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일요일 아침에 옛 선인들의 글로 하루를 시작하니 고맙기 짝이 없고, 즐겁기 그지 없다. 내가 누리는 가장 큰 한가로움이자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에는 옛 사람들이 남긴 문집 중 書(편지)가 아닌 尺牘(척독)이라고 불리는 엽서 형태의 짧은 글에 대해 읽었다. 이는 온갖 비유와 함축을 써서 문외한에게는 해설이 없으면 해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 재밋고 흥미로운 것 같다. 베껴쓰는게 다소 귀찮기는 하지만...한번 따라 적어볼란다.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기에.
"진채 땅에서 고액이 심하니, 도를 행하느라 그런 것은 아닐세. 망령되어 누추한 골목에서 무슨 일로 즐거워하느냐고 묻던 일에 견주어본다네. 이 무릎을 굽히지 않은 지 오래되고 보니, 어떤 좋은 벼슬도 나만은 못할 것일세. 내 급히 절하네.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이. 여기 또 호리병을 보내니 가득 담아 보내줌이 어떠하실까?" (연암 박지원이 박제가에게 보낸 척독)
"열흘 장맛비에 밥 싸들고 찾아가는 벗이 못 됨을 부끄러워합니다. 孔方(공방) 2백을 편지 전하는 하인 편에 보냅니다. 호리병 속의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 楊州(양주)의 학은 없는 법이지요." (이에 답하는 박제가의 글)
무슨 말인지....도대체가 무슨 말이지.. 정인 교수의 말대로 알고보면 기도 안차는 글이다.
"예전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진채 땅에서 7일동안 밥을 지어 먹지 못하고 고생한 일이 있다. 그러니 진채 땅의 곤액이란 자기가 벌써 여러 날을 굶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안회처럼 가난한 삶을 즐기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벼슬하지 않아 무릎 굽힐 일 없음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보니, 이대로 굶어 죽을 수는 없고 돈 좀 꿔달란 소리다. 궁한 소리를 꺼낸 김에 염치도 없이 빈 술병까지 딸려 보냈다. 이왕이면 술까지 가득 담아 보내달란 뜻이다. ~ (중략) ~ 박제가 그 역시 돈이라고 말하지 않고 공방이라고 했다. 공방은 구멍(孔)이 네모나다(方)는 뜻이다. 동전 속에 네모난 구멍이 있기에 이렇게 말했다. 직접 먹을 것을 싸들고 가서 뵈어야 하는데 그저 동전 2백 냥을 인편에 부쳐 미안하다고 했다. 호리병 속의 일이 없다 한 것은 술은 못 부친다는 말이다. 술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여러날 빈속에 마셔 좋은 것이 없겠기에 한 말이다. ~ (중략) ~ 꿔달라는 사람이나 꿔주는 사람이나 피차 구김살이 없다. 평소 깊은 정을 나누지 않고 주고받을 수 있는 편지가 아니다. 평소의 깊은 정과 든든한 신뢰가 깔려 있다"
돈 꿔달란 소리를 이렇게 표현한 박지원의 초상화를 보면 이 글이 훨씬 더 실감나고 역설적임을 알 수 있겠으나, 인터넷에서는 보이지 않아 참 아쉽다. 호랑이 눈매에 기골이 장대하게 생긴 수염난 선비가....돈 없어도 당당한 그의 초상화와 그의 글이 일요일 아침을 상쾌하게 한다.