 0 | URL
이것저것 들어보고는 있는데, 여러 악기가 섞여 연주되는 것이 이상하게 끌리는구만요.
Fourplay 같은 Jazz와 사물놀이 음반이 아주 괜찮습디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편안한 날에 날 잡아야겠구만요! ㅎㅎ

다락방 2008-01-2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때 이렇게 살짝 끼어들면 왕따당하는건가요, 저?

dalpan 2008-01-24 01:27   좋아요 0 | URL
하하..그럴리가.
아예 우리집에서 번개합시다.
소문대로, 아프님이 멋있긴해요. 하하하...

마늘빵 2008-01-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뱀꼬리를 이제 봤어요. 전에 봤을 땐 못 봤는데. 근데 저한테 준다고 하셨었나요? 제가 취했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 아 근데 이런걸 받아도 되는거에요?
 

한껏 여유로운 금요일 저녁에는 오히려 마음이 바빠진다. 주중에 일에 치이다 보면 주말이 그립고, 막상 주말이 시작되면 아까운 시간이 간다는 생각에 더 그런 것 같다. 차에 달린 네비게이션에서도 오늘같은 금요일 아침이면 꼭 떠들어댄다. "와우! 오늘만 보내면 즐거운 주말이 기다리고 있네요!!!"

주중에 틈내서 보는 책도 나름대로 맛이 있지만 솔직히 "감질맛"이다. 출근생각에 넉넉히 보지 못하는 것이 내 성격인듯하다. 그러니 뿌듯함보다 오히려 감질맛이랄 수 밖에.

몸이 안좋다. 퇴근하자마자 약 퍼마시고(?)도 모자라 등짝에 두개씩이나 붙이고 읽다만 책을 들여다봤다. 무려 7만냥짜리 책이고, 그림만해도 거의 1천장에, 상하권 합해 페이지 수가 1천장이 넘는 그림책이다. 고이 모셔두고 때만 기다렸는데 오늘에서야 마침표 도장을 찍었다.

이번 주말엔 좀 할 일이 많다. 그래서 리뷰를 쓰고 싶은데... 도저히 허리가 아파 앉아있기가 힘들다. 그만하고 드러눕는게 좋을 것 같다. 나이 한살한살 먹으니 어르신들 늙어서 몸 아프다는게 이해되고, 날씨 차면 무릎 시리다는게 이해된다. 에잇...된장할..


나는 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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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1-1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저 분...
dalpan님이신거죠? 그쵸?

후훗 :)

dalpan 2008-01-21 20:30   좋아요 0 | URL
빙고! 다락님도 왠만하면 이제 썬그라스 벗으시지요? =3=3=3=3

프레이야 2008-01-22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엥? 벌써 무릎에 찬바람 들고 그러신건 아니죠? ㅎㅎ
달판 님, 새해 인사 늦었죠? 행복하소서~

dalpan 2008-01-22 12:15   좋아요 0 | URL
혜경님도 복 많이!
어제부터 눈이 계속 옵니다. 그러니...
허리가 쑤시고, 무릎에 찬바람이 드는게 사실인가 봅니다. ㅎㅎㅎ
 

아! 이제서야 겨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춥긴했지만, 단단히 무장하고 해 바뀐 새벽에 뛰었다. 올해내내 과연 며칠이나 이렇게 뛸까 생각도 했지만 이제 지워버렸다. 그냥 뛰면 되는 것을...
 

[ 이름모를 분의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 해가 뜨지않은 탄천...]

수십통의 문자메세지와 수십통의 연하장과 수십통의 연하메일을 받고서야 뒤돌아 본다. 세상 헛살지는 않았구나... 내내 그 생각을 하며 입 꾸욱 다물고 뛰었다. 때로는 애정어린 표현으로 때로는 근심어린 마음으로, 때로는 상투적인 말일지라도,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감사했다. 올해만큼 그리 감사한 적이 없었다싶고, 눈물겹게 감사한 그만큼 나는 지쳐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 차갑던 공기에도 뛰는 동안 훈훈해져 오는 몸처럼, 또 열심히 뛰어야 그들에게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언제가 되었든 내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한,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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